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앞에서 묻는다

노동사회

역사 앞에서 묻는다

구도희 0 4,423 2014.01.03 04:42
“역사는 혁명과 반란에 관한 기록”
갑오년 새해를 맞는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격 보다는 차라리 궂은 일 당하지 않길 바라는 심정이 앞선다. 옛날 어른들이 새해 덕담으로 했던 ‘무해무득’(無害無得)이란 말이 얼핏 떠오른다. 피해도 없고 얻는 것도 없이 무사하게 지내라는 뜻이었을 게다. 오죽 숱한 피해를 당했으면 그랬을까. 묵은해를 보내고도 밝은 미래보다는 불확실성이 더 크게 다가오는 오늘의 현실이다. 아마도 오늘 우리 상황이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돈에 차 있고, 걷어내야 할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때일수록 근본에 가까운 물음을 떠올리게 된다. 물음은 해답을 이끌기 위한 개념화의 단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러한 세상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이러한 일을 이룩하는 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역할과 임무는 무엇인가? 그래서 노동자계급 투쟁의 연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우리의 현재와 관련하여 역사 앞에서 이와 같은 물음을 떠올리게 된다. 
역사란 무엇인가. 흔히 역사를 얘기하면서 카(E.H Carr)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 그 보다 몇 세기 앞선 14세기의 이븐 할둔(Ibn Khaldūn)의 역사 정의가 오늘 우리에게는 더 큰 의미를 던진다. 
 
  “역사는 인간 사회나 세계문명에 대한 기록이다. 역사는 인간 사회의 본질적인 변화에 대한 기록이며……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항하여 일으킴으로써 다양한 층으로 구성된 왕국과 국가를 낳는 혁명과 반란에 관한 기록이다. 역사는 상이한 인간 활동과 직업에 대한, 즉 일상 생활인이나 다양한 과학과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말해 역사는 사회가 본질적으로 겪는 모든 변화에 대한 기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국한해서 본다면, 사회 변화의 기본 동력은 노동자계급의 활동과 투쟁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 투쟁의 역사, 즉 노동운동의 발전 과정을 관통하는 핵심 논리는 어떤 것일까를 떠올리게 된다. 몇 가지 주요한 역사적 사실을 들자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운동 발전의 자기논리
먼저 초기 단계 노동운동은 자본 측의 강권과 착취에 대항하는 고립․분산된 노동자의 자연발생적 투쟁으로 출발하지만,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노동자 수도 증가하고 노동과정의 집단 규율에 따라 조직되고 훈련되고 단련된 노동자들은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을 전개한다. 그와 같은 투쟁이 때로는 폭풍과도 같은 거대한 혁명 상황까지 만들어내면서 수세기에 걸쳐 발전을 거듭해 왔다. 
또, 노동운동은 노동자 대중이 진정한 주체가 되어 경제․일상적 요구의 실현을 위한 경제투쟁과 아울러 정치투쟁을 전개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체제와 제도의 개량․개혁 나아가서는 지양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리고 노동운동은 침체와 고양, 패배와 승리, 정체와 도약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고, 급격한 발전의 시기와 완만한 발전의 시기를 나타낸다. 노동운동은 구체적으로 조직․활동과 투쟁․이념과 노선․정치세력화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어 왔다. 
노동운동은 단순히 노동자계급의 지위향상이나 권리 보장을 위해서만 전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동자계급은 초기 부르주아 혁명을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과 공화제의 수립을 위해 투쟁했으며, 식민지․종속 국가들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의 주력부대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뿐만 아니라 파시즘 체제에서는 반파시즘 투쟁과 전쟁 위협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더 나아가 노동운동은 어떤 형태로든 자본주의의 개혁과 변혁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자계급의 인간다운 삶이 결코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노동운동 발전의 합법칙성에 비추어 오늘날의 노동운동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현재의 상황은 전반적으로 정체와 패배의 국면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노동운동은 국제독점자본 또는 신지유주의 지구촌화 공세에 눌려 국제노동운동 전선조차 확고하게 형성하지 못한 채 세계 전반에 걸쳐 퇴조기에 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지난날 식민지․종속국이었던 개발도상 국가들의 노동운동은 조직과 투쟁, 그리고 정치세력화 측면에서 발전의 굳건한 토대마저 구축하지 못하고 있고, 새로운 발전을 위한 뚜렷한 계기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운동의 실상은 과연 어떤가? 여러 정황에 비추어 심각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운동의 전략 목표도 명확히 세우지 못하고 있고, 조직․투쟁․정치 노선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분파 활동의 폐해가 우려스러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현장조직이나 현장 활동마저 충실하게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지도역량의 취약성마저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바로 지금이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그 발전을 위한 길을 열정 다해 찾아야 할 때라 할 것이다. 
 
낙관적 전망
이럴 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낙관적인 전망일 터이다. 오늘날 노동운동이 나타내는 퇴조와 정체는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전진과 고양을 위한 역량의 잠재적 축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 발전이 주기성(週期性)을 보이는 것이 그런 사실을 반증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 시기가 오기만을 가만히 앉아서 대기만 해서는 그런 낙관적 전망은 한갓 무위로 끝나고 말 것이다.
결국은 대중의 결속된 힘을 바탕으로 한 활동과 투쟁만이 승리와 도약의 계기를 창출할 수 있다. 현재에도 어떤 형태로든 활동은 계속 추진되고 있고, 크고 작은 투쟁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철도노조의 파업투쟁이다. 
민주노총과 철도노동조합은 △‘수서발 케이티엑스(KTX) 주식회사 설립’ 이사회 결의 철회, △국토교통부 면허 발급 중단,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발전소위’(가칭) 구성,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고소고발과 직위해제 철회 등 노조탄압 중단 등 5대 투쟁요구를 내세웠다. 
철도노조 투쟁은 전체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파업 참여와 일반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룩한 가운데, 파업투쟁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와 공사 측의 물불 가리지 않는 무거운 탄압이 저질러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노동조합의 승리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오히려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이기 때문에 패배의 높은 가능성을 안고 있고, 대량 구속․해고 등의 희생이 뒤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내막을 주의 깊게 살피면, 철도노조 파업은 승리를 기약하는 투쟁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요구를 실현하지 못하고 잔혹한 희생이 수반된다 하더라도 그렇다. 노동조합은 이번 투쟁을 통해 조직의 혁신과 강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고, 투쟁력을 복원함과 동시에 조합원들 사이에 짙게 깔려있던 좌절감과 패배의식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은 분명하다. 또 노동자들은 정권과 공사의 정책․방침이 갖는 기만성과 반노동자적 성격을 명확히 파악하게 되고, 정책 개혁 또는 정치적 요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두루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동자와 국민 일반의 이해관계와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역량 강화 또는 정치세력화가 더할 데 없이 중대한 과제임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철도노조 파업을 비롯한 최근 전개되고 있는 노동자 투쟁은 전체 노동운동이 짙은 어둠과도 같은 침체와 패배 국면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과 승리를 위한 중대한 계기가 되고, 굳건한 발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올 한 해 동안 이 땅의 노동자와 인민대중이 복되고 찬란한 희망을 안게 되길 소망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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