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메이데이와 지방자치선거 사이에서

노동사회

5월, 메이데이와 지방자치선거 사이에서

편집국 0 2,778 2013.05.19 07:13

5월은 온 산야가 짙은 초록으로 물들여지는, 한해 열두 달 가운데 가장 화사한 달이다. 온갖 열정과 생명력이 용솟음치는 봄의 절정이기도 하다. 그 약동의 화사한 계절 속에는,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보릿고개의 허기진 추억이 서려 있고, 또 한편으로 잔인한 배반의 역사, 반동의 기록이 점철되어 있기도 하다. 친미 반공주의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족의 자주통일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지향했던 4월혁명이 군사쿠데타의 무자비한 총성 아래 스러진 것도 5월이었고, 1980년 민주화의 봄과 광주민중항쟁이 신군부의 잔혹한 폭력 아래 짓밟힌 것도 5월이었다. 

또한 5월은 첫머리에 메이데이의 치열한 역사가 새겨져 있고, 1970년 이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민주열사 또는 노동열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거나 목숨을 잃은 슬픈 저항의 기록을 담고 있기도 하다. 민족민주열사 희생자추모단체 연대회의의 ‘열사수첩’에 따르면, 1970년~2004년 사이에만 5월에 목숨을 버린 이가 50명에 달한다. 이러한 사실은 5월의 화사함을 뒤로하고 반동의 역사를 되잡기 위해 우리 역사 속에서 얼마나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었던가를 웅변해준다. 이런 지난날들을 새삼 되새기는 것은 이제 다시는 그러한 비운의 장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에서다. 

‘5월의 교훈’ 갉아먹는 개발독재 망령들의 준동

올해도 5월은 어김없이 메이데이로 시작된다. 물론 쓰라린 과거의 상처를 되짚기보다는 희망찬 내일의 따스함을 꿈꾸는 것이 계절의 의미에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너무도 어수선하고 어둡다. 곳곳에서 5월의 역사적 교훈을 망각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5·16군사쿠데타, 군사독재정권의 후예들이 폭력과 기만을 그럴싸한 논리로 덮어씌우고 너무도 당당하게 활보하고 있다.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빙자하여 최소한의 절차민주주의마저 차압하고 탄압을 일삼던 자들이, 아직도 ‘여론 형성층’ 심지어 ‘사회지도층’으로 행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거대 제1야당의 당수가 독재자의 딸에다가 차기 대통령을 노리고 있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이 나라 정치의 후진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나아가 민족경제의 피폐화와 불평등을 구조화시켰던 개발독재의 망령이 지금도 성장지상주의의 외투를 입고 꿋꿋하게 버티며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선 성장 후 분배’ 철학의 신봉자들은, 이들이 과거사 청산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데서도 드러나듯, 기득권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가진 자의 세상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이제 이들의 논리는 일제의 식민지지배를 ‘산업화 과정’으로 정당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또한 산업화·민주화가 성공했으므로 다음 단계에서는 시장주의, 자유경쟁원리를 사회발전의 섭리로 정착시켜 ‘선진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뉴 라이트 운동이 ‘바람직한 미래 창출 과정’으로서 산업화·민주화·자유화·선진화의 4단계를 들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정부’의 민주는 어떤 민주주의였는가 

한편 5월을 맞이하는 안타까움은 광주민중항쟁에서 제시되었던 지향점이 퇴색하거나 굴절되고 있다는 데서 한층 더해진다. 광주항쟁에서 민중들이 갈구했던 것은 형식적인 군사독재 철폐만이 아니었다. 외세와 차별과 억압에 짓눌린 이 강토를 해방시키는 것, 이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 또한 민중의 바람이었다. 이러한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역사에서는 해방 이후 줄기차게 다양한 모색이 진행되고 실천의 노력들이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특히 1980년대 이후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논쟁과 실천의 몸부림들은 현실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민중들은 거친 반동의 공세에 맞서 민주화의 거대한 장정을 이룩해냈고, 진보 개혁세력은 수구 냉전세력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권력구도 진입에 성공했다. 

그러나 기득권세력을 압도하여 새로운 질서와 체계를 구축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것은 이른바 ‘민주화이행기’의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등 개혁세력들이 절차상 민주주의 진전에 만족해하면서 실질 민주주의의 확충을 게을리 하거나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제의 진보와 개혁의 주창자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정책의 전도사로 변신해 있고, 노동 유연화의 불가피론을 서슴없이 설파한다. 심지어는 “시장개방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살 길”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강행을 요구하는 동시에 사회양극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중성격’의 표출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문에 지금 곳곳에서는 진보 개혁세력이 민주화를 발전시킨 공로자가 아니라 민중의 삶을 후퇴시킨 실패자들로 규정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나아가 모처럼 쟁취한 절차민주주의 성과물마저 수구 냉전세력의 후계자들에 의해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민주화정부의 경험이 ‘불가피한 시행착오’였다고 감히 주장하기에는 국민 일반의 실망이 너무 큰 것이다. 물론 근본적 변혁을 추구한다는 진보세력들은 “나는 저들과 다르다. 나는 아니다”라고 강변할 테지만, 민중들은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을 분간해낼 여유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진보 개혁세력은 갈래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분열되어 각개 약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던가. 올해 5월은 내내 고약한 황사에 뒤덮인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5월의 화사함은 노동자들에게는 너무 먼 꿈

세계 노동자들의 환희와 감동으로 충만해야 할 ‘축제의 날’, 그러나 우리의 메이데이는 그리 즐거운 날은 아닐 듯하다. 누군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다지만, 아마도 올해 5월을 맞는 노동자들에게도 “잔인한 달”은 합당한 표현일 것 같다. 그만큼 노동현실이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무엇보다 우리가 맞고 있는 문제들이 가까운 시간 안에 해결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메이데이의 유래가 되기도 한, 19세기 말 미국 노동자들이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제시했던 ‘하루 8시간 노동’의 요구는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에서도 주5일제 노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8시간을 넘어서고 연간으로는 2000시간을 훨씬 초과하여 세계최장의 기록을 지속하고 있다. 임금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임금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 비정규직,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은 형편없는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에, 심각한 고용불안에 허덕인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지 모르는 구조조정의 위협은 노동자들을 불안의 늪으로 몰아넣고, 마구잡이로 강요되는 경쟁력 강화는 노동 강도의 강화와 다양한 산업재해, 직업병의 증가로 귀결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동자의 노력을 자본 쪽은 거칠기 그지없는 방식으로 탄압하는 사례가 빈발한다. 구사대와 노조파괴 전문가가 동원되고, 정리해고와 연행, 수배, 구속사태가 이어지며, 교묘한 부당노동행위가 노조의 목줄을 죈다. 민주노총 산하 50군데 가까운 장기투쟁사업장은 대부분 이러한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목숨을 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은 위태롭기 그지없지만 이를 탄압하는 사용자들의 태도는 당당하기만 하다. 또한 약속 불이행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필수공익사업’이라는 미명하에 주요 사업장들의 단체행동권이 박탈되며, 공무원의 노동기본권도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다. “상생의 노사관계”, “지식산업시대의 공존을 위한 노사협력”, “노사대등의 파트너십”을 이야기하면서 “강한 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이중행태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판국이다.  

또한 검찰에서 자신들의 죄가 드러난 재벌들이 ‘사회공헌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사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천민자본주의의 새롭지만 낡은 모습이다. ‘국민’을 ‘고객’으로 둔갑시키는 시장주의의 범람,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5월의 화사한 축제는 노동자들에게는 너무 먼 꿈이다. 

진보진영, 단결된 모습으로 평가의 장에 서라

그러나 이런 일들이 어제 오늘 있었던 건 아니다. 노동자들은 치열한 투쟁을 통해 상황을 타개하고자 노력했다. 때로는 총파업으로 대응하기도 하였고, 매년 수백 건에 이르는 노동쟁의로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했다. 그럼에도 노동운동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노동자의 삶 또한 팍팍해지고 있다. 사용자들의 구시대적인 보복과 억압이 난무하고 교묘한 파괴책동에 법의 보호망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갖가지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운동의 혁신이 거듭 거듭 강조되고 있거니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그 핵심 내용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미진함을 오늘날 노동운동의 약화를 가져온 큰 원인으로 본 탓이다. 

사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민주노동당의 건설과 각종 의회진출로 착실하게 확보되어 왔다. 작은 역량이지만 열성과 사명감으로 난국을 돌파하면서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위상을 정립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로 민주노동당이 국민 사이에서 새로운 정치 대안세력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도는 여전히 낮으며, 특히 민주노총 조합원의 가입률은 극히 낮은 수준이다. 

거기다가 근로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모든 현안에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안보다 원론적이고 구호에 가까운 백화점식 주장을 되풀이함으로써, ‘운동권 집단’의 인상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약점이다. 또한 대중운동에 대한 지도력도 취약하였고 최근에는 지지층의 결집도와 당에 대한 충성도도 다른 정당에 비해 떨어진다는 자체 분석도 있다. 이는 진보정당이 꽃 피울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이 아직도 척박하기 때문이겠지만, 내부 정파 간 대립갈등도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내부갈등이 불거지면서 민주노동당이 다른 개혁세력과 차별성을 강조하더라도 민중들의 시각에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고, 따라서 선거에서 ‘사표심리’가 작용하여 득표율을 잠식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5월31일 지방자치선거는 민중들이 지난 총선거 이후 민주노동당의 성과를 평가하는 중요한 장이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다양한 선거전략 전술을 구사할 것이고 사회운동 세력도 적극 지원할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파를 초월한 단합과 통일이다. 작은 이념상의 차이를 뛰어 넘어 진보진영 진체의 단결을 이루어내는 것이 최대의 목표라는 것이다.  

5월31일을 노동자 정치세력화 도약의 날로!  

메이데이는 임화의 시구처럼 “핏발이 서서 눈을 감을 수 없는 날”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진정한 ‘축제날’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5월을 지배하고 있는 배신과 반동의 역사를 청산하고 참된 민주주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이는 곧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승리함으로써, 5월의 마지막 날을 노동자 정치세력화 도약의 날, 진보진영의 약진의 날로 기념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