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로드맵 협상과정, 그 분주했던 행보들

노동사회

노사관계로드맵 협상과정, 그 분주했던 행보들

편집국 0 3,227 2013.05.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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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정 대표자회의  ▷ 매일노동뉴스 ]

#장면1. 2001년 2월9일 노사정위원회. 
“복수노조 설립에 대해 노사가 모두 심각히 우려하고 있고, 노동계의 재정이 취약한 점을 감안할 때 노조전임자 임금을 주지 않을 경우 노조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 시행시기를 유보했다.”


노사정위원회 본회의에서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1997년에 이어 2002년으로 또다시 5년 미루기로 하면서 던진 당시 장영철 노사정위원장의 말이다. 

#장면2. 2006년 9월11일 노사정위원회. 
“노사 간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자율적 합의정신을 존중하고 보편적 국제노동기준과 우리 노사관계 현실을 함께 고려해 마련된 것이며, 법 시행에 따른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 노사관계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다.”


10년의 유예에 이어 또 3년을 추가로 유예키로 하면서 민주노총을 제외한 채 합의에 참여한 노사정대표자들의 선언문의 일부다. 

#장면3. 2009년 어느 날 노사정위원회.
“이제 추가 유예된 3년이 지났다. 그런데 … ?”
알 수 없다. 세 번에 걸쳐 같은 영사기가 돌아갈지 아니면 새로운 필름으로 갈아 끼울지는.
 

대표자회의로 ‘공’이 넘어가기까지 

지난 2003년 참여정부는 들어서자마자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노사관계 제도를 개선 한다”는 것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해 5월 노동부가 임종률 성균관대 교수 등 노사관계 학자 15명으로 ‘노사관계제도선진화연구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노사관계로드맵의 신호탄이 올랐다. 노사관계제도선진화연구위원회는 그해 9월 중간보고와 12월 최종보고를 거쳐 이른바 노사관계로드맵(이하 로드맵)이라는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방안’을 내놓았다. 로드맵은 그동안 2번이나 유예됐던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을 포함해 노조법, 근로기준법, 노동위원회법, 근로자참여법 등 4개법 34개 과제로 구성된 방대한 것이었다. 

로드맵이 2003년 9월 제출된 뒤, 노사정위원회에서는 10월부터 상무위원회 차원에서 논의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2004년 4월 이후 한국노총 불참으로 중단됐다. 그러다가 같은 해 6월 민주노총을 포함해 노사정 6자대표로 구성되는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구성하여, 처리방향을 논의키로 했다. 그러나 그해 8월 민주노총이 불참하면서 또 다시 중단됐다가 다음해인 지난해 4월 재개됐으나 역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따라 노사정위원회는 별도로 ‘미래노사관계기초위원회’를 구성해 로드맵을 논의해오다가 지난해 9월 논의시한 2년이 만료됨에 따라 그동안의 논의결과를 정부로 이송했다. 노동부는 이어 그 해 11월 당정협의를 거쳐 로드맵 24개 과제(18개 의견접근, 6개 추가논의)에 대해서 2월 임시국회에서 입법을 추진키로 했다. 

이같이 노사정위로부터 로드맵을 이송 받은 정부는 올 초 정부안으로 입법을 강행할 생각이었다. 김대환 전 노동부장관은 인터뷰 등을 통해 수차 “2월 임시국회 입법”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오랫동안 표류해오던 비정규직법안이 또 2월을 넘기고 지난 4월 임시국회로 이전되면서, 동시처리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로드맵 처리 유보를 시사했다. 동시에 3월 김대환 장관의 퇴임함에 따라 노·정 갈등을 끝내고 대화우선기조로 정부 방향이 선회하면서, 새롭게 노사정대표자회의로 로드맵의 ‘공’이 넘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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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관계 로드맵 합의 결과 발표를 위해 들어서는 대표자들  ▷ 매일노동뉴스 ]

이상수 장관 취임과 민주노총의 대표자회의 참여 

지난 2월 취임한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대화우선기조를 내걸고 로드맵 역시도 정부가 일방입법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3월15일 제4차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재개돼 로드맵을 우선 논의키로 했으나 비정규직법 재논의와 장기투쟁사업장 문제해결 등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해온 민주노총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참을 결정했다. 이후 4월27일 제5차 노사정대표자회의는 노사정위원회 명칭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로 개정하는 내용을 포함한, 노사정위 개편방안 및 로드맵 34개 과제 중 첫 번째로 합의한 것이기도 한 노동위원회 개편방안에 대한 합의안을 발표했다. 

이 당시 정부는 로드맵 논의를 진행하면서도 “대화기조 속에서 로드맵 논의를 하되 9월 정기국회 입법”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수차 던졌다. 이 장관은 지난 4월 주한 미상공회의소 강연을 통해 “올해 내 반드시 완결 처리할 생각이지만 실현가능한 과제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전략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김성중 노동부차관은 5월3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비정규직법 처리와 무관하게 로드맵의 9월 입법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참여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민주노총은 내부적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 문제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될 듯 말 듯 민주노총의 참여는 쉽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안건으로 제출했지만 번번이 통과되지 못 했다. 당시 정부는 민주노총의 교섭참여를 기다린다는 메시지를 여러 번 던졌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에서의 본격적인 논의를 민주노총이 참석할 때까지 두어 차례 미뤘던 것이 그 예다. 장기투쟁사업장 해결을 위해 민주노총과 정례협의를 거치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이상수 장관은 당초 특수고용직 보호방안을 노사정위에서 논의키로 발표했고, 민주노총이 들어온 뒤이긴 하지만 노사정대표자회의로 논의의 장을 옮기는 데 동의했다. 

결국 민주노총은 6월19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를 결정했다. 

주제 확대와 입법 시급성 충돌, 그리고 한달 논의 연장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한 뒤부터 로드맵 논의는 활력이 붙었다. 민주노총은 6월21일 노사정대표자회의 실무회의에서 추가로 의제를 던졌다. 산별교섭 제도화, 특수고용직 보호방안, 공무원 노동기본권, 산재보험제도개선 방안 등이 그것이다. 이즈음 몇몇 중요한 사건이나 발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성준 노사정위원장이 6월23일 취임했다. 조 위원장의 취임은 앞으로 로드맵 논의에서 조 위원장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또한 주목할 부분은 6월24일 운영위에서 6월 말까지 바짝 논의해 최대한 합의도출에 나서기로 결정한 데 이어, 7월6일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첫 노사정대표자회의(6차)에서 “입법의 시급성을 고려”해 논의시한을 8월10일로 못 박았다는 점이다. 이때 특수고용직 및 공무원 문제도 의제로 채택해 별도의 논의틀을 구성키로 했다. 

민주노총이 참여한 뒤 논의 과제는 모두 40개(로드맵 33개, 노사제기 7개) 및 별도 논의틀 2개로 정리됐으며, 의제의 중요도를 따져서 A, B, C 등급으로 나눠 하나하나 의견을 모아나가는 방식을 채택했다. 33개 로드맵 과제 중 논의에서 제외키로 한 8개를 뺀 나머지 25개를 A급(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전임자 급여제한, 필수공익사업 직권중재, 대체근로 등 6개), B급(실업자 노조가입, 직장폐쇄, 손배·가압류 제한, 부당해고 등 12개). C급(제3자 지원 신고제, 유니온 숍 규정정비 등 7개)을 차례로 논의했으나 A급 과제에선 좀처럼 의견을 모으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B, C급에서는 의견 일치 과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논의시한을 8월10일로 정한 상태에서 정부 입장에서는 차기 대표자회의까지는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와야 한다고 조급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8월10일 제8차 노사정대표자회의. 전체 논의과제 40개 중 23개 과제에 대해 의견일치를 봤고 나머지 17개는 9월4일까지 연장해 집중 논의키로 결정했다. 일단 한 달을 연장한 것이다. 

한국노총이 먼저 ‘속내’를 꺼내다

로드맵의 ‘진짜 협상’은 이 시기부터였다. 이때까지 주변부 의제에 대해서는 논의제외 등을 포함해 의견일치를 보았으나, 전임자 급여제한, 복수노조 허용 등 중요한 의제들은 대표자회의에서 사실상 손도 못 대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에 대해 노사정은 공통적으로 “서로의 카드를 꺼내놓지 않았다”고 시인하고 있다. 솔직히 자신의 카드를 꺼내놓아야만 진짜 협상에 불이 붙을 수 있는 상황이나, 누가 먼저 선뜻 속내를 비치긴 어려웠다는 것이다. 

8월30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ILO 부산 총회장을 박차고 나오기 전까지 겉으로는 지루한 공방만 오가는 것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당시 한국노총의 행동은 사전에 ‘무엇인가가 꾸준히 진행돼왔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는 8월26일 제9차 노사정대표자회의 결과를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이날 대표자회의에서는 복수노조와 전임자문제에 대한 논의가 처음으로 이뤄졌다. 또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ILO 기자간담회 이상수 장관 발언 참조). 이날 논의에서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에 대해 현행법 유지 혹은 유예 혹은 조건부 제한 등의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었다. 이용득 위원장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한국노총이 노사정 중 처음으로 “속내를 밝혔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에 앞서 김원배 노사정위 상임위원의 ‘3년 유예안’ 제시도 역시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김원배 상임위원은 이보다 한 달 전인 7월28일 운영위에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및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3년간 유예하되 올해 말까지 노조 재정자립 실천계획(액션 플랜) 및 창구단일화 방안을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마련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는 조성준 노사정위원장의 의중이 실려 있었던 안이었던 만큼 그냥 흘려듣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 정부 입장은 ‘원칙적’이었다. 노동부는 8월18일 대통령 특별보고를 통해 “9월4일 논의시한이 끝나면 합의된 것은 합의된 것대로, 안 된 것은 안 된 것대로 가려서 9월 중 반드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노동부 관계자는 그 뒤 “입법예고 시기는 9월10일 전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동부의 입장이 8월30일 부산에서 가진 기자 조찬간담회에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의 발언으로 번져 나온 것이다. 

이용득 위원장 ‘격분’, 수면아래 분주한 발놀림

이상수 장관은 8월30일 오전 7시30분 부산 모 호텔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이때 이 장관은 8월26일 대표자회의에서 제시된 핵심쟁점에 대한 노사 안을 모두 소개하며 정부입장을 공개했다. 이 장관은 “한국노총은 환경이나 안전 분야 등 직무에 따라 노조 전임자를 인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며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와 관련해 복수노조가 가능한 조합원 수(5분의 1 이상)를 제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또 이 장관은 “재계는 한국노총 안에 대해 복수노조는 창구단일화로 가고 전임자는 현행대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다 안 되면 둘 다 차라리 유예로 가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와 전임자 일부 축소, △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 급여금지 유예 등의 안도 나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장관은 “이 중 최악의 안은 유예”라고 못 박으며, 9월4일까지 로드맵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되 합의가 안 된 부분은 정부안대로 9월7일께 입법예고 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격분’했다. 이 장관의 발언이 왜 그를 격분해서 ILO 총회장을 뛰쳐나가게 만든 것일까? 이상수 장관의 인터뷰내용을 한국노총이 제시한 복수노조 및 전임자 수정안을 정부가 “수용하지 못 하겠다”고 밝히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한국노총이 이미 속내를 드러냈고 깊숙이 들어와서 후퇴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있음을 시사한다. 한국노총은 정부의 수순대로라면 9월2일 10차 대표자회의에서 ‘결렬’이 불 보듯 뻔하고 로드맵이 국회로 넘어가면 자신들의 통제력(개입여지)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했던 것이다. 

이에 앞서 한국노총은 8월26일 대표자회의 전후 민주노총, 재계, 노동부를 만나 여러 가지 수정안을 제시하며 적극 협상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사실상 이 당시 한국노총과 재계 사이에선 어느 정도 유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던 이상수 장관의 발언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정부 장고와 한국노총 ‘조건없는 3년유예’ 역제의

부산서 상경한 뒤 한국노총은 당초 불참을 선언했으나 9월2일 10차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해 복수노조와 전임자의 5년 유예안에 합의했다. 정말 극적인 반전이었다. 정확히는 한국노총과 경영계는 회의 하루 전인 9월1일 합의했다. 8월30일 부산서 서울로 돌아온 한국노총은 그동안 몹시 바빴다. 밖으로는 투쟁계획을 밝히며 분주했지만 안으로는 경영계와의 협상을 진행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복수노조와 전임자 2개 쟁점의 ‘폐지안’과 ‘유예안’을 동시에 내놓으며 합의를 제안했다. 또한 경총만의 합의로는 안 된다며 경제5단체의 합의를 요구했다. 이에 경제5단체장이 즉각 소집돼 일부의 반발도 있었으나 논란 끝에 결국 5년 유예안을 받기로 했다. 

노·경총의 합의로 인해 정부와 민주노총의 입장이 곤혹스럽게 됐다. 2일 대표자회의에서 정부는 “심도 있게 부처·당과의 협의를 거쳐 (2~3일내) 입장을 정리 하겠다”며 “노사합의안 수용여부와 관계없이 7일 입법예고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내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9월4일과 5일 잇따라 열린 운영위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때부터 민주노총은 마지막 치열하게 전개된 협상전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정부는 ‘장고’에 들어갔다. 노동부는 3일부터 장·차관, 실·국장이 회의를 시작해 5일 산하단체장, 6일 선진화위원, 4~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을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노동부는 △정부 원안(1안) △조건부 1년 유예(2안) △조건부 3년 유예(3안)를 한국노총과 경총에 제시했다. 그리고 한국노총은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조건 없는 3년 유예는 받을 수 있다”고 ‘역제의’ 했다. 

축하연과 항의시위 함께 불러온 9·11 합의, 혹은 야합  

9월7일 오후 노동부는 ‘돌연’ 입법예고를 또 연기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이 기자회견을 갖고 난 이후다. 이 뒤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민주노총을 제외한 나머지 노사정 5자의 막판 물밑협상이 벌어졌다. 이때까지도 정부는 ‘조건 없는 3년 유예’를 받기가 곤혹스러워 절충안을 마련하려고 애썼다. 이상수 장관은 9일 밤 KBS <일요진단> 녹화 시 “복수노조는 창구단일화를 전제로 제도를 완비해놓고 전임자는 예컨대 1만명 이상 기본 2명에 1만명 당 1명씩 추가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정해 3년 유예를 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그는 “3년 유예할 때는 제도도 완비해놓고 다른 법률안도 받는 대타협을 하자고 했지만 노동계는 제도를 완비하자는 논의는 안 된다고 해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합의가 안 된다면 1년 유예안으로 입법예고를 하고 다시 합의를 시도할 수 있다”고 배수진도 쳤다. 

이 같은 노동부 입장에 이용득 위원장은 협상장을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이에 앞서 이 위원장은 △복수노조와 창구단일화는 시행하되 구체적 조건에 대해 집중 논의하고, △전임자 임금은 노조 스스로 해결하되 노조재정자립기금의 노사공동 출연 등의 수정안을 내놓은 상태였으나, 정부가 여전히 ‘조건부’를 주장하면서 이에 반발해 협상장을 뛰쳐나온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10일 오전 방영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장관은 여전히 “조건 없는 3년 유예는 안 된다”는 강경한 것이었다. 또한 조성준 노사정위원장은 10일 오후 이용득 위원장을 설득하러 한국노총에 왔다가 이용득 위원장도 못보고 백헌기 사무총장만 만나고 돌아갔다. 

때문에 11일 오전 민주노총을 제외한 5자 대표들이 갑자기 소집돼 오후 노사정 합의에 이르게 될 때까지 정부가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꿨는지 흐름상 쉽게 이해가 안 간다. 이용득 위원장은 11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갖고 단식농성 돌입을 선언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날 오전 10시경 노동부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조건 없는 3년 유예 합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일단 이용득 위원장은 단식 돌입을 하루 연기했다. 그리고 알려진 바대로 이날 오후 1시께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 5자가 모여 조건 없는 3년 유예에 합의했다. 그리고 이들이 ‘합의 세레모니’를 하는 동안 협상장 밖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몰려와 “노사정 야합 중단”을 촉구했다. 

왜 민주노총은 배제됐던 것일까? 

이 과정을 지켜보며 두 가지 의문점이 고개를 든다. 9월10일과 11일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한 왜 민주노총은 배제된 것일까? 

먼저 민주노총의 배제 과정을 보면 8일이 고비였다는 데 모두 동의한다. 민주노총과 노동부에 따르면 8일 점심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상수 장관이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상수 장관은 조 위원장에게 한국노총이 역제의 한 조건 없는 3년 유예안을 받을 수 있음을 제시했다고 한다. 조준호 위원장은 지난 18일 출입기자 오찬간담회에서 “이 장관은 (노·경총의) 3년 유예안을 받을 생각이며 조만간 대표자회의를 소집할 것 같은데 참석할 수 있겠는가라고 타진해 왔다”며 “그 의미를 정부 단독입법으로 가고 민주노총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위원장은 “대표자회의를 한다면 나가겠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결국 (회의 소집과 관련)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민주노총이 불참하겠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8일 만나서 그렇게까지 얘기했는데 조 위원장이 10일 한미FTA 반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것은 합의할 마음이 없어서 ‘알아서 빠져준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11일은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한 것이 아닌 합의”를 위해 노사정 대표들이 소집됐던 것뿐이라는 주장도 펴고 있다. 

노동부가 합의를 떠안도록 누가 압박했을까? 

다음으로, 10일과 11일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흐름상 노동부가 이 시기 외부에서 ‘압박’을 받았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은 ‘청와대’를 지목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8일 “정부는 노·경총의 추가 유예안을 받을지 말지 고민하던 상황에서 원칙적 요구를 고수하고 있는 민주노총을 논의 테이블에 참석시키는 것에 적지 않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며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바와 같이 청와대의 개입은 민주노총을 배제시키면서 정면 돌파하라는 지시였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노동부가 하루 사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것을 두고 ‘정치적 판단’ 때문일거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상수 장관은 취임부터 꾸준히 대화우선기조를 내세운 데다 지난해 노·정 갈등의 추억을 되돌리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내년 대선을 고려할 때 다시 한국노총과 등을 돌리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보았을 것이다. 때문에 경제부처를 비롯해 청와대, 국회 등 정치권의 압력이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제 ‘잔치’는 끝났고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민주노총은 국회에서의 재논의를 촉구하는 반면 합의당사자들은 합의내용을 존중해줄 것을 국회에 주문하고 있다. 국회 역시 민주노총이 빠지긴 했지만 ‘노사정 합의’라는 점에서 자유롭게 논의할 여지를 찾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절차상, 내용상 문제가 있다며 재논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입장도 그냥 흘려듣기 어려워 보인다. 노사관계와 노동운동의 미래를 가름할 로드맵이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켜볼지가 남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