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두려워마라 승산은 우리에게 있다!

노동사회

변화를 두려워마라 승산은 우리에게 있다!

편집국 0 2,784 2013.05.17 10:20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 노동자 대중이 등을 돌리고 있다. 노동운동이 국민들로부터 고립되어 가고 있다. 정권과 자본 그리고 보수언론 등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고, 대공장과 중소영세기업을 갈라놓는다. 저들은 이러한 분할지배 정책을 통해 신자유주의 완성단계인 ‘비정규직 전면화'와 ’노사관계 로드맵 법제화‘ 그리고 ‘노동운동의 무력화’와 ‘민주노조운동의 해체’를 노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노동자들은 서로 동질성을 찾아 단결하기보다는 상대와 다른 점만을 부각하며 서로를 원망하고 원성을 높이는, 이이제이(夷以制夷)의 마수에 걸려 있다. 노동자들끼리 대립과 대결로 치닫고 분열의 수렁에 빠져 어쩌면 ‘사망선고’까지도 눈앞에 두고 있다.

위기논쟁 종지부 찍고 실제 혁신으로 나서자

올해 초 민주노총 간부들의 설문조사에서 현 상황을 위기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들이 62%로 나왔다. 이렇게 모두가 위기라고 하는데, 혁신의 대상이자 주체들만이 위기가 아니라고 하는 게 위기의 본질이다. 현재 노동운동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백척간두에 서 있는 위급한 상황이며, 태풍이 몰아치는 들판에 가물거리는 등불과 같이 초라한 상태다. 외양을 그럴싸하게 갖춰도 파업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노동조합이라고 규정하기 힘든 것처럼,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선언해도 조합원의 30% 미만만이 참여하는 수준이라면 심각한 위기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와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인 정권의 공격에 외상을 입었고, 동시에 내부분열로 인해 내상을 입은 중증환자다. 그러므로 먼저 내상을 치유해야 약발이 받고 외상의 회복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전쟁수행의 기본적인 과정은 먼저 적들을 포위하여 고립시키고 마지막으로 섬멸의 단계를 밟는 것이다. 현재 노동운동의 상태를 여기에 비추어서 보자면 이미 포위를 넘어서 고립의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곧 섬멸의 단계에 이를 만큼 위급한 상황이다. 지금 비정규직들은 죽음으로 항거하고 있고, 생계가 파탄 난 서민들은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집단자살 행렬에 줄을 보태고 있다. 위기를 넘어, 가히 ‘전시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논쟁은 자칫 분열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혁신을 통해 내부를 추스르고 위기를 투쟁으로 돌파할 ‘전사’가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보상심리로 얽힌 정파구도에서 이탈하자

최근 노조간부 비리 사건을 통해 각성이 자극되고 내부혁신의 기회가 만들어진 것을, 노동운동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처럼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전에도 비리와 부정부패 사건이 종종 발생했지만 우리는 그동안 솔직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며 내부비리와 부패에 단죄를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넘겨버리는 사이, ‘도덕불감증’에 빠지고 말았다. 정파별로 자기파는 감춰주거나 덮어주기 급급했으며 반대파는 들춰내고 단죄를 시도했으니, 정의는 파괴되고 형평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개인들은 운동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파에 줄을 서서 충성했고, 정파의 권력획득은 곧 개인의 자리보전을 위한 보증수표와 권력을 거머쥐는 지름길이 되었다.

이렇게 ‘보스와 가신들의 정치’에 익숙해진 노동운동은 2000년 이후 진보정당운동이 성장하면서 더욱 넓어진 자리 역시도 충성심에 따라 공천을 팔아먹으며 버텨왔으니, 썩은 고름이 뼛속 깊이까지 침투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현재까지 반복되며 노동운동은 자주성을 상실했다. 자기파에 충성하는 사람들로 ‘줄 세우기’를 하며 현장조직을 난립시키고, 권력지향 상층지도부의 필요에 따라 밀실야합과 이합집산이 거듭되니 운동의 정체성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어용’과 ‘민주’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거나 아예 없어지고 노동자 대중이 진정으로 믿고 따를만한 지도자가 없어진 것이다.

노동운동이 발휘하는 힘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 정의실현을 위해 투쟁하라고 대중들이 쥐어준 ‘정의의 칼’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소중한 무기를 패거리의 권력을 유지하고 사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부패의 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 모든 게 밀어주고 당겨주는 조폭 같은 상호관계 속에서 ‘보상심리’가 작동하며 발생한 것이다. 상부단위가 썩어 가는 권력으로 추락해도, 이를 견제해야할 하부단위 또한 나눠먹기 먹이사슬에 얽혀 대중들의 요구와 투쟁을 외면한 탓이기도 하다. 결국 앞장선 지도자들부터 보상심리의 유혹을 끊고 대중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 솔선수범을 보일 때 노동운동은 혁신의 기운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지도부부터 아래로, 대중 속의 행동으로

지금 노동대중들은 사지에서 활로를 개척해 줄 지도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노동운동이 혁신에 성공을 하고 노동자 대중들로부터 다시 지지와 믿음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출세지향성으로 비춰지고 탐욕으로 나타나는, 권력지향적 행동들을 중단해야 한다. 남에게 손가락질을 하면 손가락 하나는 상대를 향하지만 세 개는 자신을 향한다. 남을 비난하고 탓하기 전에 자신을 세 번은 돌아보라는 의미이다. 집단과 조직의 혁신도 결국 개개인의 각성과 실천에서 시작된다. 자신은 변화할 생각과 의지도 없으면서 남에게서 문제를 찾고 대중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대립과 갈등, 분열을 증폭시키고 모두의 존립기반이 무너뜨릴 뿐이다. 결국 나부터 변화하고 혁신에 나서야 한다.

자기부터 현장으로, 대중 속으로 돌아가 대중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극복방안도 대중의 참여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자신이 속했던 노조나 주변의 문제는 방치하거나 외면하면서 권력을 추종하며 상급단체나 정치영역으로의 진출만을 꾀한다면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진정 위기라고 느낀다면 대중 속으로 하방(下放)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지도자로서 재검증을 받겠다는 용기 있는 행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 곧바로 모든 기득권을 내던지고 대중에게 달려오는 것만이 자기 스스로부터 혁신에 모범을 보이는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이다.

국가권력이나 관료, 재벌이나 가진 자, 이들을 엄호하는 보수언론 등 이렇게 힘을 가진 자들은 스스로 변화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노동자 대중들에게는 너희들 스스로에게서 위기의 원인을 찾으라며 책임을 전가하고, 또 우리들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노력들을 비웃는다. 물론 이렇게 행동보다 앞서는 말로 혁신을 주장하는 나 자신도 그러한 범주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은 사회적 양극화 등 체제의 모순이 최악으로 가는 상황이기에,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와 세상을 바꾸려는 자 사이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싸움은 누가 먼저 각성하고 변화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 ‘속도전’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승산은 우리들에게 있다.

혁신을 위한 ‘3단계 작전’

노동운동이 위기극복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현재의 위기를 인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특히 지도부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여 현재의 위기를 수습하고 혁신할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위기관리를 위한 ‘혁신위원회’ 등 대응팀을 구성하고 진단과 대응마련에 돌입해야 한다. 이러한 혁신위원회는 급박한 현안에 대한 비상조치를 실행하고 이를 중장기 혁신계획과 분리하여 추진하는 돌파력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위기극복을 위해 낡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목표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혁신세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혁신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혁신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대중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혁신세력이 구축되지 못한다면, 앙상한 계획들은 기득권 세력의 역풍을 맞아 좌초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다시 정리해보면 노동운동 혁신을 위해서는 △지도부의 혁신의지, △강력한 혁신위원회 구성, △대중적인 혁신세력의 구축이라는 3단계가 골고루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작동할 때 혁신이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을 하나 더 보탠다면 대중들에 대한 교육훈련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위기의 원인 진단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새로운 목표와 방향이, 몇명의 안위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술수가 아니라 대중들의 요구와 일치하는 것임을 확인되고 결의된다면, 먹구름 같은 현재의 혼란과 혼돈도 흩어지고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 찰 것이다.

민주노총도 이러한 위기를 인지하고 조직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중심의 강력한 혁신세력이 구축되어 있지 못하다. 위로부터 혁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에 안타깝지만 성공은 미지수이고 회의적이다. 그러나 전망을 상실한 대중들의 믿음을 복원할 구체적인 방향을 찾고, 조직과 정파를 초월하여 참여를 이끌어내고, 지도부가 대중 속으로 돌아가 함께 생활하며 실천할 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노동운동의 위길르 뚫고 가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노조에 집단가입을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 출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

87년 정신 회복과 산별노조 전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현 시기 노동운동 과제를 꼽는다면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념적으로 ‘1987년 투쟁정신’의 회복이며, 둘째, 조직적으로 신자유주의 착취체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본령인 ‘평등과 연대정신’ 속에 길이 있는 것이다.

1987년 투쟁정신을 투박하게 요약한다면 “인간답게 살고 싶다”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 건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8년의 피나는 투쟁과정 속에서 수많은 열사들이 죽음으로 항거하며 인간다운 삶을 위해 희생해 왔으나, 아직까지 그 희망은 요원하다. 오히려 더욱 멀어지고 있다.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상위 5%가 전체 토지의 82.7%를 보유하는가 하면, 은행의 상위고객 2%가 총저축액의 56% 차지하고 있다. 반면 노동자, 서민들의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는 빈곤층 500만명, 가계적자 30%, 비정규직이 55.9%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이념적 목표와 방향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즉 새로운 이념이나 사상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혁신의 운동이념을 회복한다는 것은 ‘1987년 투쟁’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뿐이다.

최근의 비리사태는 기업별노조 체제와 무관치 않다. 기업별 체제에서는 노사가 공장 담벼락 안에 숨어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단위기업 노사관계가 ‘담합과 포섭’이라는 상호작용 속에 가두어져, 기업별체제의 노동운동이 ‘전투적 실리주의’, ‘담합적 실리주의’, ‘협조적 실리주의’라는 소아적, 단기적 실리추구의 수렁에 빠진 것이, 오늘날 노동운동의 연대정신과 대의를 훼손시킨 근본 원인이다. 또한 1987년 이전 ‘무노조 저임금 착취체제’에서 외환위기 사태를 거치면서 1997년 이후에는 ‘비정규직 저임금 신자유주의 착취체제’로 전환되었다. 다시 10년 주기로 전환기가 다가오고 있다. 2007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앞두고 신자유주의를 완성하는 단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과정 속에서, 여름옷을 입고 겨울에 살 수 없듯이, 노동운동의 조직체계도 신자유주의 착취체제라는 조건에 걸맞게 산별노조 전환을 완수해야 했음에도 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노동자들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제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기업별노조들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나마 조직 노동자들도 제대로 보호하거나 고용을 지켜줄 수도 없다.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 산별노조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하여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을 포함해서 획기적으로 조직률을 높여야 노동운동이 살아 남을 수 있다. 또한 노동운동이 추구해야 할 투쟁 목표도 현재의 사회체제에 걸맞게 ‘중간착취와 불로소득과의 전쟁’ 등으로 맞춰져야 한다. 이를 통해 투쟁목표, 즉 ‘선과 악’, ‘빼앗기는 자와 착취하는 자’를 선명하게 구분하여 더 크고 더 넓은 투쟁을 펼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한 새로운 희망을 품고 활동하고 살아가야 한다.

“1천명 혁신전사들을 지켜 봐 달라”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은 지난 5월 채용비리 사건이후 ‘노조 혁신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비리 연루자에 대한 일벌백계나 혁신의 수위에 대해서 사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기정화나 혁신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실제 2차례의 노조활동 혁신에 관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하여 혁신목표와 방향을 논의했지만, 심지어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혁신은 실패할 것이고 흐지부지 끝날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노조혁신의 길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길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여건을 고려하여 노조내부 기득권과 전쟁을 벌여나갈 ‘노동운동 혁신실천단’ 구성이 공식제안 되었다. 조합원 대중을 중심으로 혁신대오를 모집하여, 노조 혁신위원회를 엄호·지지하며 혁신을 강제하고 실천할 수 있는 ‘1천명의 혁신전사’를 결성키로 했다. 이들은 조직과 정파를 초월하여 과거의 잘못된 활동풍토를 반성하고, 활동가로서 해서는 안될 일과 지켜야 할 덕목에 대해 준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명단을 공개하여 스스로가 한 약속이 지켜지는지 조합원 대중이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했다. ‘1천명의 혁신전사’는 직접 실천하고 행동하는 목표를 △노조활동의 혁신, △불법파견 철폐투쟁, △산별노조 전환, △사회적 연대기금 매월 1만원 납부 등으로 잡고 있다. 거창한 구호보다 작고 사소하지만 직접 실천 가능한 목표와 방향을 세우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혁신에 성공했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혁신의 노력들은 지금은 모든 면에서 불확실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노동운동의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려는 세력이 결집된다면 대공장 노동운동의 부정적인 면을 털어 버리고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다만, “지켜 봐 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