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을 위해 지켜져야 할 것들

노동사회

인간다운 삶을 위해 지켜져야 할 것들

편집국 0 3,599 2013.05.19 07:32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광고 카피가 있다. 2006년 한국사회의 화두로 등장한 ‘한미 FTA 협상’ 논쟁이 농업과 금융분야에 집중되어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만 이미 소리소문없이 FTA 이상의 개방화 길을 걷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보건의료분야와 교육분야다. 보건의료분야와 교육분야가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논란이 되지 않는 것은 ‘자발적 자유화 조치’라는 이른바 자발적 개방화가 급속도로 추진되고 있는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참여정부 들어서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 영리병원과 영리교육기관 설립이 허가된 상태고, 영어마을, 자립형사립고, 국제중학교 설립허가 등을 통해 FTA에 버금가는 개방이 이미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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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영리법인화가 불러올 파장

한미 간의 FTA 협상에 앞서 미국이 요구해왔던 의료분야의 쟁점은 ‘영리병원’을 허용하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국내 대형병원은 ‘의료법인’ 형태로만 설립할 수 있었다. 영리를 추구하는 자본이나 개인이 병원을 설립하더라도 의료분야가 가지는 공공성 즉, 일반적인 제반업과는 다른 공공적 성격을 고려한 것이다. 의료는 보통의 상품과는 달라야하고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국가가 국민의 보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인간의 사회적 권리로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공재 성격의 병원이 주식회사 형태의 병원으로 바뀌게 되면,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이윤극대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의료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현재의 법·제도 아래에서도 병원들이 이윤창출에 골몰하고 있는데 병원의 영리법인화가 허용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병원주식회사가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란 불필요한 진료나 서비스(가격이 저렴한 6인 병실의 축소나 병실료의 인상 등)를 늘려 의료비 수입을 확대해 환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병원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방법인데 이는 곧 비정규 병원노동자의 증가, 노동강도 강화, 필수노동인원을 해고하는 형태를 보일 수밖에 없다.

병원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전체 병원의 92%를 차지하고 있는 사립병원의 70%가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해 진다면 영리병원 전환의사가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곧 국내 병원의 60%가 영리병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체계가 가장 부실하다는 미국도 겨우 14%만이 영리병원인 실정에 60%의 병원이 영리병원화 된다면 ‘사랑의 리퀘스트’와 같은 TV프로그램이 매일매일 방송된다고 해도 돈이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FTA 협상의 당사국인 미국에서도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에 비해 의료의 질은 낮은 반면 매우 비싼 가격을 요구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증가에 따른 병원노동, 즉 진료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민간의료보험 도입은 10%의 부유층을 위한 것

영리의료법인의 허용과 함께 추진하는 것이 민간의료보험의 허용과 병원의 ‘건강보험 당연가입제’의 폐지이다. 국내 민간의료보험의 형태는 의료비의 액수에 상관없이 질병의 발생과 치료에 정액의 보험금을 개인에게 지급하는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이다. 보험사들이 보충형 의료보험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부의 정책이 ‘건강보험 강제가입’과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당연가입제도’를 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직장인들이 강제 징수되는 건강보험료를 두고 툴툴거려도, 병원들이 돈이 안 돼도 모든 환자들에게 건강보험에 따른 할인된 의료비를 청구하는 것이 이런 이유다. 

그러나 영리병원들이 더 큰 이윤을 위해 진료비가 균일하게 책정된 건강보험의 가입을 거부고 자율적으로 진료비를 책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들 영리병원을 이용하고자 하는 환자들은 보험의 혜택 없이 병원이 청구하는 모든 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 따른 대안으로 대체형 민간보험이 도입될 것이다. 대체형 민간보험이란 알리안츠나 삼성생명 같은 민간 보험회사들이 의료수요자들을 대상으로 보험계약을 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암 보험 등과 같은 보충형 민간보험이 아닌 건강종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고, 보험사들은 의료공급자 즉 영리병원들과 계약을 맺어 자신들과 계약한 보험계약자가 오직 이들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만 보험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처럼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면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을 초래해 ‘중산층 이상의 의료 수요자-영리병원-대체형 민간의료보험’이라는 축과, ‘저소득층 의료 수요자-소형 의원급-국민건강보험’이라는 축으로 분리되게 된다. 양분된 의료체계의 문제는 남미국가나 미국의 경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칠레의 경우 공적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이라는 ‘1국 2의료보험체계’로 전환한 이후 민간보험은 10% 남짓의 부유층만 가입할 수 있었고 나머지 90%의 민중들은 건강보험에 남게 되었다. 그런데 많은 수입만큼이나 많은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할 부유층이 빠져나가자 건강보험재정이 위협받게 되었다. 더불어 민간의료보험을 운영하는 대자본이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공적 건강보험을 더욱 위축시키려 압력을 가하게 되자 공적 건강보험의 보험혜택은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이는 곧 저소득층의 건강문제 악화로 나타난다.

미국의 경우 민간의료보험이 근간을 이루고 공적 건강보험은 노인과 절대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으로 한정되는 형태로 운영된다. 그럼에도 유럽국가들에 비해 GDP 대비 5~7%나 많은 재정(전 세계 의료비 지출의 50%)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인구의 15%에 이르는 4,800만명의 국민이 의료보험이 없거나,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비효율적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치아에 충치만 생겨도 치료를 받기보다는 치아를 뽑아줄 것을 요구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이를 뽑는 데 2백 달러만 지불하면 되지만 충치치료엔 2천 달러를 내야하는 현실 때문이다.

지적재산권과 약가제도의 붕괴

미국은 FTA를 통해 우리나라의 의약품정책을 미국식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생명에 관한 보건정책과 제도를 무역협상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것 자체가 환자의 생명을 제약자본에게 넘겨주는 비인간적인 행위이다. 미국은 각국과의 FTA에서 WTO를 통해 추진되는 자유화 조치들을 고스란히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미 FTA를 통해 미국이 요구하는 의약품 정책의 변경은 미국 내 다국적 제약회사의 요구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대단히 구체적이다. 

미국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지적재산권 강화(TRIPs Plus)를 통해 각국에서 의약품을 적정한 가격에 골고루 공급하기 위한 노력들을 차단하는 것이다. 한미 FTA를 통해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특허기간의 확대, △강제실시의 제한, △특허대상 확대, △지적재산권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무와 다양한 보호 등이다. 미국은 지적재산권 강화를 위해 FTA에서는 특허일로부터 최소 20년간 특허보호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도하-아젠다 합의사항보다 3~5년이나 특허기간을 확대하는 것이다. 

도하-아젠다를 통해 합의된, 국민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나 특허권에 묶여 이용할 수 없는 약들을 각 나라들이 생산하도록 보장해주는 ‘강제실시’란 것이 있다. 한미 FTA는 이 강제실시의 조건과 범위, 필요성에 대한 판단에서 각 국가의 주권을 부정하고 사적부문을 통해 강제실시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두 번째로 미국은 각 정부의 주권이자 무역협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각국의 고유한 의약품전달체계, 의약품 가격정책, 식품정책 등 보건정책조차 FTA 협상수단으로 삼고 있다. 무역협정에서 협상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회적 평등정책과 생명에 관한 보건정책을 FTA 협상대상으로 선정해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는 사례는 ‘제네릭 의약품’ 사용 활성화를 제한함으로써 ‘에이즈 무상공급프로그램’이 붕괴된 브라질의 경우와 의약품 등재, 가격결정과정에 미국제약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붕괴되고 있는 호주의 ‘의약품급여제도(PBS)’를 들 수 있다.

미국은 실거래가제, 최저거래가제 등 적정한 약품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우리 고유의 제도들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다국적 제약자본의 요구와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 ‘보건의료개혁워킹그룹’을 설립해 한국정부가 의약품 정책을 결정할 때 미국과 합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의약품 판매승인에 대한 압력으로 임상시험과 제출자료 등 판매승인 절차가 미 제약사의 한국시장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며 간소화(혹은 폐지)할 것, 판매승인 요건으로 안정성과 유효성 외에 특허권 침해여부를 판단할 것, 의약품판매 승인기구에 특허 집행기능을 강요하고 임상실험을 간소화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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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릭 의약품
일명 ‘카피약’으로 불리는 제네릭 의약품은 유명 제약회사의 ‘오리지널 약’의 특허가 만료되어 다른 제약회사가 동일한 성분과 함량으로 생산한 약품을 말한다. 특허권이 만료되었으므로 오리지널 약에 비해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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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자유구역내 국제학교와 제주특별자치도

지난 5월15일 발표된 정부의 한미 FTA와 관련한 우리 측 협상문 초안에는 교육분야에 관련된 내용은 빠져 있었다. 4월 김종훈 한미 FTA 협상 한국 측 수석대표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교육, 의료시장 개방을 요구한 적도 없지만 설사 요구한다 해도 매년 해외 의료서비스 이용이나 유학으로 발생하는 한국의 서비스수지 적자를 감안하면 오히려 우리가 우월한 지위에서 협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외유학이나 해외진료로 지출되는 비용을 국내 자유경제구역 등에 설립되는 외국병원과 학교를 통해 수요를 흡수함으로써 상쇄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분야는 이른바 ‘자발적 자유화조치’를 통해 FTA 추진과 별개로 개방의 길을 걷고 있다.

정부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양자협상 방식으로 사교육분야의 단계적 개방을 미국과 약속한 바가 있다. 또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을 제정하면서 교육시장의 개방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제자유구역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에 따라 인천·부산·광양 세 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은 외국인투자기업 경영환경과 외국인 생활여건 개선을 통한 외국인투자 촉진, 국가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경제자유구역 내에서의 ‘외국교육기관설립·운영등에관한특별법’을 제정해 WTO협상이나 FTA와 별개로 대학은 물론 초·중등 교육까지 전면적인 영리교육기관의 설립이 허용된 상태이다.
 
이처럼 경제자유구역 내에 설립되는 외국 영리교육기관엔 국내 비영리학교법인에 적용되는 등록금, 교원선발, 학생선발, 교육과정 등의 제약이 일체 배제된다. 내국인 학생 선발은 재학생 수의 10% 이내로 시작되지만 개교 후 5년까지는 30% 이내에서 자율적으로 외국교육기관의 장이 정하게 된다. 또한 국내 학력이 인정되는 외국교육기관으로 지정받고자 한다면 국어 및 사회를 포함한 2개의 교과 이상을 주당 각 2시간 이상만 이수한다면 대학입시 등에 필요한 국내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기에 세제혜택과 부지공여, 재정지원 등의 혜택까지 제공하는데, 이는 곧 국내 학교법인에 대한 ‘역차별의 문제’를 야기해 국내 학교법인들의 영리법인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교육기관 설립허용과 더불어 추진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자발적 자유화 조치의 일환으로 파악된다. 제주특별자치도란 대폭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사람·상품·자본의 이동이 자유롭고 기업활동의 편의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이상적 자유시장 경제모델”을 구축한다는 것으로, 장기적으로 ‘No Visa(무 비자), Duty Free(면세), Zero Regulation(규제완화), With English(영어공용)’를 지향하는 국제자유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 제주특별자치도 계획에 따른 교육분야를 살펴보면 초·중등과정에 외국 교육기관의 설립을 허용하고 내국인의 입학비율을 조례제정을 통해 결정하게 함으로써 경제자유구역 수준 이상으로 개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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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중학교와 특목고 합격을 위한 입시학원 설명회를 알리는 유인물   - 출처:오마이뉴스 ]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은 뻔한 거짓말

정부의 주장처럼 어차피 외국으로 유학을 떠날 학생들을 국내에 붙잡아두고 불필요한 외화유출을 막을 수 있다면 좋을 일이다. 하지만 외국교육기관들은 비록 빚 좋은 개살구일지언정 국내 사학들이 추구하는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하거나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영리목적을 위해 최대의 이윤을 위해 국내 교육시장에 들어오는 것이다. 전교조 등의 교육단체들은 이들 외국영리교육기관에 다니기 위해서 드는 교육비가 연간 2천만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이미 헛소리가 되었다. 얼마나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게 요즘의 세태인데, 가뜩이나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 달러 빚을 내서라도 이들 영리교육기관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부모들의 심리를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국내에 ‘광풍’처럼 불고 있는 영어열풍에 대해 민간에서는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 사설학원이 폭증하고 있고, 공교육분야에서도 국제중학교 신설이나 특목고를 확대하고 있다. 지자체들 역시 영어마을 설립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이처럼 영어교육을 위해 투입되는 사교육비는 8~9조원으로 추측되고 있을 뿐 실제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더구나 초·중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공인 인증시험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원이나 사설업체에서 실시하는 각종 영어인증시험이 유행처럼 번져, 2006년 한해에만 60만명의 초등학생들이 각종 영어인증시험에 응시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실태다. 미국이 한미 FTA를 통해 노리는 것 중에 하나가 ‘미국이 인증해주는 영어시험 제도 도입’을 통해 영어 사교육시장을 일시에 장악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이 이해되는 현실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외국유학비용 절감효과도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시장이 개방되어도 외국의 정식학위를 부여하는 4년제 정규대학이 국내에 설립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2년제 과정이나 특정 교육과정만 설립되고 이를 이수하면 미국에 있는 본교나 기타 정규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파이프 역할만으로 한정하는 것이 외국교육자본에게는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이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고등·성인교육 시장을 통해 미국이 발급하는 직업훈련 서비스분야의 자격증(부동산 중개사, 목사 등)을 남발할 우려도 크다.

교육과 문화는 경제논리로 논할 수 없다

FTA 협정에서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국민 대우’라고 하는 것이다. FTA 체결 이후 국내로 진입하는 모든 분야에 대해 내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통해 차별 없이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정부로부터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고 있는 사립학교들에 대해 정부보조금을 철폐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보조금이 줄어들면 국내 사학들은 당연히 등록금 인상을 통해 이를 보충하려할 것이고 학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극으로 치닫고 있는 양극화 사회에서 한국정부는 오히려 부족한 공교육마저 내주려 하는 것이다.

혹자들은 개방이 대세이고 쇄국정책으로는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육·문화·복지 등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위해 요구되는 기초적인 분야에 대한 개방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는 없다. 작년 11월 유럽의 교육·문화부장관들이 이탈리아 브릭슨(Brixen)에 모여 교육과 의료와 같은 국가 차원의 공적 서비스도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선언한 ‘Brixen 선언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이나, 유럽연합이 지난 2월 교육·문화 부문의 개방을 반대한 이유는 교육은 경제논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사회구성원들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와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교육은 국민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복지영역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민간의료보험이든 영리병원이든, 영리교육기관이든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고,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을 갖지 않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보건의료·교육 분야 개방화 움직임은 극소수의 부자와 재벌들에게는 천국을 만들어주는 대신 나머지 국민들은 삶의 나락에서 허덕여야 하는 극단적 사회구조를 양산하게 될 것이 뻔한 조치들이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미 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할 것을 요구했다. 광우병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면서까지 우리가 미국과의 FTA 협상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 쇠고기뿐인가? 미국의 곡물회사들이 판매하는 농산물은 유전자변형을 통해 대량 생산되는 먹거리들 아닌가. 자국 내 유전자변형식품 표기를 하지 않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총기규제를 하지 않는 나라가 미국이며, 기후협약을 탈퇴해 버린 나라가 미국이다. 메이저 곡물기업, 군수산업의 입김에 놀아나는 미국정부. 이제 그 거대 메이저 기업들이 한국정부를 농락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각개 약진이 아닌 함께 승리하는 투쟁으로

2006년 국내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은 ‘한미 FTA 반대’ 투쟁이라는 역사적 임무를 부여받았다. 싸움의 한축이 되고 있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저지’ 투쟁 역시 미국의 동북아 패권, 나아가 세계지배 전략 속에서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이 땅의 민중들은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의 깃발로 속속 집결하고 있다. 환경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청년·학생운동, 빈민운동 등 어느 부문도 ‘한미 FTA'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조·보건·교육·공공·서비스 어느 한 산업도 피해갈 수 없다.

그럼에도 각 단체나 조직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미 FTA 저지에 대처하는 수준은 제각각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인 해리티지 재단의 한 인사는 “한국의 노무현대통령이 미국과의 FTA를 추진하는데 있어 조직노동자와 NGO들의 반발을 얼마나 무마시키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곧 FTA의 당사국인 미국조차도 한국의 노동운동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좋은 FTA 나쁜 FTA는 없다”는 말처럼 “어차피 맺어질 FTA인데 실익이나 더 얻어내자”는 안일한 사고로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미국이 우려하던 조직 노동자와 시민·사회 단체들의 힘을 한데 모아 함께 투쟁하고 함께 승리하는 투쟁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이 바로 ‘한미 FTA 저지’ 투쟁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