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하청 노동문제와 조직노동의 전략

노동사회

사내하청 노동문제와 조직노동의 전략

편집국 0 3,556 2013.05.13 11:16

지 난 12월 16일, 노동부는 매우 ‘획기적인’ 결정을 하였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제기한 불법파견 진정에 대해, 현대차 자동차 공장에 있는 89곳 사내하청 업체가 모두 불법적인 파견노동이므로 이를 시정하라는 내용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미 지난 5월27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조합과 금속연맹이 진정을 제기한 울산공장 12곳, 아산공장 9곳과 현대차 노조가 진정을 제기한 전주공장 12개 사내하청 업체에 대해서도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진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현대자동차 공장 안에 있는 전 사내하청 업체와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진 셈이다. 이러한 불법파견 판정은 이미 진정을 제기할 당시부터 너무나도 명약관화한 것이었다. 불법파견을 규율하기 위한 현재의 노동부 고시를 따르더라도 현대 자동차의 사내하청 업체들은 ①인사·노무관리의 독립성은 물론이고, ②사업경영상의 독립성 조차도 갖추지 못한 허울뿐인 인력공급업이자 명백한 불법파견이었기 때문이다. 

노동부조차 불법이라는데..

이 번 결정은 IMF 경제위기 이후 금속부문에서 급증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이 불법임을 재차 확인하였다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금속산업 부문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용자가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업체라는 점을 이번 불법파견 투쟁을 통해 명확히 하게 됨으로써,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흐름에 추동력을 얻게 되었고, 법·제도적 명분과 더불어 불법파견 투쟁을 넘어서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이라는 토대 위에서 정규직화 투쟁에 나설 수 있는 대중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정규직화’라는 구호는 존재해 왔지만, 본질적으로 자본의 개별적·선별적·시혜적 차원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이며, 이번 불법파견 투쟁을 통해 무려 1만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판정을 이끌어 냄으로써 금속연맹, 현대차 노조, 그리고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로 대표되는 조직노동이 주도하는 정규직화 투쟁은 대중적 기반을 마련한 셈이라 할 수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어떻게 늘어왔는가

금 속산업 부문의 사내하청 노동은 비단 자동차 업종 뿐만 아니라 조선, 철강업종 등에서는 이미 산업화 초기부터 다양한 명칭으로 존재해 왔었지만, 금속부문의 대표적인 비정규 노동으로서 조직노동의 주요한 의제로 등장한 시기는 IMF 경제위기 이후이다.  이미 ?완전고용보장 합의서?로 잘 알려진 것처럼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도 IMF 경제위기 이후, 경기 회복 국면에서 자본의 비용절감과 유연성 확보의 필요성, 그리고 조합원의 고용보장 심리가 악조합으로 맞물리면서 기업 차원에서 비공식적으로 도입되어 왔던 사내하청 노동이 노·사간의 단협을 통해 제도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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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속노조와 금속연맹이 파악한 사내하청 노동자 규모(위 [표 1] 참조)에 의하면, 2001년 대비, 2004년도에 사내하청 노동이 약 19,397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1년 대비 2004년도 조사에서는 조사 사업장이 26개소나 증가했음에도 전체 조합원 수는 감소하였고, 전체 사원수는 정체하였음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이 기간동안 금속 부문의 사업장에서는 필요 인력의 대부분을 비정규직, 그것도 간접고용인 사내하청 노동으로 대체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현대차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울산공장만을 놓고 볼 경우, `96년, 4,700여명 규모에서 IMF 경제위기 직후 1,800여명 규모로 줄어들었던 사내하청 노동은 이후 급증하기 시작, 2000년 5월 3,652명(회사측 계약 인원 현황), 2001년 2월, 5,992명, 그리고 2004년 5월(금속연맹 조사)에는 약 9,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증가하였던 것이다(금속연맹·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02). 

비단 현대차 이외 대부분의 대공장에서도 IMF 경제위기 이후 자본의 비용절감, 고용유연화를 위한 구조조정 전략이 정규직 조합원의 고용보장 심리, 그리고 이러한 파편화된 기업차원의 이해를 뒷받침하는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 등이 맞물리면서 비정규직이, 사내하청 노동이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자본은 언제 어디서나 비용절감과 유연화를 추구해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문제는 결국 조직노동에게 있다는 점이며, 궁극적인 원인은 IMF 경제위기 이후 대공장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해 대변’이라는 보호장치 속에 안주하면서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조건의 흐름에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둔감해져 왔다는 것이고, 그 결과는 `87년 이후, 한국사회 민주노조 운동이 대변해 왔던 집합적 이해의 파편화, 원자화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의 사내하청 노동의 문제는 작게는 작업장 체제에서부터 크게는 사회 전체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보호 장치를 바로 옆의 비정규 노동자에게로까지 확장시키려는 노력을 등한히 한 결과이다.  더불어 대공장 중심의 선도적 임·단투를 통한 전체 노동자의 임금·노동조건 개선 메커니즘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변화한 한국의 사회·경제 체제 속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 또한 이를 악화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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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6일 노동부를 항의방문한 현대자동차비정규노조원들   - 출처:매일노동뉴스 ]

모듈화 플랜, '자신감'의 이유

비 록 사내하청 노동 문제의 상당부분이 조직노동에게 그 원인이 있다 하더라도 이번 불법파견 투쟁과 노동부 진정 결과는 현대차 자본에게는 위기의 징후일 수밖에 없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에서 나아가, 자본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뚫고서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가 공조, 자본의 전략에 대응하는 노-노간의 연대에 기반한 투쟁국면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통 상 불법파견 판정을 내릴 경우, ‘직접 고용’ 등의 구체적인 시정조치까지 적시해 왔던 평소의 경우와 달리 노동부는 현대차로 하여금 스스로 개선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한 상태이다.  지난 5월 27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불파 진정건에 대해 10월 19일, 현대차가 노동부에 제출한 개선계획서에 의하면, 파견과 임시직 활용, 공정분리를 통한 완전도급화, 도급계약 해지시 고용승계 보장 폐기 등의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불법파견 노동으로서의 사내하청 노동에 대해 최소한의 직접 고용 원칙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현재의 사내하청 업체와 사내하청 노동을 노동부 고시기준이 정하고 있는 적법한 진정도급으로 전환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파견노동과 단기 임시직만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개선계획이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 11월 12일, 현대차를 경찰에 고발해 놓은 상태이다. 

현대차 자본이 이렇듯 자신있게(?) 대응할 수 있는 이유는 이번 불법파견 판정을 전체 금속부문 자본을 대리한 지리한 법정 싸움을 통해 시간을 끌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모듈화로 대표되는 구조조정 플랜을 가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가을, 38일간이나 지속되었던 안기호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위원장의 단식 사태를 유발한 5공장 버퍼 모듈 도입에 따른 라인 재배치와 사내하청 노동자 정리해고 문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5공장내 42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해고 사태를 촉발시켰던 것처럼 모듈화를 통한 구조조정 전략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며, 상대적으로 설비가 낙후됐던 울산공장의 경우, 아산공장에 비해 모듈화가 이제야 도입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차 자본은 모듈화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현대차는 모비스, 기아차는 위아를 전속 모듈업체로 해서 이를 기축으로 과거의 1차 부품사들을 전면적으로 재편하고 있으며, 이미 현대차 공장 밖에서는 모듈화를 위해 현대차 자본에 의한 부품사들의 합종연횡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직노동 대안전략이 시급해

문 제는 이러한 모듈화를 위한 부품업체, 나아가 자동차 업종 전체의 구조조정과 이의 도입이 완성차인 현대차 작업장에 미칠 영향이다.  생력적·노동배제적 모듈화 기술이 도입될 경우, 작업장 차원에서는 일자리를 놓고서 노-노간의 갈등 구조가 재현, 1차적인 희생자는 또 다시 사내하청 노동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개별화, 파편화되어 있는 비공식적 작업장 노사관계하에서 구조조정 문제가 일자리 확보와 연계될 경우, 이 문제는 노-사간의 담합구조를 통한 사내하청 노동의 배제로 귀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직노동이, 주요하게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이러한 부분에 대해 어떤 전략을 내 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현재의 수세적, 방어적 전략과 결과치로서의 물질적 보상의 극대화로는 ‘조합원의 이익보호’라는 노동조합 역할만이 작동할 뿐이기 때문이다.  작게는 작업장 체제의 변화를 불러올 모듈화 ‘기술’에서부터 크게는 모듈화로 대표되는 자동차 업종 전체의 구조조정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조조정 문제에 대한 조직노동의 대안적 전략이 시급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늦기는 했지만, 이러한 전략의 필요성은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진 새로운 상황속에서 목전에 당면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투쟁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며,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자본의 내성을 뛰어 넘는 문제이기도 하다.

단기적으로는 이러한 전략에 대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인식의 공통분모를 넓히면서 1차적으로는 불법파견 투쟁을 공동으로 진행시키기 위한 구심점으로서의 조직적 틀과 그 형식을 확정하고, 이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외연 확장의 필요성은 지역·전국차원의 다양한 노동·시민단체의 참여를 통한 현대차 자본의 압박이라는 측면보다는, 정규직화 투쟁이 본격화될 경우, 고용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작업장 정규직 조합원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논의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장과 사업부 차원의 대의원 대표가 포함되는 방식일 것이다. 

이미 현대차 노동조합은 그 이름만으로도 금속산업 부문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이자, 나아가 민주노조 운동을 대표하고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단위사업장의 노동조합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 이유로 공장 안과 공장 밖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자본의 구조조정 전략에 대한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전략이 제출되고, 구체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금속연맹·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02), 「금속산업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실태조사」
금속노조·금속연맹·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04), 「금속산업 비정규직 규모 현황 및 불법파견 실태조사 보고서」
조건준 (2004), “대공장 노조, 고이면 썩는다”, 월간 「노동사회」 2004년 11월호.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