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별노조운동, 어디까지 왔나

노동사회

한국 산별노조운동, 어디까지 왔나

편집국 0 4,415 2013.05.2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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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09년 10월29일 (목)요일 오전 9시30분 ~ 12시
장소: 서울 서대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사회: 이병훈(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참여: 공광규(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정책실장)
      박정미(전국금속노동조합 정책국장)
      박준형(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정책실장) 
      이주호(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략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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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ue_05.jpg이병훈: 금속, 보건, 금융, 공공 등 현재 노동조합운동을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산별노동조합 조직 4곳의 정책 활동가들을 모셨습니다. 오늘 좌담은 『노동사회』 2009년 10월호에 게재된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한 연구자들의 논의에 이어지는 것으로, 직접 노조운동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 현재 노조운동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고 또 전망과 관련해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특히 산별노조운동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들어보기 위한 자리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큰 줄기는 먼저 각 조직 속에서 바라보는 노동조합운동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을 들어보고, 다음으로 그러한 진단에 영향을 주는 안팎의 요인들을 논의한 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응 방향에 대한 모색을 정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덧붙여서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에 대한 의견들과 각 조직의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 그럼 각 조직의 상황이 어떤지 순서대로 들어보죠.

Ⅰ. 각 산별노조들의 현재 상황 진단

[금융] 산별교섭 중단, 사용자단체 해산… 지금은 정부·자본 총반격기
 

공광규: 금융노조는 2000년 3월에 조직전환을 해서 2000년부터 안정적으로 산별교섭을 실시해 왔습니다. 현재 누적된 단체협약 조항도 150개가량 되고요. 그런데 올해 사용자들이 교섭 중에 산별교섭 중단 선언을 했고, 지금까지도 재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별교섭이 흔들리는 데는 신자유주의적 흐름과 맞물려 이명박 정부의 친자본적인 압박이 상당부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개별적으로 봤을 때는 외국계 자본이 접수한 은행들의 노사교섭이 불안정한 편입니다. 올해 교섭에서도, 우연일지도 모르겠지만, 외국계 자본의 비중이 큰 시티은행, 외환은행, SC제일은행 등 세 곳은 사용자들의 노조에 대한 법 중심 태도로 인해 교섭 초기부터 개별사업장에 교섭권을 위임해야 했습니다. 

한편, 금융 노사는 작년 교섭에서 사용자단체 구성에 합의를 해, 올해부터는 사용자단체와 노조가 교섭을 하기로 했었는데요. 이 또한 진행 중에 중단됐습니다. 이러한 단협사항 미이행에서 더 나아가, 작년의 임금 동결에 이어 올해에는 사용자들이 임금 삭감과 반납까지를 요구하는데요. 이러한 흐름 뒤에는 정부의 압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은행업에서는 상당한 수익이 발생하고 있거든요. 지난 10년 동안 매년 수익을 갱신했는데, 인원은 그대롭니다. 

이런 흐름들을 종합해봤을 때 지금은 노동조합에 대한 정치권력과 자본의 총반격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병훈: 금융노조의 조직 내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공광규: 최근 2, 3년간 금융권에서 노조가 개입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이뤄내면서 조직원 수는 약 2만 명가량 늘어났는데요.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내부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조합원들이 상당히 개별화된 상태입니다. 9만 명 규모로 늘어난 조합원 수도 사실은 1999년 수준을 회복한 것이고요. 현재 조직 방식으로는 더 이상 조직 확대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금융노조는 그동안 조직 확대 보다는 기존 조직 관리에 치중해왔습니다. 조직 기획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나머지 완전 비정규직과 관리직 등 조직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산별노조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과거 개별 노사관계로 풀던 문제를 이제는 정부 금융정책 수준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공공] 부상하는 ‘산별노조 회의론’… 전진과 후퇴 명확한 선택이 요구돼

dialogue_02.jpg박준형: 공공노조는 2006년 11월30일에 출범을 해서 3년차를 맞고 있습니다. 최근 공공운수연맹 차원에서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통합산별노조 건설운동 평가토론회를 진행했는데, 거기서 나온 내용들을 중심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공공노조가 출범할 때 애초 목표는 공공노조와 운수노조가 동시에 출범한 후 논의를 거쳐 조기에 통합을 해서 대산별노조로 진로를 열자는 거였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잘 안 됐습니다. 길어봤자 1~2년 정도로 상정했던 통합 전 과도기가 계속 연장되면서, 조직이 다소 어정쩡한 상태에 있는 거죠. 

그런 와중에 최근 공공노조 신임 집행부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조직 개편 논의가 폭발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3년 동안 운수노조와의 통합만 바라보다가 해놓은 게 없다, 교섭이나 산별적 운영을 심화하지 못했다는 거였죠. 그런데 그 논의 속에서 여러 가지 쟁점들 중에서도, 과도하게 골간조직 문제, 조직형태 문제에 집중이 되더라고요. 이와 관련 제 판단은 이제는 ‘조직형태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집중할 게 아니라, ‘어떤 운동을 해야 할 것이냐’라는 물음을 가지고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공공노조의 교섭은 다른 산별노조의 교섭과 달리 대정부 교섭이라는 측면이 매우 큰데요. 그렇지만 공공노조는 이 부분에서 지난 3년 동안 성과를 거의 만들지 못했습니다. 또한 공공운수연맹 내에 다수의 미전환 노조들이 존재하는데, 이 노조들과 공공노조의 관계 역시도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습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일부에서 ‘산별노조 회의론’이 부각하기도 했는데요. 교섭도 잘 안 되고 산별 미전환 노조들이 다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한 노조들은 재정적 조직적 부담만 크게 지고 전망을 갖기가 어렵다는 거죠. 이명박 정부 아래서 산별교섭이 되겠냐는 현실적인 인식도 작용했고요.

어쨌든 이렇게 위기의식을 갖고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합의점들이 만들어졌는데요. 하나는 운수노조와의 통합과는 상관없이 현재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운영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처럼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면 안 되고 산별적 운영을 대폭 강화하든 아니면 기업별로 후퇴를 하든 명확하게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3년의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구체적인 전망이 제시되지 못하면, 산별노조에 대한 회의론이 상당히 강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병훈: 다음으로 금속노조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집행부 선거가 있었고, 또 본조와 현대자동차지부와의 미묘한 충돌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는데요. 통합산별로 전환한 후 첫 집행부인 지난 집행부 활동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최근의 상황을 박정미 국장님께 들어보죠. 

[금속] 더 어려운 조건 속 ‘미완 과제’ 해결해야 하는 6기 집행부

박정미: 먼저 기존의 진행 과정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2001년 2월에 3만 조직으로 출범한 금속노조는 2006년 현대, 기아, 쌍용, 대우 등 완성차 4사 노조가 가입을 하면서 ‘15만 산별노조’로 거듭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5년 사이에 조합원 규모가 5배가 늘어난 건데요. 이러한 15만 산별노조의 첫 집행부는, 전체로 보면 5기 집행부이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집행을 맡은 정갑득 집행부였죠. 

정갑득 집행부에게 주어진 15만 산별노조를 완성하기 위한 과제를 ‘조직 정비’와 ‘정치 사회적 역할’로 나눠서 볼 수 있을 텐데요. 조직 정비의 과제는 두 가지로, 우선 하나는 교섭구조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3~4만 시절의 중앙교섭구조 체계를 15만 조직에 맞게 어떻게 만들 것인가, 즉 완성차 4사를 중앙교섭구조에 끌어들일 것인가 혹은 다른 교섭구조를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었죠. 다른 하나는 산별노조의 골간 조직체계 정비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금속노조는 규약상 지역 편재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2009년 9월 말까지로 예정됐던 기업지부들의 지역체계로의 개편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정치 사회적 역할의 문제는 산별노조가 사회적 영향력을 높이고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와 관련된 것이었고요.

우선 조직 정비의 과제 두 가지와 관련해 5기 집행부의 활동을 평가하자면, 잘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교섭구조와 관련해 완성차 4사에게서 ‘산별교섭 참여 확약서’를 받아냈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충족되면”이라는 단서가 붙었기 때문에 그간의 관행으로 봤을 때 사실상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합의였죠. 또한 지역지부로의 개편 문제도 기업지부 개별조직들의 저항으로 인해 잘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완성차지부들에서는 이미 본조의 방침을 거슬러 (기업지부) 집행부를 뽑는 선거를 실시했거나 예정하고 있습니다. 정치 사회적 과제로는 2007년 한미 FAT 반대 파업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파업 등이 진행되긴 했지만, 이는 노조가 주도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끌려간 투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출범한 6기 박유기 집행부에게는 5기가 해결하지 못한 이런 과제들을 마무리해야 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에는 처음 출범한 통합금속노조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컸고 조합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던 반면, 지금은, 좀 전에 공공노조 박준형 실장님도 말씀하셨듯이, “산별이 해준 게 뭐냐”며 조합원들의 불신이 누적된 상태입니다. 조건이 더 어려운 거죠. 결론적으로 박유기 집행부는 5기에게 주어졌던 과제를 더 나쁜 조건에서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dialogue_04.jpg[보건] 객관 조건 어렵지만, 여전히 산별노조는 우산이자 방패

이주호: 금속이나 공공에서 산별에 대한 불신과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하셨는데, 보건의료노조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보건의료노조는 우리나라 최초로 1998년에 만들어졌고, 5년 이상 줄기찬 투쟁 끝에 2004년 처음으로 산별교섭을 쟁취해, 올해로 6년차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산별교섭에 대병원과 공공병원이 대부분 들어와 있고, 임금을 의제로 다루기 때문에 나름대로 높은 집중성을 확보하고 있고, 보건의료의제와 사회적 의제를 다루면서 산업정책에 대한 개입력도 꾸준히 높여왔습니다. 게다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또 보건의료산업 자체가 성장산업이기 때문에 조합원 수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본조-지역본부-현장지부의 조직 체계도 안착시켜 왔고요. 이런 점에서 보건 산별운동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사용자들의 공세가 거세졌는데요. 특히 올해에는 산별교섭이 많은 난항을 겪었고, 결국에는 사용자단체가 해산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도 현장에서 돌파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산별교섭은 일단 중단된 상태고…… 어떻게 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거죠. 우리는 최근의 상황을 ‘산별교섭의 위기’라 규정하고 최근 중집, 중앙위, 대의원대회를 통해 지난 산별노조운동 10년의 성과와 과제들을 게시판 토론을 통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는데요, 재밌는 의견들이 많이 나왔어요. 어쨌든 종합적인 결론은 “많은 한계와 어려움이 있지만, 산별노조운동은 현장조합원에게는 ‘우산’이고 ‘방패’고 ‘보험’이다”라는 거였죠.  

조합원들의 의견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산별이란 큰 우산 속에서 교섭을 같이 하니까 힘이 약한 현장지부들도 자신들의 요구 실현에 많은 도움이 되고, 특히 장기투쟁사업장들 같은 경우는 산별이 우리를 지켜주는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는 거죠. 사용자들이 어떤 사업장에서 노조를 깨려고 할 때도 단위노조가 아니라 그 뒤의 산별노조를 보고 판단하게 된다는 거고요. 이렇듯 산별노조의 힘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조합원들에게 각인이 된 것 같고, 그런 점에서 산별노조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데는 조합원들이 큰 이견 없이 거의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보건의료부문에서도 민영화와 영리병원, 구조조정 등이 추진되면서 전반적으로 노동운동을 둘러싼 상황이 어렵습니다. 또한 조합원들도 이전에 비해서는 관심과 참여도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최근 우리 현장토론을 함께하면서, 그리고 얼마 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가서 분임토론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제 우리 노조운동이 바닥을 친 것 아니냐, 당위와 관념적 논쟁을 넘어 실천적으로 제대로 가기 위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 아니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금속도 이번 선거에 후보로 나온 두 분들의 공약이 거의 비슷하더라고요. 우리 운동이 위기는 분명하지만,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과 비전에 대한 공감대 또한 큰 흐름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병훈: 굳이 구분을 하자면, 금융과 보건은 조직 틀거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정된 가운데 교섭이 진행되던 상황에서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거세진 사용자의 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고요. 금속과 공공은 조직 변화를 겪으면서 안정되지 못한 가운데 교섭이나 조직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들을 들어보면, 현재 시점에서 조직들이 맞고 있는 그러한 어려움이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정말 바닥을 친 건지, 더 내려갈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광규: 바닥을 칠 수도 있고 더 내려갈 수도 있을 텐데요. 어쨌건 산별노조를 바라보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를 테면, 지금 자본과 정권의 탄압이나 공격이라는 게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국민들의 합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고립된 노동운동을 해왔다는 거죠. 10%의 조직된 노동자들만의 운동, 양극화된 사회에 저항하지 않는 운동, 그런 면에서 힘을 갖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겁니다. 이제는 산별 의제 개발이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그동안 조합원의 근로조건 중심 의제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구호로만 주장해왔던 금융의 민주화나 국가사회복지, 정치세력화, 기업의 사회적 책무 같은 이야기들을 산별노조 의제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준형: 산별노조의 위기라는 게 노동운동 전체의 위기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것일 텐데요. 그런 점에서 산별노조만의 위기는 없고, 노동운동의 위기가 산별노조에서 나타나는 측면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부분을 별도로 하고 산별노조운동의 위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면, 먼저 기대가 과도했다는 측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최근에 공공 산별노조 건설 당시 교육자료를 보니까, 야, 우리가 조합원들에게 엄청난 희망을 줬구나, 산별노조로만 가면 다 되는 것처럼 이야기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전략 선택의 적실성에 대한 평가가 엄밀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따지고 보면 ‘산별노조 만능론’은 결국 ‘조직형태 만능론’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산별노조운동과 관련해서 골간 체계에만 논의가 집중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문제 삼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으로 교섭의 문제를 들 수 있을 텐데요. 산별교섭이 산별노조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산별교섭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산별노조가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산별노조의 임무는 산별교섭만은 아니고, 산별교섭은 산별노조의 초기업적 활동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거죠. 특히 이명박 정부 아래서 산별교섭 진행되기 더욱 힘들어질 텐데, 산별노조의 전망을 찾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교섭 외에도 구체적으로 뭘 더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박정미: 앞에서 말씀들을 하신 것처럼 산별노조만이 아니라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활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일 텐데요. 어쨌든 저는 산별노조운동이든 민주노조운동이든 최근의 상태를 규정하는 데는 조직력 약화, 지도력 부재, 그리고 경제위기라는 세 요인들이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경제위기로 인해 발생하는 공세에 대해, 이를 받쳐줄 수 있는 현장조직력이 약화되고 끌어줄 수 있는 지도력이 부재하면서 혼란과 위기가 왔다는 거죠. 그렇지만 만약 조직력과 지도력이 튼튼해서 과정에서의 자신감이 충분하다면, 투쟁에서 패배해도 사실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나 혼란은 적은 것 같아요. 쌍용차 투쟁이 그런 예인데, 투쟁을 경험한 쌍용차 조합원들은, 현실여건상 앞으로 2~3년은 암흑기에 있을 수 있지만, 의식이 확실히 다르거든요.

어쨌든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현재 금속노조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결국 지난 시기 제기된 전망들과 과제들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상태잖아요.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얼마만큼 ‘타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조직 정비의 과제와 관련해서 기업지부를 계획대로 지역으로 편재하는 데 실패했는데, 그렇다면 산별노조의 정신과 목적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어느 정도까지 이를 양보하고 타협할 것인지, 현장 토론 속에서 그 수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정치 사회적 과제 같은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현장토론과 민주주의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진보로 나가는 방향 속에서 지도부가 현장을 적극적이고 충분하게 설득해야 하는 문제죠.

이러한 과정을 조직적으로 잘 진행할 수 있다면, 무용론의 함정에 빠지자 않고 충분히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주호: 우리 산별노조운동이 상당부분 유럽식 산별노조를 모범으로 삼았고, 그러다보니까 현실적 조건과 능력을 넘어서는 당위적인 목표를 많이 내걸어왔는데요. 때문에 앞에서 말씀들을 하신 과도한 기대들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쌍용차 조합원 중에는 “산별노조 전환할 때는 공장 없어지면 다른 데 취직시켜 준다더니 왜 안 해주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사실 보건의료노조도 처음 만들 때는 그런 식으로 조합원들을 설득했어요. 그런데 실제 해보니까 한 걸음 가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게 됐거든요. 그러면서 유럽식 산별노조운동과는 다른, ‘한국식 산별노조운동이 무엇인가’, 즉 ‘한국적 노사관계에서 노동 3권을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시스템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됐던 거죠. 

제 개인적으로, 금속이나 공공에서 벌어진 지역지부 재편 논쟁과 대산별-업종산별 논쟁을 보면서, 저게 과연 반드시 지금 해결해야 할 쟁점인가, 우리 산별노조운동에게는 그런 조직 형식적인 논쟁보다는 산별노조운동의 내용을 고민하고 초기업적인 동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죠. 그렇지만 그 형식의 완전한 실현이 현실적으로 막혀 있다면, 빨리 타협을 해서 조직체계를 안정시키고 그 다음에 내용과 동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내용은 더 높은 형식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저는 “무늬만 산별”이든 뭐든 우리가 기본 틀을 갖췄으면, 그에 맞는 산별적 내용을 확보하는 활동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활동 중에서도 특히 현장 조합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산별적, 초기업적 ‘요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쓰는 표현이 “제2의 주5일제 요구를 찾아라” 하는 건데요. 이는 인력 충원과 교대제 개선을 현장의 중심적인 요구로 보고, 이를 산별적 실천을 통해 돌파하자는 거죠. 최근에 보건의료노조는 이와 관련해서 1억 가까운 예산을 투여해서 대형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노동조합운동은 요구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그렇게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산별적 요구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막혀 있는 다른 지점들도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Ⅱ. 경제위기 속 산별노조운동 재활성화 방안 모색

이병훈: 이야기가 다소 혼란스럽게 전개되는 측면이 있는데요. 이제 현실의 산별노조운동을 좀 더 엄정하게 평가하고, 산별노조운동을 재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모색을 모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지금까지의 종합적인 진단을 넘어 새로운 산별노조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산별적 의제와 관련된 구체적인 의견들을 들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다음으로 조직의 문제, 특히 산별노조가 기업별 기득권을 넘어서 비정규직 사업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과 대공장사업장-중소사업장의 관계 설정을 따져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리더십의 문제, 즉 현재 리더십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등을 실질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1. 단결과 연대를 위한 ‘산별적 의제’ 

이병훈: 우선 의제와 관련된 질문입니다. 앞서 이야기하는 중에 금융과 보건의료에서는 각각 국민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한 의제와 조합원들에게 실익이 되고 동력을 만들어내는 의제에 대해서 간단하게 지적을 해주셨는데요. 이와 관련해 공공과 금속의 의견을 듣고, 다시 금융과 보건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정미: “무늬만 산별”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이번에 쌍용차 투쟁에서 과거 연맹시절이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만큼 수월하게 재정적 지원을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산별노조의 힘이구나, 실감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현대자동차지부에서는 상당히 많은 돈을 별도로 지원했거든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그럴 거면 차라리 연대파업을 조금이라도 조직하지” 하는 식이었어요. 그러한 상황이 “무늬만 산별”이라는 지적에 정확하게 조응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산별노조가 됨으로써 재정적 물질적 지원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형식은 갖췄지만, 실질적으로 내용을 함께 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 부분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정당화하지 말고,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저는 노동조합이 동질적인 입장을 가진 정치조직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모이는 논리는 있는 거죠, 이를 테면 임금과 고용, 노동조건에 관한 것. 이런 것들과 관련해서는, 정치적 지향이 극단적으로 다를지라도, 동일한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조라는 조직을 통해 단결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거죠. 그렇지만 여기에 머물지 말고, 그러한 조건을 통해 생겨나는 단결의 힘을 비정규직 법안이나 한미 FTA 등 사회 정치적 조건에 영향을 주기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고리가 바로 산별노조가 아닌가 싶어요. 임금 및 고용, 근로조건과 사회 정치적 지향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와 관련해, 산별노조가 제시하는 계획이 곧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산별노조의 의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금속노조가 이런 맥락에서 그동안 구체적으로 제시한 방향과 의제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주간연속 2교대제라든지, 1사1조직 등 비정규직 조직화사업, 산별교섭 제도화 등 다양하게 있는데, 중요한 것은 실현의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여기서 길게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또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박준형: 정치투쟁과 임금·근로조건의 연계와 관련된 말씀에 동의하는데요. 기본적으로 현장투쟁을 산별노조가 강하게 책임질 수 있어야 거기서 생겨나는 힘으로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공공노조가 의제로서 그동안 제시해 온 것은 사회공공성과 관련된 쟁점들입니다. 공공노조 내 연금지부가 있는데, 연금과 관련해서는 연기금의 투기자본화 반대, 연기금 운용에 대한 민주적 참여, 기초연금 도입 등을 제기했고요. 사회보험지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또 가스지부 같은 경우는 에너지 공공성이나 빈곤층에 대한 에너지 무상지원 등을 제기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공공성 의제들이 있는데요. 지금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제기되었던 다양한 의제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경제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노동자의 요구를 제기하고 여기에 맞게 개별적인 사회공공성 의제들을 총괄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산별 안에서 업종들 간에 요구를 조정한다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 총노동 차원에서 조직되어야 할 것일 테고요. 

이병훈: 이제 보건의료노조와 금융노조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죠.

이주호: 금속노조 조건준 국장이 최근에 쓴 책을 보니까 “공장 탈출”이 굉장히 강조되던데요. 이는 결국 작업장을 넘어서는 사회적 운동을 하자는 이야긴데, 보건의료부문의 노동조합운동은 사회적 운동을 하기 위해서 공장을 탈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큰 병원은 직원이 5천 명이 넘고 하루에 왕래하는 환자 가족, 관련 사람들만 3~4만 명이에요. 그러니까 공장(병원 작업장)에서 환자와 보호자들, 즉 국민들과 열심히 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보건의료노조는 산별노조를 만들 때부터 보건의료운동과 관계를 맺고 국민과 함께하는 의료 공공성운동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건의료노조가 제시했던 요구들 중에서 가장 호응을 얻었던 의제가 바로 “암부터 무상의료!”입니다. 구체적인 부분에서부터 성과를 남기는 운동을 하자는 거였죠. 여기서 착안을 해서 최근에는 경제위기 속에서 사회복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환자들에 대한 의료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는, “보호자 없는 병원 만들기”와 “건강보험 공적 보장성 획기적 확대” 운동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보호자 없는 병원 만들기”란 현재 환자 가족에게 떠맡겨져 있는 간병 부담을 병원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거죠.

병원노동자들이 산별노조를 만들고 제일 좋아했던 부분이 앞에서 말씀 드린 우산 역할과 더불어, 의료 공공성에 대한 실천을 강화한 것이었어요. 자기 문제만이 아니라 환자와 국민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준 거죠. 그렇지만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이런 사회적 의제는 임금 및 근로조건과 관련된 현장 요구들의 산별적 해결방식과 결합해야 할 텐데요. 그런 맥락에서 보건의료노조가 올해 또 다른 한 축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인력충원과 교대제, 밤근무 개선”을 위해 법·제도를 바꾸는 싸움입니다.

현재 보건의료노조는 이러한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데요. 여기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의료공공성과 임금·고용조건 두 축을 논리적으로 관통할 수 있는, 즉 의료공공성이 강화되면 병원노동자들의 임금 근로조건도 강화될 수 있도록 요구를 조직해야 할 겁니다. 어쨌든 지금 보건의료노조의 정책연구사업들과 전략기획사업들은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공광규: 금융 민주화라는 것은 경제에서 굉장히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금융이 투기 자본 등에 잠식당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이런 부분에서 좀 더 구체적인 의제들, 국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을 필요가 있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2.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미조직·비정규 사업 

이병훈: 이제 산업 내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해 산별노조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최근에는 주로 경제위기의 맥락에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텐데요. “총고용 보장”이라는 주장을 명확히 제시했던 금속부터 상황과 의견을 들어보죠.  

dialogue_03.jpg박정미: 금속노조가 경제위기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포함한 총고용 보장”을 중앙교섭 요구로 내걸긴 했지만, 사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이미 비정규직 우선 해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면밀히 봐야 할 것은 해고되는 비정규직들은 대부분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측에서 ‘약한 고리’를 치는 거죠. 이는 만약 산별노조가 충분히 조직을 하면 “비정규직을 포함한 총고용 보장”을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지금 산별노조의 힘이 많이 못 미친다는 점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는 우리 조합원이 속한 사내하청업체를 계약해지 하려 하고 있어요. 금속노조 소속이라 하더라도 조직력이 약하면 바로 치고 들어오는 거죠. 결국 총고용 보장이란 조직의 힘의 문제, 비정규직의 조직화와 정규직의 연대가 결합해야 실현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올해 교섭상황을 보면 임금동결이 상당히 확산됐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회사가 지불능력이 있지만 현장이 조직력이 없는 사업장에서는 기본급이 동결되고 성과급이 올라갔고, 조직력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회사 지불능력이 없어도 기본급 인상을 따냈어요. 현장 조직력도 회사 지불능력도 없는 상황에서는 기본급이 동결되는 경우가 많았고요. 사업장들이 각개약진을 하고 각개격파를 당한 거죠. 그런데 경기지부나 대구지부에서는 지부 집단교섭으로 임금교섭을 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임금동결이 거의 없고 다 끌어올렸어요. 집단적인 힘을 통해 하향되지 않는 방식으로 임금을 지켜낸 거죠.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하더라도 비정규직의 임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는 여전히 과제입니다. 대공장 같은 경우는 비정규직 임금인상률이 원청사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결정되거든요. 여기에 안주하게 되면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없고, 조직력을 살려낼 수도 없게 되는 거죠. 금속노조의 방침은 집단적인 연대를 통해 비정규직 임금을 끌어올리고 격차를 줄이자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 조직화가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한편, 금융 쪽에서는 일부 정규직 임금 인상분을 비정규직 임금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데요. 이 방법은 금속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우선 정규직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주체들도 여기에 동의를 하지 않아요. 스스로 따내는 임금이 아니라는 거죠. 상황이 바뀌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분위기는 그렇습니다.

이주호: 비정규직과의 임금 격차 문제는 갑갑한 게, 정규직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어쨌건 보건의료노조에서는 나름대로 2007년 정규직 임금 인상분의 1/3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아름다운 산별합의를 했고, 그 이후에도 단체협약 적용에서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는 운동도 꾸준히 확대해왔습니다. 이렇게 우리 실력과 수준에서는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산별노조인데 정규직이 지금 뭐하냐” 하면 갑갑합니다. 물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별노조운동은 그 자체로 이 문제에 기여를 하기도 하는데요. 산별교섭 이후 제일 놀라운 변화가 4만 보건의료노조가 50만 보건의료 전체의 임금 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결정자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전혀 모르는 병원에서 보건의료노조 임금인상률 합의 내용을 자기네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더란 말이죠. 때문에 보건의료노조 내 큰 사업장 노동자들이 종종 “우리는 임금 인상에 별로 신경 안 써요”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도 임금인상을 포기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또 연봉제 도입 차단이나 비정규직 확산 방지 등 보건의료노조의 여타 합의 내용들도 산업 내 전체 흐름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고요. 그런 게 산별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유럽은 50% 수준인 사회적 임금이 우리는 8% 정도인 현실에서 임금·고용을 개별 사용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고는 연대를 조직하는 게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보건의료부문에 국한해서 한 가지 방향을 제시하면, 이는 앞에서 말씀드렸던 의료공공성 요구와 현장 요구를 합치시키는 길이기도 한데, 국가건강보험체계 틀 내에 임금과 인력 관련해서 사회적 최저 수준을 명시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제도가 간병인 등 보건의료부문 비정규직들도 포섭할 수 있도록 하고요. 그런 근본적인 제도 개선 속에서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공광규: 금융노조는 15만 조직대상 중에서 9만 명 정도를 포괄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남아 있는 부분들이 비정규직과 관리직들입니다. 비정규직과 관련해서 금융노조는 초기에는 비정규 인력 비율을 규제하는 방식을 취하다가, 임금격차가 너무 벌어지면서 2004년부터는 비정규 임금 인상률을 두 배로 하는 등 하후상박 임금인상을 통해 그 격차를 줄여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 정규직화와 무기계약직화를 통하여 조합에 가입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방식들을 통해 산별 내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를 마무리하면, 이후에는 관리직까지 조직화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준형: 경제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핵심적인 요구로 공공노조는 공공부문 일자리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요. 정부가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을 집행하면서 2만 2천 개의 일자리를 감축했는데,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원감축과 구조조정으로 기존의 일자리를 줄이지 말고, 긴요한 사회서비스나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일자리들을 새로 늘리라는 거죠.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정규직들이 성과급이나 시간외수당을 반납할 테니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라고 요구하자는 주장이, 공공운수연맹 내부에서 제기됐다가 논란 끝에 채택되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의식을 이해하긴 하지만 저도 이 주장에 대해 반대를 했는데요. 이런 선제적 양보론은 제기하는 순간, 요구도 실현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사용자들이 성과급이나 시간외수당을 일방적으로 삭감할 수 있는 근거만 제시하기 쉬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일자리 확대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