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려! 월마트

노동사회

정신차려! 월마트

편집국 0 4,932 2013.05.19 01:53

 


chl_01.jpg저가격 정책(Everyday Low Price)으로 등장한 ‘할인점’은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IMF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할인점은 1993년 이마트의 창동점을 시작으로 유통시장에 등장했고 1996년엔 유통시장의 개방으로 프랑스 기업 ‘까르푸’가 한국에 진출하였다. 

그 후 할인점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유통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백화점을 10년 만에 간단히 따라잡았다. 2003년 19조 5천억원의 매출로 백화점을 따돌린 할인점은 초고속으로 매장을 늘려 가고 있다. 매장 숫자는 2005년 8월 현재 280개로 늘었으며 앞으로 470여개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을 만큼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기혼여성노동자들의 유토피아? 무덤!

늘어나는 매장 수만큼 노동자 수도 늘어가지만 노동조합 결성은 아직 초기 단계다. 할인점들은 노동조합을 거부하고 있으며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전체 단시간노동자 중 기혼여성노동자들의 비중이 2000년 29.6%에서 2003년 32.6%로 늘었지만 이들의 권리는 여전히 관심 밖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낮은 임금에도 일자리를 구하는 주부들이 많다는 것은 박수칠 일이다. 더구나 넘쳐나는 저임금의 여성노동자를 더 싸게 쓸 수 있는 파견제도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올 초 정부에서 비정규법안을 상정한 후 국회에서 논의 중일 때,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서비스판매업도 파견업종에 포함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현재 유통업종의 치열한 경쟁구조를 반영한 것이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유통업체의 요구이기도 했다. 경쟁업체보다 싼 가격으로 물건을 팔아야 하는 할인업계는 납품가격 인하 경쟁, 자사상표(PB)상품 경쟁, 입지 선점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인 임금수준을 낮추는 데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할인점 주부노동자들은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3,100원을 조금 넘는 3,300원 안팎의 시급을 받고 있다. 5년간 일한 할인점 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이 연간 1,000만원도 안 되니, 신규로 진입하는 파견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야 불을 보듯 뻔하다. 이렇듯 열악한 임금인데도  높아가는 교육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혹은 남편들의 고용불안에 위기를 느낀 주부들이 ‘싼 가격’으로 할인점 인력시장에 나온다. 

그나마 할인점이 생기면 일자리가 늘 것이라는 생각도 착각이다. 신세계유통연구소에 의하면 지난 2002년 기준 할인점 1곳의 평균매출액은 연 768억원으로, 연 110억원에 그친 재래시장 매출의 7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래시장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재래시장 1개당 평균 상인이 165명인 것을 감안하면 결국 할인점 1곳이 재래시장 상인 1,100명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무너지는 재래시장이나 동네 슈퍼마켓들로부터 새로운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선진경영기법과 1년 이직률 191%

밤 10시 30분. 오후 조 근무가 끝난 직후 이날도 어김없이 이런 광경이 반복됐다. 아르바이트 주부사원들이 라커룸으로 들어와 일제히 휴대전화 버튼을 눌러 근무시간 내내 걱정이 앞서던 아이들을 찾는 모습이다.
“아빠 들어왔니? 저녁은 드셨대?”
“자장면 그릇은 문밖에 내놨지? 엄마 일 마쳤어. 금방 갈게….”
“아직도 안 먹었어? 엄마 없으면 밥도 못 먹니?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데…. 금방 간다. 기다려.”
결국 같이 입사한 14명 중 5명이 2주일 안에 그만뒀다.
 

chl_02.jpg어느 일간지 여기자가 할인점에 취업해 쓴 체험기사이다. 기자는 할인점에서 일하는 주부들의 애환과 속사정을 전하며 급속도로 성장하는 할인점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들에게 ‘고객감동’의 대상인 지역주민이면서 소비자인 주부노동자들은 매장에서 일하는 순간 이윤추구의 대상, 마구 대해도 되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런 취급을 받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직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리 없고 일할 의욕마저 떨어지고 있지만 기업의 노무관리는 변할 기미조차 없다. 이들의 노동은 여전히 생활비를 보조하는 역할 정도로 치부되면서 인권의 사각지대로,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한국까르푸, 롯데마트, 메가마트, 세이브 존, 이마트처럼 그나마 노조가 조직되면 부당한 대우와 인권침해에 눈을 뜨게 되지만 노조가 없는 경우엔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유통업계는 ‘고객감동과 고객만족’을 내세우지만 고객감동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할인점 노동자들은 만족할 만한 것이 없다. 식당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건물 밖이나 휴게실에서 먹으면서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외국계 할인점의 경우 ‘외국기업’하면 
떠올렸던 고소득에 대한 환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김대중 정부가 외국자본 도입의 명분으로 삼았던 ‘선진경영기법’은 어디에도 없다.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고통은 둘째치고 고객들로부터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낮은 임금, 회사의 노무관리를 견뎌 내는 노동자들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까르푸 한 매장의 비정규직 이직률이 1년에 191%라는 회사 자체의 통계자료가 할인점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을 보여준다.

이제 할인점 여성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의 존재를 알고 그 필요성을 점차로 인식하고 있다. 가정주부라는 한계도 있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이들의 열정적인 눈빛은 여느 노동조합 조합원과 다르지 않다.

월마트 따라하기, 노동자 탄압하기

최근 들어 월마트의 태동지인 미국에서는 월마트의 경영방식이 과연 미국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비판자들은 월마트의 ‘최저가격 정책’이 ‘저임금 정책’을 부추기고, 결국은 빈곤층 지원을 위해 다시 사회적 비용이 지불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낮은 가격정책이 무노조 경영과 저임금에 기반하고 있다는 비판이 월마트의 고향 미국에서 일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초에는 미국 교원노조가 월마트에게 노동법 준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회사측은 성명을 통해 “월마트가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면 소비자들도 그만큼 도움을 받게 되는 셈이며 수백만 미국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이번 비방시위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불매운동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4년 미국 연방법원은 미국 전체에 140만명의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월마트의 차별조치에 대한 집단소송에서 원고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또한 월마트 주주들은 불법이민노동자 고용과 아동노동, 여성노동자 차별 등 각종 불법적인 경영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할 것을 경영진에 요청했다. 최근 덴마크 등 북구유럽 노조측은 월마트에 투자한 노조의 연기금을 철회하도록 결정하였다.

이렇게 전 세계에서 월마트에 대한 대응이 조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노동조합들이 월마트와 월마트의 경영을 모방하는 움직임에 강력히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2005년 8월23일부터 3일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사무서비스노련(UNI, Union Network International) 세계총회에 1천2백여명의 세계 노동지도자들이 참석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싼 가격, 저임금 노동정책, 무노조로 대표되는 월마트의 경영방식을 모방하는 월마트화(Walmartization)가 노동자를 어떻게 탄압하는지 고발했다. 

필립 제닝스 UNI 사무총장은 한국, 멕시코, 브라질, 중국, 아르헨티나 국가에서 월마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노동권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하고 월마트 경영진에게 UNI와의 ‘사회적 대화’를 요청하였다. 아울러 월마트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있는 세계의 소비자들에게 월마트 기업의 반인권적, 환경파괴적, 반지역경제적인 문제에 대해 호소했다. 

UNI와 유통업체가 맺은 협약을 거부하고 있는 월마트에 대해 UNI 소속의 미국 국제식품상업노조(UFCW)는 환경단체, 인권단체, 소비자단체와 “Wake-up Wal-Mart(정신차려 월마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정신차려 월마트! 우뚝서라 노동자!

우리나라에서도 월마트 캠페인의 일환으로 국제사무서비스노련 한국협의회(UNI-KLC)와 국제사무서비스노련 상업분과(UNI-COMMERCE)가 10월6일 프레스센타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월마트 강남점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알랜 스파울딩(UNI 상업분과 의장)은 “월마트는 한국의 문화와 국민을 존중하라”고 주문하면서 월마트가 새롭게 깨어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과 UNI-KLC는 월마트의 노동탄압, 인권문제로 1시간 가량 규탄집회를 열고 노동자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도록 촉구하였고 월마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권리를 얻는 주체로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월마트가 이러한 내외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 지금의 태도를 그대로 유지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건 내부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조직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21세기 세계화의 최대 주도자이면서 최대 수혜자인 월마트 회장의 시간당 임금은 9백여만원이다. 그러나 월마트에 종사하는 미국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시간당 임금은 약 1만원(Institute for Policy Studies 자료)이고 국내 월마트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3천6백원 안팎이다. 월마트 서비스에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가져가라고 양복 왼쪽에 1달러를 꽂고 다닌 월마트 창업자 샘 윌튼. 만일 그가 살아 있다면 낮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피땀 흘리는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이 불만이라며 그의 양복에서 1달러를 가져갈 수 있을까? 노동자들은 거저 얻는 돈에는 관심이 없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할 노동조합을 원하는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