꿋꿋한 활동가들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노동사회

꿋꿋한 활동가들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편집국 0 2,745 2013.05.17 10:19

한국노총 간부들의 비리가 언론을 요란하게 장식하기 시작할 무렵, 한 노동자가 짤막한 편지를 보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는 게, 더 서글프다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구속될 것 같습니다. 간선제로 뽑힌 사람입니다. 항운노조 전 위원장과 현 위원장이 구속됐습니다. 모두 간선제로 뽑힌 사람들입니다. 우리 회사 옆 사업장 노동조합도 간선제로 위원장을 뽑는데, 조합원들은 규약도 못 보고 단체협약도 못 보게 합니다. 선거 때는 대의원들을 데리고 야유회에 가서 선거를 치르고 옵니다. 물론 ‘당선’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다른 조직에 가면 자신은 몇선 당선이라고 자랑합니다. 
이번에 그 사람이 연맹 지역본부의 의장이 됐습니다. 지역본부 단위 조직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간선제로 위원장을 선출합니다. 그 조직들에서는 조합원 총회 여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정부나 노총에서 주는 상들은 그 조직들이 독차지합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개혁을 하라고 합니다. 불가능해 보입니다. 간선제 선거제도를 비판하면 “씹고 다닌다.”고 비난하고 “자기가 무슨 노동투사라도 되는 줄 안다. 조직끼리 화합할 생각은 않고 분란만 일으킨다.”고 흉을 봅니다. 그냥 써 봤습니다.


며칠 뒤, 한국노총 전 현직 임원들이 구속되자, 그 노동자가 또 짤막한 편지를 남겼다.

오호 통제라! 애재라! 결국 한국노총 전 위원장이 구속됐습니다. 상임부위원장도 구속됐습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내년 선거에서 노동 진영의 결속을 차단하려는 정부의 포석이라고도 합니다만, 한심하고 답답하고 부끄럽고 서글프고 기가 막힙니다. 전국 순회 ‘삼보일배’가 생각납니다. 죽더라도,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노총이 개혁조치들을 발표했고 일정 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단위노조를 개혁하기 위해 애쓰는 활동가들에게 그 개혁조치는 아직까지 커다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힘 들어가는 ‘어용’의 목소리

한 중소기업 노동조합의 위원장 선거가 시작됐다.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이지만 지역에서 민주노총 사업장들과도 호흡을 잘 맞추어온 비교적 건강한 조직이었다. 회사는 노사협조주의를 표방하는 후보를 내세웠고 드러내놓고 선거에 개입했다. 회사가 조합원들을 공략하면서 현 집행부를 공격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위원장이 한 번 더 하면 그때는 민주노총으로 가게 된다.” 
“현 위원장은 상급단체로 가거나 정치를 하고 싶은 야망이 있는 사람이다. 조합원들의 실익 추구는 등한히 할 수밖에 없다. 노조 창립행사 때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방문했던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그러한 비난들은 엄청난 파급력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쳤고, 선거기간 내내 현 위원장은 기아·현대 자동차 노동조합 간부들과 한국노총 임원들의 비리 사건에 대한 해명을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선거를 치르고 나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새벽녘에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소장님, 우리가 완패했습니다. 추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얼마 뒤, 노동조합이 세웠던 연간 사업 계획들은 모두 취소됐다.

기아차, 현대차 노조간부들과 한국노총 임원들의 비리가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면서, 현장에서는 노사협조주의를 표방하는 조직들이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활동가들만 죽어난다. 예전에는 “회사 쪽에 붙었다고 한번 찍히면 우리 현장에는 도저히 발을 붙일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사업장에서도 회사 쪽 입장을 드러내놓고 대변하는 ‘어용’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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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7일 한국노총 서울 광화문 집회   - 출처:매일노동뉴스 ] 

민주파 위원장의 새빨갛게 충혈된 눈

한 대기업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에서 두 사람의 후보가 맞붙었다. 한 후보는 조합원들 중에서 비교적 높은 직급에 있는 노동자들의 지원을 받았고, 다른 후보는 주로 하위직에 있는 조합원들의 지원을 받았다. 상급직 조합원들이 지원하는 후보는 ‘노사협조주의’와 ‘애사심’을 표방했고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회사는 당연히 그 후보를 엄청난 물량공세로 지원했다. 굳이 ‘어용’과 ‘민주’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하자면 상급직 조합원들의 지원을 받는 후보는 ‘어용’이요, 하위직 조합원들의 지원을 받는 후보는 ‘민주’였는데, 다행히도 민주파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다. 

회사가 상급직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노사화합 교육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어렵사리 두 시간을 확보했다. 그 교육이 있어서 내려간 날,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마침 그 사업장 시설의 일부를 점거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교육이 시작됐고, 첫 순서로 인삿말을 한 노동조합 위원장은 곤욕을 치렀다. 상급직 조합원들 중에서 몇명이 현 집행부의 행태에 대해 계속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그 내용들은 다음과 같았다.

“다른 회사 노동자들이 지금 우리 회사에 들어와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지금까지 한 게 뭐가 있는가?” 
“회사가 있어야 노동조합도 있는 것처럼, 원청회사가 있어야 하청회사도 있는 것이다. 하청회사 노동자들이 원청회사의 경영을 저렇게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분명하게 입장 표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회사를 사랑하는 직원들은 정문에 나가서 며칠 동안 하청회사 노동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고생을 했다. 그동안 노동조합은 뒷짐만 지고 있었지 회사를 위해 한 게 뭐가 있느냐?”


노동조합 위원장은 “하청노동자들이 지금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는 같은 노동자로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만 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있는지 그 전체적인 상황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정문에 나가 서 있던 조합원들이 스스로 나간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설명을 했으나, 한 상급직 조합원이 “지금 하청회사 노동자들이 만든, 그쪽 ‘찌라시’ 보고 발언하는 겁니까?”라고 소리를 치며 위원장의 발언을 제지했다.

나중에 내가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도대체 왜 저러느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더니 한 간부가 답했다. “이럴 때 과잉충성해서 회사 눈에 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잖아요. 인사노무팀이 뒤에서 다 보고 있으니까, 이럴 때 잘 보여서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이 물불을 안 가리는 거지요.”

오후 서너 시쯤 됐을 때, 위원장은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견디느라고 눈이 다 붉게 충혈됐다. 노동조합 간부 한 사람에 내게 말했다. “요즘 우리 위원장님 불쌍해서 볼 수가 없어요. 오후만 되면 항상 눈이 저렇게 빨갛게 충혈돼요. 그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디면서 정신병 걸리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예요.”

“민주노총의 노동운동은 더 이상 정당성이 없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노동운동을 비난하기 시작한 이래, 노동운동 내부의 비리가 현 정부의 노동운동에 대한 몰이해와 맞물리면서, 자신의 존재가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없는 노동자들의 발언이 현장에서 힘을 얻고 있다.

“우리끼리 싸우느라 그렇게 힘들었어요”

jgha_02.jpg지방의 한 중소기업 노동조합에서 9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해고된 조합원들이 드나든다는 이유로 회사는 노동조합 사무실을 폐쇄해버렸다. 해고된 노동자도 엄연히 조합원 자격을 갖고 있으니 당연히 노동조합에 출입할 자격을 갖고 있음에도 회사는 막무가내로 그렇게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해고된 활동가 9명이 회사 앞에 천막을 치고 노동조합 사무실을 되찾기 위한 농성을 시작했다. 며칠 지나자 회사는 “회사 건너편 상가에 번듯한 노동조합 사무실을 마련해주겠다. 노동조합 사무실이 반드시 회사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회사 밖에 노동조합 사무실이 있으면 해고된 사람들이 드나들기에도 마음이 더 편할 것 아니냐?”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해고된 활동가들 9명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이만하면 됐으니 타협안을 받아들이고 투쟁을 접자. 절반의 승리에 의미를 부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사람들과 “힘든 때일수록 원칙대로 해야 한다. 노동조합 사무실을 온전하게 되찾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다행히 나중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무사히 되찾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그 조직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한 활동가가 그 무렵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끼리 싸운 것에 비하면 철야농성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농성은 오히려 힘들지 않았지만, 우리끼리 싸우느라고 그렇게 힘들었어요. 나중에는 각목부림까지 했습니다. 회사 놈들한테도 아직까지 맞아본 적이 없는 내가 그때 동지들한테 각목으로 맞을 뻔했다니까요.”
아무리 작은 조직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런 일이 조금 더 커진 것이 바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사태라고 볼 수도 있다.

비웃음 속에 잠시 주춤거릴지라도

내가 조직사업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른바 ‘비합법 시대’에 노동운동 조직에서 활동해본 경험이 있고, 그 조직에서 후배를 제명 처분해보기도 했고, 제명까지는 아니지만 “하종강은 이 조직의 교육사업 일체에서 손을 뗀다”는 처분을 받아본 적도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어야 하는 ‘조직의 쓴맛’을 몇 번 겪고 나서, 나는 더 이상 조직사업을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는 분명히 감당해야 하는 중요한 과업이지만 나는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다고 결론짓는 수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현실과 타협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운동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없는 ‘노동상담’을 나의 영역으로 선택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노동운동 주변에 머물고 싶었다.

시골 농공단지의 허름한 비닐하우스 같은 공장에서 조합원이 채 열명도 되지 않는 작은 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일지라도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포기한 일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동조합이나 상급단체 간부들의 비리가 마치 우리 노동운동 전체를 상징하는 듯 사람들이 오해할지라도, 그 호도된 여론 때문에 노동운동이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잠시 주춤거리고 있을지라도, 그래서 시대를 거슬러 1970, 80년대의 노동현장으로 돌아간 것처럼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기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됐을지라도, 현장의 활동가들은 ‘삼보일배’를 하는 심정으로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의 혁신은 그렇게 현장에서부터 활동가들에 의해 시작되고 완성될 것이다. 그 일에 내가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활동가들에게 물 한잔 떠다주는 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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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