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는 비정규조직화의 전망을 열었는가

노동사회

산별노조는 비정규조직화의 전망을 열었는가

편집국 0 3,396 2013.05.19 01:41

비정규직 사용을 통한 자본의 경쟁력 강화전략은 IMF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본격화됐고 아직도 현장에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민주노총의 투쟁을 선도해왔던 금속산업연맹 소속 사업장에서도 조합원 수 대비 60% 이상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있으며 이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는 약 2만명의 정규직 조합원 외에 1만2천명에 이르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조선업종의 현대삼호중공업은 225%의, STX조선은 342%의 사내하청 비율을 보이고 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경우 생산공정 전체가 사내하청노동자들로 대체된 곳도 있다. 현대모비스에 이어 ‘모닝’을 생산하는 서산의 동희오토에서는 정규직은 관리업무를 담당하는 150명에 불과하고, 생산라인은 11개 하청업체 850명의 사내하청노동자들로 채워져 있다. 최근 ‘문자해고’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기륭전자 역시 정규직은 30여명에 불과하며 250명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주요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자본은 정규직의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리하여 IMF 경제위기 이전 매출액대비 12%였던 인건비 비율은 8%대로 낮아졌고 고용의 유연성, 노조의 영향력 약화라는 성과를 축적하여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있다. 반면 노동현장은 정규직, 비정규직(파견, 용역, 사내하청, 단기계약직), 이주노동자 등으로 갈기갈기 찢겨졌으며, 이로 인한 노동3권의 제약과 노동자간 위계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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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0월 25일, 현대하이스코 연대집회 - 출처 : 금속노조 ]

산별 중앙교섭으로 다지는 비정규조직화의 토대  

2001년 2월8일, 금속노조가 출범할 당시에도 비정규직 조직화 문제는 핵심적인 화두였다. 기업별체계로는 비정규직을 조직하기 어렵기 때문에 산별노조가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만큼 금속노조는 새로운 전망을 열어 나가야 했다.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1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토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 비정규직 탄압의 ‘공식’인 계약해지 및 폐업을 막아내기 위해서 정규직노조가 방패막이 되어주지 않으면 힘들다는 교훈에 따라 원청회사와 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를 위해 금속노조 소속 180개의 사업장 단체협약 갱신요구로 비정규직노동자의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조항을 통일적으로 요구해 왔다. 100개 사업장에 적용되는 2005년 중앙교섭은 “① 금속산업 사용자는 사내하청 및 비정규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이유로 불이익 처분을 하지 않으며 이로 인한 고용문제 발생 시 고용이 보장되도록 한다. ② 금속산업 사용자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조활동을 이유로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합의하여 비정규직 조직화의 조건을 확보했다. 또한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위해서는 정규직조합원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의식강화를 위한 비디오 교육, 간부의무 교육, 정기적인 선전물 배포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조합원의 정서는 하나로 모이기보다는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사회 전체적인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하고 법제도개선 투쟁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내가 속한 사업장의 비정규직 문제해결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에는 동의하지만, ‘정규직화 요구’에 대해서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 있었던 기아자동차노조와 GM대우 창원지부의 조합원 투표결과 약 40%만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에 찬성한 것은 현재 조합원 정서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지회규칙 변경으로 비정규직 집단가입을  

앞서 이야기한 조직화의 토대구축에 이어 금속노조 내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2005년 핵심사업으로서 ‘지회규칙 변경을 통한 집단가입’을 추진했다. 금속산업 및 금속관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부터 가입을 희망하는 노동자까지 조직대상이 열려 있는 금속노조의 규약과 가입대상이 정규직으로 한정되어 있는 단위사업장 지회규칙의 모순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산별조직의 강점을 살려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을 지회에 직접 가입시키는 것을 추진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구의 동협지회는 2004년 사내하청, 이주노동자까지 가입이 허용되도록 지회규칙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2005년에 집단가입을 추진하여 공장 내 별도법인 및 소사장업체의 모든 노동자를 지회에 가입시켰다. 그 결과 35명에 불과했던 조합원은 12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정규직, 비정규직이 하나의 조직에서 공동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전북의 일성테크는 사내하청노동자 40명을 노조에 직접 가입시켜 공동투쟁으로 정규직화를 쟁취했다. 대전의 대정고분자에서도 지회설립 과정에서 정규직, 직·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모두 조직하여 공동투쟁을 승리한 경험이 있다. 특히 한라공조 사내하청지회는 이주노동자까지 가입시켰으며, 기륭전자분회 역시 소수의 정규직, 다수의 직·간접고용 비정규직이 하나의 분회로 조직되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눈에 띄는 몇몇 성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논의와 고민은 진전되었으나 10개 사업장 정도만 실천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사업장단위 정규직 중심의 지회형태는 기업별노조의 잔재다. 조합원의 의식 발전을 제한하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회규칙의 변경을 통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의 지회가입 허용과 조직화는 산별 활동을 정착시키는 중대한 기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적인 결의와 실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산별 미전환 대기업 사내하청의 조직화 

대기업 사내하청의 조직화 방침 역시 원칙적으로 원청노조에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직접 가입하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준비 부족 등으로 별도의 조직을 통한 조직화로 귀결되고 있으며, 연맹 내 신규조직은 금속노조로 가입한다는 연맹의 방침에 따라 금속노조의 지회, 분회로 편제되고 있다. 2003년 현대자동차아산공장에서 촉발된 사내하청의 조직화는 2005년 대규모 불법파견 판정을 계기로 가속화되었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는 불법파견 정규직화, 비정규직 노동3권 보장,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을 당면과제로 설정하고 있지만 그러나 아직 성과가 있지는 않다.

향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준거가 될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특별교섭은 임단협 종료 후 1달 내에 교섭을 진행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교섭대표를 배제하고 현대자동차 노사가 논의해야 한다”는 자본의 ‘강고한’ 입장에 따라 진전이 없다. 또한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단체협약 체결을 목표로 최전선에서 투쟁하고 있는 기아자동차 화성의 경우 원청자본이 계속 교섭을 거부하고 있고 물론 22개 하청업체의 집단교섭에서도 별다른 진전이 없어 계속적인 파업투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렇게 자본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문제에 대해 경총의 지침 하에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단 한발도 양보하지 않은채 비정규직에 대한 탄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의 파업현장에는 관리자들의 물리적 탄압과 용역깡패의 폭력이 판치고 있으며 고소와 고발, 손배·가압류가 폭격처럼 가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투쟁은 강력하지 못하다. 민주노총, 금속연맹, 금속노조의 지도력이 대기업노조와 비정규직 단위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투쟁의 가장 결정적인 변수인 원청노조 조합원과 비정규노동자들 사이의 연대가 원활치 못한 게 사실이다. 그리하여 정규직노조 임단투가 종료된 상황에서 비정규직 대오가 온갖 탄압을 감내하며 불법파견 정규직화,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파업투쟁을 하는 새로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비정규직지회 1천명의 파업 돌입으로 라인이 멈춰 1만명의 정규직조합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하는, 예전과는 입장이 뒤바뀐 풍경이 재현되었다. 

자본의 분할통제를 극복하고 원청자본과의 공동투쟁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여 단일한 전선을 구축해야 하지만 현재 노동운동은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공동 임단투라는 차선책이 있지만 이마저 정리되지 못하면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별도의 요구와 일정으로 투쟁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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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경주지부 집단교섭 - 출처 : 금속노조 ]

미조직사업장 비정규조직화를 위한 사회적 연대   

미조직사업장의 비정규직 조직화는 주로 내부 주체의 활동과 부당한 대우에 대한 상담을 매개로 이뤄지고 있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상담센터를 통해 상담이 접수되면 그 내용이 관련산업의 상급노조로 이관되고, 주체역량 강화교육, 조직확대 사업을 통해 조직을 결성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금속노조의 경우 하이닉스 매그나칩, 현대하이스코, 기륭전자, 동희오토 등이 그렇게 조직된 예이며, 이들은 원청노조라는 버팀목 없이 독자적인 역량으로 자본과 총력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사업장의 자본은 눈치볼 것 없이 곧바로 폐업 및 계약해지로 대응한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장기투쟁으로 전환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금속노조는 산별 단일노조라는 조직적 강점과 강력한 집행력으로 이러한 투쟁들에 대해 연대를 조직하고 책임지고 돌파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실제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의 투쟁에 대해 지역총파업을 전개한 바가 있으며, 현대하이스코의 투쟁승리를 위해 10월25일에는 전남동부지구협의 총파업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금속노조가 최선을 다해 지지와 엄호 투쟁을 벌였지만 미흡한 점이 많았고, 투쟁들은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길거리로 내몰린 비정규직조합원들의 생계와 투쟁 지원, 사용자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압박투쟁 등 해야할 것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기존의 방식으로 대응하다간 한계만 명확해질 뿐이다. 기존에 해왔던 지원, 연대의 질을 뛰어넘는 보다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정파를 초월한 노동운동진영 총력대응과 정당, 사회민주세력까지 포함하는 사회적인 지원태세를 갖춰 나가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 비정규조직화의 양상이 결정되는 시기

자본의 분할통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여 원청자본과 총자본에 맞서는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은 산별 조직체계의 강점과 산별 활동을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금속노조 4만의 규모를 가지고는 사회적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규모를 더 키워야 하며, 조합원의 의식적 발전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불법파견 정규직화, 비정규직노동자의 노동3권 쟁취,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투쟁 전선이 성과 없이 무너지면 어렵게 형성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조직화 흐름은 단절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 관련 현안투쟁과 비정규입법 쟁취투쟁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될 2005년 하반기부터 2006년 초의 시기가 비정규직 조직화의 중대한 기점이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