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결성준비 10개월, 그래도 끝나지 않는 싸움

노동사회

노조 결성준비 10개월, 그래도 끝나지 않는 싸움

편집국 0 3,355 2013.05.19 01:09

순천 현대하이스코 정문 앞. 진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촘촘히 세워졌다. 그냥 바리케이드가 아니다. 비정규직 노조가 시위를 하면서 공장 안으로 진입할까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바닥에 나사못을 박아 고정시킨 바리케이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을 차단하려는 듯 정문 한쪽 공터엔 나무까지 심었다.

2005년 8월20일. 광주·전남 지역 노동자 1천5백명이 그 바리케이드 앞에 섰다. 비정규직노조 탄압과 위장폐업 철회, 고용승계 보장을 위해서다. 순천 현대하이스코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일이 현재도 벌어지고 있는 걸까?

완전한 승리를 위한 인내와 준비

지난 2004년 7월, 현대하이스코 사업장 내 2개 하청업체 45명의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전남동부지구협의회를 찾았다. 그게 노조를 만들기 위해 10개월, 노조결성 후 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기나긴 전쟁의 시작이었다. 더이상 저임금에 고용불안, 똑같이 일하고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인간적 차별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시작한 전쟁이었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용 냉연강판을 생산하는 현대하이스코는 7백명이 넘는 노동자들의 노동현장이다. 이 가운데 250명은 정규직으로, 나머지 470여명은 비정규직으로 15개 하청업체에 속해 있고, 정규직의 경우 금속산업연맹 산하로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다.

상담을 접수한 전남 동부지구협에서 금속관련 사업장인 현대하이스코는 금속노조에서 관할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 아래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로 연락을 취했고,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에서 담당 임원을 선정해 결합한 후 상황을 파악했다. 그 결과 현재의 조직규모나 업체구성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한다면 깨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 결성의지를 가지고 찾아온 이들에게도 현재 상태에서 결성은 무리고, 좀더 조직을 해서 결성해야 한다고 설명을 했고, 업체 구성과 조직 규모를 충분히 늘려서 출범하기로 결정했다. 더불어 이미 결의가 되어 있던 45명은 금속노조 개별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기획 교육과 조직화 점검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그 해 9월부터 12월까지 조합원교육과 간부교육을 통해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와 이후 투쟁에 대한 승리적 신심을 키우는 과정이 있었다. 거기에 미조직업체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참가하면서 업체별 초동주체를 형성할 수 있었고, 매주 1회 이상 준비회의를 가진 결과 2004년 12월 초엔 8개업 체가 참여하는 ‘주비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었다. 

주비위원회 건설은 변화되는 상황에 맞게 폭발적인 조직화를 준비하기 위함이며 이후 지도부를 구성하고 투쟁의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15개업체로 분산되어 있는 현장 대중의 요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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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13일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현대하이스코지회 결정대회 장면 - 출처 : 금속노조 ]

주비위원회, 준비위원회, 다음은?

이렇게 조직된 주비위원회의 첫사업으로, 드러나지 않게 활동해 왔던 조직사업을 전체 교육을 통해서 평가하고 총화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교육에 주비위원들은 1백여명이 넘는 현장 동료들을 참석시켜 서로를 확인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철저한 보안 속에서도 백여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된 분위기였다. 이는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고통받고 살아왔는가를 반증해 주는 결과이기도 했다. 

이후 준비조직을 한 단계 발전시켜 10개업체 핵심주체로 구성된 ‘하이스코 사내하청노동조합 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전 주비위원회가 각 단위 사업장 대표가 모여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공유하고 내용을 합의하는 연석회의 수준이었다면, 준비위원회는 질적으로 한차원 발전된 단계였다. 더구나 한가지 괄목할 만한 점은 자본의 도발이 진행됐을 때 언제든 노동조합의 형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로 대표를 뽑고 실무진을 구성한 것이다.

준비위원회에서는 본격적인 출범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현재의 조직화 정도와 예상 조직화 시점, 자본의 움직임,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관계, 투쟁의 방향, 탄압의 예상 정도, 사회적 정세 등을 고려하여 종합적인 계획을 내와야 하는 시기였다. 우선은 한가지씩 의제를 설정하고 핵심 주체 수련회를 개최하기로 했고, 4차에 걸친 수련회를 통해 중요 핵심과제를 토론하고 방향을 설정하였다. 반면 금속노조와 지역 그리고 정규직 노동조합과 연대를 이루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되었다.

한해를 넘겨 2005년 3월15일, 정규직노동조합과 그동안의 준비상황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정규직노동조합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었고, 정규직노동조합의 상황 역시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울산공장이 완전 도급화됨에 따라 사측의 구조조정을 막고, 울산 조합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당진 냉연공장으로의 전출을 저지해야 하는 등 정규직노동조합도 당면한 현안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거기다 신임 집행부의 안착화와 2005년 임단투 문제 등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전면적으로 받아 안고 사업을 벌여 나가기에는 버거운 상황이었다.

이에 비정규직 동지들은 조금 더 조직을 단속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어찌됐든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연대는 투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2005년 5월1일엔 지역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후 정규직노동조합의 임원과 집행 간부들, 비정규직 준비위원들이 간담회를 갖고 서로를 확인함은 물론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노조 깃발을 세우다. 그러나…

마침내 올 것이 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을 눈치챈 사측의 본격적인 탄압이 진행되었다. 완벽한 보안에도 불구하고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열망을 숨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자체적으로 임금인상 요구투쟁을 전개했던 태광계전 조합원에 대해 계약 해지가 단행되고, 남도전기라는 회사로 업체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 선별적인 고용승계가 진행됐다. 핵심적인 개별 조합원에 대해서 고용승계를 하지 않은 것이다. 

원하청 사측은 “노동조합이 생기면 곧바로 계약 해지되고 태광계전 꼴로 쫓겨난다”거나 “노동조합 하면 감방 간다”며 각 가정으로 협박 전화도 서슴지 않았다. 평상시 한번도 없던 단체회식을 실시하고, 관리자를 동원해서 조합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등 출범 시기가 다가오자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간질과 탄압을 일삼았다.

피해는 곧바로 전해져 왔다.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노동조합 출범에 대한 현장 대중들의 기대가 점점 떨어져 가고, 몸담고 있는 업체가 하청계약이 해지되는 모습은 불길에 기름을 붓는 악재가 될게 뻔했다.

출범 시기를 결정해야 했다. 5월17일 4자연대로 비정규직 준비위원회-정규직노동조합-금속노조 지부-민주노총 지역 대표 임원이 한자리에 모여 연대단위 구성을 합의하고 이후 구체적인 기획을 세우기로 했다. 비정규직 준비위원회에서는 그동안의 준비 경과와 현장의 상황, 출범 시기에 대한 안을 마련하고, 연대회의에서 검토하고 논의·결정하기로 했다. 이 연대회의를 한 달여 동안 지속하면서 각 단위마다 할 수 있는 역할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이런 준비과정을 거쳐 6월 중순 비정규직노동조합을 출범할 것을 가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노동조합과 시기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서로 달랐었다. 정규직노동조합의 상황이 대단히 어려운데다 조합원들의 의식, 집행간부의 준비 정도, 원청자본의 대응 구도에 대한 대책 등 전반적인 준비가 부족하다는 게 정규직 노동조합의 지적이었다. 그러나 정규직노동조합의 준비 부족이 비정규직노동조합의 출범 시기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 출범을 보류하는 것은 비정규직의 현재 상태를 봤을 때, 10개월 여 준비해 온 조직이 와해될 수 있고, 한번 무너진 조직을 다시 복구하는데는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강행하자는 것이 비정규직 동지들의 판단이었다. 조직이 깨진 후 자본의 탄압으로 비정규직노동조합을 영원히 세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2004년 7월부터 2005년 6월까지 일년 가까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6월13일 마침내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지회’를 출범했다. 3조3교대의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결성총회 당일 124명이라는 놀라운 참석으로 철강업계 최초의 비정규직 노동조합 출범을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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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결성 후 부당징계 등 사측의 탄압에 맞서 정문 앞 1인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 출처 : 금속노조 ]

끝나지 않은 투쟁

출범 이후 사측의 탄압은 매몰찼다. 지회 간부들의 부당전출과 직무정지, 출근정지는 물론 한일, 우성, 다원, 금산산업 등 4개 업체의 폐업이 단행되었고, 남도전기, 유성 등에서는 계약해지 및 재택대기발령 통보 등 1백명이 넘는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한 채 교섭엔 응하지도 않고 있는 실정이다. 

8월20일에는 광주·전남지역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대규모 규탄 집회를 개최하는 와중에 사측을 옹호하는 경찰과의 충돌로 50여명의 크고 작은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 이후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는 더욱 상승하고 있고, 이들에 대한 상황과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