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삼성·현대, 성적표 받으세요

노동사회

어이, 삼성·현대, 성적표 받으세요

편집국 0 2,949 2013.05.19 01:50

 


shin_01.jpg과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와 환경에 미친 영향은 고려되지 않은 채, 그저 이윤 증대와 고용 창출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 내용이 인권 보호와 자연환경 보존, 그리고 사회 환경 개선 등의 범위로 확대되면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국제규범이 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윤을 추구하되, 사회적 요구와 환경적 가치를 고려하여 기업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기업은 투자자나 주주는 물론, 노동자, 소비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정부, NGO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제기하는 사회적 책임을 수렴하고 이를 적극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단순히 논의의 차원을 넘어 국제적으로 규범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국제표준화기구(ISO)는 2007년까지 회계투명성과 내부자거래 등 경제영역, 환경오염 방지와 생물다양성 존중 등 환경영역, 그리고 아동노동 금지와 결사의 자유 보장 등 사회영역 이렇게 크게 3가지 틀에 대한 국제표준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곧 ‘자발적 준수’ 수준이 아닌 ‘새로운 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국내 기업들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편 이러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규범화하는 흐름과 함께 기업평가와 투자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비록 수익성이 높을지라도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기업들이 신뢰를 받지 못하고 어느 순간 무너지는 현실에서, 과거 재무중심 평가로는 기업의 가치와 사회적 위험을 적절히 평가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기관들을 중심으로 기업의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성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투자하는 ‘사회책임투자’ 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사회책임투자의 규모는 세계적으로 3천조원에 이른다. 그리고 2009년에는 전체 주식시장의 1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그 규모와 성장속도가 놀라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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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의 버마가스개발사업으로 인한 인권/노동권/환경권 침해'에 반대하는 연대 모임 ]

비재무성과를 포함한 지속가능성보고서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재무 정보만이 아닌 비재무정보도 공개하도록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비재무적인 정보를 종합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지속가능성보고서’이다. 지속가능성보고서는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 등 기업의 자금 흐름만이 아닌 생산-유통-소비-사후관리 등 모든 과정에서 펼쳐지는 기업활동을 종합한 보고서로서 기업의 활동이 노동자와 소비자, 지역사회와 환경 등에 미친 영향들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한 기업은 그 계기가 해외 협력업체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한다. 재무성과가 좋지만 계속 거래를 하지 않고, 다른 위험요소는 없는지, 국제적인 기준을 준수하고 있는지 등을 검토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성보고서 발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보고서는 기업 경영에 관한 정보를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공개하는 것으로 일종의 ‘기업 종합 성적표’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지속가능보고서 발간은 사회적 위험을 사전에 파악하여 대처하고,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으로 이해되기도 하다.

현재 지속가능성보고서 작성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지침은 국제연합환경계획(UNEP)과 비정부기구인 환경책임경제연합(CERES)이 공동 설립한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가이드라인으로, 세계적으로 728개 기업이 발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SDI, 현대자동차, 한국토지공사 등 7개 기업이 발간·등록하고 있다. 미국(79개)이나 영국(80개), 그리고 일본(127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러한 지속가능성보고서 발간은 국가별로 상이하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유럽에서는 시민사회의 영향으로 법제화를 통한 의무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프랑스는 연차보고서에 환경 및 사회적 영향을 포함시키도록 했으며, 영국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장관을 임명하고 기업책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도 환경보고서를 법제화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하지 않고는 주식시장에 진입할 수 없도록 하였다.

핵심 슬쩍 빼먹는 국내기업들의 보고서   

그러나 지속가능성보고서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인식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제적으로 규범화가 진행되고, 해외 거래업체와 금융기관 등의 요구에 의해 몇몇 기업이 시작하고는 있지만, 법으로 강제되거나 사회적 압력이 높지 않기에 양적이나 질적 측면 모두 미흡한 상황이다.

내용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국내 기업들은 사회적으로 문제제기되거나 혹은 해당 기업에게 매우 중요한 이슈임에도 이를 누락하는 경향이 높다. 예를 들어, 삼성SDI의 경우 노동자 탄압 문제가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음에도 보고서에서는 해당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보고해야 할 결사의 자유에 대해서도 보고하지 않고 있다. 또한 현대자동차도 비정규직 현황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불법파견 문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고 반드시 보고해야 할 정치자금 관련 부분에서도 명확한 원칙과 이를 준수하는 시스템은 전혀 보고되지 않는다. 결국 핵심사항은 줄줄이 누락되어 있다. 즉 자기 입맛대로 작성하는 경향이 크다.

또한 국내 기업들은 세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고용부문의 경우, GM은 성별, 인종별, 연령별, 임금수준별, 사업장별, 업무유형별, 계약유형별, 고용형태별(직/간접)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용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성별, 사업장별, 업무유형별에 대한 정보만 제공하고 있다. 아주 기초적인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보고서는 이해관계자가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데,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절차를 생략한 채 보고서를 작성한다. GRI 가이드라인에서도 최우선적으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수렴한 후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으나, 국내 기업들은 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기업만을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반사회적 기업, 우리도 제재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함께하는시민행동에서는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에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사회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지적된 문제에 대해서는 해명을 요구하기도 하며, 비정규직이나 정치자금과 같은 우리사회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개선책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한 누락한 정보에 대해서 일일이 지적하며 해당 정보를 사회에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기업의 반응은 썰렁하다. 요구했던 내용 중 일부분 개선되기도 하지만, 핵심사항은 변화가 없다. 한편에서는 기본적인 사항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데 사회적 책임 요구는 먼 이야기라고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기업들은 시작이니 만큼 비판보다는 격려가 먼저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양쪽에서 불만이 나올지라도, 기업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들이 공개되고, 이를 토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감시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제 기업들은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매개로 평가기관으로부터 좋은 등급을 받고, 금융기관에서 투자를 유치하며, 새로운 사업관계를 맺고 있다. 보고서가 일종의 기업활동의 필수품처럼 여겨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일례로 삼성SDI는 노동문제에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보고서 발간 등으로 DJSI(다우존스 지속가능지수)에 2년 연속 선정되어, 마치 세계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잘 실천하는 기업인 양 선전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지속가능성보고서 내용이 기업활동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기업감시운동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선은 정확한 정보가 보고서에 담기도록 기업에게 압력을 가하고, 향후에는 제도화하여 사회적 검증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반사회적·반환경적 기업에 직접적으로 대항하는 방식만이 아닌 금융기관을 통한 투자 철회와 거래업체에 대한 계약 해지 등의 방법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형태의 활동이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서구사회의 사회책임투자운동 확산과 금융기관 감시 네트워크 형성은 우리사회 편향된 기업감시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듯 싶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