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선배님들, 이거 우리들만의 몫은 아니죠?

노동사회

노조 선배님들, 이거 우리들만의 몫은 아니죠?

편집국 0 3,040 2013.05.17 10:34

필자의 사정으로 익명처리 하였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구합니다.

처음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내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했다. 하고 싶었던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도 조금은 조심스러워지는 마음이 서로 엉켜 뒤죽박죽 되어버렸다.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하면서, 머리를 몇 번이고 쥐어뜯으면서 내린 결론은, 그냥 평소의 나처럼 솔직하게 내 생각과 느낀 바를 써 내려가는 게 낫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 글을 접하는 선배들에게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시퍼런 후배’가 근거도 없이 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단순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함께 한 젊은 활동가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여기에서 풀어보려 한다.  

선배들, ‘경험’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중 첫 번째는 선배들의 경험 중시와 강요이다. 선배들의 대부분은 격동의 시대라고 하는 1970~80년대를 지나온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그 속에서 노동운동을 해온 선배들이 어떠한 사람들이라는 것쯤은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정도로 빠삭하게 알 것이다. 그 정도로 자신의 뜨거운 열정과 치열한 고민, 목숨을 건 행동이 바탕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경험’들이 그 길에 방금 들어선 후배들에게 부담과 강요로 나타날 때가 있다. 

2004년 내가 속한 조직의 큰 행사로 모든 활동가들이 동분서주하던 때였다. 조합원들의 행사 참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 선배가 무슨 할당량 채우듯이 언제까지 몇 명 조직하고, 못하면 절대 안 된다고 몇 번이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가입한지도 얼마 되지 않아 조합 활동에 큰 관심도 없는 조합원들에게 그것은 무리수다 못해 가혹한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그 선배는 막무가내로, “왜 안되냐, 나는 그것보다 더한 것도 했다”며 일축해버렸다. 

후배들은 아직 노동조합에 대해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경험이 적다보니 선배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수백 수천 가지의 고민을 한다. 그것 때문에 몇 날 며칠을 밤새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 해도 선배들의 일방적인 요구는 실제로 현장에서 발로 움직여야 하는 후배들에게는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무작정 하라는 것은 결국, 발전이 아니라 관계의 악화만 의미하게 된다. 이때도 난 그 선배에게 따발총을 쏟아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노조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적은 임금’도 ‘고된 실무’도 아니다. 조합원들을 몸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에게는 우리의 말 하나하나가 스펀지가 빨아들이는 물처럼 바로 흡수되어 우리 조직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안을 가지고 만날 때 그것에 대해 빠삭하게 알아야함은 물론, 예상치 못한 질문들에 대해서도 진땀빼지 않고 대답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 선배들처럼 다년간의 경험을 가진 경우에는 원칙과 나름의 ‘통밥’으로 해결되겠지만 우리와 같은 후배들은 그렇지 못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배들의 내리 먹이기식 지시는 두통을 더욱 촉진시킨다. 어쩌면 예전에는 이런 것들이 관행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들의 활동 의지를 꺾는 것 밖에 안 된다. 

이러한 선배들의 자기경험 강요는 그것을 너무 중시하는데서 나오는 것 같다. 요즘의 젊은 활동가들은 노동운동의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운동의 가장 큰 핵심은 대중성이다. 대중이 없는 운동은 말도 안되고 노조라고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저만큼을 보고 듣는데 노조는 예전의 경험만으로 살아간다면 앞서 끌고 갈 수가 없지 않은가.

2003년 여의도광장에서 있었던 노동자대회에서 새로운 노동가요그룹이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TV 연예인 못지 않은 뻔쩍뻔쩍 휘황찬란한 의상을 입고 ‘동지가’를 랩과 힙합으로 부르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 공연은 대회 후 술자리에서 단연 화제가 되었다. 나는 시대가 바뀌어가면서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것을 알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 공연이 좋았다고 했지만, 많은 수의 선배들은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심지어는 인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너는 힘들었던 그 시기를 겪어보지 않아서 그래. 그 시기를 겪었다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어.”라고 못 박았다. 이때 내가 선배들에게 느낀 ‘벽’은 너무나도 두터운 것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선배들의 경험이 소중하고 값진 것은 알지만 그것만이 모든 것의 잣대가 되지는 않는다. 선배들의 경험은 젊은 활동가들에게는 자신과 운동을 더욱 발전, 도약시킬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날 선배들과의 대화에서 선배들과 우리 세대의 경험을 가르는 간극의 폭이 너무나 넓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수다맨도 껴들 틈 없는 노조간부 ‘일중독’

두 번째로 ‘일 중독’이다. 사실 이건 그만큼 해야 할 일과 활동가 수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선배들의 강한 ‘일 중심적 사고’는 우리들에게는 부담감을 넘어 심하게는 운동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하는 부분이 되기도 한다. 젊은 활동가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들 중 가장 많은 부분도 이것과 관계된 것이었다. 선배들은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노동조합 활동가와 할 일이 없다는 말은 상극이라도 되는 것처럼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추진한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일들을 계속해서 해내기 위해서는 또 그만큼의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로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데 있다. 

다들 알겠지만 출근시간은 있어도 퇴근시간이 없는 것이 노조다. 꼭 노조뿐만이 아니겠지만 조합원들의 퇴근 후에야 모임이나 회의, 행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조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런 줄 몰랐냐”고 한다면 할말이야 없겠지만 적은 임금에 자기시간 하나 갖지 못하고 전념하기엔 우리들은 선배들과의 사고 차이가 너무 크다. 다시 말해, 선배들은 그 자리만큼의 경험으로 숲을 그려보지만 우리들은 아직 나무 몇 그루밖에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선배들이 계획하고 추진하려는 일이 우리에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다 보니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그리고 이런 것들은 사무실 분위기도 상당히 경직되게 만들기도 한다. “어제 삼순이가 삼식이랑 어쨌더라”, “어디 스파게티가 맛있고 어느 옷 집이 아주 싸더라” 뭐 이런 일상적인 수다도 떨면서 신문 한 면을 장식하는 사회 주요 이슈들도 같이 공유하고 싶지만, 말 그대로 경직된 분위기에서는 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마치 ‘일 안하고 노는 것’처럼 인식되어버리는 것 같은데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임금은 적고 일은 많은데 이런 ‘수다의 여유’도 없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누가 말하지 말라했냐”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선배들 주위에는 선배들은 모르지만 우리들은 선명하게 보이는 수만 개의 ‘레이저 광선’들이 삐죽삐죽 나와 있다. 우스개 소리지만 난 오래 살고 싶다.

“회의의 수렁에 발 내딛는 기분”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비민주성’이다. 이것은 회의할 때 주되게 나타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들은 어떠한 것 한 가지를 말하려 해도 머릿속에서는 수백, 수천 가지의 생각들이 요동친다.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제시한 의견들은 바로 묵살되고 결국은 선배들의 안이나 의견으로 귀결된다. 우리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10번 중 7~8번은 묻지도 않고, 진지하게 토론 또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그냥 그건 이러 이러해서 안 된다”고만 할 뿐이다. 

처음 몇 번은 우리 자신의 무지와 경험 부족을 탓하며 채찍질을 하지만 그게 반복의 반복을 거듭하게 되면 이기적인 인간 본성이 어김없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도 인간인지라 말할 맛도 안 생기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제는 활동을 접고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거나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려는 활동가들을 보면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어느 운동이든 지향점은 인간이고, 더디 가도 사람 생각해야한다”는 진리가 있다지만 이것은 그냥 ‘명언’에 그칠 뿐이다. 결국 이 곳에서 오래도록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생존전략’을 터득해야 하는 현실과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가져온 운동의 정체성과의 괴리감은 여전히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우리 세대가 풀어가야 할 숙제이겠지만.      

정리를 하면, 선배들의 지나친 경험 중시는 후배들에게 강요와 일중독, 비민주성으로 나타나고 있고, 동시에 시대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노동운동 풍토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생산’이라는 운동의 중요한 기본 과제가 수행되는 데도 나쁜 영향을 주어,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거, 혼자만의 몫이 아니죠?!

‘선배’와 ‘후배’, 단어에서도 나타나듯이 어쩔 수 없는 차이와 간격이 있을 수밖에 없는 집단들이다. 이 차이와 간격을 인식의 단계를 넘어선 인정과 이해를 통해 극복하지 못하고 자의적인 해석과 판단으로 상대를 옭아 매려한다면, 큰 오류와 벽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번데기를 탈피해야 화려한 나비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선배들도 우리와 같은 ‘고난의 시절’을 겪었을 터, 후배들의 이러한 고충과 고민, 갈등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혼자만의 몫이라고 덮어두기에는 후배들의 그릇이 아직은 너무 작아 철철 넘치니까.

서로 힘 받고 하하하 즐겁게, 건강하게 웃으며 일하는 그런 변화된 분위기들이 새록새록 피어나길 바래보며, 그런 속에서 나를 비롯한 우리 젊은 활동가들도 더 노력하지 않겠냐는 느낌표(!)를 찍으며, 이 글을 마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