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예의지국’식 한미 FTA협상의 파국, 누가 막아낼 것인가!

노동사회

‘동방예의지국’식 한미 FTA협상의 파국, 누가 막아낼 것인가!

편집국 0 3,133 2013.05.24 12:07
 

지난 9월 미국에서 진행된 3차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한미 FTA 협상의 전체적인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여전히 정부 당국은 비밀로 일관하고 있지만 제한적이나마 언론을 통해 협상과정이 보도되고 있다. “대통령이 보고받는 수준에서 정보를 공개 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협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지만, 3차 협상까지의 과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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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13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 참세상 ]

농산물 양보와 연계된 상품·섬유 분야 협상

3차 협상에서 상품과 섬유 분야는 이미 교환된 개방안에 기초하여 본격적인 주고받기 협상이 이루어졌다. 미국 측이 상품·섬유 분야에서 개방안을 부분적으로 수정하여 제출하였지만 한국 측 요구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수정안이 한국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고 한국의 농산물 개방안에 대해 미국이 반발하면서 3차 협상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 하였다. 따라서 한미 양측은 10월 4차 협상 이전에 보다 완화된 수정안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특징적인 것은 미국이 상품·섬유 분야에서의 부분적인 양보를 농산물 개방과 강하게 연계했고, 한국 정부가 이를 수용하여 농산물 분야 개방 수용의사를 밝힌 점이다. 상품·섬유 분야와 농산물은 상호 등가교환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양자가 맞교환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태인 씨는 9월11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현해 “우리가 농업부문을 개방하고 미국이 섬유부문을 개방하는 것은 (우리에게) 확실하지 않은 이익과 확실한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며 “(농업부문을) 굳이 다른 분야에 연계시킨다면 반덤핑 규제 같이 미국이 양보하기 어려운 부분과 연계시키는 것이 우리 것(농업부문)을 지키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상품·섬유 분야에서 미국은 여전히 ‘얀 포워드(yarn forward) 규정’의 고수를 유지하고 반덤핑 발동조건 완화와 관련해서는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상품·섬유 분야에서 협상이 조금이나마 한국 측에게 유리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관세인하만이 아니라 반덤핑 발동조건 완화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미국의 입장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완강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3차 협상은 자동차 시장을 개방예외 분야로 분류해 놓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상품·섬유 분야의 협상도 만만치 않은 형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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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포워드 규정: 원단이 아닌 원사의 생산지를 기준으로 생산지를 결정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섬유산업 비관세 장벽의 하나. 즉, 한국에서 생산한 원단일지라도 원단제작에 사용된 실이 수입품일 경우 한국산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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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농산물을 지킬 것을 공언하던 한국 정부 당국은 3차 협상을 계기로 미국의 상품·섬유 분야와 연계하여 개방안을 수정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정부는 민감하지 않는 품목부터 개방할 거라고 밝히고 있지만, 미국의 농업개방에 대한 요구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농업 부문에서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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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9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한미FTA 3차 협상 원정투쟁단의 시위  ▷ 오마이뉴스 ]

불균형은 커지고, 생색낼 합의내용은 없고… 

3차 협상까지 서비스·투자 부분은 아직 상호 관심사를 확인하고 이를 명확히 하는데 방점이 있었다. 한국 측은 항공·해운 서비스, 전문직 자격 상호인정, 연방정부와 상이한 주 정부 조직의 구체적 기재, 일시입국 원활화 등에 관심이 있음을 제시했고 미국은 택배·법률·회계·통신·방송 등 12개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금융 분야의 국경 간 거래에서 보험중개업과 자산운용업에 대해서는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보험중개업의 경우 항공·선박의 수출입 적하보험, 재보험, 우주선 발사보험을, 자산운용업에서는 미국 회사가 직접 국내에서 펀드를 모집하는 것은 불허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미 개방된 분야가 많고 미국의 요구가 생각보다 높지 않아 쟁점이 제대로 형성되지는 않고 있다. 서비스 분야의 경우 이제부터 본격적인 주고받기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약품, 자동차, 개성공단, 무역구제(반덤핑, 상계관세), 지적재산권, 투자자-정부 분쟁 등 대부분의 의미 있는 쟁점에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첫째, 한국 정부가 3차 협상 기간 중인 9월8일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밝힘으로써 강력한 협상 카드를 자발적으로 해소해 버린 점, 둘째 개성공단 문제 등 한국정부가 주도적으로 쟁점을 삼을 수 있는 부분에서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은 점, 셋째 유력한 쟁점이면서 한국 측의 최대 관심사인 무역구제 분야에서도 미국이 양보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한 점 등이다. 애초부터 불균형했던 상황이 3차 협상 과정을 거치며 더욱 심해지고 있다. 반면 합의에 도달한 점은 전문직 자격 상호인정에서 추진협의체를 두기로 한 것 등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는 내용들이다. 

한편 양국은 4차 협상을 10월23~27일 제주도에서 갖기로 하고 4차 협상 이전에 별도의 회담을 여러 갈래에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또한 3차 협상 직후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9월14일)에서는 “협상을 가속화”하기로 하였다. 연내 타결이 쉽지 않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김종훈 수석대표는 내년 3월 타결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물량공세 속 커지는 ‘원론적 찬성’ 목소리

2006년 2월3일 협상 개시 선언 이후 7월 초에 있었던 2차 협상까지, 민중운동은 정부가 졸속적인 밀실 협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반대여론이 형성되면서 정부의 협상추진에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특히 7월12일 범국민대회는 여론의 높은 지지 속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7월 초까지 국면은 첫째, 정부의 졸속·밀실 협상추진에 대한 반발과 둘째, MBC 『PD수첩』 등 공중파 방송의 역할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었다. 또한 농민과 농촌에서 운동이 중심이었지 도시에서 조직된 대중운동은 미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7월 2차협상 이후 반대운동이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정부 당국은 한미 FTA체결 지원위원회를 결성하여 대규모 물량공세와 상층 인사들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8월 이후 반대여론은 정체되거나 미세하게 떨어진 반면 찬성 여론이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근 SBS의 여론조사(9월15일) 결과 한미 FTA는 찬성 51%, 반대 41%로 찬성 비율이 높은 반면, 한미 FTA를 통해 “이익을 볼 것”이라는 견해는 30%였고, “손해를 볼 것”이라는 견해는 52%였다는 점이다. 이는 찬성 여론의 대부분은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차원에서 형성되어 있는 반면 반대여론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영역을 통해서 성립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8월 정부의 집중적인 물량 공세에 따라 찬성여론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찬성 여론의 질이나 강도는 높지 않은 것이다. 

국회는 한미 FTA 특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여론의 눈치를 보며 추이를 관망하고 있고 열린우리당의 경우 일부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한미 FTA 찬성 여론을 설파하며 선봉대역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여당 국회의원 13명을 포함한 23명의 국회의원이 3차 협상 중이던 9월6일 권항쟁의심판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파란을 일으킨 바도 있다. 어쨌든 이후 국회에서는 절대 다수의 의원이 찬성하는 가운데 민주노동당과 일부 여당 의원이 강하게 반대하는 양상을 보일 것이다. 

한편 7월12일 범국민대회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한미 FTA 반대운동은 8월 혹서기와 휴가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정부의 반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3차 협상을 계기로 진행된 9월5일 시군구 대회도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사회 운명 가름할 11월, 조직된 대중이 나서야! 

9월 3차 협상 이후의 진행 양상을 예상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부의 국회보고, 언론보도 등을 중심으로 부분적이긴 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협상 결과가 흘러나올 것이다. 미국이 자동차 시장을 개방예외로 분류한 점,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위험성을 알면서도 9월8일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 점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활용하여 여론을 다시 반전시킬 계기들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서명운동을 중심으로 반대운동을 새롭게 전개할 계획이다. 10월 초에는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각지에서 거리 서명운동과 선전을 진행할 것이다. 4차 협상이 예정되어 있는 10월 이후에는 국회 국정감사를 포함하여 여론전이 보다 본격화될 것이고, 11월 중·하순에는 민중진영의 총궐기가 예정되어 있다. 협상의 윤곽이 보다 뚜렷해지고 민중진영의 진출 정도가 명확해지는 11월경이 한미 FTA 협상의 운명을 가름하는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한미 FTA 협상은 대부분의 쟁점에서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이 협상은 타결될 수 없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연내타결’ 또는 ‘한미 FTA 강행론’을 내세우며 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는 점이다. 이럴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양보가 불가피할 것이다.  

지금까지 반대운동을 주도했던 것은 농민들의 저항과 방송을 통한 국민여론이다. 농촌에서의 강력한 저항과 무정형의 비판적인 여론이 정부의 한미 FTA 강행을 막아왔던 힘이다. 도시에서 조직된 민중운동의 대중 접촉이 약한 상태에서 정부당국의 여론공세가 본격화되었고, 국민여론이 찬성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찬성여론은 추상적이고 총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영역으로 접근할수록 강력한 반대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관건은 제도정치권의 여론 공세를 현장과 거리에서 구체적인 대중접촉을 통해 막아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중심으로 정치지형이 분화하고 있고, 한미 FTA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척도로 부상하고 있다. 협상의 타결 여부를 결정하는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한미 FTA는 정세와 정국의 핵심쟁점이 될 것이다. 여론이 들끓고 역사가 격동하는 공간에서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제 목소리를 내느냐 여부가 중요한 법이다. 사람들은 중요한 시기에 민중의 이익을 걸고 누가 헌신적으로 싸웠는가를 기억하고 그들에게 신뢰를 보낸다. 

지금이야말로 노동·민중운동이 고유의 계급계층별 이해를 뛰어 넘어 전체 국민대중의 이해를 걸고 싸워야 할 순간이다. 역으로 이 싸움의 승패가 활로를 약속한다는 점에서 노동·민중운동에게도 한미 FTA 반대는 시급을 다투는 초미의 과제이기도 하다. 민중의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006년 하반기 한미 FTA를 정점으로 민중의 권익과 나라의 주권을 지키는 길에서 후회 없이 싸우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