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한국의 산별운동

노동사회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한국의 산별운동

편집국 0 2,728 2013.05.1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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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 2005년 9월호 원고와 많은 부분이 중복된다. 다만, 들어가는 말과 마무리 말 등을 새롭게 수정 보완하였다. 그리고 보건의료노조 산별 투쟁에 대한 최근 몇 년간 진행경과를 알고싶은 분들은 아래 자료를 읽어보길 권한다. 
이주호, “2002년 보건의료노조 투쟁의 의미와 과제”(『노동사회』 2002년 12월호 통권 71호 )
이주호, “산별교섭, 의료공공성, 무파업 - 보건의료노조 2003임단투 평가”(『노동사회』 2003년 11월호, 통권 81호)
이주호,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한국의 산별운동과 산별교섭 - 보건의료노조 2004 산별교섭 평가와 2005 전망”(『노동사회』 2005년 2월호, 통권 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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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별노조다. 최근 몇 년 동안 주춤하던 산별 논의가 임박한 복수노조시대 대응과 계속된 노동운동 위기 논쟁 속에 위기극복의 유력한 대안으로 집중 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으로 가득 찼던 논의와는 달리 ‘산별운동의 실패’, ‘무늬만 산별’, ‘난관봉착’, ‘내홍과 갈등’ 등 비관적 전망과 부정적 요소만 부각되는 듯 하여 안타깝다. 하지만 비판적 대안 또한 ‘계급적 산별노조 건설’, ‘지역지부 중심의 현장 조직 재편’ 등 원칙론적 대안 제시 이상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못 나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다소 생경한 ‘지역운동에 기반한 대산별노조 건설’ 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흐름 속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1998년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조직 형태를 변경한 보건의료노조의 조직활동 및 교섭과 투쟁은 늘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다. 특히, 지난해 역사적인 첫 산별교섭·산별총파업 투쟁 성사와 함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10장 2조 논쟁’, 4월 1일 서울대병원지부의 산별 탈퇴, 민주노총 내부에서 공공연맹 가입 문제가 논란이 되고있는 시점에서 2005년 산별교섭과 투쟁이 어떤 양상으로 치러질 것인가는 더더욱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혹자는 탈퇴의 도미노 현상과 산별노조의 붕괴까지도 점치기도 했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8년 산별 활동의 저력을 바탕으로 올해 △첫 산별 5대 협약 요구안 확정과 교섭 의제화 △사측의 노무사 위임 철회와 사용자단체 구성 촉구 △직권중재 탄압을 뚫고 산별 총파업 돌입과 노사자율타결을 위해 줄기차게 투쟁하고 있다. 올해는 작년처럼 14일간의 화려한(?) 총파업투쟁은 없었지만 산별운동의 발전에 있어 요구, 교섭, 투쟁 측면에서 내용적 진전과 함께 더 구체적인 과제를 던진 해였다. 아무튼 보건의료노조 2년차 산별교섭 투쟁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동지들과 공유하면서 산별운동의 전진을 위해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기를 바란다.

2005년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요구

올해 4월 12일 시작된 임·단투는 8월 24일 현재 아직도 타결율이 30%를 밑돌고 있다.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이 막판 직권중재라는 암초를 만나 노사자율교섭을 통한 타결로 나아가지 못하고 표류하고있기 때문이다. 올해 투쟁은 ‘고난의 행군 2005’ 라고 명명할 만큼 어려운 조건에서 출발했다. 노무현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화되는 가운데, 보건의료계는 돈벌이 경쟁과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있고, 노동계는 외부적으로 노동운동 비리 사건에 따른 도덕적 비난과, 노동운동 위기 논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노조 내부적으로는 작년 14일간의 산별 총파업에 따른 현장의 조직적 피로와 함께 서울대병원 탈퇴 등으로 산별에 대한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모든 투쟁은 요구에서 시작되고, 올바른 요구는 대중투쟁 승리의 관건이다. 올해 보건의료노조가 산별협약안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는 작년 10장 2조 논쟁이후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다. 보건의료노조는 작년 하반기와 올해 초반 집중 토론을 통해 2년차 산별교섭 요구의 기조와 방향을 △작년 산별교섭 합의의 수준과 성과를 유지 발전시키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산별교섭의 내실화를 기하고 △임금, 고용, 노동과정, 산별기본협약, 보건의료협약이라는 5대 의제 중심으로 산별협약의 틀을 모범적으로 정립하고 △조합원의 주요 관심사인 임단협을 산별교섭에서 다루면서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 속에 빠른 속도로 산별교섭 정착 등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세부적인 요구 내용에 있어서는 작년 10장 2조 논쟁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었던 하향식 평준화와 근로조건의 저하 우려에 대해 산별기본협약에서 ‘산별협약을 우선 적용하되 기존 노동조건 저하 금지’를 못 박았으며, 임금은 산별협약에서 다루되 타결시 ‘+@’로 최종 합의하도록 하여 과도기적으로 병원별 지불능력과 격차를 인정하기로 했다.

특히 산별협약은 작년 산별학교 등 내부의 많은 교육과 토론 과정을 통해 산별교섭의 지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틀을 짰다. 즉,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먹고살기 위해 반드시 자본가를 만나야 하고(고용협약), 지정된 장소에서 일하면서 먹고 살 만큼의 생계비를 받아야 한다(임금협약). 하지만 일도 너무 많이 하면 죽기 때문에 죽지 않을 만큼 일해야 한다(노동과정협약).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취업해서 건강하게 일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바로 산별노조가 산별교섭을 통해 고용, 임금, 노동과정 이 세개의 범주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보건의료 노동자의 경우 의료 공공성 강화와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특수한 공공적 역할 때문에 보건의료 영역이 하나 더 추가되어야 하고(보건의료협약), 마지막 ‘산별기본협약’은 앞의 4개 영역을 묶어주는 초석 역할을 한다. 이상에서 산별노조는 5개 의제를 가지고 산별교섭을 진행하여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나아가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지는 대안세력으로 거듭나자는 것이 산별 5대 협약의 틀을 짠 기본 문제의식이었다.

작년 산별협약 논쟁을 발전적으로 승화시켜 총 20개 항, 55개 조항으로 구성된 산별 5대 협약 요구안은 3월3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장 2조 철폐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면서 탈퇴한 서울대병원지부의 태도는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요구안 확정과 함께 투쟁기금으로 조합원 1인당 6만4천원(민주노총 미조직기금 1만원 포함) 을 결의하고 투쟁 채비를 마쳤다. 산별 5대 협약 요구안 확정 과정은 작년 10장 2조 논쟁을 전 조직적 논의로 발전시키고 통합시켜 낸 산별적 투쟁의 작은 진전이었다.

초반 사용자단체 구성, 후반 직권중재라는 암초

2년차 산별교섭은 4월7일 노사대토론회를 거쳐, 4월12일 노사 대표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막이 올랐다. 교섭 기조는 작년에 이어 과도기적으로 2단계 교섭이 아닌 산별-지부 동시교섭 동시타결을 추진하였다. 매주 화요일마다 진행된 산별교섭은 초반 순항을 예고하다 노무사 위임이라는 암초를 만나 다시 파행을 거듭하게 된다. 노조는 노무사 위임이 작년 합의사항인 사용자단체 구성과 무관하며, 특히 노무사라는 제3자는 4만 조합원 나아가 40만 보건의료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산업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 결코 사측의 대표가 될 수 없고, 어떠한 책임성과 결정권이 없는 단순 대리인 내지는 연락병에 불과하다는 판단에서 대표로 인정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동안 기업별 노사관계에서조차 반드시 병원장이 교섭에 참석한 노사 교섭 관행을 볼 때 현장 정서상으로도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쟁점은 파업직전 사측이 스스로 노무사 위임을 철회하고 병원장 중심으로 대표단을 구성하기까지 노사간 최대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무려 3달동안 교섭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공회전만 반복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단순한 공방을 넘어 산별교섭에 있어 7개 병원 특성을 대표하는 사측 대표단 구성방안과 나아가 완전한 사용자단체가 어떤 경로를 통해 만들어져야 되는지 노사간 또는 사측 내부에서 집중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다. 

교섭은 초반기 노무사 위임 철회와 사용자단체 구성 방안이 주 쟁점이었다면 후반기는 외압시비에 따른 직권중재 회부로 인해 노정간 대립과 노사자율교섭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막판에는 사측이 산별교섭에 나름대로 적극 참가하면서 5대 산별협약의 내용을 둘러싼 구체적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작년 산별교섭단의 현장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올해는 별도로 교섭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리고 그 산하에 산별교섭 정책지원단을 구성하고 특성별 현장대표를 실무교섭단에 보강한 것은 산별교섭의 현장 결합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다만, 작년 노사가 합의한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 특별위원회’가 정부(보건복지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실무접촉만 한 채 정식으로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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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의료노조의 2005년 산별교섭 - 출처 : 매일노동뉴스 ]

지역거점 현장 파업이라는 새로운 전술

작년에 산별교섭이 최대 쟁점이었다면 올해는 산별투쟁이 최대의 화두였다. 즉 처음 시작된 산별교섭과 산별적 노사관계를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기업별 분산된 투쟁을 넘어 4만이 하나되는 위력적인 산별총파업투쟁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교섭은 상견례이후 6월21일까지 11차례 진행되었지만, 1억5천만원에 노무사를 채용하여 교섭대표로 내세운 사측의 산별교섭 파탄음모로 말미암아 교섭석상에서 단 한차례 요구안 심의조차 하지 못했다. 보건의료노조는 6월22일 전국 113개 지부 33,352명 조합원의 이름으로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서를 접수하였다. 그리고 6월29일부터 7일1일까지 실시한 산별총파업 찬반투표에서 재적 조합원 33,352명 중 27,142명(투표율 81.4%)이 투표에 참가하여 18,795명 찬성(69.3%)으로 총파업이 가결되었다. 정세의 어려움을 반영하여 작년보다는 다소 낮은 투표율과 찬성율을 보였다.

파업 가결 이후 산별 투쟁의 위력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파업전술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전면파업과 파상파업’, ‘상경집중파업-지역거점파업-현장파업’전술 등의 장단점이 다양하게 검토되었다. 작년이 ‘중앙상경 무기한 파업전술’이었다면 올해는 새로운 전술적 변화가 적극 논의되었다. 작년 중앙 상경 파업전술이 높은 정치적 상징성으로 사회여론화에 유리하고,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높이는 데는 기여한 반면, 현장 사용자에게 직접적 타격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 속에 올해는 ‘지역거점 현장 파업’전술을 택했다. 시기도 병원의 특성을 고려 곧 바로 무기한 파업 돌입보다는 하루 경고파업과 경과기간을 둔 2단계 전면 파업 전술을 시도하였다. 물론 이 전술은 직권중재 회부라는 예상 밖의 탄압을 받으면서 투쟁전술이 일부 유보되고 엉켜버렸지만, 새로운 산별 파업전술 논의를 촉발시켰다. 

파업 돌입 이전에는 현장 동력을 끌어올리고, 노무사 위임을 철회시키면서, 사용자단체 구성을 압박하기 위해 6월14일 현장 사립대병원 지부장들의 선도적인 집단 삭발 결단식이 있었고, 이어서 7월15일 본조 임원, 지역본부장들의 집단 삭발투쟁(여성간부 10여명 포함)이 이어졌다.

노사 모두 반발했던 직권중재

노조가 7월8일 파업 돌입을 선언하자, 작년 산별총파업의 위력에 놀란 정부는 자신들이 공약으로 제시했던 직권중재 철폐를 스스로 부정하면서 보건의료노조 파업을 직권중재에 회부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노조는 예정된 7월20일 전면파업을 차질 없이 준비하기 위해 하루파업을 일단 유보하였다. 하지만 전야제 때 8천의 대오가 집결하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직권중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7월20일 ‘직권중재 철폐, 5대 협약 쟁취’를 내걸고 전면 파업에 돌입하였다. 이에 정부는 지부 타결을 유도하면서 7월22일 중재재정안을 확정하였다. 무덤 속에서 부활한 직권중재는 회부와 중재재정을 통해 노사를 오가면서 서로 웃고 울렸다. 하지만 직권중재는 노사자율교섭을 가로막으면서 노사 양측으로부터 동시에 효력 무효 행정소송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사측은 중재안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성명서 발표와 중노위 항의방문, 8월5일 사측 중재안에 대한 행정소송까지 제기하였다. 사측은 중재재정안에 대해 예상 밖의 높은 임금인상안과 생리휴가 확대에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노조 또한 직권중재가 노사 자율타결을 근본적으로 가로막으면서 산별적 원칙과 기준도 없이 차등적인 임금 인상안을 제시하고, ‘2005년부터 주5일제 전면 실시’를 합의한 2004년 산별합의를 무시한 채 토요 외래진료를 일방적으로 허용한 점, 산별교섭의 미래를 여는 고용안정협약, 보건의료산업협약, 산별기본협약 등 3가지 협약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직권중재제도가 노사자율교섭을 파탄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산별교섭의 전진을 가로막고 나서면서 병원 노사관계를 두 번 죽이고 있다. 사측은 최근 직권중재안에 대한 불만으로 산별교섭 불참과 함께 지부교섭에 대해서는 동시에 교섭을 거부하고 있어 교섭은 막판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2005년 산별교섭의 성과

올해 보건의료노조의 2년차 산별교섭 투쟁은 최근 안팎의 산별운동에 대한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또 한 걸음 나아갔다. 구체적인 성과와 의미 있는 변화를 살펴보면, 첫째, 산별운동에 있어 산별협약안에 대한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 작년 10장 2조 논쟁을 거치면서 산업정책 요구와 임단협 요구를 포괄하는 산별 5대 협약의 틀을 만들었고 이를 교섭대상으로 올려 실질적인 산별교섭을 진행하였다. 

둘째, 사측의 노무사 위임을 철회시키면서 병원 대표자 중심의 단일대표단 구성과 향후 실질적인 사용자단체 구성을 앞당겼다. 사측은 기존의 병원협회에 대한 불신과 갈등으로 협회를 배제한 채 제2의 협회창립 내지는 현장 중심의 사측 대표단 구성 논의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사측 스스로도 이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일찍 사용자단체를 구성해서 노조에 대응하는 편이 낫겠다는 평가가 나오고있다.

셋째, 예상치 못하게 직권중재에 회부되었지만,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불법파업’을 감수한 직권중재 철폐투쟁으로 다시한번 직권중재 제도의 문제점과 노사자율교섭의 필요성을 사회쟁점화 시켰다. 이 투쟁은 하반기 정부의 노사관례 로드맵 추진 대응 과정에서 직권중재 완전 철폐투쟁으로 이어갈 것이다. 

넷째, 작년 합의를 어기면서 노무사 위임을 주도하고 직권중재에 의존해서 산별 노사관계를 강경 일변도로 몰고 왔던 사측 강경 세력들이 사측 내부 비공식 책자 폭로 파문과 사측에게 불리한 중재안,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입지가 축소되어 이후 새로운 산별 노사관계로의 변화 가능성을 보이고있다. 

다섯째, 산별교섭답게 최근 보건의료산업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있는 ‘무상의료’ 등 산업적 의제를 사회쟁점화 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여섯째, 산별교섭 투쟁으로 강고한 전선을 구축하면서 특히 7월 20일 산별파업과 지부파업으로 공동투쟁을 전개한 지부의 경우에는 지부교섭에 있어 유리한 타결 국면을 이끌어 냄으로써 현장 현안문제와 단협 요구를 함께 해결하는 단초를 마련했다. 
일곱 번째, 산별 파업전술이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작년 중앙집중 상경파업이 아닌 지역거점 현장 산별파업, 전면 무기한 파업이 아닌 하루 파업과 무기한 파업을 2단계로 나눈 파업전술 등이 새롭게 모색되면서, 산별파업투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산별교섭 돌입 전 산별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였던 전남대병원 원내하청지부 파업투쟁이 45일만에 승리를 쟁취,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지금은 성모자애병원 영양과 용역도입 저지투쟁을 통해 구조조정 저지투쟁으로 산별적 힘을 집중하면서 산별투쟁의 위력을 이어가고 있다. 

산별협약의 실질적 효력확장

산별교섭 2년 차 투쟁을 경과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노조 내부는 물론 노사관계도 어느새 성큼 산별 바다의 한복판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조직이 산별일 때 논쟁도, 사업도, 투쟁도 자연스레 산별적 고민을 하게 된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제 병원에서 개별 사용자는 없다. 개별 노조가 없는 것처럼. 형식만 안 갖추고 있을 뿐 사측도 사용자단체 소속 하나의 병원이 되고 있고 노조도 보건의료노조 산하 지부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산별교섭 2년차를 경과하면서 병원 노사관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산별이 바로 대세가 되고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큰 변화는 산별교섭의 영향력 확대이다. 이미 작년 산별합의서가 전 병원계 주5일제 도입의 기준이 된 것처럼 올해 산별교섭의 진행 경과와 주요 노사합의사항은 보건의료노조 이외 사업장 교섭과 노조가 없는 병원까지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교섭이 끝나면 노사를 막론하고 산별교섭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교섭 결과에 대한 문의가 폭주한다. 법적으로 산별협약 효력 확장 조항이 없을 뿐이지 실제로는 상당한 수준으로 산별협약 내용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별 협약 효력 확장제도가 도입되어야 하는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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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권중재라는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던 보건의료노조 2005년 산별교섭 ]

쟁점과 한계, 그리고 과제들

2년차 산별교섭에서 나타난 쟁점과 한계, 그리고 이후 과제를 살펴보면, 첫째, 현장 조합원과 함께하는 산별운동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산별로 무게중심이 옮겨갈수록 구조적으로 중앙과 현장의 괴리, 현장 공동화 현상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조합원들은 작년 산별파업에 따른 조직적 피로도와 매년 반복되는 파업으로 지쳐 있고, 현장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과 안정심리, 여전히 남아있는 기업별의식 등으로 그 어느 해보다 투쟁 참가에 어려움을 나타내었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산업별 노사관계에 비해 노조의 조직체계와 투쟁규율, 간부 조합원들의 의식 변화가 정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들에게 산별적 연대를 위해 정규직 특권의식, 기업별의식, 기득권의 포기를 강조하지만 산별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쉬운 문제가 아니다.

둘째, 사측의 산별적 연대에 노조의 산별적 대응력이 밀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산업별 노사관계로의 변화에 따른 산별투쟁 전술이 아직 세워지지 않고 있다. 산별적 노사관계에 있어 사측은 가장 강경 기조를 가진 그룹이 교섭을 주도하게 되는 반면, 노조는 상대적으로 전체가 함께 가기 위해 조직력이 다소 떨어지는 지부까지 포괄하는 투쟁기조와 일정을 잡다보니 결국 대응이 늦거나 전체 투쟁 수위가 하향식 평준화되면서 산별적 돌파가 어려워지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 주동력인 대병원의 경우 이번에도 선봉대 역할을 했지만, 늘 우리만 앞장서서 투쟁한다는 피해의식과 타 지부와의 투쟁수위 맞추기 등으로 개별 노사관계를 뛰어넘는 산별적 투쟁에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셋째, 2년차 산별교섭에서 본격적으로 교섭내용에 대한 공방이 시작되면서 산별협약과 지부협약과의 관계설정, 이중쟁의, 의제 배분, 산별 임금인상 방식 등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특히 임금교섭 방식은 노조가 ‘+@ 타결’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이중교섭과 이중파업의 우려 때문에 산별교섭에서 마무리 할 것을 주장하면서 특성별로 임금안을 최종 제시했다. 결국 직권중재 때문에 노사 자율타결이 일시 좌절되면서 지부별로 임금이 타결되고 있지만, 이후 본격적인 산별 임금교섭을 위해 노사가 올해의 평가를 바탕으로 더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교섭내용 면에서는 현재 정규직 조합원의 이해관계와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조정하는 문제, 기존의 임단협 중심의 교섭을 산업정책과 고용중심의 교섭의제로 바꾸는 문제가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하나의 교섭구조를 유지하되 다양한 병원 특성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교섭 방안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산별협약 정책이 대대적으로 보강되어야 한다.

넷째, 새롭게 재편되는 산별 노사관계에 걸맞게 노조 내부 조직운영과 체계가 산별적 운영시스템으로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내부의 모든 기업별 활동 관행과 잔재를 일소하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밖으로는 산업 차원의 공동 임금제도, 협약 효력 확장제도와 사용자단체 구성촉진 법, 사회 공공성 강화 등 기업을 뛰어넘는 임금, 고용, 사회복지 제도, 중층적 사회적 교섭구조를 동시에 갖추어 나가지 않을 때 현장에서 산별노조만의 산별운동으로는 더 이상의 질적 변화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또 한 걸음 전진을 위해 구동존이를 생각한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이전의 기업별 체제에 비해 ‘격세지감’이지만, 앞으로 완성된 산별노조로 갈 길을 떠올리면 ‘첩첩산중’이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실험은 아직 진행형이고 걸음마 단계이다. 그 자체로 아직 성공이냐 실패냐를 단언하긴 이르다. 하지만 2004, 2005 산별교섭 투쟁과정에서 나타난 시행착오와 한계를 잘 극복해 나간다면 2006년은 가장 산별적인 요구로 가장 산별적인 교섭과 투쟁을 하면서 실질적인 산별교섭 원년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최근 어느 노동 월간지에 ‘노동운동 위기론과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반성’이라는 글이 눈에 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지난 10여년 동안의 산별노조건설운동이 사실상 실패한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반성속에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펴고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최근의 이런 모습들이 오류와 실패라기보다는 다양한 실험과 모색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장통으로 바라 보고싶다. 

최근 한국의 산별운동은 1990년대 초 사무금융연맹의 공동교섭 추진에서부터 1994년 과기노조의 소산별노조 건설, 1998년 보건의료노조 산별노조 건설, 2000년 금융노조, 2001년 금속노조 건설, 산별 3조직의 다양한 형태의 산별교섭 추진, 최근 운수산별노조를 지향하는 운수연대 결성 등으로 그 흐름이 이어지면서 창조적 모색기이다. 따라서 섣부른 평가는 아직 이르다.

산별운동의 방향을 세우는 데 있어 외국의 사례를 들이밀면서 “이것이 원칙이다”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한국적 다양한 사례를 검토하면서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초유의 세계사적인 시도인 만큼 애초 산별운동이 추구하던 노조의 사회적 역할 증대와 산업정책에 대한 개입력 확대, 노동자 계급 내부의 연대와 평등 실현, 현장 조직력 강화 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실천적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은 외국 사례와 같을 수도 있고 새로운 방법론이 나올지도 모른다. 교조적으로 어디가 이러니깐 이렇게 하자는 식으로 접근하지는 말자. 현실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라는 식으로 평론하지 말자. 실제로 산별노조로 조직 전환을 하면서 우리 조직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정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처음 가는 길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실천보다 더 좋은 학습은 없으며 진리의 판단기준도 실천이다. 큰 원칙과 방향을 세우고 뛰어들자.

최근 산별논의에서 우려스러운 점은 지난 산별운동의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모이는 산별운동이 아니라 각개약진하는 산별운동, 차이만 부각시키는 산별 운동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이와 갈등을 인한 대립과 반목을 확대 재생산하는 논쟁이 아니라 “같은 점을 먼저 찾아내고 다른 점은 일단 그대로 접어두자”는 구동존이(求同存異) 철학을 산별운동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서로의 차이점은 남겨두고 같은 점부터 합의하면서 산별운동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원칙적 주장만 하지말고, 평론만 하지말고 지금 우리 현장에서 산별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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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2005 산별중앙협약 5대 요구
 - 5대 협약 20개 조 55개 조항으로 구성됨
?? 산별기본협약 
1. (유일교섭단체) 2. (협약의 적용범위와 우선 적용)  3. (사용자 단체 구성)  4. (산별적 노조활동 보장) 5. (노사 실무위 구성)  6. (유효기간) 7. (자동연장) 
?? 보건의료협약 
1. 의료 공공성 강화와 보건의료산업 발전을 위하여 노사가 공동으로 정부 청원 ; ① (의료 시장화 반대)  ② (보건의료예산 확대) ③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및 단계적 무상의료 실현) ④ (국가 공공보건의료체계 구축) ⑤ (주5일제 전면 시행)  ⑥ (의료기관 서비스평가 제도 개선) 
2. 병원은 환자중심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하여 다인병상 70%이상 운영 등 요구
3. 의료기관의 공공적 역할을 강화하고 사회적 기여를 확대하기 위해 노사 공동 의료지원단 구성, 사회사업비 예산 확보 요구
4.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특별위원회’ 구성·운영
?? 고용협약 
1.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도입 제한) 2. (비정규직 고용보장) ① (직접고용 비정규직)  ② (간접고용 비정규직) 3. (비정규직 노조 활동 보장) 4. (구조조정 저지와 고용 안정)
?? 임금협약 
1. 생활임금 확보와 임금격차 해소 요구  ① (정규직) 9.89% 임금 인상 ② (비정규직 추가 인상) 
2. 산별 연대임금 요구  ① 보건의료산업 최저임금제 확대 (최저임금)월 825,509원(적용대상), (적용시기), (적용기준), (월소정 근로시간), (저하금지), (자료제공)
  ② 2004년 합의한 보건연대기금 조성을 위해 노사 공동갹출과 운영, 정부 지원 요청 
3. 산별임금체계 마련을 위해 2005년 9월부터 노사 공동으로 ‘산별임금체계연구위원회’를 구성, 운영
?? 노동과정협약
1. 온전한 주 5일 근무제 전면 확대 시행 요구(온전한 주5일 근무제 정착),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주5일제 개선 요구) ① 인력충원 ② 생리휴가 ③ 휴가보상 ④ 월 소정 근로시간 ⑤ 변형근로 및 노동강도 강화금지 ⑥ 적용범위
2.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노동안전 보장으로 건강권 확보 (노동자 건강과 산재 예방 대책), (사립대 병원 재해보상 제도 개선), (산재지정병원의 의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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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