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진출 한국기업 노동탄압 실태 조사를 다녀와서

노동사회

동남아 진출 한국기업 노동탄압 실태 조사를 다녀와서

편집국 0 3,929 2013.05.19 01:11

이미 해외의 노동운동으로부터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저지르는 문제들에 대해서 듣기 시작한 것은 꽤나 오래 전의 일이다. 이미 90년대 말부터 동남아와 서남아 일부 국가에서 한국 기업의 전근대적 노무관리 행태와 착취 사례들에 대해서 접했으니 말이다. 노동운동의 국제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선배 활동가들의 전언에 따르면 해외 현장에서 문제들이 발생한 것을 접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로서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문제는 이것이 몇몇 국가나 특정 기업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고, 아시아, 남미와 동유럽 등 한국이 투자한 나라에서는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했을 때에는 엘 살바도르의 자본 측 대표가 와서 한국 기업들이 자기 국가에서 저지르는 문제들이 심각하다는 말을 했을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알고도 풀기 힘든 해외 진출 기업 문제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한국 노동운동의 대응과 문제의식이 사안의 심각성에 상응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몇 년간,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문제들에 대한 한국 노동진영의 대응은 간헐적으로 있었으나, 어떤 일관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체계적이고 조율된 대응, 그리고 지속성이 무엇보다도 아쉬웠던 지난 몇 해였다. 물론 그 어려움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국내에서도 전근대적인 착취와 기본권 탄압에 시달리는 한국의 노동조합으로서는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들에 대한 대응의 취지와 원칙에는 동의할 수 있어도, 그것이 막상 선택의 문제로 다가올 때는 해외의 문제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이었다. 한국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국내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과, 해외로 진출한 한국출신 기업들의 행태에도 대응을 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가 벅찬 것도 사실이다. 제3세계와 제1세계의 모습들이 혼재되어 있는 한국 진보진영이 처한 상황이다.

어디 어려움이 그것뿐이랴. 기본적으로 정치 영역과 경제 활동 영역 사이의 불일치가 야기하는 모순이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한다. 즉, 기업들을 규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들은 일국적 차원의 정치영역에서 다뤄진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을 점거하기도 한다. 국회 안에서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법안을 노동친화적으로 바꿔내고 진보적 법과 제도들을 관철시키는 것,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존재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본의 활동영역은 국제적이다. 

예컨대 자본은 임금과 노동조건이 보다 유리한 지역으로 확장하고 진출하는 것이 상당 부분 자유롭다. 그리고 이들을 규제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국제적 차원의 강제력이 있는 법이나 제도는 없다. 물론 국제노동기구(ILO)에 관련 규범과 OECD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 있고, 이들은 그간 노동운동이 축적한 역량의 반영이기도 하다. 활용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강제성이 없다는 면에서 그 기구들의 결정은 권고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 이들의 한계이다. 바로 이것은 자본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불균형이다. 이 정치와 경제가 조직되는 범위 사이의 불일치 문제는 세계화 문제나 지역 통합 문제에서도 핵심 쟁점 중에 하나이며, 유럽통합 과정에서도 그 지역 노동조합들에게는 이 문제가 관건이 된다. 

이론적 입장에서도 난점이 적지 않다. 오랫동안 국제노동계에서는 일부 1세계 국가들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해서 자국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세계적 차원의 단일 노동기준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자본이 자국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을 의도하고 있는 이기주의적 입장이라는 많은 비판을 받았고, 이에 맞서 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은 노동기준의 도입은 각국의 주권의 일부라는 주장을 폈다. 이 두 편향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선진국과 제3세계의 노동자들 모두들 포괄할 수 있는 운동의 방향이 먼 훗날의 과제만은 아닐 것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공동 사업 착수

이러한 조건 속에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국제국은 작년부터 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노동탄압 대응에 대한 논의와 구상을 해왔다. 올해에 들어서야 사업계획에 실태조사를 반영했고, 그 첫 사업으로 태국에서 열린 남반구노조연대회의(SIGTUR) 총회에 맞춰(6월30일~7월2일) 동남아 지역의 활동가들을 초청하여 각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노동탄압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하였다. 지역을 동남아로 선정한 이유는 그간 대외 교류에 있어서 그 지역의 노조 및 노동운동단체 활동가들과 비교적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었고, 가장 심각한 문제들이 이 지역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사업의 위상을 ‘실태조사’로 정한 이유는 실제로 동남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온갖 종류의 탄압, 착취, 사기 행위에 대해서 정확한 현황 파악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해외에서 한국 운동에 대해 지니고 있는 막연한 기대감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민주노총에서는 국제국뿐만이 아니라 유관 산하 연맹이 참여를 했고, 당에서는 국제국과 단병호 의원실이 결합을 했다. 

양 조직의 관계자들은 준비 단계에서 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노동탄압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사안을 국내에서 쟁점화하여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해당 국가의 노동운동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합의 하에 이원화된 전략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즉, 일부 상징성이 있는 대기업의 노동기본권 탄압에 대해서는 사전에 포착된 사례들이 있었던 바, 이들에 대해서는 관련 활동가를 초청해 집중적인 조사를 벌이고, 대상 국가별로는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포괄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로 하였다. 국내 여론화를 위해서는 상징성이 있는 국내 다국적기업에 대한 대응이 필수적이라고 보았고, 곳곳의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야기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경우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례들을 수집하는 것 역시 급선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선정 과정을 거쳐 결국 동남아 지역 총 5개 국가 6명이 초청 대상이 되었다. 필리핀의 건설연맹, 말레이시아의 전기산업노조, 인도네시아의 노동관련 인권단체, 캄보디아 의류노조, 그리고 물론 태국의 민주노조운동 단체 관계자들이 산업별, 국가별 고려 속에서 선정된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초국적 기업과 관련해서는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아시아노동감시정보센터(AMRC)의 장대업 동지도 초청되었다. 일부 지역 활동가들은 준비 단계에서 관심을 표명한 후 자비를 내고 오기도 했다. 

쏟아지는 질문과 당혹스러움

현지에서의 구체적 일정은 첫날 ‘한국계 다국적기업의 노동탄압과 대응 전략’이라는 포럼에 이어 둘째 날에는 조를 나눠 하루 종일 초청자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모두 같이 향후 계획을 논의하는 전략 회의 이후의 내부 평가회의를 끝으로 현지 일정을 마무리했다. 

포럼에서는 장대업 연구원과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의 주발제와 함께 호주, 미얀마, 태국의 보조 발표 이후 자유토론이 있었다. 장대업 연구원은 아시아 지역에서 노동운동의 활성화와 자본이동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규명한 후 자본 출신국가의 노조, 자본 진출국의 노동 및 시민사회단체와 (생산품) 소비 국가 단체들 사이 3자 주체들의 연대를 강조했다. 또한 각 국가에서 관련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사이의 연대체 구성이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라는 그간 경험에 바탕을 둔 의견을 개진했다. 그리고 자본 이동의 양상 감시 및 진보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들에 대한 연구에 대한 주문도 잊지 않았다. 이창근 부장은 실태 조사 이후 당과 단병호 의원실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국내 여론화, 공론화 및 국내외의 법제도를 활용한 대응, 현지노동자들에 대한 교육·훈련 프로그램 실시, 그리고 국내외 사회운동과의 연대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자유토론에서는 40여명의 참석자들로부터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주문들과 기대, 우려들이 쏟아져 나왔다. 체불임금, 공장폐쇄 해결을 위해 당의 의원이 방문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든가, 민주노총이 와서 사측에 압력을 넣어 달라는 절박한 요청부터, 각국에서 한국기업들이 일으키는 문제에 대한 증언, 자국 내의 성공적인 사례 발표와 같은 제안, 한국 운동의 지역에서 지니는 의미에 중요성에 대한 지지의 발언들이 나왔었다. 산업공동화나 한국 내 실업률 문제와 연관지어 미국 노동운동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했었다. 

둘째 날의 심층 인터뷰에서는 예상했었던 바와 같이 한국 기업들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 생생히 전달되었다. 저임금을 노리고 노동집약산업의 한국 중소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곳이 바로 동남아다. 이렇듯 많은 사업주들은 저임금 체제와 수익구조에 해가 될 수 있는 노조의 불인정과 탄압 공작이 가장 큰 문제였다. 노조가 결성되거나 수익 구조가 와해될 경우, 공장 폐쇄 이후 도피하는 양상 또한 여러 나라에서 반복되어 나타났다. 지금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체불 임금을 요구하고 있었고, 해결되지 않은 공장 폐쇄 사건도 여럿 있었다. 폐쇄 이후 불법 도피한 사장을 찾아달라는 요구에는 한국 측 참가자들이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중 일부는 바로 인접국에 같은 공장을 설립했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 측 관리자들은 왜 유독 다른 나라에 비해서 폭력적이냐는 질문 앞에서 역시 한국 참가자들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마지막 날의 전략회의와 평가회의, 그리고 귀국한 뒤의 후속 사업 회의에서는 주로 이후의 구체적 계획에 대한 의견들이 오고갔다. 기본적으로 실태조사 보고서의 발표와 함께 유관 시민사회단체들과 이 문제를 의제화, 공론화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에는 일부 대기업들과 관련해 포착한 사례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와 함께 국회 내의 활동에서는 유관된 산자부(OECD 가이드라인 관련 업무는 산자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노동부, 외통부에 대한 다각적인 문제제기와 함께 제도개선을 위한 논의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중장기 전략에 대한 고민이 구체적 자본이동의 양태와 산업별, 진출 국가별 특수성에 대한 연구도 중요한 과제이다. 

남아있는 과제들

무엇보다도 각국 운동의 강화를 목표로 하는 관점과 이에 기반한 프로그램의 실천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사업에 대해서 시혜적인 입장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은 지속성도 실효성도 없다는 것이 지난 국제연대 운동의 역사이다. 한국 운동의 성장이 잘 웅변하듯이 외국 진보 진영의 연대는 한 국가의 운동의 성장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언정, 결정적 요인이 될 수는 없다. 한 국가의 사회 변화는 그 국가의 운동이 외부에 의존하지 않은 채 성장하고 강화될 때 나타난다. 그러한 성장이 해외 진보진영과 상호상승 작용을 나타낼 때 운동이 발전하는 법. 태국과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운동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발전·강화에 어떻게 한국 운동이 기여할 수 있을까가 우리의 고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노동부 산하의 재단이 각국 노동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각국) 노무관리 안내서”라고 이름 짓는 천박한 토양이 한국이다. 한국 내 운동의 지속적 성장을 통한 국가 기구들(및 산하 재단들)의 민주화와 함께, 아시아 타국 운동의 강화에 대한 지원 방안들을 실천하여 보다 진보적이고, 민주적이며, 평등한 아시아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 이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고민해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