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직노동자와 시민사회에게 인정받는 노동운동

노동사회

미조직노동자와 시민사회에게 인정받는 노동운동

편집국 0 3,462 2013.05.17 10:04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부터 민주노총의 건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발전해왔다.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서 억압되었던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에 이르기까지 민주노조운동은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서 오늘날의 위치에 이르렀다. 더구나 2002년에는 민주노총이 주도하여 민주노동당의 정치권 진출을 이루어냄으로써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숙원을 이루어내는 역사적 성과를 만들어냈다. 

최근 민주노조운동은 새로운 시련을 경험하고 있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시련은 정부나 자본과 같은 외적인 주체에 의해서 야기된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 내부에 의해서 야기되었다. 지금껏 외부와의 투쟁에 익숙했던 노동운동진영에게 내부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서 노동운동이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비판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며, 노동운동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많은 우호적인 우려와 적대적 비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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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세력이 다양한 시민운동세력으로 전환되면서, 시민운동이라는 한 축을 형성하게 된다. 다양한 시민운동단체가 모여 결성한 '2004년 총선시민연대'의 활동모습  - 출처:오마이뉴스 ]

내부요인으로 시련 겪는 한국노동운동

현재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보여준 문제들은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다. 수십 년 간 정경유착을 통해서 정권교체기마다 비리의 주역으로 밝혀진 재벌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의 행태에 비한다면, 최근 노동계에서 보여준 폭력과 비리는 정말로 먼지와 같은 작은 일이다. 그럼에도 노동운동진영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노동운동에 기대하는 도덕적 수준이 재계나 정계에 기대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간 각종 비리와 부정으로 물든 재계나 정계와는 달리, 노동계는 사회정의를 추구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세력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였다는 점에서 실망과 비판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노동계 내부에서 드러난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 한국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외부적인 환경과 내부적인 조직적, 이념적 속성과 관련되어 있다. 먼저 한국 노동운동이 처한 역사적 조건으로서 민주화와 세계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환경 속에 노동운동이 전개되었다. 민주화를 이끌어 낸 것은 노동운동이 아닌 민주화운동세력으로 주로 학생운동과 다양한 재야운동이 민주화운동의 중심을 이루었다. 노동운동은 민주화운동이 만들어 낸 새로운 조건 속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7, 8, 9월 동안 노동운동이 폭발하여, 자생적인 노동자들의 파업과 신규 노조 결성으로 이어졌다. 노동운동도 권위주의 정권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나 민주화운동의 중심세력은 아니었다. 이러한 점은 이후 민주화운동세력이 다양한 시민운동세력으로 전환되면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동시적인 발전을 이루는 결과로 이어졌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은 거의 동시에 활성화되면서 대중적 관심과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민주화 이행과 더불어 노동운동도 급속하게 성장하였지만, 곧 바로 시민운동이 등장하여 대중적인 담론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환경, 인권, 여성, 장애인, 복지, 경제정의, 정치개혁 등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단체들이 개혁 담론을 독점하면서, 노동운동은 상대적으로 작업장에 한정된 운동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노동운동이 작업장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하기 이전에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은 서로 영역과 차원의 운동으로 인식되었다. 그리하여 시민운동이 사회정의와 사회개혁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라면, 노동운동은 조합원들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운동으로 인식됐다. 조직규모에서 노동조합에 비교가 될 수 없이 작은 시민운동 단체들이 사회적인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대중적인 담론으로 만드는 데 더 성공적이었다. 

기업별 울타리에 갇혀 세계화 바람을 맞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세계화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배제된 다수의 집단들이 등장하면서 노동운동은 상대적으로 혜택을 누리는 노동자들의 운동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특히 외환위기를 계기로 기업 구조조정, 노동시장의 유연화, 공공부문의 민영화, 금융 자유화, 시장개방 등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도입되고, 대량실업과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일어나면서, 노동 기회를 상실하거나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기존의 노동조합들은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들과 같은 노동시장에서 열악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민주노총 차원에서의 관심은 꾸준히 있었으나, 기업 단위 노조 활동에서 이들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또한 세계화는 한국기업의 해외 이전이라는, 임금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본투자로 인하여 국내 제조업의 고용기회가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재벌 기업들의 이익은 매우 높지만, 일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됐다. 이미 1970년대 유럽에서 시작된 고용 없는 성장은 노동조합에게 고용안정과 임금보장과 같은 수세적인 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노동운동이 충분히 발전하기 이전에 불어닥친 세계화라는 태풍으로 노동운동은 커다란 시련을 맞았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권위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조직적 제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기업별노조 체제로 인하여 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조합원이 될 수 있고, 구체적인 노조활동도 기업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기업의 노동자들과 기업 내 비정규직 혹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노조의 관심과 활동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런 기업별노조에서 형성되는 것은 기업의식이다. 개별 기업별노조들의 활동에서 노동계급 연대와 이에 기초한 활동은 구호에 그치고, 상급단체만이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현재 기업별노조 체제는 한국, 일본과 미국 정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노조조직이다. 이러한 조직적 제약을 타파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활동은 기업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내적인 문제는 이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상급단체 수준에서의 노동운동 노선과 회원노조 수준에서의 노동운동 이념이 동일해야 노동조합의 활동과 조합원의 동원을 통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상급단체 수준에서 어느 정도 진보적인 개혁노선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개별노조 단위에서는 경제주의적 관심이 지배하고 있다. 상급단체에서 시도한 총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단위노조가 매우 적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OECD 최하위 수준의 영향력

현재 한국 노동운동은 조직적인 힘에 있어서 국제적으로도 대단히 낮은 수준이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2000년 11%로 OECD 국가들에서 프랑스의 노조조직률 10% 다음으로 가장 낮다. 노동법이 개정되고, 민주노총이 합법적인 지위를 얻었으나, 노조조직률은 크게 낮아졌다. 프랑스와 비교하여 노동조합의 영향력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노동시장에 미치는 노조의 영향력은 단체교섭의 적용범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단체교섭 적용범위는 단체교섭의 내용이 노동시장에 적용되는 범위로서 시장의 지배력과 반비례한다. 단체교섭의 적용범위를 본다면 프랑스는 노동조합 조직률은 낮지만, 노동시장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체교섭의 적용범위를 본다면, 한국 노동조합의 영향력은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다. 노동조합의 조직률도 낮고, 노동조합의 영향력도 제한적이어서 노동조합의 대사회적 영향력도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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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된 노동운동과 새로운 노사관계 구조

현재 노동운동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 안에 봉쇄되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기존의 노동조합들은 개별 기업 수준의 고용안정이나 임금 수준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이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고, 이들 대기업 노조들은 개별 기업 수준에서 이른바 ‘윈-윈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비해서 높은 임금 인상률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 사이에 소득불평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간의 격차, 정규직-비정규직간의 격차, 남성-여성간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노동계급은 양극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양극화는 역설적으로 성공적인 노동운동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노동운동이 작업장 울타리를 넘지 못하면서, 시민사회는 시민운동단체들에 의해서 점유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동운동은 시민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한국과 같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파업과 같은 집단행동은 권리의 행사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 혹은 상대적으로 혜택을 누리는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라는 인식이 크게 남아있다. 

따라서 89%의 노동자와 시민사회 구성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노동운동의 전략이 필요하다. 이것은 조합원을 넘어서 노동자 전체로 노동조합의 활동을 확대하는 것이며, 동시에 시민운동 단체들과의 연대활동을 통해서 시민사회의 지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의 노사관계 구조는 급격히 바뀌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을 한 축으로 하고, 기업과 정부를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체제였지만, 민주화 과정을 통해 기업과 정부는 어느 정도 분리되었다. 특히 정권 교체 이후 기업과 정부는 동일한 이해를 공유하는 단일한 집단으로 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른바 노동, 자본, 국가가 독립적인 노사관계 주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90년대 시민사회가 활성화되면서 시민사회의 여론이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새로운 변화가 또 일어났다. 노사관계에는 노사정 이외에 시민사회라는 새로운 주체가 등장하였다. 노조의 파업, 기업의 경영과 정부의 정책도 시민사회의 여론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노동, 자본, 국가와 시민사회가 노사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 노동운동도 자본과 국가 이외에 시민사회를 고려하여 운동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민주노동당뿐만 아니라 민주노총도 시민사회의 여론을 의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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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이 작업장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시민사회와 하나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울산시민들과 함께 하는 '노동문화제'  -출처: 현자노조 ]

사회적 연대 가꾸는 장기적 노력이 필요

세계화 시대 노동운동은 세계화로 인해 영향을 받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상급단체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단위 노조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뤄져야 한다. 빈곤, 복지정책, 불평등,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여성 차별 등 다양한 문제들은 주로 비조합원의 문제들이다. 여기에는 사회적 약자인 영세민 등도 포함된다. 단위 노조들이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별노조 체제를 지역별노조나 산별노조로 재편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기업별 노조 중심의 조직 체제에서 기업의 울타리를 넘는 문제제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기업별노조 체제의 미래는 일본의 노동운동이나 미국의 노동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노동운동 노선의 변화가 필요하다.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목표가 경제적인 이익의 증진뿐만 아니라 사회개혁과 진보라면, 노조 자체가 다양한 사회운동 단체들과 적극적인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시민운동과의 연대는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시민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서는 노동운동은 고립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보수적인 시민사회를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노동자도 학부모, 소비자, 지역주민, 생활인, 성적 주체, 가족 등 다양한 사회적 역할에 따라서 다양한 사회적 주체로 살아간다. 노동운동은 작업장 문제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주체의 모든 문제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운동의 사회개혁 내지 사회 변혁의 진정한 중심이 되는 길이다. 

전체 피고용자의 14%에 한정된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전체 사회를 움직일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미조직 노동자와 시민사회로부터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노동운동이 사회운동으로서의 중심성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점차 높여서, 노동운동이 주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중심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아직도 노동조합은 가장 강력한 조직임에 틀림없다. 민주노조운동 조직규모에 걸맞은 사회적,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고, 더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더 큰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냉철한 자기 인식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시련의 극복을 위해서 단기적인 처방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연대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