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연대는 비정규직을 조직케 할 것인가

노동사회

지역연대는 비정규직을 조직케 할 것인가

편집국 0 2,847 2013.05.19 01:42

2000년 시작된 지역일반노조운동은 이제 전국 곳곳에서 깃발을 세우고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의 구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 지역의 일반노조들은 주변여건에 적응하며 활동의 경험을 축적하여 이미 전국적으로 20여개 조직에 6천여명의 조합원이 함께 하고 있다. 

21세기와 더불어 시작된 지역일반노조운동

일반노조의 가장 큰 역할은 IMF 경제위기 이후 사장의 말 한마디에 항의 한번 못하고 쫓겨나거나 임금을 삭감당했던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절박한 현실에 맞서 투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전에는 10명, 20명의 사업장에서는 감히 노조를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런데 일반노조가 지역적 단결로 새로운 길을 연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노조가 건설될 초기에는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그 역할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현재는 아직도 정당한 지위를 부여받지 못하는 지역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최소한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의 유력한 방도 중에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간의 경험을 돌이켜봤을 때 비정규직 조직화와 관련한 일반노조운동의 특징은 ‘지역 단결투쟁’에 있다. 사실상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는 기업별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규모와 고용조건에서 너무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국통신 계약직노조의 투쟁 경험이 이러한 기업별 조직화의 한계를 이미 명확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규모가 적고 하나의 조직으로 엮이지도 않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조를 유지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이는 철도노조의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적극적인 엄호와 지원을 받으면서도 지난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홍익매점 동지들의 경험을 봐도 알 수 있다. 주체보다 압도적으로 큰 연대의 힘이 없이는 조직을 유지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별 조직화는 지금 상황에서 전혀 현실성이 없다. 그리고 지역일반노조운동은 각 지역에서 기업별노조 설립을 더는 할 필요 없게 만들었다.

산별을 통한 조직화와 지역일반노조를 통한 조직화

그런데 이러한 일반노조를 통한 조직화와 비교했을 때 산별노조를 통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어떤가? 금속노조를 제외하면 아직 산별 조직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조직은 없기 때문에 단정지어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오랜 투쟁 전통과 연대 기풍을 가지고 있는 금속노조운동과 역사가 짧고 조합원 수가 훨씬 적은 일반노조운동을 똑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어쨌거나 금속노조는 수천명 단위의 전국 집중연대나 지역총파업 등으로 악질 사업장을 타격하고 장기투쟁 사업장을 엄호해 왔다. 그리고 해마다 중앙교섭을 통해 비정규직 관련 보호조항을 쟁취함으로써 적어도 사내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화 지반을 넓혀왔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금속노조운동에는 지금 산별 조직화와 관련하여 매우 근본적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원청 대공장노조의 산별전환을 추구하는 금속노조가 투쟁으로 일어서고 있는 사내하청지회의 지위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둘째는 금속노조 각 지역 중심사업장들의 현장조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중소영세사업장 신규 조직확대에서 심각한 한계를 보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런 문제들은 향후 금속산별노조의 발전전략에 깊게 관여되어 있다.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노동자 조직화와 관련해서 일반노조와 비교가 가능한 것은 차라리 소산별 조직이다. 소산별노조는 일반적으로 산별노조 건설 경로로서 상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소산별노조를 통한 조직화는 지역일반노조와 마찬가지로 기업별 한계를 극복하는 것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만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를 놓고 둘을 비교했을 때 일반노조의 방식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현재 소산별노조들은 전국적인 통일교섭과 공동투쟁을 할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소산별의 지역단위들은 여러 모로 사실상 기업별 조직들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역적 연대투쟁의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러한 조건은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한계이다. 그렇다고 소산별노조를 포괄하고 있는 산별연맹이 이러한 중소영세기업과 비정규 사업장에 대해서 제대로 책임질 수 있는 조건도 아니다. 

결국 소산별노조에게 의존하지 못하는 영세사업장들에게 실질적으로 가장 큰 힘이 되는 상급조직은 민주노총 지역본부이다. 하지만 총연맹이 산별연맹이나 대공장보다 가난하듯이, 지역본부 또한 그러한 조건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 지역본부들의 경남지역에서처럼 웬만한 신규조직은 죄다 지역의 일반노조로 조직하는 방침을 갖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한다. 

불안정한 신규 사업장을 조합원이 수천명인 전국직종조직(소산별노조)으로 묶어 세우는 것이 안정적인 방안이 되겠는가 아니면 1천명도 안 되는 지역노조에 묶어주는 것이 힘이 되겠는가? 나는 후자가 현실적인 답이라고 확신한다. 핵심은 연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층간부의 일회적인 연대에 치중해 있는 소산별노조와는 달리 일반노조는 지역을 기반으로 기업과 업종을 넘어선 조합원들의 연대를 일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노조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의 노조에서 단결하고 투쟁하는 데 어떤 문제도 없다. 오히려 지역일반노조에서는 그렇게 하나되어 단결하고 투쟁할 때만이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키고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을 누릴 수 있다.   

빈약한 재정과 인력, 취약한 교섭구조

일반노조운동은 지난 6년간의 활동으로 조금씩 자리잡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많은 한계와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한 어려움은 일반적인 것들도 있고 노조운동 내부 관계에서 오는 특수한 경우도 있다. 

먼저 일반노조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어려움은 재정과 집행역량의 부족, 그로 인한 빈약한 일상활동, 모든 사업장을 개별로 상대해야 하는 취약한 교섭 구조, 사업장 규모의 영세성으로 인한 현장의 자구력 취약 등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도 각 지역 조직에 따라 편차가 있다. 활동가 한두명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전남동부, 부천 등), 다섯명 이상의 활동가를 확보하고 있는 조직도 있다(부산, 경남, 경기 등). 교섭방식도 대각선교섭이 일반적이지만 지역에 따라 직종별 집단교섭을 추진할 계획이 있는 지역도 있다(경남/레미콘, 부산/정화, 전북/전북대, 충남/제조 등). 

또한 일반노조 소속의 사업장들은 규모가 작고 평균연령이 높다. 때문에 현장간부를 양성하기 어렵고 현장의 자구력이 취약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집행간부가 직접 챙겨야 한다. 여기서 비롯되는 어려움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더구나 정세가 노동에게 불리한 요즘엔 사업주들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탄압을 가해오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집행부의 활발한 일상활동 지도와 더불어 50명에서 100명 정도 규모의 제조업 사업장의 젊은 노동자들이 주력을 형성하고 있는 충남일반노조의 활동력이 타 지역에 비해 압도적인 것은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관련 사업장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경남일반노조도 꽤 안정적인 편이다. 그리고 다양한 직종의 영세 사업장들이 다수인 서울일반노조, 부산일반노조, 광주일반노조, 경기일반노조 등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조건이다. 한편 전북일반노조의 경우에는 높은 연령의 파견노동자들이 주축이지만 전북대학교 비정규직 전체를 조합원으로 조직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직 안정성이 높다. 

어디서나 과잉 정파경쟁은 제살 깎아먹기

노동조합운동 내부관계에서 비롯하는 특수한 어려움은 지역에 따라 그 성격이 다양하다. 일반적으로는 지역본부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즉 조직화의 영역을 둘러싼 문제다. 가장 앞서가는 경남과 충남은 민주노총 지역본부와의 원만한 협력관계 속에서 가장 일반노조다운 노조로 성장해 왔다. 경남의 경우 민주노총 지역본부 차원에서 금속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중소영세 비정규직 신규사업장을 경남일반노조에 가입시키고 있다. 그러나 지역일반노조활동이 시작된 초기에는 일반노조 간부들이 지역본부 활동가들과 대립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공공연맹이 지역노조를 만들면서 조직영역을 둘러싸고 긴장이 확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노조운동의 대의를 이해하는 동지들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부분들은 점차 극복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역본부가 일정한 영역의 조직사업을 일반노조가 전담케 하여 조직확대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처럼 일반노조 밖의 활동가들과 일반노조 활동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어려운 부분이지만, 더 우려되는 것은 부산일반노조의 경험처럼 활동가들의 정파 경쟁구도가 내부에 형성되어 조직을 피폐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잉정치가 발생하는 경우 다수의 유능한 활동가들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 하더라도 그 힘이 조직발전을 위해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걸림돌이 된다.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반노조운동에 복무하면서 이런 데 에너지를 쓰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조직 내외부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을 단박에 극복할 수 있는 뾰쪽한 수는 없다. 오로지 시작하는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 조합원들의 점차적인 각성과 결의로 조금씩 만들어 가는 길이 있을 뿐이다. 물론 전국적으로 뭔가 발전적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일반노조운동의 어려움도 보다 쉽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소모적이고 적대적인 정파 경쟁구도가 혁파된다면 전체 운동 발전의 큰 계기가 될 것이다. 대공장운동, 산별노조운동, 지역노조운동 공히 마찬가지이다.  

산별연맹 중심 민주노총운동에 대한 비판

일반노조운동은 ‘전국단일조직’을 주창하면서 출발했다. 지역연대를 헐어내면서 산별연대 중심으로 가는 민주노총의 운동방향에 대해 비판적 문제의식이 강하게 있는 것이다. 산별연맹 중심의 민주노총 건설을 피할 수 없었지만,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지역노동자들의 단결투쟁 구심으로서 명실상부하게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그렇게 전개되지 못했다. 그리고 일반노조 동지들은 지금도 전국단일조직을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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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지역일반노조 조합원들의 핸드프린팅 퍼포먼스 - 출처 : 경남지역 일반노조 ]

첫째, 산별노조로 가지를 뻗기에는 우리나라 노조운동의 세가 너무 보잘것없다. 프랑스처럼 시민사회의 정치적 수준이 받쳐 주는 것도 아닌 현실에서 10%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민주노조조합원을 각 산별조직으로 분화시키는 것은 조직발전 전략상 오류다. 한마디로 조직률 20%, 조합원 300만명쯤은 되어서 산별로 분화하더라도 한 조직이 최소한 50만명은 되어야 산별이든 뭐든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때까지는 지역에서 조합원 대중의 일상적인 연대를 축적하는 것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다양한 형태의 연대질서가 함께 어우러져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양대 노총을 통틀어 유일하게 산별노조를 할만한 분야를 찾는다면 운수분야이다. 무엇보다 전국적 조직률이 압도적이며 일정한 수준에서 동질성을 확보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가장 유리한 분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노동시장 분절이 심화되면서 절대 다수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는 현실로 인해 노동계급의 산별통합성이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어 산별단위가 실천적 의의를 갖기 어렵게 된 점이다. 당장 기존 산별연맹 조직을 바꾸기는 힘들지만 실천적으로 지역연대 활동의 비중을 크게 높여야 한다. 그러면서 적어도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의 경우 새로 조직하는 사업장은 처음부터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지역적 연대조직으로 결집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서울의 경우 다수 연맹에 소속되어 있는 조합원 수백명 수준의 업종별 지역노조들이 굳이 각자 조직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 의문이다. 오히려 통합하여 2, 3천명의 지역조직으로 함께 하면서 권역별 사업집행 책임을 나누는 것이 조직활동에 훨씬 유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지역비정규노조연대회의가 하나의 지역노조로 나아가는 것을 적극 토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금속노조, 대공장 통합이냐 제조업 지역연대 강화냐 

금속노조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전노협의 역사적 맥을 이어 받고 있으며 이만한 계급적 역량을 담지하고 있는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금속 산별노조 건설에 대해 계속 대공장 통합을 주요 전략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사내하청 현장투쟁을 받아 안고 공단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 지역노조운동으로 확장시켜나가는 것을 전략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다른 방향설정이다. 나는 대공장 통합방식의 산별노조 건설 노선은 사내하청지회의 지속적인 성장 속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판단한다. 설사 산별전환 투표를 통해 대공장이 통합한다고 해도 그것이 산별노조를 보장하는 쪽으로 순항하기는 쉽지 않다. 

금속노조 건설을 영남지역 대공장 통합을 주축으로 삼은 것은 처음부터 길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우조선과 현대자동차를 통합하면 금속산별노조로 가는 큰 줄기가 잡히는가? 오히려 현재 금속노조의 주축으로 포괄하고 있는 중규모 사업장들의 현장을 강화하여 지역의 중심축으로 삼고, 한편으로는 대공장 사내하청을 받아 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속과 화섬을 통틀어 공단을 중심으로 지역지부를 확대해 나아갈 때, 꿈의 30만 계급적 산별노조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질 것이다. 

단지 산별노조를 유일한 답으로 당연히 생각하고 있는 운동현실에 대해서 한가지만 더 이야기 하고자 한다. 금속노조의 주요 쟁취 내용은 2003년 ‘임금저하 없는 주 5일제’, 2004년 ‘산업 최저임금’, ‘손배 가압류 금지’, 2005년 ‘불법파견 확인 시 정규직화’, ‘비정규직 노조가입을 이유로 고용문제 발생 시 정규직 채용’ 등 매년 노조운동의 핵심적 사안들이다. 이러한 내용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총노동의 단결된 힘을 통해 제도적으로 쟁취해 나가야 할 것들이지 결코 금속에만 요구되는 특수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법제도로 보장되지 않는 내용을 단체협상으로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는 현실을 통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역연대 강화로 아래로부터 지도부 검증체제 확립을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는 실리주의-개량화-관료주의로 물들어 온 우리 민주노총 운동의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많은 원인진단이 있다. 그 중에는 지도력 검증과 관련한 의견도 있다. 아래로부터 대중적 감시·검증체제가 없는 제도적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들이다. 내가 보기에 아래로부터 대중적 감시가 구멍난 것은 ‘지역연대 질서’가 무너진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간부들의 연대활동이 지역을 중심으로 조합원 대중 속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별중앙 조직의 위계를 따라 소수 상층 중심의 일회적인 활동에 치우쳐짐으로써, 간부들이 아래로부터의 긴장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사실 지역활동에 불성실한 간부들의 핑계는 항상 ‘산별연맹’과 ‘현장’이다. 모든 것이 산별조직이 우선인 현실에서 상급단체 회의다, 교육이다, 지원연대다 하면 그만이다. 상급단체 활동에 조합원들이 따라가서 함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현장에 문제가 있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지역에서 누가 현장을 확인해서 따지는 것도 아니고. 산별연맹 중심이 굳어지면서 핵심간부들이 전국사업 한다고 바쁘게 중앙을 오가지만 정작 옆에 있는 다른 조직의 사업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관심도 없다. 

자연히 지역에서 산별조직을 넘어 서로 교류하고 연대하는 것은 서먹해지는 반면, 산별연맹 상층을 중심으로 인간적 관계를 굳히면서 관료적 지도부를 형성한다. 이것이 정파적 질서와 교합하면서 전체 운동의 과두제적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비리사태를 계기로 정파질서를 혁파할 뿐만 아니라 노조운동의 지역연대 질서를 대폭 확대해 산별조직 간부들이 상층 중심의 협소한 인간관계에 묶이지 않도록 하고 지역의 조합원들로부터 일상적으로 감시받고 실천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도록 조직을 혁신해 나가야 한다.

전비연의 발족과 지역일반노조 전국협의회 건설 전망

민주노총 최고 지도부의 비리로 분노와 좌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투쟁하는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이 희망을 비춰주고 있다. 10월13일 덤프연대가 파업에 돌입했으며 건설운송 레미콘이 파업을 계획하는 가운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압도적인 다수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이러한 투쟁 분위기 속에서 지난 10월16일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전비연)가 출범하였다. 2003년부터 준비위원회로 활동해 온 전비연이 마침내 본조직을 띄운 것이다. 

전비연은 하반기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쟁취 투쟁의 선두에 설 것을 결의하고 있다. 명실상부하게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을 전국적 연대로서 수행해 나갈 조직으로서 전비연의 앞날에 관심이 높다. 그러나 전비연이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19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걸어온 한계와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지역연대’를 확고하게 세우는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전국적 연대투쟁을 힘차게 전개하고는 있지만 절대 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양한 고용형태로 지역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을 지역 전체의 힘으로 함께 조직하고 조합원 수준에서 일상적인 연대의 기풍을 정착시켜 나가는 것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비연이 특수고용, 사내하청, 공공부문, 일반노조 등 4개의 주요 특성별 과제별 협의구조를 포괄하고 있지만 이들 구조는 주로 정책적 논의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보다 실천적인 연대는 서울지역비정규직연대회의와 같은 각 지역의 비정규노조 연대체를 중심으로 해 나가야 한다. 비정규조직들이 힘을 합쳐 지역에 튼튼히 뿌리내리도록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2000년 4월 부산에서 시작된 일반노조운동은 이제 전국 곳곳에 조직을 세웠다. 비록 낮은 수준이나마 2년 전부터 대표자회의로 함께 해온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 1월 전국협의회를 띄울 계획이다. 많은 부족함을 안고 있지만 조만간에 세워질 전국협의회는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국단일조직 건설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교섭권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연대와 투쟁을 중심으로 조직을 보위하고 나아가 조직을 확대하는 운동, 관할권의 문제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조직, 지역에서 함께 단결하여 조직을 확대하고 탄압에 함께 맞서 싸우며 과제와 요구에 따라 자유로이 교섭주체를 조절할 수 있는 전국단일노조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목표이다. 지역운동의 중요성을 알고 출발하고 있는 공공서비스지역노조 등 산업·업종별 지역노조들과 지역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중소사업장들로 구성되어 있는 전국적 직종노조들도 적극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