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으로

노동사회

가정주부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으로

편집국 0 2,703 2013.05.19 01:29

 


choi_01.jpg짧은 추석 연휴가 끝났다. 추석 이전에 생산라인 점거농성을 해결하고 교섭의 실마리를 풀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무위로 끝나 결국 농성장에서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8월24일 오전 10시에 전격적으로 단행된 농성이, 하루 이틀이면 끝날것으로 예상된 투쟁이 추석 연휴가 지나면서 장기 투쟁으로 전환된 것이다. 연휴 마지막 날 열린 문화제에서 기륭분회의 막내일꾼 최은미 조합원은 농성투쟁이 설명절로 이어져도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인사를 할 정도로 조합원들의 투쟁의지가 높고, 대부분이 가정주부임에도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가정주부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으로 만들었을까?

21세기 신종 노예, 파견직 노동자

노동자들의 명절인 노동절을 하루 앞둔 4월30일, 기륭전자의 파견직 노동자들 10여 명은 전화로 해고를 통보 받았다. 조그마한 상자크기의 암실을 들여다 보며 하루 10시간의 검사를 하는 고된 노동으로 어깨 마비증세가 있어 부서이동을 간절히 요청했던 김옥분씨.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토요일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 시간에 전화선을 타고 온 해고 통보였다. 오석순, 윤종희씨에게는 휴대폰의 문자메세지로 해고가 통보되었다. 그들의 해고 사유는 ‘잡담’ 이었다. 예전에 ‘노예’를 말하는 동물쯤으로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신종 노예, 파견직 노동자들에게는 말하는것도 자본가의 귀에 거슬리게 된 것이다

그동안 기륭전자에서는 일을 잘 못하거나 조장과 부조장(UT)에게 뻣뻣하다고, 말대답 한다고, 연장근로를 안한다고, 특근을 안하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오죽하면 물갈이 해고라는 말이 있을까. 기륭전자의 파견직 노동자들은 항상적인 해고 위협에 늘 불안해 하며 일해왔다. 월요일 함께 일하던 동료가 보이지 않으면 십중팔구 그 사람은 해고 당한것이다. 한 여성은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보이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휴가를 내서 출근하지 않았다는 소릴를 듣고 안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노예에겐 생존할 만큼의 음식(월급)만이 제공되듯이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기아임금에 시달려 왔다. 최저임금보다 10원 더많은 641,850원을 기본급으로 받고, 10년 정규직 사원의 기본급이 78만원밖에 안되는 회사가 기륭전자다(기륭전자(주)는 2004년 1,700억 매출에 220억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네비게이션과 위성수신라디오를 생산해 내수보다는 수출을 통한 매출액이 많은 회사이다). 기본급이 적다 보니 연장근로로 부족한 임금을 채울 수밖에 없다. 보통 70에서 100시간의 연장근로는 기본이다. 그래봐야 80~100만원을 받을 뿐이다.

농성 초기에 50대의 한 여성 노동자가 눈물로 편지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기륭을 다니면서 품은 소원이 ‘계약직 노동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규직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그나마 상여금이 조금 나오고 고용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계약직 노동자가 그의 눈에는 소원으로 비춰졌다. 기륭전자의 고용실태를 보면 이해가 된다. 500여 명이 일하고 있지만, 직원으로 신고된 사람은 200여명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은 기륭 사원이 아니다. 300여명의 생산직 노동자 중 정규직은 15명 정도에 불과하고 30~40여명만이 계약직 노동자, 나머지 250여명 이상이 파견직 노동자이다. 파견직도 가지각색이다. 3개월, 6개월 1년… 그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써 계약직 노동자가 된다. 계약기간에 따라 임금 차등을 조금씩 두는 식의 노동통제를 해온 것이다.

노동조합 결성의 계기가 된 ‘문자’ 해고

2004년 10월부터 12월까지 구로·금천지역의 노동조합, 사회단체, 민주노동당이 공동으로 ‘최저임금 실현과 불법파견근절을 위한 공대위’(이하 공대위)를 조직하고 지속적인 선전활동과 문화제를 벌여왔다. 10회에걸쳐 선전물을 시리즈로 만들고, 출근 선전전을 벌였으며, 비정규직과 불법파견 실태를 조사해서 관악노동사무소와 함께 공청회를 열고(노동부는 끝내 참석하지 않았지만)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공동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공대위 활동의 성과로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현장 활동가들을 금속노조 남부지회의 조합원으로 가입시켰다. 그리고 2005년을 앞두고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사업을 공세적으로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불법파견 사업장의 전형으로 기륭전자(주)와 파견업체인 휴먼닷컴을 주목하면서 2005년 사업을 준비해 왔다. 

기륭에는 항상적인 해고가 있었지만, 4월말 단행된 해고로 현장노동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부서이동을 요구했던 사람을 부속품 갈아치우듯 계약을 해지하고, 함께 일하던 동료가 ‘잡담’을 했다는 이유로 문자 해고되는 현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문자 해고 이후 현장 노동자들은 문자해고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고 후일을 도모할 것인지,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즉각적으로 대응할 것인지 심각하게 논의 하였다. 그리고 논의결과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었고, 조합 결성을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공대위를 통해서 기륭전자(주)의 불법 파견에 대해 노동부에 진정을 하기로 하였다. 6월30일 공대위와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 등 5명의 연서명으로, 파견노동자의 인권 문제의 하나로 ‘문자해고’를 이슈화 하고 기륭전자(주)와 휴먼닷컴을 대표적인 불법파견 사업장과 파견업체로 진정하고, 시정조치할 것을 기자회견을 통해 요구했다.

노동조합 결성은 처음부터 정규직과 계약직, 파견직 노동자들이 함께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10명밖에 안 되는 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데 힘을 집중했으며, 현장에서 영향력이 있는 근속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주요 간부들의 계약기간 만료로 노조 결성 시기는 계속해서 늦춰졌지만, 다행히도 새롭게 계약이 갱신되었다. 또한 노조결성 비밀이 새어나갈 염려에도 불구하고 준비위원의 확대를 도모하였다. 이때까지 사용자 측은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마침내 7월5일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오전 10시, 10분간의 휴식 시간을 통해서 조합설립보고대회를 하자마자 순식간에 150여 명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노동조합 결성이후 사측은 말로는 노동조합을 인정한다고 했지만, 노동조합이 총회 등을 소집하면 갑작스레 토요일 유급 휴일을 실시하거나(그동안 전혀 유래가 없는) 조기 퇴근을 시키면서 회의를 무산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100여 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총회에 참여하여, 총회에서 대표를 선출하고 요구안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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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집회를 열고 있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노동자들 - 출처 : 매일노동뉴스 ]

전격적인 생산라인 점거농성 

기륭전자(주)는 말로는 노동조합을 인정한다고 했지만, 뒤로는 노조 탈퇴를 유도하면서 교섭은 극도로 기피했다. 어느덧 노조를 결성한 지 90여일, 점거농성을 한지 28일이 되었지만 그동안 노사교섭은 여섯 차례 밖에 없었다. 교섭 초기에 주로 교섭의 장소, 횟수, 형식의 문제로 공방을 했을 뿐이었다.

8월5일 노동부는 기륭전자(주)와 휴먼닷컴에 대해서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고 8월25일까지 개선계획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다. 기륭전자(주)는 불법 파견 판정을 받은 이후, 법대로 하겠다던 예전의 공언은 뒤로하고 불법 파견 행위에 대해서 한마디 사과도 없이, 파견 노동자들과 맺은 계약을 해지하기 시작했다. 특히 노동조합과 교섭이 있는 날이면 더 많은 노동자를 계약해지해서 현재까지 70여명 이상의 노동자가 계약해지를 당했다.

노동부에 제출하는 개선계획서의 내용이 결국엔 100% 도급화라는것과 1년 미만의 파견 노동자에 대해 전원 계약해지를 하겠다는 것으로 소문이 퍼졌다. 기륭분회 조합원들은 노동부를 찾아가서 소장 면담을 요구하였다. 조합원 면담의 결과로 노동부는 개선계획서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이전에는 계약해지를 중단할 것을 공문을 통해 회사에 정식 요구했지만 계약해지를 계속 단행했다.

기륭분회 노동자들은 8월25일 개선계획서 제출을 앞두고, 모두들 계약해지를 당하고 투쟁할 것인지, 아니면 계약해지 이전에 강도 높은 투쟁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매일 오전 10시 진행되는 보고대회를 통해서 법적인 쟁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계약해지 중단,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전격적으로 생산라인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하였다.

마침내 기륭전자(주)는 100% 도급화 계획을 노동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계획은 한낱 종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기륭전자(주)는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휴먼닷컴을 포함해서 3개의 파견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고 라인별로 층별로 정신병원처럼 철문을 만든 것도 부족해 출근카드를 별도로 하고, 작업복도 다르게 해서 불법파견을 도급으로 위장하고 있다. 300여 명의 생산직 노동자 중 10여명밖에 안 되는 정규직에게도 사표를 강요하고, 파견직 노동자들에게는 도급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상여금 200%를 지급한다며 노동자들을 분리시키고 있다.

이제 9월26일이면 개선계획서에 대한 노동부의 시정조치 요구에 대한 사측의 응답이 다시 노동부로 제출되는 시한이다. 현재 노동조합에서는 26일 시정계획서 제출과 국정감사 기간을 고려해서, 기륭전자에서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를 이슈화하는데 힘을 집중하고 전국의 비정규직 장기 투쟁 사업장과 함께 투쟁을 전국화하는데 힘을 모으기로 하였다.

수년의 땀과 노력이 맺은 노동조합 결성

기륭전자 투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두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류기혁 동지와 화물연대 소속 김동윤 동지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두 열사의 죽음과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우리는 죽음으로 내몰리는 비정규직, 파견직 노동자들의 분노를 본다. 노조를 결성한 지 두 달도 안된 여성 노동자들이 한 달간의 점거농성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자식에게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우리 세대’에서 비정규직을 철폐하겠다는 굳은 결의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은 절반밖에 받지 못하고, “똑같은 인간임에도 2등 국민 대하듯 하는 차별을 더는 감내 할 수 없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저항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매일 아침 기륭전자(주)의 출근 시간에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차가운 공장 바닥에서 밤을 보낸 노동자들이 아침운동과 구호로 아침을 맞는다. “비굴하게 살지 말자!”, “목숨걸고 투쟁하자!. 이윽고 구사대인 ‘기륭전자를 사랑하는 모임(기사모)’이 대오를 갖추고 빗자루를 들고  나선다. 공장 앞 청소를 마치고 그들도 구호와 함성으로 정리한다. “갑을전자 말아먹은 김소연은 물러가라”, “대성전기 말아먹은 오석순은 물러가라”, “불법농성 시다바리 윤종희는 물러가라”(노동조합에서는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로 하였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에 나선 결정적인 힘은 기륭전자의 일방적인 노무관리 시스템과 열악한 노동조건과 함께, 현장에서 민주노조운동·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의 새로운 흐름을 열기 위해 수년간 노력한 현장 활동가들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었다. 현장 주체가 있었기에 불법파견 문제를 이슈화 할 수 있었고 문자해고가 발생했을 때 기민하게 노동조합 결성이 가능했다.

너나없이 민주노조운동의 변화와 위기를 말하고 있다. 민주와 어용의 선이 무너지고, 정치적인 주장이 강한 현장조직 성원이 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돼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저마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지만 현장에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고 모범을 만드는 사례가 많지 않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장기간의 꾸준한 현장 활동을 통해서 현장의 힘을 근거로 비정규직, 파견 문제를 이슈화하고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례라는데 각별한 의의가 있다. 또한 기륭전자는 정규직과 계약직 비정규직이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대기업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합가입 문제가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결과는 ‘가입’이 ‘보류’였다. 이런 때에 기륭전자는 처음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이는 비정규직 투쟁의 새로운 전형을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 디지털산업단지는 전쟁 중

2005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단병호 의원과 지역의 공대위가 공동으로 첨단산업단지라고 하는 서울디지털 산업단지의 취업실태를 조사했다. 휴먼닷컴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음에도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다. 첩보전을 하듯 전철역에서 취업자를 만나서 실태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결과 85% 이상의 사업장에서 인력공급업체를 통한 파견노동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파견(인력공급)업체를 통한 불법 파견이 만연한 현실을 고려할 때 기륭전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노조를 결성하고 대응한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40~50대 가정주부들이, 하루 이틀이면 끝날 것으로 생각하고 전격적으로 단행한 점거농성이 어느새 전국적인 투쟁의 중심이 되어버렸으며, 그 주체들을 가정주부에서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전사로 만들었다. 바로 비정규직 파견직 노동자들의 분노가 깊고, 저항의지가 일반화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단 기륭전자뿐만이 아니다. 지금 서울디지털 산업단지는 그야말로 전쟁중이다. 하이테크 알시디 코리아 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맞서 4년간 투쟁하고 있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 인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천지산업의 경우엔 노동자 교섭대표를 징계해고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거기에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옥쇄파업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사업으로 남부지역 민중연대는 바쁜 일정으로 힘들지만,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 엄호하고,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투쟁에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이 비정규직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듯, 강고한 지역연대의 힘으로 기륭투쟁을 사수할 수 있었다. 즉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전면화 하는데, 각 지역에서 연대의 틀을 최대한 넓혀서 공동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륭전자의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을 서울로 끌어올려서 마침내 전국적인 투쟁으로 조직하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기륭전자의 투쟁을 비롯해서, 비정규직 철폐 투쟁은 정치적으로 돌파하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는 현재 국정감사를 앞두고 그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이지만, 비정규직·파견직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근로 실태를 아주 구체적으로 폭로하고 서울에서 투쟁의 중심을 형성함으로써 하반기 비정규개악안 입법을 투쟁으로 넘어서고 비정규 철폐투쟁을 하반기 민중투쟁 전선의 주요 요구로 만드는데 있어 기륭전자는 투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