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설립으로 삼성의 족벌세습 막아야

노동사회

노조설립으로 삼성의 족벌세습 막아야

admin 0 3,974 2013.05.07 10:15

 

삼성그룹은 단순한 기업이 아닌 치밀한 정보력과 관리력을 갖춘 거대 권력이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회장에서 이건희 현 회장에 이르기까지 무노조경영은 하나의 원칙이라기보다 철학으로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무노조경영이 실제 어떤 식으로 실행되어 왔는지를 일반인들이 알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삼성그룹의 정보 차단의 정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의 무노조경영으로 해고당한 사람들과 퇴출과정에서 부당해고 된 사람들이 하나씩 모여 삼성그룹에 대항한 단체행동을 시작했다. 2000년에 설립된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이하 삼성해복투)가 바로 그것이다. 

삼성해복투를 세우며

samsung_01.jpg삼성해복투 건설을 위해 1998년 이천전기, 삼성중공업, 삼성시계 해고자가 모여 1차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이후 특별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다가 1999년 이천전기, 삼성중공업, 삼성SDI 해고자가 모여 2차 삼성해복투 준비위를 건설했으며, 마침내 2000년 1월 26일 삼성해복투를 세웠다. 

삼성자동차, 삼성물산, 삼성에스원 등 기타 계열사 노동자들도 결합한 삼성해복투는 삼성그룹 전 계열사를 상대로 무노조 노동자 탄압분쇄, 전근대적인 족벌경영분쇄, 기만적 구조조정 중단을 주요 요구로 내걸고, 지난 4년 동안 원직복직과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조직사업을 전개해왔다. 

삼성그룹은 삼성노동자들에게는 평생직장, 남녀평등, 그리고 학력차이가 없음을 홍보해왔다. 그러나 1998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삼성은 삼성자동차를 무리하게 시작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각 계열사마다 구조조정이라는 핑계로 4만 명의 노동자를 강제 해고했다. 삼성생명에서는 회사 적자가 3조4천억 원이어서 희망퇴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위로금은커녕 퇴직금도 못 받는다며 1700여명(그 중 여성이 1200명)을 강제 정리해고했다. 그러나 1999년 결산보고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1천억 원에 이르는 흑자를 봤으며, 1700여명을 해고한 자리에 삼성자동차 직원을 채용하고, 정규직 자리에 비정규직을 채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삼성의 무노조 전략의 기반이 되었던 물질적 보상이 보너스 삭감, 복지비 삭감, 노동강도 강화 등으로 약화되자 각 계열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고용불안은 본능적으로 노동조합을 건설하도록 내몰았다. 삼성물산, 삼성에스원, 삼성생명 서비스사, 삼성전기 등 여러 계열사에서 민주노조 설립시도가 있었으며, 삼성상용차 노동자들이 모여 초기업 단위의 노동조합인 삼성그룹 노동조합 건설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삼성해복투는 2000년 9월 광주 삼성전자의 세금포탈, 대우지하철 붕괴 시 삼성물산의 부실공사, 그리고 족벌세습경영을 위한 이건희의 주가조작 세금포탈 및 불법비리를 폭로해왔다. 그리고 2000년 6월 이건희 및 계열사 사장들을 1차 고발했다. 2000년 12월에는 대구 삼성상용차 내 불법폐기물 매장, 2001년 3월 삼성물산의 도봉구 방학동 부실공사 은폐를 위한 야간작업 등을 폭로했으며, 2001년 6월에는 삼성물산 재천고가교 붕괴를 폭로했다. 

한편, 삼성해복투 산하 삼성생명해복투가 2001년 7월 9일 사무금융연맹에 정식 가입했다. 기존 삼성생명노조가 사무금융연맹에 가입해 있어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은 7월 6일 서울지역 사무전문서비스직노조에 가입함으로써 민주노총의 조합원이 되었다. 

삼성그룹 노조탄압 사례

아래 사례들은 삼성그룹의 무노조경영의 실체를 드러내준다. 이들을 종류별로 묶는다면 복수노조금지조항 악용, 회유·협박을 통한 노조설립 포기, 그리고 퇴출을 통한 정리해고가 있다. 이는 최근의 사례들을 정리한 것일 뿐 삼성그룹의 노조탄압은 1977년 제일제당 노조탄압, 1987년 삼성조선 노조탄압 등 오랜 시기에 걸쳐 자행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① 복수노조금지조항 악용
2000년 5월 24일 에스원에서 이정우 노조위원장 등 네 명이 서울 중구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냈으나 이보다 20분 앞서 기술지도팀 과장이 노조설립신고서를 강남구청에 내 이들의 신고를 무효화했다. 이뿐 아니라 노조 설립을 추진했던 네 명은 2001년 4월 해고되었다. 또, 삼성코닝에서 분사된 아텍엔지니어링 노동자들이 2000년 10월 노조창립총회를 열고 수원시청을 찾아갔으나 이미 삼성에서 5분 먼저 서류를 접수시켜 노조 설립이 무산되었다.

(주)새한은 2000년 6월 1일 구미공장 가입 대상 530여명 중 470명이 모여 노조를 결성하여 1995년 회사가 설립한 노조의 '휴면노조해산의결'을 요청했지만, 강남구청은 임원과 규약변경 신고를 반려했고 새한 노조에 대해 직권해산을 명령했다. 

② 회유, 협박을 통한 노조설립 포기
삼성 SDI 수원공장에서 노조설립을 시도한 직원들에게 회사는 한 명당 6천만 원∼8천만 원을 건네며 사직을 요구했다. 그러나 노조설립을 강행하자 이를 막기 위해 납치, 사직서 강요, 해외발령 등의 방법을 사용했고, 그 결과 박경렬씨는 회사로부터 고발당해 수원구치소 수감, 고용선씨는 사직, 천안공장의 김갑수씨는 징계해고 된 후 회사관리자에게 납치되기도 했으며, 울산공장의 송수근씨는 두 차례에 걸쳐 구속된 상태다. 

또, 조합원 200여명으로 1999년 11월 1일에 설립된 삼성생명서비스노조는 신고필증을 받았지만, 노동조합 간부들이 비밀리에 노조해산 신고를 했다. 

분당 삼성플라자 200여명의 조합원들도 1999년 3월 4일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지만 노조가 노조설립 유보에 합의했다며 해명없이 설립신고를 철회했다. 

삼성그룹의 계열사로 40년 넘게 무노조 정책을 고수해온 신세계백화점에서는 신철홍 노조위원장 등 5명이 비밀리에 모여 1998년 10월 9일 직원 30여명만이 모인 가운데 노조결성식을 치렀으나 11월 3일 노조위원장이 신고철회서를 제출했다. 또한, 1999년 10월 11일에도 노조설립을 시도했지만 주요 논의사항이 합의됨으로써 3일만에 노조설립신고를 철회했다. 

③ 퇴출을 통한 정리해고
대형변압기 등을 생산하는 이천전기는 1998년 6월 삼성그룹의 다른 3개 계열사와 함께 퇴출되었다. 삼성그룹은 퇴출을 결정한 후 노동자들에게 미리 사표를 내면 회사를 넘기더라도 재고용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일진그룹에 넘겨진 후 고용승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노조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상여금을 반납하고 명예퇴직에 합의했다.

1994년 자동차 사업을 21세기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키워나가겠다고 약속하고 삼성상용차 사업을 시작한 삼성은 1998년 3월 27일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0년 11월 3일 삼성상용차가 퇴출되자 회사측은 100% 고용승계 약속을 어기고, 잔류인원에 희망퇴직을 강요했다. 그뿐 아니라 1997년 말 삼성상용차에 노조설립을 추진했던 김성태씨는 모두 8차례에 걸쳐 대구, 서울 등지로 전보 발령을 받았으며, 회사 관계자들의 일상적인 미행과 감시에 시달렸다. 그 결과 1998년 3월부터 내과, 정신과 등에서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지만 회사는 1998년 10월 김씨를 희망퇴직 형식으로 해고했다. 

2000년 6월 설립된 중앙신문인쇄노조의 조합원들은 중앙일보에서 분사된 (주)중앙기획의 사원이 되었다. 단체협상안을 중앙일보 수준으로 하기로 했으나 회사는 산별노조로 가지 않고 언론노련과의 관계도 끊으며, 현 조합원 수를 유지할 것을 강요했다. 이에 노조는 파업과 산별노조 건설을 결의했고, 회사는 2000년 9월 7일 폐업을 선언, 이틀 뒤에 노조원 123명을 전원 해고했다. 이후 조합원 110명은 고용승계하고, 해고된 13명의 간부는 6개월 내 복직하기로 약속했지만 13명 중 6명만 복직되었으며, 나머지 7명의 복직은 1년이 넘도록 논의되지 않고 있다. 1998년 8월말 삼성생명도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samsung_02_0.jpg
[ 삼성생명해복투는 7월27일 조합원 4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부산에서 전국 대집회를 개최했다.  ▷ 삼성해복투 ]
그러나 발표가 있은 일주일 후 3조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어 인원감축이 필요하다며 희망퇴직 설명회를 실시했고, 장기근속 여사원들을 불러 퇴직을 종용했다. 그 결과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1700여명을 강제로 '합의퇴직'시켰다. 그러나 12월 퇴직한 자리에 삼성자동차와 각 계열사 직원 수백 명이 전입했고, 신입사원도 입사했다. 강제퇴직자들은 삼성생명의 부당한 강제퇴직에 항의하고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집회를 계속해왔다. 

이밖에도 삼성은 1998년 삼성본관 옆 삼성산하 태평양빌딩에 싱가폴 대사관, 2000년 3월과 6월에는 삼성생명 본관과 삼성생명 종로타워에 엘살바도르 대사관, 온두라스 대사관을 유치하여 집시법을 악용하여 집회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한 노무관리

해고자들의 입을 통해 알려진 삼성그룹의 노사관리는 '88 삼성 노사관리지침 제4호', 1989년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89 비상노사관리지침', 그리고 1997년 삼성코닝 노무관리 책임자 김형극씨가 폭로한 '345지침'으로 공개되었다. 

'88 삼성 노사관리지침 제4호'와 '89 비상노사관리지침'에 따르면 문제 사원을 등급화하고, 이들이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를 자주 가는지 등을 파악하도록 했다. 또한, 사적인 시간을 갖지 못하도록 사우회를 주축으로 체육대회 및 동호회 활동을 권장하며, 노사협의회나 면담제도 등을 활용하여 임금문제에 대한 종업원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에 대처토록 했다. 

이에 따라 회사에서 세 명만 모여도 누구와 만났는지 알고 다음날 바로 불려가며, 특히 친노조 성향 직원의 경우 퇴근 후 만난 사람과 장소, 나눈 얘기까지도 알아낸다. 노조 설립을 추진했던 이들을 집 앞에서 지키고 서있는 건 보통이며, 미행과 감시 또한 예사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가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겠는가.

회사는 노동자 감시조직이 아니다. 몇 명의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하든 퇴근 후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하든 회사는 이를 간섭할 권리가 없다. 이는 기본적인 신체의 자유며 표현의 자유다. 또한 단지 회사 방침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노조설립을 추진할 거라 짐작하고 감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마치 정보기관인 마냥 미행, 감시, 도청 등을 일삼는 삼성그룹은 자신의 직분을 착각하고 도를 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1987년 8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작성한 '345 지침'은 노조설립 분위기가 가장 활발한 3월, 4월, 5월을 주의하여 노조결성을 저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내용에 따르면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철저히 활용하고, 시청 및 군청, 경찰서 등에 삼성관계자를 두고 매월 급여를 지급하여 적극적인 협조를 얻는다. 노조결성 움직임이 나타났을 경우, 노조설립 관련 서류를 담당하는 시청 근무조 3명을 두고, 한 명은 노조설립신고 담당부서에 상주하고, 다른 한 명은 시청 내부에, 나머지 한 명은 시청 외부를 감시하도록 했다. 만약을 위해 담당 공무원을 준(準)삼성 직원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치밀한 계획 하에 공무원까지 준(準)삼성 직원으로 만들어 유령노조를 먼저 신고하도록 하는 체계에서 어떤 노조가 설립신고에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이 자료를 살펴보면 삼성그룹이 노동조합을 막기 위해 거대한 망을 조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거대한 망 속에 시청과 군청, 경찰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삼성그룹의 영향력과 돈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이와 함께 삼성그룹은 정신교육을 수시로 진행하여 삼성맨이 곧 최고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빈번한 집단교육을 통해 자신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갖고 있는지, 현재의 상황이 정상적인 것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해고자들도 삼성그룹에서 일할 때까지 노조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업무량이 많고, 수당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채 야근을 밥먹듯이 해도 삼성그룹에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해고된 후에는 고용안정 뿐 아니라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이 절실히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돈이 다가 아니다

삼성그룹은 항상 노조가 없는 이유에 대해 노조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회사에서 잘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위 내용을 살펴볼 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또한, 돈만 많이 준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노동조합을 건설하여 회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노동조건을 결정하고, 민주적이며 자주적인 의식을 키워나가야 하는 모든 과정이 돈으로 해결될 수 없다. 

삼성그룹이 노동조합 건설에 그렇게 히스테리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세워질 경우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족벌세습경영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그러한 경영방식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은 당연하다. 

삼성그룹은 노동자를 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돈만 주면 된다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온 그들에게 노동자는 감시와 회유의 대상일 뿐이다. 

삼성해복투는 노동조합 설립시도와 노동자에 대한 삼성그룹의 방해와 탄압이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본다. 노동3권 중 단결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노조 노동자 탄압분쇄, 전근대적인 족벌경영분쇄, 기만적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삼성해복투는 삼성그룹의 무노조경영 신화를 무너뜨리고, 이들의 치부를 드러내 삼성그룹의 실체를 알려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다. 

* 삼성해복투 www.outsamsung.org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