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만들 전태일 거리와 다리

노동사회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만들 전태일 거리와 다리

편집국 0 3,641 2013.05.19 01:01

 


dgyang_01.jpg1970년 11월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불꽃 하나가 타올라 캄캄한 세상에 빛을 던졌다. 우리는 한때 그를 그저 “어느 청년노동자”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죽은 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쩔쩔매던 어떤 시절, 그러나 가난하고 핍박받던 노동자들에게 그의 이름은 진정한 빛이었고 또한 출구였다. 

시대의 불꽃, 전태일

저임금, 장시간노동, 병영적 통제로 요약되는 1960~70년대 산업화의 과정은 노동자들에게 무척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 시절 노동자는 그저 기계에 불과했다.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을 구가했지만 노동자는 굶주렸고 15~6세의 어린 ‘시다’들은 각혈, 위장병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타이밍’을 먹어 가며 밤을 새우곤 했다. 전태일 열사는 바로 그 어둡던 시대에 스스로 불꽃이 됨으로써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새벽을 열었다.

그가 스물세 살 젊음을 마감했던 장소가 청계천이다. 1964년 청계천이 복개되고 그 위로 삼일고가도로가 놓였으며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청계천변 비좁은 다락방 같은 공장에서 밤을 새워 노동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같은 현실을 돌아보지 않았다. 노동자의 삶은 복개된 청계천과 같았다. 청계천의 운명과 노동자의 운명은 그 모습이 닮아 있었고 서로에게 결부되어 있었다. 사회의 표면 위로 흐르지 않는 물결 혹은 삶.

그 청계천이 복원된다. 우리는 마땅히 청계천 맑은 물이 흐르게 되는 날, 노동의 새로운 역사를 일구어냈던 시원(始原)으로서 노동자의 물결이 함께 흘러야 한다고 믿는다. 도심 재개발이 역사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탈역사적 공간재편성의 과정이 아니라 지층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보듬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야 한다. 그것은 전태일, 그리고 그 이름으로 상징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명의 물결이 청계천과 함께 되살아나 미래를 향해 흐르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청계천 복원을 역사의 복원으로

처음 ‘청계천 전태일 거리와 다리 조성’이 제안되었을 때는 아무도 이 계획이 순탄하게 추진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추진 과정에서 부딪혔던 수많은 어려움들을 구체적으로 예상했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 전태일 거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의 일이다. 이미 1996년 9월19일 청계천 3~8가를 ‘전태일 거리’로 이름붙이는 명명식을 동대문 거평프레야 앞에서 진행했다. 그 뒤 1999년에는 거리 명칭을 공식적으로 ‘전태일 거리’로 지정하자는 운동을 벌였고 2000년 11월에는 전태일 열사 분신 장소에 동판으로 된 표석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논의와 노력은 그 이후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명박 시장이 당선되고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면서 근현대사의 흔적, 특히 전태일 열사의 삶을 청계천 복원 사업을 통해 함께 복원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논의가 활발해졌다. 그러한 논의의 결과 2003년 하반기 들어 ‘청계천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이하 기념관건추위)’가 공식 출범하게 됐다.

점점 많은 단위와 많은 사람들이 기념관건추위로 결합을 하면서 마침내 2004년 12월3일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청계천 6~7가를 ‘전태일거리’로 지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서울시의 태도가 다소 흔들리기도 했고 때문에 전태일 거리·다리 추진은 약간의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결국 전태일 거리·다리를 조성할 것을 수용했다. 이후 구체적인 디자인을 임옥상 화백에게 의뢰하면서 점차 전태일 거리·다리 조성은 활기를 띄어갔다. 그리하여 임옥상 화백은 전태일 거리·다리 조성안을 만들어 7월15일 ‘(가칭)청계천전태일기념관 기본건립계획안 발표회 및 전태일 거리·다리 조성안(전태일이어달리기) 관련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각계각층 원로들과 국회의원,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도 참석하여 한층 더 전망을 밝게 했다.

세월 속에 잊혀진 열사의 초심을 되찾길

dgyang_02.jpg특히 기념관건추위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손을 잡고 ‘전태일 거리, 시민의 힘으로 만들자!’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전태일 거리·다리 조성은 새삼 활기를 띄었다. 2005년 8월22일 현재 4,029만원이 모였다. 캠페인을 시작한지 정확히 한 달만의 일이다. 또한 온라인을 통해서 참여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참여를 준비하고 있는 단위들까지도 감안한다면 전태일 거리·다리를 만들기 위해 동참하는 노동자, 시민 등의 참여는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조직노동자들의 참여도는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전태일 정신, 전태일의 초심이 수십 년간의 흐름 속에서 다소 잊혀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관성과 타성이야말로 전태일 열사가 가장 경계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청계천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에게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당신은 우이동 집까지 밤을 새워 걸어갔다는 대목을 읽으며 1970, 80년대 얼마나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가슴을 적셨던가. 바로 그 정신이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까지 우리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원류였다.

물론 지금도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전태일 열사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를 천금같이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은 이러한 많은 전태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전태일로부터 비롯된 노동자의 단결된 힘은 한국 현대사의 표면 위로 끊이지 않고 분출하곤 했다. 1970년대의 민주노조운동,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거쳐 1987년 거대한 파업의 대열이 전국을 휩쓸었고 1996~97년 노동악법 날치기 반대 총파업을 통해 노동운동은 시민권을 획득했다. 

마치 이런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처럼 전태일 거리·다리도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딛고 나가서 마침내 1천5백만 노동자의 거리, 민중들의 자랑스러운 거리로 되살아날 것이라고 믿는다.

노동자들의 역사가 소통하는 거리를 위하여

한국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거리에서는 그 어디에도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한국사회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서 싸우고 많은 희생이 있었던 노동운동의 흔적은 서울뿐만 아니라 그 어느 도시에서도 발견하기 힘들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막대한 자본이 들이닥치는 도시는 항시적인 재개발 과정중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도시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늘 새롭게 변화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장소로 계속해서 다시 태어난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보존과 복원의 가치가 강조되어야 할 공간이 있으며, 새롭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가치를 끊임없이 도시 공간 안에 새겨 넣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처럼 무분별하고도 천민적인 투기욕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도심 재개발 사업이 횡행하는 곳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도시재개발 과정이란 결국 ‘투기’였고 그 과정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은 끊임없이 변두리로 내밀렸다. 이는 가난한 이들의 추억과 기억도 함께 뿌리뽑히는 과정이기도 했으며, 그 가운데서 근현대 노동자·민중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망각되어 갔다.

우리는 한국에도 바스티유 광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발원했던 바스티유 광장은 알다시피 유명한 프랑스 노동자·민중의 광장이다. 지금도 수많은 집회와 행사가 그곳에서 열린다. 바스티유 광장은 프랑스 진보를 상징하며 그 역동적 힘이 발원하고 머물고 또한 확장되는 공간이다. 새로운 세대가 그 광장을 통해서 지난 시대의 가치를 배우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토론하고 행동하고 발언한다.

전태일 열사는 단순히 노동운동의 열사인 것만이 아니다. 개발독재가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은 채 지배하던 암흑 같은 시대, 시대의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던 하나의 불꽃이었다. 전태일 거리는 단순히 전태일 개인을 추모하는 장소가 아니라, 늘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되살아나는 장소여야 한다. 전태일 열사를 화석화시키는 장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환하는 장소로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리와 다리를 건립할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힘과 뜻을 모아 만들어져야 한다.

마치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콘크리트를 걷어내어 청계천을 다시 흐르게 만드는 것처럼, 역사의 그림자 아래에서 삶이 뿌리 뽑혔던 우리 노동자들의 삶에도 이제는 따뜻한 햇살을 드리워 다시금 물결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청계천 전태일 거리·다리가 만들어지는 데에 우리 모두의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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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