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수목… 금금금? IT노동자의 주말실종 사건

노동사회

월화수목… 금금금? IT노동자의 주말실종 사건

편집국 0 4,080 2013.05.19 01:05

 

“사장님, 사무실에 왜 침대가 있는 거죠??? 
“예, 저희 회사는 가족적인 분위기라 쉬고 싶을 때는 침대에서 푹 쉬라고 있는 겁니다.??
 

jini_01.jpg사장님은 이 순진한 IT노동자에게 제대로 대답을 해 준 것일까? 물론 아니다. 침대가 필요한 이유는 아마도 ‘가족적인 분위기’ 때문보다는 밤샘을 밥먹듯이 하는 ‘가내수공업적인 분위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한여름, 영등포구 영등포동6가에 위치한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위원장 정진호, 이하 IT노조)을 찾아갔다. 9월11일 총회를 앞두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앳된 얼굴의 김동우 총회준비위원장에게 IT노동자들의 현실과 투쟁 그리고 IT노조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벤처신화라는 허상에서 깨어나라

1996년 개장 이래 방치돼 있던 코스닥 시장을 포함하여, 벤처창업에 대한 정부의 갖가지 지원·육성책들이 1998년 이후 본격화되었다. 그와 동시에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은 앞다투어 “경이로운 인터넷 기술의 발전과 젊고 깨끗한 이미지가 어우러진 벤처의 성공”이라거나, “벤처기업에서는 전통적인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사라지고 있고, 지식기반경제와 벤처경제는 새로운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제공하고 있다” 따위의 이야기들로 지면을 도배했다.

“조금만 더 일하면 몇 억의 연봉이 보장된다는 환상과 누구나 약간의 아이디어와 기술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벤처신화는 IT노동자들로 하여금 일상화된 파견근무와 2~3년 주기의 잦은 이직 등 파견직과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과 초과착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조장하고 있습니다”

김동우 총회준비위원장이 털어놓는 IT노동자들의 애환이다. IT노동자들에게는 “벤처환경에서 노동과정의 독특한 특성”이라며, 밤샘작업과 시간외노동 그리고 저임금 등이 강요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착취적 “독특한 특성”이 불만을 일으키면서도 수용된 이유는 그 너머에서 노동자들의 성공신화를 자극하는 ‘벤처환상’ 때문이다. 코스닥 상장 또는 스톡옵션, 우리사주 등의 환상을 통해 기본적인 노동기본권마저 포기토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편, IMF 위기극복의 최첨병이었던 IT산업은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의 모범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파견근무가 일반화되어 있고, 게다가 정규직도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노동조건에다가 이직률도 높아 사실상 비정규직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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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조합신고서 반려에 항의하고 있는 IT노조원들 - 출처 : IT노조 ]

신자유주의가 칭찬할 만한 IT산업 노동현장

IT산업노조가 2004년에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보고에 따르면 IT노동자들의 평균 주당노동시간은 약 57.8시간으로 전 산업평균보다 훨씬 긴 것으로 나타났다.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는 비중이 43.4%에 달했고 80시간 이상의 초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비중도 7.6%나 됐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연월차 휴가를 사용하는 노동자는 20~30% 수준이었으며 시간외근무수당을 받는 경우는 8%, 퇴직금을 챙기는 노동자는 40%에 불과하였다. 이 실태조사에 응답한 노동자의 70% 이상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임금·근로조건의 개선을 지적할 정도로 정보통신산업 노동자들은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노동기본권은 거의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렇게 열악한 근로조건 뒤에는 외국회사와 결합된 재벌구조 중심의 IT산업구조가 있다. 그리고 재벌 IT기업의 독과점에 기초한 IT산업 특유의 하도급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에 매인 수많은 IT노동자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산업은 몰라도 IT만큼은 다르다며 IT강국을 자부하는 정부 및 업계의 자랑을 익히 들어왔다. 그러나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 아니라 외국회사들의 배를 불려주는 시장일 뿐이다.” 

한탄 비슷한 이 이야기를 내뱉은 주인공은 IT 벤처신화의 불멸의 주인공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이다.   

21세기 최첨단 산업의 구호는 노동3권 쟁취?

IT노조는 부위원장의 신분이 프리랜서라는 이유 때문에 노조설립신고가 반려되는 등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2004년 1월19일 공식 출범했다. 비록 근로계약서 상에서는 정규직일지라도 사실상 비정규직인,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영업, 사무/관리, 시스템 관리 등 IT업계의 모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IT노조는 출범 당시부터 노동계 안팎에서 적지 않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에도 일부 벤처기업에서 기업별노조가 설립 된 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산별노조가 설립된 것은 처음인 데다가 기존의 노조활동에서 볼 수 없었던 ‘온라인 중심의 활동’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실제 IT노조에서는 회의결과 및 투쟁상황 공유와 조합원 가입, 노동상담 등 노동조합의 일상활동이 홈페이지(http://it.nodong.net)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IT노조가 가야할 길은 멀다. 실상 산별노조라는 이름에는 그 규모와 활동이 턱없이 모자라기도 하다. 파편화되고 분산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IT노동자들의 현실적인 조건으로 인하여 사이트의 회원수가 2,103명에 조합원 숫자 54명(서울 41명, 진주지부 13명)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과부 사정 잘 아는 홀애비들이 하는 것 같은 노동상담을 비롯하여 구체적인 활동들을 통해 조직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IT노조는 △ 노동 3권 쟁취, △ IT노동자의 정치·경제·사회적 지위 향상, △ 산업재해 추방, △ 하도급비리 등 IT부조리 척결, △ 성차별 철폐 등을 중요 정책과 요구로 내걸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단위사업장의 투쟁을 지원하고 IT산업의 하도급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중심으로 조직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가장 첫 번째 요구가 “노동 3권 쟁취”이다. 21세기를 주도하는 최첨단 산업이라는 IT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1970년대 온 몸을 불사르며 전태일 열사가 절박하게 외쳤던 주장이 여전히 절실한 것으로 놓여져 있는 것이다. 정말 쓴웃음 나오게 하는  아이러니다. 이게 인터넷 초강국 벤처신화의 수준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