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간부들이여, 산별조직활동가가 되라

노동사회

노조간부들이여, 산별조직활동가가 되라

편집국 0 3,145 2013.05.19 01:38

주진우 민주노총 정책국장을 만난 10월21일은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 비리 사건’으로 이수호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한 다음 날이다. 그리고 그 날 정오는 비리사건에 대한 ‘안이한 대응’에 반발하며 15명 사무총국 활동가들이 낸 사표가 수리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가을비가 아침부터 차갑게 추적거렸다. 오전 10시 반, 영등포 로터리 대영빌딩 1층 민주노총 정책실로 들어서는 평소 어수선했던 길은 날씨 탓인지 이 날은 많이 허하게 느껴졌다. 비정규직 조직화라는 묵직한 주제에 대한 경험과 비전을 듣겠노라며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막상 내 입술은 분열과 혼란의 불안과 가십거리를 찾아 가볍게 촐싹거렸다.
 “저, 어제 혹시 술 드셨어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주로 재미없는 원칙적인 대답이다. 그 ‘원칙’은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다. 과격하거나 냉소적이지 않기에 되려 깊이 스며든다.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그늘과 햇살의 경계가 분명하면서도 흐릿한 늦가을 하늘같은, 사려 깊은 긴장감으로 조율된 이야기이다. 현재의 위기는 “어쨌거나 노동운동이 더 아래로 임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으며,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길은 비정규직노동자의 조직화”이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간부들이 자기 산업과 지역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활동하는 산별활동가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뜨거운 구호로서 주장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자기 삶의 무게가 실린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11월 초 비정규조직활동가학교 출범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비정규직조직화를 위한 50억원 기금은 10%도 채 걷히지 않았다. “올 하반기 승부를 걸어봄직 했”던 비정규입법 쟁취투쟁은 비리사건으로 정말 험한 길을 걷게 됐다. 답답한 활동가들, 지금 뭘 해야 할까? 방향 잃은 분노와 불안의 미열이 잠시 눈을 가릴 수도 있지만 모두들 답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건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됐기 때문에 ‘오히려’ 비정규입법투쟁과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사업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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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노조대표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주진우 민주노총 전 미조직비정규사업실장 - 출처 : 매일노동뉴스 ]

민주노총이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는 어떤 의미를 갖을까요?

이번 비리 사건은 외부에서 노골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희망을 앗아간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속에서 비리가 심각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노동운동이 더 아래로 임하지 못한 데 근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물론 비리도 뿌리뽑아야겠지만, 긴 시간을 두고 근본적인 지향을 새롭게 다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비정규직 조직화’가 중요합니다.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운동 속에서 활발하게 의사를 표출하고, 조직이 그 내용을 자신의 중심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 즉 비정규직조직화야말로 우리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고려가 없으면 어떠한 조치도 대증요법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사무총국 내에 미조직비정규사업실이 별도로 구성됐었는데 그 문제의식은 뭐였습니까?

잘 알려진 것처럼 1997년 IMF 사태 이후 소득분배구조가 급격하게 악화되고 비정규노동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우 캐리어나 한국통신 등의 사업장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발생했고, 민주노총도 자연스럽게 이 문제에 대한 발언을 시작했죠. 그러나 당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내부 조직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직쟁의실에서 한두명의 담당자가 맡는 식이었죠. 그러한 부분에 대한 반성을 담아 이후 비정규문제를 집중적으로 전담할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 결과물이 2003년 2월에 설치된 미조직비정규사업실(비정규실)입니다. 

어떤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요구는 조직이 그것과 관련된 고민과 내용을 아직 자기 골간사업으로 갖고 있지 못함을 이야기합니다. 동시에 골간사업화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힘을 쏟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비정규실은 일반적인 특별위원회 양식과도 다르게 사무총국 내에 설치됐습니다. 그 의의는 첫째, 비정규실이 특별위원회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실무적인 부분을 다양하게 뒷받침받을 수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둘째, 이를 통해 민주노총 전체 비정규사업의 방향과 체계가 제시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실은 현재 2년 반의 사업과정을 통해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비정규조직센터로 전환한 상태입니다. 

자연스럽게 비정규실이 비정규조직센터로 전환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데요.

비정규실이 주축이 됐던 민주노총 비정규사업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가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답하는 것입니다. 노동운동의 대표성 회복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비정규직 조직화’는 노동시장의 변화에 걸맞게 민주노총의 기본구조를 비정규직 중심으로 맞추어 나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리고 둘째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현안투쟁들을 지원하고 사회적인 쟁점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이고, 셋째 비정규직노동자문제와 사회양극화문제 등과 관련하여 법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일입니다. 

이 중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과제, 특히 비정규문제와 관련한 법제도 개선은 작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비정규입법쟁취투쟁을 통해 누가 뭐래도 우리 조직의 핵심적인 골간사업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지난 과정 속에서 힘있게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5대 전략사업’ 등 기본적인 방향제시는 이뤄졌는데 워낙에 사업장 현안투쟁이나 입법투쟁이 크게 불거지면서 그 쪽으로 역량이 집중된 거죠. 이번에 비정규조직센터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있습니다. 즉 세상이 뒤집어져도 흔들리지 않고 조직화사업만을 전담할 수 있는 내부 조직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처음으로 진행되는 비정규조직활동가학교는 11월8일부터 시작하는데, 이것은 예정된 11월 입법쟁취투쟁 한가운데서 진행되는 겁니다. 다른 일상사업 같으면 이렇게 진행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겠다는 겁니다. 

2년 반 동안 비정규실 사업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과 현장에 바라는 점은?

활동하면서 아쉬운 부분보다는 희망을 훨씬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참 더디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습니다. 총연맹이나 간부 차원에서는 비정규사업이 중심사업으로 많이 근접해 들어갔는데, 아시다시피 현장에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비정규투쟁을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거든요. 지금 우리에게는 강력한 구호보다는 자기 현장, 자기 사업에서부터 시작되는 변화가 훨씬 더 필요합니다. 중앙차원에서 노동운동의 방향정립 같은 것들은 누가 뭐래도 비정규직 중심으로 가고 있는 것이니까 거기에 말 한마디 덧붙이는 것보다는, 실질적인 자기 실천들이 더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현재 우리에게는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조직적 과제가 있습니다. 산별노조를 만든다는 것은 그 산업의 모든 노동자들을 대표해서 힘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미조직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제외하고 생각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산별노조를 건설한다는 것은 단순히 조직형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활동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가는 것이고, 이는 기존의 활동가, 간부들에게 ‘대전환’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정규직노조들이 자기 산업의 미조직비정규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대변하는데 상당부분의 역량과 결단과 재정을 집중하고, 모든 간부들이 ‘산별활동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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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의 눈물, 그들의 눈물이 멈추는 세상을 위해 - 출처 : 노동과 세계 ]

산별활동가라는 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모습을 그린다면?

산별활동가 즉 조직활동가의 모습은, 음… 일단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노조간부는 아니죠. 상급조직의 미조직담당자도 아니고요. 한마디로 얘기한다면 비정규직 조직화를 ‘실질적으로’, ‘직접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영역의 노동자조직화를 위해 현장단위를 전략적으로 포괄하면서 기존의 체계에 구속받지 않고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번에 비정규조직활동가학교를 통해 뽑는 사람들은 민주노총 소속의 활동가가 됩니다. 이들은 집중적인 교육을 받고 ‘5대 전략단위’에서 자기계획에 따라 현장과 접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현장에 취업하기도 하면서 조직화사업을 진행할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특정 연맹이나 지역본부에 파견될 수도 있지만 그 조직체계 안에서 역할을 맡고 사무를 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전략조직화계획에 따른 비정규조직화사업만을 전담하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떻게 조직한다는 것입니까? 예를 들어 설명해주십시오. 


구체적인 활동 양상은 ‘5대 전략단위’마다 조금 다를 겁니다. 유통서비스 영역을 예로 들면,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우선 논의를 통해 ‘서울의 대표적인 할인마트들을 1년 안에 조직해보겠다’는 식으로 전체적인 목표를 설정합니다. 이를 위해 조사를 진행하여 목표가 되는 사업장을 설정하고, 사업장에 직접 취업을 하거나 취업해 있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탐사해서 현장에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또 밖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이렇게 죽죽 사업들을 진행하면서 그야말로 조직화의 핵심들을 발굴하고 불만과 요구들을 조직하고 소모임 같은 것들도 만들어서 같이 하고…, 이런 준비과정들을 거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 때 노조를 건설할 것이냐, 지역별로 할 것이냐 자본별로 일거에 할 것이냐 등에 대한 판단을 구체화하고, 그와 동시에 이 사업들을 외부에서 지원할 수 있는 캠페인이라든가 사업주에 대한 공격전략이라든가 하는 부분들을 함께 세우는 것이죠. 이렇듯 양태는 매우 다양하겠지만….

패기와 도전정신, 적극성이 많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렇죠. 그뿐 아니라 창의적인 활동이 많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그렇지만 단기간에 대규모의 조직활동가를 양성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 개최되는 민주노총 비정규조직활동가학교는 30명을 모집합니다. 매우 적은 숫자입니다만 저는 이 첫걸음이 점차적으로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 단초가 됐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간부들이 스스로의, 혹은 노조의 공식적인 결의를 통해 그런 조직활동가로 자기 활동을 전환했으면 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노조가 아무리 과거보다 약해졌다고 해도 그 안에 활동가들을 합쳐보면 몇백명은 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물론 열심히 하고들 있겠지만, 아니, 열심히 한다 아니다를 떠나서 이들이 울산지역의 사내하청현장으로 직접 뛰어들어가서 조직하고 투쟁계획을 세우고 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움직임이 산별전환 투표를 조직하는 것보다 산별노조를 만들어 가는데 더 중요한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조직노동자를 조직하는 주된 체계로서 산별노조와 (지역)일반노조가 존재합니다. 각각에 대해 평가한다면?

기본적으로 저는 우리 노동조합의 체계가 산별노조로 가야하고 이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역일반노조를 통한 조직화 흐름도 한편으로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별노조의 담을 허무는 것조차도 정말 쉽지 않은 현실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이 불만과 요구를 속에 쌓아두고 산별노조의 비정규사업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죠. 때문에 산별노조와 연맹에서 비정규직 조직화가 실제적인 자기임무로 본격화되기까지 수렴되지 못한 비정규노동자들의 요구와 불만을 현재 지역일반노조가 조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 제가 부드럽게 이야기했습니다만 그 사이에는 상호 갈등과 불신이 있기도 하죠. 

어쨌거나 고민은 이런 겁니다. 정답이라고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만 그동안의 경험을 봤을 때 산별노조 건설이 일반적으로 조직화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실질적인 의의를 갖기 위해서는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부터 비정규직 조직화가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일반노조운동이 가질 수밖에 없는 교섭력이나 재정 등의 한계점들을 고민하되 그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필요와 욕구를 이해하면서, 서로 북돋고 격려하면서 함께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비정규노조운동의 선도투쟁을 통한 조직화에 대해 평가한다면?


초기 민주노조운동의 발전과정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현재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선도투쟁은 필요하고 불가피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소수의 준비된 대오가 비정규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변하면서 강하게 치고 나오는 것과 대중조직이 바닥을 훑으면서 단계적으로 조직하는 활동이 잘 결합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현재 상황은 두 가지 모두, 특히 대중적 조직화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이고 서로 잘 결합돼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전략조직화사업이 제시되는 것이죠.  

전략조직화사업을 위한 50억원 비정규조직활동가 양성기금이 현재 10%도 안 모였습니다. 답답할 것 같습니다.

사실, 답답합니다. 가뜩이나 기금이 잘 안 모이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비리사건’ 이후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집행력이 약화되고 더 어려워졌습니다. 지도부가 사퇴한 10월20일 각 조직 비정규담당자들과 관련회의를 했어요. 여러 얘기들이 나왔습니다만, 결국 결론은 “이런 시기일수록 오히려 배전의 노력을 다하자”는 다짐이었습니다. 하반기에는 다른 것은 다 줄이고 비정규입법투쟁과 비정규조직화사업, 여기에만 총집중해서 비상대책위원회가 됐건 뭐가 됐건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서 배치해서 밀고 나가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왜 기금이 안 모입니까?

물론 지금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볼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00년에도 5억원 비정규투쟁기금 모금운동을 했는데, 그 해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하고 차기, 차차기 대의원대회에서까지 계속 결의했지만 결국 3년 동안 1억6천만원 모았어요. 우리 안에서 돈 모으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 때는 개인 당 1천원이었고 이번에는 1만원입니다. 오히려 비정규관련 사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기금을 1만원으로 올릴 수 있었다는 성과도 봐야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현재 상황이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기금모금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조합원이 60만명이지만 비정규사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고, 조직별 편차를 고려하지 못하고 조합원들에게 충분한 홍보와 설득을 하지 못한 중앙의 잘못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용처가 명백하게 공인된 계획을 중심으로만 기금이 모이는 우리 노조운동의 관행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비정규사업이 활발한 연맹이나 산별노조에서도 잘 안 모입니다. 

그런데 조직률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 사례들을 봐도 총연맹에서 돈을 걷고 활동가들의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는 없어요. 산별단위들이 자기 일반예산에서 기금을 떼서 자기 조직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런데 한국 노동운동은 중앙 집중적인 특성, 지도력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사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중앙 집중적인 경향 때문에 비정규조직활동가 양성에서도 산별단위보다는 총연맹의 역할이 초기에 크게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기금모금 현황은 이러한 특성의 일시적인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비정규직조직활동가 양성은 산별노조나 연맹을 통해서 이뤄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단지 한해 30명뿐이겠습니까. 각 연맹에서 몇십명씩만 해도 일년에 몇백명의 조직활동가가 양성될 수 있겠죠. 올해의 첫걸음을 계기로 그렇게 발전되길 바라는 거죠.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 비리사건’의 영향으로 하반기 비정규입법 관련 정세가 복잡해졌는데요. 

비리사건 이전 민주노총은 투쟁을 최대한 집중하는 것을 전제로 올 하반기에 비정규입법안과 관련하여 ‘저지’가 아니라 최대한의 ‘입법쟁취’가 전략목표였습니다. 이는 물론 노사정교섭까지 염두에 두고 짜여진 전략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했고, 그 이후 어쨌든 민주노총은 현실적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전략과 전술의 재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죠. 한편으로 현재 조건을 봤을 때 정부안을 원안대로 밀어 부치려고 하는 세력에게는 좋은 기회입니다.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이라는 게 무의미한 것이긴 하지만 이번 바리사건이 없었다면 어떤 상황이 됐을까요?

이번에는 ‘쟁취투쟁’에 한번 ‘승부’를 걸어봄직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미 상황이 상당히 악화돼 버린 상태이고 비리사건 이후 실추된 것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 정리된 판단은 아니지만, 경향적으로 봤을 때 아직까지도 저는 올 하반기에 승부를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영역들은 대폭 비중을 줄이고 비정규입법과 관련된 투쟁에 우리의 역량을 총집중하여 원래 설정한 목표를 최대한 관철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고 새로운 체계를 통해 더 깊이 고민되어야 할 부분이죠. 

그런데 이와 별도로 지금 레미콘, 덤프연대, 화물연대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이 예정되어 있거나 시작됐습니다. 이러한 투쟁들을 바탕으로 특수고용과 관련한 제도적 쟁취목표와 개선방향이 올 하반기에는 분명하게 설정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은 정부가 법안 자체를 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생존권도 매우 중요한 의제입니다만 이의 쟁취를 최소한의 조건으로 하고, 이번 투쟁을 통해 어떻게 하면 이들의 노동권문제를 사회적인 쟁점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되어야 합니다. 올 하반기에는 그 제도적인 개선방향과 목표가 분명하게 설정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위기를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현재 뭐를 어떻게 한다고 해도 비리사건의 파장 속에서 무너진 것을 단기간에 다시 세우고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비상대책위가 세워진다고 해서 대안이 세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거죠. 어쨌든 그럼에도 노동조합운동이 바닥을 치고 다시 상승해 가기 위한 전제조건은 자중지란하지 않고 한목소리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상대책위가 세워지면 한목소리를 낼지 갈등이 더 심해질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현재는 바닥에 있으면서 더 큰 분열과 혼란의 수렁으로 끌려갈 것이냐 아니면 바닥에 있지만 어렵게라도 조금씩 헤쳐나가느냐, 그런 갈림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이렇게 됐기 때문에 오히려 비정규입법투쟁과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사업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내부의 경계를 지우고 단결과 연대를 더 확장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