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현장에 발 딛은 어느 해고자가

노동사회

다시 현장에 발 딛은 어느 해고자가

편집국 0 3,121 2013.05.13 11:22

누가 세월이 화살같이 지나간다고 하였던가! 정말이지 지내놓고 보니 3년 8개월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훌쩍 지나버렸다. 8년 만에 복직해서 온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즐거워했던 때가 엊그제 같기만 했는데, 2001년 1년 만에 또다시 정리해고의 아픔을 겪게 된 게 벌써 4년 가까이 지났다. 그 1년이 어쩌면 나의 제대로 된 현장생활이고, 첫 직장생활 같기만 하다. 짧은 1년이었지만, 정도 많이 들었고 진심으로 동료들을 대했다. 마치 군대에 갓 입대해서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하늘같은 고참들 앞에 선 심정으로 말이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서로 간에 너무도 정이 넘치고 화목하고 즐겁기만 한 현장생활이었다. 그리고 2000년 말, 구조조정의 어려운 시기에 동료들은 고맙게도 나를 믿어주어 대의원의 중임을 맡겨주었다. 그러나 나는 기대에 부응하여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대의원을 맡은 지 3개월만에 그만 1,724명의 동료들 틈에 끼어 함께 해고되고 말았다. 그리고 3년 8개월만에 두 번째 복직을 했다.

일만 죽어라 할 생각이었는데…

제일 먼저 조립2부, 품질관리2부 예전의 직장고참들에게 ‘복직신고’를 하였다. 서로간의 눈빛에서 눈물이 핑 도는, 예전과 다름없는 정감이 느껴져 가슴이 벅찼다. 나에게는 언제나 마음의 고향 같은 직장이다. 그러나 그 느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고민에 직면해야했다. 복직해서 장갑을 껴보기도 전, 새로 당선된 위원장으로부터 ‘정책실장’ 제의를 받게 된 것이다. 참으로 곤혹스럽고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내 인생은 꼬이기만 하는 것일까?’
마음 편하게 현장에 몸을 푹 담그고, 일만 죽어라 할 생각이었는데…. 복직한 주변의 모든 동료들이 묵묵히 현장에서 땀 흘리는데, 나만 유독 튀어서 상집간부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만 하였다. 또한 현장과 해고생활만 반복해왔던 나로서는 ‘정책실’ 자체가 낯설고 생뚱맞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아내도 사회생활을 하는지라 해고기간 동안 이만저만 마음고생, 몸고생이 심했는데, 이제 또다시 그 짐을 나눠지자고 하기도 면목이 서질 않았다.

27살의 꿈 많던 시절, 대우자동차에 첫발을 디딘 지 벌써 15년이 다 되어간다. 예전의 나는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고 현장에 투신한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해했던 것을 넘어서 현장의 동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은근히 했다. 겉으로야 그렇지 않았지만, 운동하는 나의 삶만큼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표현은 못 했지만, 내 가슴 밑바닥 한구석에는 주변으로부터 무엇인가 받고자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난 15년 간 내가 동료들을 위해 한 것은 거의 없다. 무엇을 바쳐본 적도 크게 기여한 것도 없는 일상의 평범한 노동자였을 뿐이다. 특히 8년 간의 해고기간을 거쳐 복직하면서 뒤늦게 철이든 나로서는 1998년 말 복직당시의 결심을 잊을 수가 없다. ‘복직시켜준 현장 동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쳐 보답하자.’ 이것이 그때의 다짐이었다. 나는 그때의 다짐을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동료들의 아픔을 안타깝게 지켜보기만 했을 뿐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2002년 정리해고 복직투쟁의 과정에서도 많은 동료들이 마음의 곡절을 겪게 한,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던 내 자신을 탓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런 결심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나는 ‘정책실’ 제의를 받으면서까지, 내 일신을 중심으로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 편히 일할 생각,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아내에 대한 미안함 등 내 자신만의 편의를 중심에 놓고 갈등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갈등과 상념 속에서 위원장 혹은 집행부에 2년 간 ‘고용살이’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닌 만큼, 현실의 운동적 대의를 중심으로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쳐 해야한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것이 비록 또 다른 시행착오일지라도….

‘무엇을 하였는가? 무엇을 바라는가?’고 묻는 내 자신의 양심에 답하기 위해 이렇게 나는 복직과 동시에 정책실장을 맡게 되었다. 복잡하게 꼬여있고 과제가 산적해있는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운동의 진흙탕 속으로,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뛰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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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아침 출근인사를 하고 있는 대우자동차노조 임원 및 간부들   - 출처:대우자동차노조 ]

삼보일배의 마음으로 여는 아침 출근길

삼 보일배는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한다’는 고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불가의 수행법이다.  부안 핵폐기장 반대를 위해 종교인들이 한 고행 덕택에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용어이다. 특히나 무더웠던 작년 여름, 40도가 넘는 아스팔트 폭염을 뚫고 이들이 한 고행은 인간의 생명을 헤칠 수 있는 핵폐기장, 나아가 핵발전소를 억제해야한다는 종교적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숭고한 책임감과 양심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면, 감히 ‘삼보일배’는 시늉도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삼보일배는 수백킬로미터를 지나오면서 차츰 하나둘씩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마침내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며, 결국 부안 핵폐기장 건설계획은 백지화되었다.

비교할 것은 못 되지만, 우리가 삼보일배를 하는 마음으로 출근인사를 시작한지 두 달이 되어간다. 지금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노동조합 일꾼들은 아침 7시부터 조합원들에게 출근인사를 하고 있다. 조합원들 속에서는 새로 되었으니 의례 며칠하고 말겠지, 혹은 대의원 선거가 있으니까, 혹은 조합원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등등 설왕설래도 있는 걸로 안다. 물론 우리의 출근인사가 삼보일배에 비견될 만큼 숭고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내세울 만큼 거창한 고행이 아니다.

사 실 다른 노동조합 일꾼들에 비해서도 특별난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 산하에 건설일용노조가 있는데, 그곳의 상근일꾼들은 새벽 5시30분에 출근한다. 왜냐하면 소속 조합원들이 일용직 건설노동자(일명 막일꾼, 노가다)이기 때문이다. 이분들이 작업현장에 배치될 때가 6시이기 때문에 홍보물이라도 한번 돌리고, 얼굴이라도 보려면 5시30분에는 출근해야 한다. 그러고도 상근비는 월10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땀흘리는 동지들에 비하면, 아침출근인사쯤이야 그야말로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다지 칭찬받을 만한 선행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그렇긴 해도 매일 아침 7시까지 출근인사를 한다는 것은 제법 굳은 결의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두 가지 의미에서 출근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제안했다. 하나는 간부로서 자기반성이다. 소위 ‘위장취업 학생출신’으로서 나는 주변의 현장동료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과 배려를 받아왔다. 만삭의 몸으로 복직투쟁을 함께 해준 아내와 함께 아들을 순산한 97년 어느 가을날, ‘2년 계열사 근무 후 복직’이라는 결실을 안겨준 조합원을 향해 ‘온몸으로 헌신하자’는 다짐을 마음 속 깊이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는 기여한 것이 거의 없다. 정리해고 당시 대의원이라는 간부직을 맡고 있었던 내가 또다시 정책실장의 중임을 맡아 시작하기 위해서는 자기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출근인사는 나의 지난날 게으름에 대한 엄중한 반성일 뿐이다.

둘째는 자세를 다잡기 위해서이다. 부지런한 새가 먹이도 많이 문다고, 노조 간부 자리라는 것이 현장조합원들보다 힘든 자리이니 만큼 그 각오와 결심을 늘 새로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 일상을 보내고, 조합원들에게는 ‘귀족’이나 ‘특권층’처럼 취급받는 불신의 상황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을 핑계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출근인사는 노동조합 일꾼들이 스스로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집행간부로서 절제된 생활자세와 조합원을 받드는 마음을 늘 다짐해본다. 매일 그렇게 해도 실수하고, 부족한 것이 사람이다. 다만 즐거운 마음으로 내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하루를 시작할 뿐이다.

분골쇄신, 그리고 더욱 낮은 자세로!

하 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진실하면 반드시 통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불신의 벽들은 진실하지 못한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무엇인가의 대가를 바라는 천박함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억지로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행위나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행동은 그 자체가 고통이며 위선이다. 우리는 양심에게 물어 한 점 티끌만큼도 출근인사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단지 2년 내내 출근인사가 필요한 노동조합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홍보물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특히 돌아보게 되는 문구가 “분골쇄신”과 “더욱 낮은 자세로”라는 것이었다. 말한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 아니, 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쌓이는 법이다. 집행간부들 먼저 자기정화가 필요한 때다. 누구를 위해서 혹은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간부로서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집행간부들이 제일 먼저 아침을 여는 노동조합! 우리 19대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의 첫걸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견줄 바는 못 되지만, 삼보일배의 정신으로 2년 내내 출근인사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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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직한지 두 달이 지났건만, 나의 삶을 존중해주고 아껴주었던 많은 동지들과 아직도 식사도 제대로 한 번 못한 것이 미안할 뿐이다. 총각시절 함께 뒹굴며 나를 위안해 주었던 동지들, 복직 투쟁할 때 고생했다며 집에 초대해 삼계탕을 끓여 주었던 동지들, 잠자던 온 식구를 깨워 잊고 있던 둘째 놈 첫돌사진을 찍어주었던 고참, 구조조정에 괴로워하며 끝내는 사표를 던진 직장이지만 언제나 찾아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선배운동가들….
가슴 깊이 묻어놓고 잊지 않고 있으며,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를 아는 모든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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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