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치과치료가 무력감을 쌓은 사연

노동사회

무료 치과치료가 무력감을 쌓은 사연

편집국 0 5,113 2013.05.29 11:13

어느 언론에서 마포지역 내 무료로 치과 진료를 해주는 곳이 보도됐다. 민중의 집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병원이다. 모든 게 다 무료인 치과다. 몇 백만 원 하는 임플란트도, 틀니도 모두 ‘공짜’다. 믿겨지지 않을 터다. 

물론 매일 무료진료는 아니다. 토요일에 한해서만 그렇다. 처음 그 병원에서 그런 제안을 담아 연락이 왔을 때 반신반의했다. 그냥 간단한 치료만 무상으로 해주겠지, 설마. 그런데 병원에 찾아가니 최고급 시설이다. 원장은 “민중의 집이 치과 진료가 어려운 분들을 추천해주면 무료진료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언론에 기사가 나갔다. 그 치과는 난리가 났다. 전화가 불통됐다. 무료진료를 보도한 기자가 다시 추가로 기사를 썼다.

기사에 확실히 언급을 하긴 했습니다만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토요일 무료진료를 받을 환자는 ○○치과에서 선정하지 않습니다. 가장 시급히 진료가 필요한 이들이 먼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마포희망나눔, 민중의집과 같은 지역 단체에서 직접 실사를 한 뒤 선정해, ○○치과에 추천합니다

하나하나 구구절절하고 절박한 사연들, 사연들

이제는 민중의 집이 난리가 났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 핸드폰으로도 전화가 온다. 민중의 집에 보내오는 사연 하나하나는 절박함 그 자체였다.

스물세 살 이연희 씨(가명, 여) 사연.

일단 저희 집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데요, 제 동생은 지체 2급에 왼쪽 손가락이 온전치 못해요. 계속 집에 있고 그냥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그렇게 보낸 지 2년이 지났네요. 

저희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노동층이네요. 어렸을 땐 아버지가 참 커보였는데 사실 지금 와서 보니까 우리 아버지도 꼭 온전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거의 알코올 중독 수준으로 술을 많이 드셨고, 지금은 이 술 때문에 심장에 무리가 가서 술을 못 드시고 있어요. 근데 잘 모르겠네요. 제가 안볼 때 술을 드시는지 안 드시는지.

저희 어머니는 약간 약하신 분이었는데, 20년 넘게 아빠의 술주정을 받아주면서 정신적으로 정신분열증이 계속 진행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겨울 엄마는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 하시게 되고 할머니 집에서 계속 요양 중이세요. 저희를 알아보긴 하시지만, 좀 여린 상태의 정신을 가지고 있대요.

저희 집 사정 얘기를 하면서 한숨이 드는 건 저 뿐입니다. 저는 서울 4년제 대학, 중위권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스물세 살인데 한 학기 휴학해서 현재 3학년이에요. 일단 경제적인 사정은 아버지도 많이 벌어오는 게 아니라서 제가 하는 과외비랑 해서 충당하고 엄마는 따로 나오는 정부 보조금으로 지금 생활하고 계세요.

제 꿈은 공무원이에요. 사실 국가의 복지를 통해 이 정도로 제가 성장하게 되었고, 원하는 대학도 기초생활수급권자 전형으로 들어가게 된 거였어요.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는 꼭 커서 국민들을 위해 서비스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자, 였거든요. 근데 삶이라는 게 생각하면 고단하더라고요. 제 동생은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 배운 것도 없지, 아빠는 심장병 이후에 많이 마르셨고, 이제 몇 년 뒤면 육십이신데, 엄마 역시 그렇지.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항상 집안 어른들은 “네가 잘해야 해, 네가 잘 책임져야 해”라고 합니다. 

이런 의식 속에서 전 오히려 이런 책임을 회피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엄마가 저렇게 된 뒤, 전 오히려 제 삶을 챙기고 가족을 뒷전으로 했죠. 저는 거의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고, 집에서 밥도 안 먹고……

그러다가 이제 스물세 살이 되고 1, 2년 뒤에 취업도 해야 되는 진짜 성인인데, 뒤를 돌아보니까 우리 가족은 참 엉망이네요.

일단 아버지는 이가 두 개나 없으셔서 고기도 못 드시고 매일 힘들게 드세요. 예전에 했던 틀니 비슷하게 때운 게 한 2년 전에 빠지셨는데 임플란트 치과 비는 몇 백이 드니까 우리 집은 감당할 수 없어서 계속 미룬 거고요. 그래서 아빠는 맨 날 잇몸도 붓고…… .

어떻게든 치과에 갈 돈을 벌고 싶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네요.

그리고 저 역시 오른쪽 어금니랑 충치도 있지만, 작년에 견적으로 내보니 이백 정도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까지 방치해 두고 있고…….

제 동생은 한 번도 제대로 봐준 적이 없어서, 무료가 아니라도 좋아요. 한 달에 십만 원씩이라도 제가 취직하면 금액을 더 올려서라도…… .

그리고 저희 아버지 알코올 프로그램에 관련해서도, 아마 가시진 않을 건데, 딸로서 제가 해야 될 일이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저도 요새 어금니가 너무 아파오고 이빨 빠진대가 자꾸 염증이 나더라고요. 뭔가 하긴 해야 되는데…….

혹시 도와주신다면 방학 이후에 어려운 학생들 공부를 가르치고 싶네요. 잘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영문과라서요.

결론은 치과 때문에 도와달라고 한 건데, 뭔가 이렇게 주절주절거려서 죄송해요. 변명 같아 보이기도 하겠지만 정말 절실하거든요. 에구.
뭐 요즘에는 경기가 너무 안 좋아져서, 저희 가족 말고도 힘든 가족도 많겠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많은 사연들,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사연들이 도착했다. 젊은 층이 많이 보는 인터넷 매체에 보도가 되어 그런지, 부모의 치료를 간절히 원하는 자식들의 편지가 주를 이뤘다.

(틀니가 다 빠지고 쇠만 덩그러니 뾰족하게 남아서) 6~7년을 밥에다 물을 말아서 드시든가 김치 국물에 드시든가 반찬을 국물위주로만 드시고 계십니다. 지금도 그러시고요. 평생을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시게 할 거 같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의지할 데가 여기밖에 없습니다. 돈 없으면 어디서도 대우를 못 받습니다. 기초생활수급권자도 자식들이 있다고 안 된다고 합니다. 글을 쓰고 나니 마음이 좋아집니다. 뭔가 된 듯한 기분, 이 기분 안고 좋은 꿈 꿔야겠네요. 간절한 소망은 꼭 이루어진대요.

“이 상태로 도대체 여태 어떻게……” 싶은 사람들

우리는 회의를 했다. 어느 사연 하나 절절하지 않은 게 없었다. 그 속에서 누구를 탈락시키고, 누구를 선정한다는 것에 두려움까지 느꼈다. 결국 첫 번째 사연으로 소개한 이연희 씨를 비롯해 몇 분을 치과에 소개했고, 진료가 진행 중에 있다. 서울 이외 지역에서 사연을 보낸 분은 너무도 안타깝지만 거리가 멀어 힘들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

노동조합 조합원을 비롯해 노조 활동가들의 문의도 쇄도했었다. 몇몇 활동가들에게는 진료비의 50%를 할인해 주기도 했다. 차상위계층에 해당하는 수입구조. 치과에서도 “도대체 이제까지 이 상태로 어떻게…….”라며 놀라워한다. 이제는 조합원, 그리고 활동가들이 가족의 진료까지 부탁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앞서 소개한 사연처럼 절박함이 묻어있다.

무료로 해달라는 얘기는 아니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5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는 활동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족이 몇 백만 원 임플란트 치료를 받기가 얼마나 버겁겠는가.

치과진료. 좋은 일 해보자고 했는데, 결국은 병원도, 우리도 더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됐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당장 해결될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을 접했지만, 그 구조를 바꾸는 일은 너무도 멀어 보인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 속 시원하게 답을 좀 내려줄 사람 어디 없는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