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투쟁 어떻게 채울지 혼자 고민하지 않겠다

노동사회

비정규투쟁 어떻게 채울지 혼자 고민하지 않겠다

편집국 0 2,792 2013.05.19 01:40

지난 10월16일 전국비정규노동조합연대회의(전비연)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 활동 2년만에 준비위원회의 딱지를 뗐다. ‘대표자회의’에서 ‘노조연대회의’로 형식을 바꿔 새롭게 첫 걸음을 딛은 것이다. 무엇이 이런 전환을 자극한 것일까? 내부 집행력의 준비는 중요한 변수가 아닌 것 같다. 전비연은 예나 지금이나 임금 주고 상근자 한명 쓸 수 있는 여력이 안 된다. 

공식 출범의 가속페달을 밟은 것은 아마도 올해 특히 사내하청과 특수고용을 중심으로 봇물처럼 솟아오른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흘러 넘치는 절박한 비정규직들의 요구를 받아줄 ‘그릇’이 빨리 구체화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판단”이 조금은 성급한 첫 걸음을 자극했을 것이다.

전비연의 앞길은 그렇게 순탄치 않다. “자부심보다는 중압감을 더 많이 느낀다”는 구권서 의장의 말처럼, 해야 할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곳곳에서 분출했던 비정규노조 투쟁의 열기는 산별연맹의 뒷받침도 잘 받지 못하고 비정규노조들의 공동전선을 형성하지도 못한 채 자기 현장의 2중, 3중 울타리 안에 갇혀 사그라지고 있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비전을 형성하는 대안이라는 ‘비정규직 조직화 전략’은 아직 물질적인 토대를 갖추지 못했다. 게다가 류기혁 열사투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노동자 내부의 ‘균열’은 의지만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승리뿐만 아니라 패배의 아픈 경험들도 비정규직노동자들과 정규직노동자들이 함께 지향해야할 사회적 연대의 상을 좀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대리주의와 시혜주의를 극복하고 비정규노동자들이 주체로 설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좀더 깊이 고민하도록 만들고 있다. 지금은 그러한 성찰과 소통을 통해 비정규노조를 포함하여 우리 노동운동 전체가 새롭게 거듭나고 자기정립을 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누구보다도 힘겨운 싸움을 겪어온 비정규노동운동 주체들은 그러한 성찰과 토론의 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구권서 전비연 의장을 만나 전비연의 출범과 올해 비정규투쟁, 그리고 비정규조직화 전망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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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권서 전국비정규직노동조합연대회의 의장 ]

전국비정규노동조합연대회의의 체계와 구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십시오. 

우선 지역조직이 있습니다. 서울지역비정규노조연대회의(서비연)는 벌써 활동경력이 4년이 넘었고, 전국비정규노동조합연대회의(전비연)가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됐죠. 그 외에 부산에도 지역조직이 있고, 경기와 대구 등에서는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또 중요한 골간으로서 비정규 부문별 대책회의가 있습니다. 사내하청, 특수고용, 이주노동자, 공공부문비정규, 그리고 지금 준비중인 건설일용까지 대략 5개의 부문이 있네요. 아, 지역일반노조협의회까지 합하면 6개 부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참여 중인 노동조합의 수로 따지면 대략 50여개 정도 됩니다. 노조의 분담금은 분기별로 3만원에서 16만원 정도이고, 그 외에 후원해 주는 조직이나 개인들이 있는데 그걸 모두 합쳐도 그리 많은 액수가 못 됩니다. 때문에 급여를 받는 상근자도 없고요. 게다가 전비연은 연대체이다 보니까 활동이 많이 느슨합니다. 아직 재정구조나 사업내용이 안정적이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내부 상황이 이렇지만 현재 무수하게 터져 나오고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을 일단 담아놓을 ‘그릇’이 급히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조금 준비가 덜 된 채로 준비위원회를 떼고 정식으로 출범하게 됐습니다.     

준비가 덜 됐음에도 ‘준비위원회’를 뗀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최근 덤프, 화물, 레미콘 등 특수고용노동자와 기륭전자, 완성차 등의 사내하청노동자들 투쟁이 다양한 현장에서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업종이나 지역에 고립된 가운데서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죠. 이렇게 흘러 넘치는 절박한 비정규직들의 요구를 받아줄 ‘그릇’이 빨리 구체화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형식을 갖춰 공식 출범한 것입니다. 

전비연은 중앙에서 계획을 만들어 관철하고 하부로 지침을 때리고 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전비연의 활동방식은 거꾸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투쟁들을 어떻게 하면 공동전선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그 투쟁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죠. 따라서 대중적으로 안착하고 강화되기 위해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고 정말 채워가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비정규사업이라는 것이 기존의 체계 속에서 이뤄지는 부분도 있지만, 비정규노동자들의 실제 조건에 맞는 활동과 사업 중에는 기존의 산별연맹체계에서는 담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산별연맹체계가 담보하기 어려운 비정규사업이 구체적으로 뭡니까? 

그 부분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더 나가서 전비연 내부에서는 단 한번도 나온 적이 없는 제3노총이니, 비정규연맹이니 하는 이야기까지 꺼내며, 전비연이 현재의 민주노총 산별체계를 흩뜨리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동지들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기존의 산별단위 체계가 비정규노동자들의 요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거죠. 자발적으로 생겨난 전비연이라는 조직의 존재 자체가 그것을 입증하고, 그리고 예를 들어 덤프와 화물, 레미콘 등 특수고용노동자의 공동투쟁을 기존의 체계 어느 단위에서 기획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지금 전비연이라는 틀을 만들고 그것을 끌고 가는 힘은 구권서나 다른 전비연의 활동가들에게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비정규노조들이 정말로 서로에게서 갈급한 필요를 느껴서 모이는 것입니다. 또 오해를 해서는 안 될 부분이, 민주노총에 공식기구화를 요청하면서도 여러 번 말했습니다만, 전비연은 기존 산별체계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데 복무할 것이지, 스스로의 자기 완결적인 전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전비연을 과도적인 조직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과도적’이라기보다는 ‘임의의’ 조직입니다. 비정규직이 철폐되면 당연히 전비연이 없어지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어려울 것 같고…,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전비연이 자기 완결적 전망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입니다만, 기존 산별체계가 비정규사업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한다면?

저는 사실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돼서 전비연이 발전적으로 해산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기존의 체계가 비정규투쟁을 지원하면서, 사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그 투쟁의 주체임에도 이들을 주체로 세우기보다는 동원의 대상으로, 대리주의와 시혜주의의 시선으로 대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비연의 공식 출범은 이제는 비정규노동자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최소한 책임지는 자세로 임하겠다 이런 뜻이 있는 겁니다.    

어쨌거나 민주노총 비정규사업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을 텐데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공식기구화를 요청했으니까, 전비연도 이제 민주노총 골간체계 어딘가에 들어가는 것이겠죠. 따라서 전비연의 활동이 기존 산별단위 체계와 배치되거나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상승하는 방향으로 복무해야 하는 게 옳습니다. 

어쨌거나 바람이 있다면, 예전에는 열린우리당 점거투쟁이라든가 타워크레인 점거투쟁에서처럼 비정규노동자들이 판을 먼저 벌려 놓으면 민주노총이 지원해주는 형식이었는데, 이제는 투쟁을 같이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에는 비정규직들의 선도투쟁을 담을 수 있는 시스템이 민주노총 내에 없었지만 이제는 어쨌건 전비연이라는 그릇은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그리고 최근에 집회 가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민주노총 집회 참여자 대부분이 비정규노동자들입니다. 이 비정규노동자들을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의 주체로 올바로 세워내야 전체 노동운동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부분을 전비연과 기존의 산별단위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가겠다는 것이겠죠?

그렇죠. 그런데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문제 해결을 위해 총파업을 조직한다고 했지만 비정규노조들은 정규직노동자들이 이걸 정말 자기 문제로 받아 안고 투쟁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불안은 현대자동차와 GM대우 창원 등 여러 곳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났죠. 또 한편으로 비정규직노조들은 총파업을 하건 말건 상당수가 현안으로 계속 싸우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들은 자기 현장에만 고립 분산된 것이고, 시기를 집중한다든지 생존권 요구를 넘어 공동의 정치적 요구를 내걸든지 하는 식으로 공동전선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은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일차적으로 단체협약이나 일상활동조차 없는 비정규노조들의 불안정한 조건이 작용한 것이었죠. 

어쨌거나 이처럼 비정규직들의 투쟁은 노동계급 내부에서부터 고립되고 어려운 조건에 있습니다. 그런데 비정규노동자들의 자각과 집중을 끌어내고 지원해야 할 전비연의 집행력은 매우 초라하고, 움직이지 않는 정규직들을 설득하고 지도해야할 산별연맹은 조정자 역할에 머물 뿐 적극적인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상호작용’이라고 하기가 뭐한 거죠. 이런 부분을 넘어서기 위해서, 전비연부터 적극적으로 사회연대 전략을 펼쳐가려고 합니다. 폐쇄된 형태로 우리끼리 어쩌고 하는 게 아니라 총연맹, 산별단위, 단체 등과 다양한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특히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에 대중토론회를 집중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사업에서 지금껏 나타난 각 주체들의 역할과 오류를 솔직하게 나누고 비판하고 비정규공동투쟁전선을 만들기 위해 주체들이 어떻게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들을 중심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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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6일 열린 전국비정규직노동조합연대회의 출정식 - 출처 : 민주노총 ]

올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투쟁 등에서 보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올해 경험을 따지고 보면 현대자동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사실상 서로를 대상화시킨 겁니다. 동지는 무슨 얼어죽을 동지입니까? 투쟁의지가 별로 없는 정규직노조는 어떻게 하면 ‘면피’나 할까 하는 수준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공동투쟁에 임했던 거고, 비정규직노조도 정규직노조를 어떻게 하면 못 도망가게 하고 투쟁에 이용할까를 중심으로 고민했습니다. 비정규직노조는 힘이 약하니까 비판하면서도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는 거죠. 

그런데 정규직노조가 이런 비정규직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비정규노조가 독자투쟁을 못할 때는 자기 투쟁도 못하면서 연대해달라는 거냐고 그러고, 비정규직들이 독자투쟁을 하려고 하면 공동결정 원칙을 위배한다고 난리치고…. 어쨌든 군부독재 시절부터 성장해온 정규직노조와 이제 막 시작한 비정규직노조를 비교하자면 대학생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위치입니다. 설사 백번 양보해서 비정규직노조의 태도가 ‘투정부리는 것’이었다고 치더라도, 이걸 감싸주고 올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정규직노조가 갖고 있는 사회적 위치를 봤을 때 올바른 태도잖아요. 

여기에 대해 정규직이 보여준 행동은 무척 실망스럽습니다. 그리고 물론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끌고 가지 못한 산별연맹 지도부의 의지와 역할에 대해서도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비정규문제’는 정규직들이 겪는 ‘구조조정 문제’와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조조정을 막아내지 못했으니까 비정규직이 늘어난 거죠. 그런데 정규직이 구조조정 투쟁하느라 파업할 때는 비정규직들이 가서 공장 돌리고, 비정규직들이 자기 문제로 싸울 때는 정규직들이 가서 공장 돌리고…, 이게 무슨 자기들끼리 아둥바둥거리는 ‘지옥도’냐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서로 연대하지 못하면 모두 당한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한 공동 운명의 인식과 그것에 기반한 투쟁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각 주체들이 모여서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비판받을 부분은 비판받으면서 지금부터라도 이에 대한 답을 함께 진지하게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히 그러한 과정에서 산별연맹의 지도부가 조정자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소 현장의 반발을 거스르더라도 지도력을 강하게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중토론회가 그런 장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거죠.            
  
여러 가지 정황상 하반기 비정규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비정규노조운동은 여기서 무엇을 얻어내야 할까요?

지금 비정규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하셨는데, 저는 구체적인 정황은 아직 잘 모릅니다. 그리고 전비연의 입장이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것에 대해 솔직히 별로 기대도 없었습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비정규노동자들의 어려운 경제적 조건개선을 법으로 보장받는 것부터 챙기자, 노동기본권을 요구하는 것은 관념적인 것 아니냐 그런 것에 매달리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 것 아니냐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용이나 임금 등의 경제적인 조건을 보장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비정규노동자들이 빼앗긴 헌법의 권리를 다시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안에 명시한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사용자들이 지킬 리가 없지 않습니까? 가장 확실한 것은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즉 비정규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서 스스로 전망을 열 수 있도록 노동기본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구로공단 기륭전자 투쟁에서 보이는 것처럼 비정규노동자들이 경제적인 요구를 하려고 해도 그 통로인 노조를 만들자마자 날려버리는 일이 되풀이 될 거라는 것이죠.

현재 상황에서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재정이 많이 중요합니다만 그건 두 번째 문제고요. 우선 노동운동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이 바뀔 때가 됐습니다. 아니 진작에 바꿨어야 했죠. 미국노총(AFL-CIO)이 조직률의 위기를 겪으면서 중앙재정의 20%, 지부재정의 50%를 신규조합원 조직사업에 썼어요. 그리고 미국서비스노조(SEIU)는 2년 사이 180만명을 새롭게 조직시켰죠. 우리는 미국 노동운동이 실리적 보수주의다 뭐다 비판을 합니다만, 사실 그걸 비판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잘하고 있냐는 거죠. 지금 우리도 전략조직화사업을 하기 위해 50억원 조직활동가양성기금을 모으고 있습니다만, 잘 안 되고 있죠. 한 3억원이나 모였나…, 그렇지만 50억 기금모금은 이후에라도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업은 돈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의 마인드를 바꿔 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더디 가더라도 목적의식을 갖고 끈질기게 추진하는 게 지도부의 몫일 겁니다.    

민주노총 전략조직화계획에 따라 양성되는 조직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전략조직화라고 해서 노조가입원서 들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교회에서 교인 전도하듯이, 세일즈맨들이 사람 붙잡고 이야기하듯이 마구잡이로 해서는 성과를 많이 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현재 우리 조건에서 비정규직들을 조직할 때는 이후 전략적인 투쟁계획을 염두에 깔아두고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냥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비정규노조는 살아남기 무척 힘듭니다. 지금 비정규노조 투쟁이 진행되는 경향을 보면, 노조가 만들어지자마자 사용자가 계약해지, 즉 해고를 해버리고 곧바로 공권력이 들어와서 현장을 정리해버리고 있습니다. 영세기업 개별사업장 노동자들이 국가권력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말이 안 되죠. 힘을 모으는 조직화전략이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저는 향후 유일한 방안은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조직화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역일반노조와 산별노조가 비정규직 조직화에 적합한 경로라고 서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평가한다면?  

두 가지 경로를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상호보완하면서 시너지 효과 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저는 조직화의 중심이 지역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은 ‘지역’인데, 한 지역에서 각 산업별로 따로따로 분리해서 조직화사업을 하면 그게 잘 되겠냐는 겁니다. 지역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할 때는 지역이 중심이 되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전국에 걸쳐 있는 산별단위들은 그러한 과정에서 투쟁이 벌어지거나 조직을 체계화하는 과정에 개입해서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노동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자부심과 어려움을 말해주십시오. 

전비연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고서 자부심보다는 중압감을 훨씬 많이 느낍니다.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무겁게 느껴지고,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는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 고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과 요구를 담을 그릇은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무엇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 것인지 전비연은 혼자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드러내놓고 개방적으로, 정파주의를 넘어서, 시작부터 폭넓은 사회적 연대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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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