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2004년 의정활동을 돌아보며

노동사회

민주노동당 2004년 의정활동을 돌아보며

편집국 0 3,410 2013.05.13 11:30

2004년 12월 현재도 ‘정치의 계절’은 계속되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소위 ‘4대 개혁법안’ 처리를 둘러싼 ‘밀고 댕기기식의 협상’이 개혁실종이라는 허탈한 상황을 야기한 채 끝났다. 사실 보수 정치권의 양당이 벌이는 협상결과는 진작에 예측 가능했던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연내 국가보안법 폐지의사가 없었다. 이런 가운데 국민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농성과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사립학교법 개정 촉구 농성과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모임 등 각각의 법안에 대한 입장차이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또 한,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 반대, 공무원 노동3권 보장, 쌀개방 재협상 촉구, 재래시장 임차상인 보호,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임대주택법 개정 등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민생현안이 산적해 있으며, 주한미군 재배치나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상과 같은 국가주권의 수호와 직결된 외교적 현안도 우리 사회의 쟁점사안으로 제기되어 있다. 이 모든 일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정치현안이라는 점에서, 현재 중요한 정치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한국사회의 각 정치세력은 국민적 지지라는 심판대 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쳐야한다.

보수진영과 보수언론을 비롯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사회적 갈등 그 자체를 우리사회의 위험요소로 간주하고, 현재의 체제와 질서로부터 부여받는 기득권을 누리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이념적, 계급·계층적 갈등요소는 엄연히 존재하는 객관적 사실이다. 때문에 현재 정치현안에 대한 사회적 갈등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의 대변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다양한 갈등요소를 사회적으로 의제화 하는 것이고, 의제를 놓고 여러 정치 세력들이 벌이는 협상과 합의가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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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12월 5일 민주노동당 총진군대회   - 출처: 민주노동당 ]

전략적 목표에 근거한 정치의 부재

이 런 점에서 민주노동당 원내진출의 의미는 그동안 보수정치권이 정치영역에서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던 계급·계층의 갈등요소를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지난 7개월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도 ‘노동자, 농민, 서민과 진보세력의 정치·경제·사회적 요구에 대한 정치적 반영과 참여를 얼마나 잘 기획하고 추진했는가’라는 잣대로 이뤄져야 한다.

열린 우리당의 한 ‘386’출신 의원이, 최근 민주노동당 기관지인 『진보정치』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이 잘못한 일로 열린우리당과의 ‘개혁공조’를 지적했다. 제도권 정치행위에 대한 지나친 의식 때문에 생겨난 개혁공조 합의는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린우리당사 점거투쟁 상황과 겹쳐지면서 당의 정치 이미지만 훼손시키고 말았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지적은 의외의 말이지만, “정치세력으로서 민주노동당은 전략적인 정치적 포지션이 없음”을 꼬집는 날카로운 비판이다.

얼마 전에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당은 수구세력과 투쟁하기 위해서 ‘열린당 2중대’라는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역사발전의 견지에서 ‘개혁입법의 현실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대승적 행보를 해야 할 것”이라는 문서가 제출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2중대론’은 민중운동진영 일각에서 지난 17년 동안 지속되었던 비판적 지지전술의 역사적 오류에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 무능한 당내 정치세력의 잘못된 판단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흐지부지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국가보안법 폐지 카드를 정치쇼의 수단으로 사용하다가 최근 보수양당 4자회담을 통해 결국 ‘한나라당과 합의처리’ 원칙을 밝힘으로써, 사실상 연내에 국가보안법을 완전 폐지하겠다는 생각이 없음을 보여 줬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과 합의해서 부분개정 하겠다고 천명한 상황에 비춰볼 때, 문서의 내용대로 열린우리당 2중대가 되었다면 ‘국가보안법 연내 완전폐지’를 주장했던 민주노동당은 망신을 살 뻔했다.

그리고 당의 최고지도부인 최고위원회가 당의 핵심정책인 부유세 도입을 위해 마련한 조세개혁법안을 유보처리했다가 다시 번복해서 원안통과 시켰던 일은 당의 핵심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 지도부가 혼란스런 모습을 자초한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과정을 종합해 볼 때, 열 명의 의원이 개별적으로 펼친 많은 입법활동과 개혁과제 네트워크의 형성, 국정감사 및 예산심의 성과와 별도로, 당 지도부와 열 명의 의원단의 지난 7개월 의정활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한마디로 말하면 “전략적 목표에 근거한 정치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진보정당의 정체성에 근거한 원칙과 명분도 지켜야 하며, 노동자·농민·서민들이 요구하는 현안을 제기하는 동시에 그것에 대한 정치적 실리도 얻어가면서 그들의 정치적 지지를 유지·확대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현재 약 15%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며 향후 다가오는 정치일정 속에서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지난 7개월의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당의 최고집행기구인 최고위원회는 제3당이 지녀야 할 이런 정치 전략과 목표를 세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의원단과 정책위원회 산하의 의정지원단 또한 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은 당이 의회정치활동, 대중정당 활동에 본격적으로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로,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총선 공약을 들여다보자!

‘전 략적 목표에 근거한 정치’는 민주노동당이 국민과 맺은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빈부격차 해소와 민생경제 안정, 평화롭고 자주적인 나라 실현이란 공약으로 선거를 하였고, 신선한 정치세력,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세력, 진보적 정치세력임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아 국회의원 10석의 제3당이 되었다.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을 집권여당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세력인 민주노동당에게, 집권여당과 구태의연한 거대야당의 정치행태를 비판하고 노동자·농민·서민의 정치적 요구를 대변해주길 기대한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펼치는 진보정치는 노동자·농민·서민의 민생문제와 평화와 자주 외교를 정치 쟁점화하는 ‘15% 지지 좌파정당의 역할’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정치는 어떠한 의제를 설정하고, 어떻게 정치협상이나 국민홍보와 같은 정치전략을 세우는가하는 문제이다. 특히, 의회내 소수파이자 보수양당의 틈새에 있는 민주노동당은 보수양당이 만들어내는 현안에 대한 대응에 과도하게 집착하기보다는 민주노동당 고유의 정치적 의제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구상과 기획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난 7개월 동안의 의정활동을 민주노동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총선공약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무상교육, 무상의료, 조세개혁과 빈부격차 해소, 비정규직 차별철폐,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2005년도의 정치전략과 기획을 수립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2005년도 사업은 2006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정책, 홍보, 국회의원단, 지방의원단, 시·도당 및 지역위원회 활동의 종합기획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지난 대선과 총선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부유세나 학교급식조례 제정운동과 같은 구체적인 사업이 기획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업의 기획은 당 지도부의 정치적 지도력과 민주노동당이 자랑하는 당내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될 수밖에 없다. 당 지도부의 논의는 당내 현안에 대한 것보다는 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수렴하는 등 당의 정치활동방향에 대한 논의로 채워져야 한다. 즉, 지역의 정치적 요구를 종합하고 국회, 지방의회, 시·도당의 정치활동으로 배치하며, 여기에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지역이 참여해서 당 지도부 및 의원단과 함께 하는 정치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아울러 현재 의원 대표단의 비서실 기능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의원단의 공동사업을 기획·추진하는 기능이 현격하게 적은 현재의 의정지원단 기능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의원 대표단 비서실 기능을 유지하더라도 의원단 전체의 공동사업이나 사안별 몇몇 의원의 공동사업을 기획·추진하는 방향으로 의정지원단 활동내용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당의 체질전환: 가져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앞 에서 말한 전략적인 정치활동의 구상과 기획은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 시기 당의 ‘의회정치노선’을 만드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짚어볼 문제는 의회정치공간에서 벌어지는 다른 정치세력간의 경쟁과 대립 양상에 대한 당의 미숙한 대응이다. 민주노동당은 정치사회내 다른 정치세력과의 관계(각 당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대응)에서, 그리고 시민사회내 민중들의 일상생활로부터 나오는 이슈를 정치활동의 주요 의제로 정해야 한다. 정치활동의 대상 역시 계급·계층은 물론 세대, 학력, 가치(이데올로기) 등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바깥에 머물고 있는 미조직 대중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아직 민주노동당은 ‘운동권’ 정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원내에 진출한 대중정당으로서 당은 단순히 대중단체가 행동하는 것과 같이 운동을 조직하고, 운동 차원에서 형성된 거대담론을 이슈화하는데 만족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러한 활동은 지양해야 한다.

이렇게 당이 가져야 할 것을 갖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과정은 당이 계급·계층 조직 등 다양한 대중조직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하고 그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해 정치의 본령인 계급계층간 사회경제적 갈등의 정치화를 촉진해, 보수 대 진보의 정치구도를 형성하는 계기이며, 이를 통해 당은 의회정치와 대중동원정치를 균형 있게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당의 체질 개선’을 이뤄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