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

노동사회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

편집국 0 3,100 2013.05.19 01:35

공공연맹 산별기획단은 올해 5월, 공공연맹내의 조직 전환이 아닌 새로운 공공산별노조 건설, 비정규직 조직화를 중심에 두는 산별 건설,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하는 골간체계(업종본부는 수평적 연대단위 수준으로), 공공연맹 전 조직의 2006년 하반기 일시 산별노조 전환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산별건설의 원칙을 발표하였고, 8월말 “(가칭) ‘공공산별노조’ 건설 관련 토론(안)”을 발표했다. 토론(안)의 핵심은 역시 지역본부 중심체계와 기업별지부의 불인정이다. 

공공연맹의 산별건설 방안은 첫째, 연맹 안팎의 다양한 공공서비스부문 연대를 포괄하는 공공연맹의 특수한 조직 구성을 이유로, 둘째 산별건설 방안에서 제시된 주목할 만한 건설원칙과 경로로 인해, 셋째 최근 서울대병원지부 가입을 둘러싼 파장으로 인해 비상한 관심과 논란을 동시에 수반하고 있다. 공공연맹 산별건설 방안과 관련한 관심과 쟁점은 첫째, 공공연맹이 2006년 하반기에 일시에 하나의 산별노조로 전환할 수 있는가, 둘째, 공공산별노조의 조직구조상 지역본부 골간체계와 기업별지부 불인정이 과연 타당한가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공공산별노조로의 일시전화? 글쎄…

아직 가보지 않은 산별건설의 여정에서 공공산별노조 건설이 산별기획단의 방안대로 힘있게 추진될 수 있을지는 아직 누구도 단언하기 힘들다. 그러나 공공연맹의 산별노조 건설 토대와 조건을 돌아보면 일시에 하나의 노조로 전환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논의의 초점을 이행경로 및 구획 정리의 측면, 공공연맹 내부 업종 노조들의 산별 전환 토대의 측면으로 나누어 접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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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열린 산별교섭 정착을 위한 산별노조 공동기자회견 ]

먼저, 공공산별노조의 이행경로 및 구획 정리와 관련하여 공공연맹이 지닌 특수한 구조를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공공연맹은 내부에서도 다양한 공공서비스 업종을 포괄하고 있는 데다 민주노총의 여타 산별조직과 연대를 필요로 하는 업종이 적지 않다. 운수부문, 에너지부문, 사회보장(의료 포함)부문, 지자체 공공시설 부문은 이미 연맹의 틀을 넘는 연대 흐름을 구축하고 있고, 연맹조직 자체가 공룡처럼 군림하는 정부와 직접 교섭하기 위해 ‘공공연대’(공무원노조, 전교조, 보건의료노조, 대학노조 등)를 조직해야 하는 처지다. 한편, 공공산별노조가 지역본부 골간체계로 전환될 경우 가장 직접적으로 부딪힐 것으로 예상되는 지자체 공공시설 부문은 거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수준의 조직화 경쟁 앞에 서 있다. 그러나 공공연맹은 불행히도 그 이름값을 할 만한 주도적 위치에 있지 못하다. 이러한 현실은 결과적으로 공공연맹 독자적으로 공공부문 산별노조 이행경로나 구획 정리를 쉽사리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현재 독자 추진에 따른 위험 징후 역시 일부(운수분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둘째, 공공연맹 소속 노조들의 산별 전환 토대를 보면 동시에 하나의 산별노조로 이행할 경우에 발생할지 모를 우려스런 결과를 예견케 한다. 공공연맹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공공서비스 부문 업종 조직들의 분과 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업종 분과가 일상적 연대와 공동교섭을 통해 지금까지 산별노조 건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업종 단위의 공동교섭, 공동투쟁 등을 통한 산별노조 전환의 토대가 취약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업종별 연대틀 자체를 청산해야 할 유물로 치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더구나 다른 산별조직처럼 하나의 단일한 산업, 업종으로 조직되지 못한 연맹은 지난 2000년부터 업종분과 중심의 사업과 투쟁을 통해 단결의 수준이 높고 공동투쟁의 경험이 많은 업종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산별 전환(소산별노조)을 하고있었다. 물론 현재 연맹에 존재하는 소산별 수준 업종노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2007년 복수노조 시대를 목전에 둔 현실 앞에서 수정이 불가피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단계별 전환의 역사적 흐름을 한순간에 부정하며 곧바로 일시 이행으로 선회하는 것은 말 그대로 현장의 동력없이 조직 외형만 산별로 전환하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지역본부와 업종본부, 정답은?

공공산별(안)의 조직체계를 보면, 공공산별노조의 조직구조는 지역본부를 골간체계로 하고, 업종본부는 한시적으로 수평적 연대(보조축) 수준으로 설정하며, 기업별지부는 인정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섭의 일차적인 주체는 지역본부로 하고 있다. 지역본부 골간체계의 핵심은 산별노조 건설의 목적을 ‘비정규직 조직화’에 둔다는 점이다. 

앞서 공공연맹은 다양한 공공서비스 업종이 혼재되어 있고 연맹은 이들 업종 조직의 일상적 연대와 공동사업, 공동투쟁을 근간으로 하여 유지되어 왔음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업종 분과가 일상적 연대와 공동교섭을 통해 지금까지 산별노조 건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후 산업·업종별 정책과 교섭구조 발전을 담보하는 산별노조의 완성단계까지는 꾸준히 발전시켜야 할 골간체계라는 점은 적어도 공공연맹 내의 활동가라면 누구도 쉽사리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공공산별노조가 완성될 단계에서는 지역본부 골간체계가 타당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산별노조의 이행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지역본부로의 섣부른 급선회는 거꾸로 대중적 산별노조운동의 실천과 발전 가능성을 놓치는 위험이 있다. 산별기획단장의 개인적 견해(9월21일자 매일노동뉴스 기고)에서는 교섭구조 측면에서도 지역본부 체계가 더 적합하다는 사례로 지하철과 지자체 공공시설 부문을 적시하고 있으나, 연맹 전체로는 지역단위 교섭과 연대틀보다는 정부 정책과 직접 맞닿은 산업·업종별 교섭구조와 연대틀이 훨씬 더 비중 높게 형성되고 있음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이제 기업별지부 불인정의 문제로 넘어가자. 공공연맹 내에는 철도, 발전, 가스, 정보통신 등의 기간산업뿐 아니라 산업지원(공항, 전기안전, 가스안전, 환경관리, 지적, 지역난방, 조폐, 관광, 중소기업진흥, 승강기안전 등)부문, 사회보장(사회보험,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장애인고용, 자활후견 등)부문, 경제단체와 출연기관 지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사업장이 산재한 조직이 즐비하다. 결국 기업별지부의 불인정은 지역본부 골간체계와 더불어 전국적으로 산재한 기업별지부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준의 산별노조의 조직구조가 아니더라도, 산별노조 전환을 준비하는 현장 단위노조 간부들은 기업별지부 재정의 50% 이상과 교섭권을 산별노조 중앙에 넘기는 기업별 기득권 포기라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이것도 모자라 아예 기업별 지부를 해체하라 한다면 산별노조 건설 노력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지역본부 골간체계와 기업별지부의 불인정이 기업별노조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산별노조를 부정하고, 비정규직 조직화 중심의 산별노조를 기획한데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단계에서 비정규직 조직화가 주요한 전략적 과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현존 노동운동의 틀을 완전히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모험주의적 발상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조직화나 투쟁을 산별 조직체계의 전환만으로 풀 수 있다는 것도 현실 속에서는 설득력이 없는 가정일 뿐이다. 

실천 가능한 대안을 통한 단계별 전환

이러한 비판적 고찰을 전제로, 나는 공공산별노조 건설과 관련하여 각 산업·업종의 산별노조 전환과 통합을 통한 단계적 공공산별노조 건설, 이행단계에서 업종본부를 골간으로 하되, 완성단계에서 지역본부를 뼈대로 하는 조직체계, 이행단계에서 현장 단위노조의 주체적 실천을 담보하는 기업별지부의 인정 등을 제시하고자 한다. “급하다고 바늘을 허리에 꿰찰 수 없다”는 격언처럼 실천가능한 대안을 중심으로 이행단계의 주체적 실천 및 산별운동 성과의 단계적 집중을 통한 대중적인 산별노조운동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우리 연맹내에 존재하는 운수, 에너지, 사회보장, 정보통신, 연구개발, 전문공공서비스, 공공시설환경, 문화예술 및 기타 사회서비스 등의 7~8개의 독자적인 산업·업종별 노조로의 이행을 보장하면서, 각 산업·업종노조가 조직 확대 및 내부의 산별적 이행단계를 거쳐 2~3년 후 하나의 공공산별노조를 완성하는 경로를 나는 감히 제시한다. 물론, 10만이 넘는 운수부문 산별 조직화부터 에너지, 사회보장, 연구개발, 전문공공서비스, 정보통신, 공공시설환경 부문의 전국 조직화까지를 현재 공공연맹의 틀 내에서 일궈내고 공공산별노조의 이행 토대로 삼는다면, 이는 명실상부한 공공산별노조의 바람직한 미래일 것이다. 이러한 공공산별노조 이행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공공연대’의 틀을 발전시켜 이른바 ‘공공대산별노조’까지 빠른 걸음에 내닫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한편, 공공연맹의 산별 구획 정리와 이행경로와 관련하여 민주노총 지도부 및 공공서비스부문 산별조직과의 교감 역시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본다. 공공연맹이 추구하는 공공산별노조의 방향은 공공서비스 대산별 노조를 지향하는 만큼 민주노총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공서비스부문 산별조직과의 연대 및 산별 전환의 방향 공유는 불가피하다. 백번 양보하여, 산업·업종의 굴레를 넘어 공공서비스부문 전체에 즐비한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공공산별노조 건설이라면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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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에 열린 공공연맹 현장간부 합동수련회 - 출처 : 공공연맹 ]

그린 그림대로만 된다면야…

너무나 진부한 얘기지만, 산별노조 건설의 그림이 잘 그려지고, 발상의 전환을 비약적으로 한다 해서 제대로 실천될 수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최근 산별노조 논쟁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포함되는 보건의료노조의 한 간부가 한 얘기가 떠오른다. 그는 “기업별체계하에서의 산별노조 건설! 누구도 가보지 않은 ‘처음가는 길’이라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했다. 섣부른 예단과 실천이 결여된 산별 논의의 위험성, 그리고 현존 산별노조에 대한 단편적 평가를 전제로 화려하게 수놓은 산별노조 건설 그림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일게다.  

결론적으로 산별노조 건설의 기본을 찾자면, 결국 실천가능한 대안과 현장 중심의 원칙을 근간으로 한 것이다. 2007년 복수노조 시대에 가장 건강하고 튼튼하게 현장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공공산별노조는 바로 이러한 원칙과 대의 속에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다시피, 실천가능한 대안과 현장 중심의 원칙은 한번에 비약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