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공화국의 성장 없는 성장주의

노동사회

재벌공화국의 성장 없는 성장주의

admin 0 3,330 2013.05.12 08:00

IMF 외환위기 이후 잠시 회복되는 듯한 경제가 장기침체로 빠져들고 있다. 수년동안 전문가와 정부 경제라인들이 바닥을 쳤다는 주문을 염불하듯이 하였지만 수출호조에도 불구, 내수는 계속 줄어들고 고용지수는 악화되고 있다. 재벌총수들과 경제정책 라인들은 노무현 길들이기 전략에 올인하여, 마침내 5월18일 수십조원의 투자계획선언을 선포함으로써 '성장주의'라는 낡은 기치를 다시금 국가의 최고 가치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제 한국은 성장주의에 기초한 재벌주체 경제체제가 확고부동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내수침체의 3대 원인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은 내수침체로 인한 경기침체 국면에 처해 있다. 그 내수부진의 원인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신용대란으로 인한 신용불량자의 증가 현상이다. 신용불량자가 4백만에 이르게 되었으나 아직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4백만으로 추정되는 예비 신용불량자 문제가 곧 현실화될 조짐이 커지고 있다. 이들의 정상적인 경제생활로의 복귀가 시급한 실정이나 신용대란의 조성자인 정부 경제정책 라인과 금융기관들은 신용불량자들의 '도덕적 해이론'만 내세우고 있어 문제해결을 가로막고 있다. 이 신용불량자들은 현재 상환불가능상태에 빠져 빈곤층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어 소비부진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둘째, 비정규직의 확대 현상이다.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 비정규직 노동자층은 경제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에 불과한 이들의 임금수준이 이들을 신빈곤층으로 내몰고 있다.

셋째, 부동산 투기 과열이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이 6월17일 발표한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자산 선택 결정 요인」 보고서를 보면, 1993∼2001년 중 가계의 거주용 자산과 금융자산 구성을 분석한 결과, 금융자산 비중은 1993년 24%에서 2001년 17%로 떨어진 반면, 거주용 자산 비중은 76%에서 83%로 높아졌다. 외국의 금융자산 비중은 미국 40%, 독일 28% 등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크다. 외국 통계는 비거주용 주택 자산도 포함했기 때문에, 거주용만 떼서 우리와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심각한 부동산 투기의 결과라고 판단된다. 가계대출의 큰 부분을 주택구입 자금이 차지하고 있고, 이는 다시 소득 중 주택구입 금융비용 비율이 높아 가계소비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다.

sglee_01.gif재벌체제의 위기

한국의 재벌체계는 IMF 이후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재벌체계 고유의 폭탄돌리기식 부실전가 체제 때문에 여전히 위험한 선단식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재벌총수 경영권에 대한 침탈이 행해지고 있다. 큰 위기감을 느낀 재벌과 이에 편승한 노무현 정권은 필사적으로 재벌체제 보호작전 수행 중이다.

재벌기업의 부채비율이 상승하고 있다. 자회사(50% 이상의 지분보유사, 30% 이상 지분을 보유하면서 최대 주주인 기업)의 실적까지 모두 반영한 연결재무제표 분석에 의하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연결 전보다 각각 35.28%, 23.36% 증가했다. 그러나 순이익은 연결 전 20조9백58억원에서 연결 후 19조4천9백68억원으로 2.98% 줄었다. 게다가 부채비율은 연결 전 98.35%에서 연결 후 166.65%로 급증하였다. 이는 IMF 이후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노력이 별반 실효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충격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재벌기업들은 계열사들의 지원을 위해 이미 19개 예외규정 때문에 형해화된 출자총액제한제도마저 완화 내지 폐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재벌체제는 해외투기펀드에 의해서도 위협받고 있다. 소버린이라는 해외투기펀드에 의한 SK(주) 경영권 장악 기도에 이어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다량 보유한 삼성물산에 대한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즉 재벌들의 취약하고 폐단적인 소유지배구조로 인한 국내기업의 경영권이 해외투기펀드의 사냥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계열사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8.14%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차익이나 경영권을 노린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벌들은 출자총액제한의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 기업들의 배당이 급속히 증가하는데 반해 투자가 위축되어 성장잠재율은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배당의 증가는 한국의 부실기업을 인수한 외국투자가들에 의한 약탈적인 사례도 있지만 국내재벌이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경우도 많다. 게다가 재벌들의 취약한 지배구조 때문에 외국투자가들의 인수합병(M&A)시도를 사전예방하기 위한 달래기식 고율배당이 일상화되고 있다.

6월14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680개 상장사들로부터 4월말까지 제출 받은 직전 사업 연도 사업보고서상의 현금 배당액은 7조6767억원으로 전년 같은 시기 680개사의 6조4407억원에 비해 19.2%가 증가했다. 반면 전체 순이익은 28조4999억원에서 22조7955억원으로 20.0% 줄었다. 특히 배당금을 순이익으로 나눠 계산하는 배당성향(결손사 배당은 제외)은 올해 4월 기준 21.28%로 계산됐다. 이는 작년 4월 기준의 배당성향 17.48%에 비해 3.8%포인트나 상승한 것이다. 배당성향이 높다는 것은 내부 유보를 통해 확보하는 투자 재원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의미여서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sglee_02.gif재벌들의 위기 탈출 전략

재벌들은 재무구조, 외국자본의 경영권 침탈, 고율의 배당 등으로 인한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노무현정권에 대해 규제로 인한 투자부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감행해왔다. 보수언론과의 합동작전으로 결국은 승리하여 재벌에 대한 대부분의 규제를 철폐시켰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김대중 정권 말기에 재벌의 폐해를 막는데 가장 기본적인 규제였던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한 19개 예외조항이 설치되고 적용대상 자산규모를 대폭 상향조정함으로써 사실상 재벌에 대한 규제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은 위기탈출에 충분한 수단을 가지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금융기관의 소유지분에 대한 의결권제한을 연장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안을 관철시켜 산업자본(사실상 재벌)들도 사모펀드에 출자하여 금융기관을 지배하려는 기도를 하고 있다. 또한 기업도시 건설법안을 내세워 토지수용권과 분양권을 재벌에게 허용해 투기를 통한 재벌그룹의 성장을 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권에 대한 경제특구식의 제한을 통해 노동운동의 숨통을 끊고 노동착취의 강화를 통해 이윤율을 상승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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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안

이번 개정안은 사모투자전문회사(private equity fund: 이하 PEF)의 도입방안을 그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PEF는 소수(투자권유는 50인 이내, 출자는 30인 이내)의 투자자로부터 조달된 자금을 지배를 목적으로 다른 회사에 투자한 후 회사의 경영을 개선시켜 다시 되파는 방식의 영업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합자회사(limited partnership)를 말한다. PEF와 관련하여 완화되는 규제는 질적으로 볼 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통상 공모펀드에 적용되기 위해 제정된 여러 투자자 보호장치 중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큰 의미가 없는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정책목표 때문에 도입된 규제를 PEF의 활성화 촉진이라는 차원에서 적용배제 또는 완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진 재경부 법개정안의 문제점으로 사모펀드(PEF)가 공모펀드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비공개로 운영되고 계약관계가 자유로운 파트너쉽을 가지는 합자회사가 가지는 문제점, PEF의 지급보증허용과 특수목적회사(SPC)의 차입허용 방침이 가지는 문제점, 은행에 관한 소유규제를 완화하는 것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또한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경제력 집중 억제 등 별도의 정책목표를 추구하는 기존의 규제는 존속시켜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사모펀드

'사모'라는 말은 '공모'와 반대 개념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특정인을 대상으로 주식이나 채권 등을 매각하는 방식을 말한다. 사모펀드는 일반 공모펀드가 갖는 투자한도 등이 자유로워 재벌들의 계열사 지원, 내부자금 이동수단으로, 혹은 불법적인 자금이동 등에 악용될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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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공화국으로 가야 하나

한국경제를 40년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켰던 성장주의는 IMF위기를 맞아 잠시 물러간 듯 하였다. 그러나 성장주의의 추진력이었던 경제정책 관료들은 아무런 손상도 받지 않은 채 신자유주의적 태도로 위장하고 있다. 그들은 잠시의 경제적 어려움을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않은 채 국민들의 희생을 통해 피해가려 한다.

이러한 경제정책 관료의 건재는 재벌들로 하여금 다시 옛날의 성장주의 이데올로기를 꺼내게 하고 있다. 성장주의의 승리에 따른 재벌공화국의 완성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중소기업이다. 완전히 통제에서 벗어난 재벌들은 이제 새로운 사업에의 진출보다는 중소기업 영역에 대한 잠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갈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성장주의는 결코 성장을 가져올 수 없는 재벌옹호를 위한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경기침체 장기화의 근본 원인을 외면한 채 이데올로기로만 가득 찬 성장주의는 성장 없는 성장주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