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남북관계 전망

노동사회

2005년 남북관계 전망

편집국 0 4,017 2013.05.13 11:27
 

ghlee_01.jpg2005년은 광복 60주년,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5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남과 북은 2005년을 ‘자주통일원년’으로 정했다. 그만큼 올해는 한반도와 남북관계에 있어 커다란 의미가 있는 해다. 그러나 지난해 8월초에는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이 무산되었고 9월말에는 북핵 제4차 6자회담도 무산된 채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아직까지 표류하고 있다. 

따라서 올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아무런 대화의 끈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2004년에 꽁꽁 얼어붙었던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올해도 풀리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대화의 물꼬가 터질 것인가. 만일 대화의 물꼬가 터진다면 그 방법은 무엇이고,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인가. 올해 남북관계를 전망하기에 앞서 지난해의 상황을 잠깐 되짚을 필요가 있다.

2004년 7월 이래 남북관계 경색화

2004년 7월 남북대화가 중단된 이래 해를 넘겨 7개월째 꿈쩍도 않고 있다. 당국간 남북대화의 상징인 제15차 장관급회담이 지난해 8월3일 중단된 이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북관계가 이토록 오랜 기간 경색되고 표류하기도 처음이다. 이 같은 남북관계의 경색은 남측 당국이 민간 대표단의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방북을 불허하고, 이른바 ‘탈북자’를 ‘대거기획입국’ 한데서 기인한다.

이와 관련 남북관계 주무장관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언론 등을 통해 수차례 유감표명을 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12월15일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첫 제품 기념행사 축사에서 정 장관은 “그동안 남북화해협력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돌발변수’가 발생했다”고 지적하고 “우리는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라며 공식적인 유감을 표명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돌발변수’란 조문방북 불허와 ‘탈북자’ 기획입국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북측은 지난해 12월27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을 통해 남측 ‘참여정부 2년간의 반(反)통일 10대 행적’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그 ‘10대 행적’ 중에는 대북송금특검, 조문방북불허, ‘탈북자’ 기획입국, ‘친북사이트’ 접속차단 등이 들어 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열 번째로 “참여정부가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책임을 통절히 느끼지 않고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을 든 점이다.

남측도 이에 가만있을 리 없다. 정동영 장관은 1월4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신년대담을 하고 남북관계와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특히 정 장관은 조문문제와 기획탈북문제 등에 대해 거듭 대북 유감표명을 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친북사이트’ 차단조치 해제라는 대북 유화 제스처까지 밝혔다. 북측 조평통의 ‘참여정부 반통일 10대 행적’ 발표에 대한 일종의 답변인 셈이다.

이 같은 몇 차례에 걸친 남북간 핑퐁식 간접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직접대화가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 대화의 열쇠는 물론 북측이 쥐고 있다. 북측은 조평통이 밝혔듯이 남측 참여정부 2년간의 행위가 불만인데다가 통일부장관이 사과를 해도 분이 풀리지 않은 모습이다. 

그렇다면 2005년은 어떨까? 남북관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외적 변수이기는 하지만 한반도 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북미관계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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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개최된 6.15 우리민족대회 ]

남북관계의 변수 북미관계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영향을 받는다. 북미관계는 이른바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공방인데, 이 공방은 현재 북한과 미국을 비롯한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말 제4차 6자회담이 무산되고, 11월 부시 미 대통령이 재선된 이후 한국과 미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점에 합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LA발언’(‘대북 봉쇄 반대’를 언급한 로스앤젤레스 발언)에 이어, 11월20일 칠레 산티에고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를 “6자회담이라는 틀 속에서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미 북한은 미국이 3차 6자회담(2004. 6)에서 합의하고 약속한 내용, 즉 ‘말 대 말’과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회담의 기초를 무너뜨렸다”며 4차 6자회담을 무산시킨 적이 있다. 이후 북한은 부시가 재선되자 부시 2기 행정부의 정책수립과정을 지켜보겠다고 말해 왔는데 이는 북한의 2005년 신년공동사설에서도 드러났다.

북한은 신년공동사설에서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압살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하며 대북 적대시정책을 바꾸어야 한다”고 예년에 비해 대미관계 부분을 작게 할애하면서 그 발언 내용도 대북 적대시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원론적 수준으로 한정했다. 이는 북한이 누누이 밝힌 부시 2기 행정부의 출범과 정책수립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간의 향후 정치일정을 보면, 부시 미 대통령은 1월20일 취임식을 치룬 후, 2월2일 연두교서를 발표할 예정이며, 이에 맞서 북한은 2월 초 선군정치 10돌에 즈음한 ‘선군혁명 총진군대회’를 통해 대미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바야흐로 북미간에 ‘대화냐 충돌이냐’라는 양자택일의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난 1월11일부터 나흘간 미 의회 하원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커트 웰던(공화당, 펜실베이니아)을 단장으로 하는 미 하원 대표단 6명이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은 이들 미 하원 대표단이 방북 중에 밝힌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 불침공 의사, 체제전복 포기’ 등을 부시 행정부가 2기 출범과 함께 정책화하면 6자회담을 비롯한 모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북미관계와 6자회담의 재개 여부는 일차적으로는 부시 2기 행정부의 출범과 그에 따른 대북정책수립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순항할 2005년 민간 차원의 남북관계

북한은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크게 미국과 남한과 각각 관계설정을 하고 있는데, 남한과의 관계의 경우 당국자 차원과 민간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럴 경우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의 관계는 ‘북-미 관계’, ‘북-남 당국자관계’, ‘북-남 민간차원관계’ 등 세 차원에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즉 북한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 세 가지 관계를 유효하고 적절히 설정하면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경색되었다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당국자간이 그렇다는 것이지 민간 차원은 그렇지 않았다. 비록 금강산 지역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민간차원의 사회문화 분야의 만남이나 대북지원 및 개성공단 건설관련 관계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아테네 올림픽 공동입장(8.13), 룡천복구 지원감사(8.30), 고구려고분 세계문화유적 등재기념 남북공동행사(9.11~12), 금강산관광 6주년 기념행사(11.19), 개성공단 첫 제품 생산기념식(12.15) 등이 있었다. 다만 이들 대화와 행사들이 평양에서 열리지 않은 이유는 북측이 당국자간 남북관계 경색화라는 ‘사실’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5년 민간 차원의 남북관계는 일단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 차원의 대화 본격화 조짐은 이미 2004년 말부터 감지되었다. 2004년 11월23~24일 금강산에서 남, 북, 해외 통일운동 대표자들은 실무접촉을 하고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이 공동보도문은 ‘금강산선언’으로 불릴 만큼 중요한데 크게 3개항으로 되어 있다.

첫째 6·15 공동선언 발표 5돌, 조국광복 60돌이 되는 2005년을 ‘자주통일원년’으로 정하고, 둘째 6·15 공동선언 발표 5돌 기념 민족통일행사는 평양에서, 조국광복 60돌 8·15 통일행사는 남측지역에서 진행하며, 셋째 통일운동과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들을 광범하게 협의 추진하기 위하여 ‘6·15 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2005년 초에 건설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입각해 북측은 2005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대남관계와 관련해서 지난 5년간을 “6·15 공동선언의 정당성과 생활력이 남김없이 과시된 나날”이었다고 정리하면서 2005년을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 밑에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의 3대공조를 확고히 실현하자고 강조했다.

그동안 북측은 6·15 공동선언 이행과 관련 ‘민족공조’를 강조해 왔지만 이같이 구체적으로 체계화한 ‘3대 공조’를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예년과 같이 북측에서 1~2월중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부·정당·단체 연석회의’에서 이 3대공조가 어떻게 구체화되고 또 어떤 형태로 대남제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북측이 이처럼 민족공조를 구체화해서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이라는 3대 공조로 체계화한 것은 무엇보다도 앞에서 밝힌 대로 지난해 11월 남, 북, 해외 통일운동 대표자들이 합의한 ‘금강산선언’에 따라 본격적인 민족공조를 이룰 발판을 마련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2의 남북 르네상스시대’ 기대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나 통일운동은 결국 당국자 차원의 남북대화로 연결될 때 그 빛을 발하고 성과도 나타난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순항할 것으로 예상되는 민간 차원의 남북관계는 당국자 간에도 순기능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6·15 공동선언 발표 5돌이 되는 2005년은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켜 ‘제2의 남북 르네상스시대’를 여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현실적으로도 올해는 남과 북 모두가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한 단계 높일 내외적 이유가 충분히 있다.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 발표 5돌이자 광복 60돌이라는 공통분모에다가, 민족의 운명과 직결되는 ‘북핵문제’를 6자회담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절실함이 있다. 북한은 부시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불가피하게 ‘정면대결’(정면해결)을 해야 하며, 남한은 6자회담에서 ‘주도권’을 쥐겠다고 강조해 왔다. 이는 남과 북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미 ‘민족공조’를 이뤄야 하며 또 ‘민족공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호관계를 복원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게다가 민간 차원이기는 하나 ‘금강산선언’에서 합의한 ‘6·15 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준비위원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상설기구로서 6·15 공동선언 제2기를 맞아 남북관계가 한 단계 진전되는 징표이며, 더 나아가 남, 북, 해외의 정부, 정당,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통일기구’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공산도 있다.

지난해 남북간의 핑퐁식 간접대화를 통해 대화분위기는 어느 정도 성숙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대화의 시기가 언제냐가 관건이다. 먼저, 북미관계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1월20일)과 연두교서 발표(2월2일)시점이나 북한의 선군정치 10돌 ‘선군혁명 총진군대회(2월초)’ 이후가 될 공산이 크다. 다음으로, 대화방법인데 이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남측에서 먼저 대북 대화를 제의해야 한다. 이는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첫째, 남북장관급회담의 복원이다. 이 의미는 작지 않다. 장관급회담은 6·15 공동선언 이행과 실천의 기관차 역할을 해 왔다. 일부에서는 장관급회담이 이미 그 여력을 소진했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장관급회담은 6·15 공동선언 이행의 상징이기에 회담재개 자체로 남북관계 복원의 충분한 신호가 된다. 남측 당국에서 지난 2002년 6월 서해교전사태 때 북측이 보내온 전통문 내용을 동일한 수준에서 역제의 하면 된다. 즉 6·15 공동선언 이행의지를 밝히고,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과를 표명하고 나서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 개최를 제의하는 것이다.

둘째, 특사방북이다. 돌이켜 보면 남북간에는 상호관계가 경색되었을 때 특사가 나서 해결한 좋은 전통이 있다.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한반도 정세가 얼어붙자 임동원 대북 특사가 그해 4월 방북해 4·5 공동보도문에 합의하면서 남북관계 복원 및 북미대화 재개의 큰 계기를 마련한 바 있다.

셋째, 남북정상회담이다. 물론 정상회담은 그자체로 직방으로 이뤄진다기보다는 앞의 장관급회담이나 특사교환 등을 통해 가능할 사안이다. 남북관계의 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정상회담의 필요성은 높아진다. 특히 참여정부에 있어 남북정상회담이 절실한 이유는 현 정부도 이 방법 이외에는 현재 맞부딪히고 있는 경제난이나 정국주도권을 해결할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2005년은 남과 북의 이해관계가 손바닥 치듯 맞아 상호관계가 복원될 뿐만 아니라 그 수준도 한 단계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움츠린 개구리가 멀리 뛰는 법이다. 그간 남북은 7개월 이상 대화의 공백과 단절이 있어 왔다. 올해 2005년은 ‘자주통일원년’에 걸맞게 그간 공백을 뛰어넘는 두 배, 세 배의 남북대화가 봇물이 터져 ‘제2의 남북 르네상스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남과 북은 민간 차원의 관계를 고리로 당국자 차원을 풀 것이고 또 당국자간 대화를 통해 민족공조를 강조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