12월 대선의 의미와 향후 전망

노동사회

12월 대선의 의미와 향후 전망

admin 0 2,891 2013.05.08 08:55

 


'개혁·진보' 세력의 승리

대선 구도를 수구-개혁-진보로 나눈다면, 이회창-노무현-권영길 후보가 각각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일 것이다. 유권자 34,991,529명 가운데 모두 24,784,963명(투표율 70.8%)이 참가한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은 12,014,277표(48.9%), 권영길은 957,148표(3.9%)를 얻어 두 후보를 지지한 표는 모두 12,971,425표로 과반수를 2.8% 넘었다. 

선거를 불과 한 시간 앞두고 이뤄진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 철회 소동은 노무현 지지층을 더욱 결속시키면서 권영길 지지표 가운데 30만 이상을 노무현에게 흡수시켰다. 노무현과 이회창의 격차인 570,980표(2.3%)는 상당 부분 권영길 지지층에 힘입은 바 크다. 이점에서 16대 대선은 노무현과 민주당의 승리인 동시에 '개혁·진보세력'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이번 선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를 규정짓는 '수구 대 개혁' 구도가 정치적으로 정립된 첫 선거였다. 1987년 13대 대선 이래 수구-개혁 구도는 야권 분열과 지역주의, 3당 합당과 DJP 연합 등에서 드러나듯 명쾌하게 구분되지 못하고, 혼재된 양상을 띠었다. 이 때문에 최초의 민간 정부인 '문민정부'와 최초의 정권교체 정부인 '국민의 정부'는 스스로가 민주화 이행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독재잔재 청산, 재벌개혁, 한반도 평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 반면 우여곡절 끝에 '근대화 세력'과 단절하면서 사실상 단독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부는 국정운영 주체의 측면에서 이전 정부보다 더욱 분명한 개혁성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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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대 대선은 노무현과 민주당의 승리인 동시에 '개혁.진보세력'의 승리라 할 수 있다.  ▷ 출처: 오마이뉴스 ]

젊은 세대의 참여와 인터넷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세대 갈등'이었다. 지금까지의 선거에서 20·30대와 50·60대가 이처럼 대립한 적은 없었다. 60% 가까이 이른 20·30대의 노무현 지지는 젊은 세대가 가진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을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사실상 선거를 결정짓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식들의 표를 돈으로 매수하라거나 아예 투표장에 보내지 말고 놀러나 보내라는 등 수구세력이 보여준 저속한 선동은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세대 갈등의 전형적인 사례다. 20·30대는 87년 6월 항쟁으로 대표되는 30대 중심의 민주화 세대와 6월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자발적인 집단성과 결속력을 보여준 20대 중심의 탈정치화 세대라는 이질적인 구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권력·돈·학벌에 기반한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또 다른 특징은 신문과 방송 등 기존 언론매체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조선·중앙·동아로 대표되는 수구언론은 지역감정과 색깔론을 부추겼지만, 그 파괴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예년 같았으면 당락을 결정지었을 중대사안인 반미시위, 북한 핵, 북한 미사일 수출 등의 이슈가 이번 선거에선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유권자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에서 다양한 시각의 입장과 분석을 접하고, 또 토론에 참여하기도 함으로써 사태를 공정하게 바라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인터넷은 수구세력이 독점해왔던 정치 의제와 사회 쟁점의 형성 통로를 다원화함으로써 비방과 폭로라는 '네거티브 전략'이 주도하던 선거 캠페인을 정책 경쟁이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데 기여했다. 특히 많은 인터넷 매체가 기사와 논조에서 노무현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은 그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인터넷은 쟁점과 의제를 만들고 여론을 결정짓는 중요한 매체로 떠올랐다.

지역주의 약화 

이번 대선에서 지역주의는 뚜렷이 약화되었다. 노무현은 강원과 영남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서울, 경기, 충청, 제주, 호남권에서 모두 50%를 넘는 득표율을 올림으로써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는 '통합'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은 90%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호남권을 제외하고는 어느 지역에서도 50%가 넘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 

지역주의 약화는 '호남당'인 민주당 후보가 영남 출신인데서 기인하는 바 크지만, 노 후보가 가진 개혁 성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특히 영남 지역의 경우 15대 대선에 비해 지역주의가 약화되었는데, 이는 영남유권자의 1/4이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진 데서 잘 드러난다. 특히 이 지역의 노무현 지지표 상당수가 20·30대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영남권에서 지역주의는 빠르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호남권에서 노무현은 1997년 김대중이 얻은 92.9%를 넘어 95% 가까이 득표했다. 노무현이 이회창보다 개혁적이며, 또 영남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90%를 상회하는 지지율을 지역감정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호남권에서 얻은 지지율이 10%를 넘었는데 비해, 이번에 권영길 후보가 얻은 표가 1% 남짓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밑돈 점은 호남 특유의 지역 정서와 관련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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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말부터 터져 나온 반미시위 열기는 선거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출처:;오마이뉴스 ]

미국 문제
 
다른 한편으로 이번 선거는 미국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최초의 선거였다. 역대 선거에서 '반미'는 감표 요인이었지만, 이번 선거에선 이회창 후보까지 나서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부시의 직접 사과와 한미주둔군협정(SOFA)의 개정을 요구했다. 특히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1월 말부터 터져 나온 반미시위 열기는 선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미국의 북한 미사일 선적선 나포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계승을 다짐한 노무현 후보에게 부담이 되기보다 오히려 이회창 후보의 득표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는 등 미국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반미'라는 전례 없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노무현 당선자는 미국을 공식적으로 방문한 적이 없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동안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한미관계의 일정한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외 분석가들은 노무현의 당선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제동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계와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노무현 정부의 등장이 한미·북미관계 재정립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측과 더불어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해양세력이 노무현의 등장에 우려를 나타낸 반면, 북한을 비롯한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세력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는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면 북핵 문제를 비롯해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중국과 러시아에도 불리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흥미로운 것은 외국자본, 특히 미국 금융자본이 노 후보를 지지하는 제스처를 취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 통신 등 미국계 언론을 통해 표명된 월스트리트의 노무현 지지는 김대중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와 재벌개혁 정책이 차기 정부 하에서도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이회창 후보가 승리할 경우 예상되는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이 해외자본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의 앞날이 그리 밝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경제권인 동북아시아의 경제적 안정이야말로 미국 금융자본의 이익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노 후보를 선호했다는 분석이다. 

정계개편과 17대 총선 

이번 선거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특징은 민주노동당의 성장이다. 1997년 선거에서 30만 표를 얻은 권영길 후보가 이번에 95만 표를 얻으면서 선전했다. 6월 지방선거의 8.1% 득표를 바탕으로TV합동토론에 참여하면서 국민적 주목을 받는 정당으로 성장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선전은 노무현의 당선과 더불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두 번의 대선을 거치면서 진보정당은 민주화 이행과 개혁세력의 집권이라는 큰 흐름과 함께 전진해왔다. 이번의 성과를 바탕으로 내부를 결속하고 외연을 넓힘으로써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민주노동당은 안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노무현 당선자에게 김대중 정부와 '김대중 당'인 민주당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 짐이었다. 국민경선 직후 50% 넘게 치솟던 지지율이 20% 이하로 곤두박질한 것이나, 대선 교두보였던 6월 지방선거와 8월 국회의원 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것은 무엇보다 현 정권의 부패와 실정 때문이었다. 대선 승리의 주요 동인은 노무현 자신의 개혁 이미지와 국민적 인기, 그리고 재벌·축구계 출신 정치인인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와의 후보 단일화였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민주당의 개편 혹은 해체는 불가피해 보이며, 한나라당과 자민련을 아우르는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부터 민주당 내부는 선거 과정에서의 역할을 둘러싼 구주류와 신주류간의 대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선거 패배 책임을 둘러싼 공방이 시작되었다. 대선 국면이 종결되고, 2004년 총선국면으로 이행하면서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내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은 계파간 당권 투쟁을 넘어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지역주의에 기반한 현재의 양당 체제가 무너지고 보수세력과 개혁세력간의 경쟁에 기반한 양당 혹은 다당 체제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세대 교체, 인적 청산, 정당구조 변화가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