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산별노조 현장간부로서 살아간다는 것

노동사회

위기의 시대, 산별노조 현장간부로서 살아간다는 것

편집국 0 2,725 2013.05.19 01:21

금속노조가 출범한 지도 벌써 4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금속산업연맹시절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여러 가지 논란 끝에 산별 전환 결의를 하였고, 내가 속한 동양엘리베이터노동조합은 이보다 앞서 단일자본에 속해있는 3개의 노동조합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산별노조 전환결의를 한 바 있다. 그 후 짧지 않은 기간동안 노조, 지부, 지회 할 것 없이 많은 난관과 다양한 일들을 겪었고, 그 속에서는 항상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이게 바로 산별노조의 위력이구나!”

연맹시절에는 총파업을 결의해도 총파업의 수준은 사업장마다 제각각이었다. 중앙-본부-단위사업장으로 이어지는 논의과정이 복잡하고, 또 단위사업장에서 현실 조건을 이유로 파업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변칙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기업별노동조합들의 연합체인 연맹은 힘있게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이런 와중에 단위사업장들 역시 고립된다. 그리하여 조합원 대중들을 사업의 주체로 세우지 못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금속노조는 본조-지부-지회로 이어지는 단일한 집행체계를 바탕으로 힘있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예전 같으면 대중집회 때 심심찮게 들리던, “왜 우리 사업장만 전체 인원이 참여해야 되느냐”하는 볼멘 목소리가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에서 몸에 밴 습관이 조직형태가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조합원들의 기업별의식이나 단위노조에서 집행의 관성들은 특히 임단투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또, “아, 이게 산별이구나”하고 느끼는 것 중에서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일상활동의 중심이 단위사업장이 아닌 지부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실제로 경험한 것이 바로 2001년 12월12일 세원테크에서 열린 충남지부 총파업이었다. 그 이전에도 충남지역 수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깃발을 세우고 뺏기고 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투쟁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지역 그리고 단체의 총파업은 성사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2001년 2월8일 출범한 금속노조가 지역에서 처음으로 총파업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는 조합원들에게 “이것이 바로 산별노조의 위력이구나”라는 인식과 자심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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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금속노조 파업찬반투표 - 출처 : 금속노조 ]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연맹시절과 비교하면 감히 상상 못할 일들이 이제는 현실로 다가오면서 조합원 개개인들마다 자신감이 넘쳐 흘렀던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직된 노동자의 힘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자신감이 본조와 지부의 사업을 집행함에 있어 높은 참여도를 갖게 하였던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헌신적인 활동가, 그러나 너무 많은 사업

그동안 금속 산별노조는 과거 기업별 노조체계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많은 사업을 통해 많은 성과를 일궈냈다. 산별교섭구조(중앙교섭, 지부집단교섭, 사업장보충교섭)를 유지하고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일상활동의 집중과 다양한 사업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결실은 조합원 대중들의 노력, 특히 현장간부들의 헌신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난 2002년의 경험이 그러했다. 당시 이해남 열사, 이현중 열사 등 이른바 ‘열사정국’을 맞이하여 수많은 집회들이 개최됐고, 이를 위해 현장간부들이 정말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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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른 하루파업을 벌이고 있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지회 - 출처 : 매일노동뉴스 ]

매주 지부운영위원회에 한 번 참여하면, 결정하고 수행해야 될 사업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 노동계가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노출된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과거와 달리 수행해야 할 사업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열심히 해도 사실 모든 사업을 수행하지는 못한다. 이렇듯 지부에서 현장간부들에게 매주 사업이 떨어지고, 거기에 자신이 속한 사업장 현안문제까지 겹치면 솔직히 어떤 때는 힘에 부친다. 

그런데 현장간부들에게 회의 자리에서 지부사업 집행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이 요즈음은 참 힘들어졌다. 일상사업 집행과정에서 쌓인 현장간부들의 피로를 현실적으로 풀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간부들이 주어진 현장의 일을 하면서 지부 일도 충실히 한다는 것은 많은 헌신과 인내, 그리고 투철한 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간부층이 두텁지 못하다.

올해 금속노조 중앙교섭이 금속산업연맹 선거 등의 영향으로 작년보다 좀 늦게 시작됐다. 그리고 교섭과정에서 사용자들이 작년 합의사항을 불이행하면서 교섭이 파행으로 진행되었다. 이로 인하여 임단협이 상당부분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지회 보충교섭도 어려움이 많았다. 

사실 내가 속한 지회현장에서는 교섭에 대한 불만들이 줄곧 제기되고 있었다. 제일 처음에도 이야기했듯이 티센크루프동양엘리베이터지회는 3개 노조가 통합돼서 만들어졌는데, 이것들이 3개 지역지부에 각각의 지회로 활동을 하고 있다. 때문에 각각 지부의 상황에 따라 활동영역이 동일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왜 우리만 하느냐”하는 상대적인 불만이 존재하기도 한다. 조직체계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문제제기는 무척 어려운 부분이다. 매년 사업을 집행함에 있어 사업장 내부의 형평성을 맞추는 게 무척 힘들다. 금속노조가 중앙교섭과 지부집단교섭을 진행하면서 ‘임금, 노동조건, 노조활동’에 대하여 상향 평준화를 시킨 반면, 교섭체계의 안정화, 법적인 구속력, 강제력 강화 등은 아직 과제로 남겨져 있는 부분이어서 현장에서 바라 볼 때는 좀 답답한 마음이 든다. 

노동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날을 위하여

요즈음 노동운동이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실제 주변을 보면 일부 사업장들이 자본의 공세에 의해 노조를 탈퇴하고 가지 말아야 할 길로 돌아가고 있다. 또한 정권과 자본은 2007년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을 공고히 하기 위해 노사관계선진화방안(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대공장 노조에서 터져 나온 ‘비리문제’ 등은 현장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에 일부 영향을 줬다고 본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수록 흔히들 “나만 잘하면 되지”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기에는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경험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위기의 해법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사업을 준비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현장토론과 점검이 이이루어져야 조합원이 단결한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현장대중들과 현장간부들이 평소에 학습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체계를 어렵더라도 구축해야 한다. 특히 현장간부층을 지금보다 훨씬 두텁게 만들지 못하면 노조의 미래는 없다. 

향후 금속 산별노조의 완성을 위해서 현재 지지부진한 산별 전환결의에 좀더 박차를 가해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결단을 통해 금속노동자가 하나로 단결하여 산별협약을 쟁취하고 노동시장을 쥐락펴락할 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