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이므로 알아서 해라?

노동사회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이므로 알아서 해라?

편집국 0 3,730 2013.05.19 01:28

 


wsj_01.jpg그는 투쟁조끼를 정결하게 입고, 투쟁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 화물노동자의 긍지이자 역사인 바로 그 조끼와 머리띠였다. 그가 삶의 마지막 장소로 선택한 곳은 부산 신선대부두. 2003년 포항에서 시작된 화물연대 물류총파업이 정점에 이르러 폭발한 바로 그 곳이다. 그리고 13일 새벽, 고 김동윤 열사는 끝내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고유가에 못살겠다”, “보조금마저 빼앗아 버렸다”. 짧은 몇 마디만을 덩그러니 남겨 놓고….

9월 10일 오전 10시, 화물노동자가 스스로 몸에 불을 당겼다

하루 전인 9월9일은 1년에 두 번 지급되는 유가보조금이 통장으로 입금되는 날이었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6개월간의 경유 사용분에 대해 리터 당 152원을 환급해 주는데, 대형 화물차의 경우 거의 400만원 돈을 환급 받는다. 화물연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오늘은 잔치날"이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밀린 공과금도 내고, 옆집에서 급하게 빌려 쓴 돈도 갚고, 오랜만에 식구들과 외식도 하고, 계획이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일주일 후면 명절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바로 그 돈을 세무서에서 압류해 버렸다. 국세징수법에 의한 압류이므로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조차도 필요 없이 말 그대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국고로 넣어 버렸다. 세무당국은 보조금압류는 화물운송사업 체납자에 대한 통상적 조치라고 해명했다. 고 김동윤 열사 역시 2002년 이후 체납된 1,200여만원의 부가가치세 체납액 때문에 압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세무당국의 ‘통상적 조치’는 운송료나 보조금 압류만은 참아달라면서 각서까지 제출하고 8월까지 3개월간 성실하게 각서의 내용을 이행해 온 화물노동자에게는 날벼락이었다. 관료들이 책상위에서 굴리던 펜대가 화물노동자의 심장을 겨눈 비수로 날아든 것이 어디 이번뿐이던가.

직접적인 발단은 유가보조금이다

정부는 2001년부터 에너지세제개편을 추진한다면서 경유에 부과되는 유류세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교통세만 2배 이상 올렸다. 교통세의 24%인 주행세, 교통세의 15%인 교육세까지 하면 인상폭은 더 크다. 경유차의 배기가스가 대기오염의 주범이므로, 경유가격을 올려서 경유사용을 줄이겠다는 것이 세제개편의 취지이다. 그런데 화물차가 문제였다. 휘발유나 LPG로 다니는 화물차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취지대로라면 국내 화물운송의 90%를 차지하는 화물차의 운행을 금지하겠다는 결론만 얻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정 유류세는 올리지만, 사업용 화물차(영업용 버스와 택시 포함)에 사용되는 경유에는 인상분만큼 보조금으로 환급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환급해 주는 보조금이 유류세 인상액의 50%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2006년까지만 지급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인상분의 차액은 운송료를 올려 받으면 된다는 대안까지 내놓았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다. 우리나라에서 화물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지입차주이자 개인사업자일 뿐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줄기차게 진행된 화물운송시장의 구조조정 결과로 종사자의 97%가 이제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이다. 노동법은커녕 산재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1997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 제정되었다는 이유로 노동부에서 2000년에 행정해석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의 보호가 사라진 곳에 악랄한 운송자본이 떠넘긴 ‘경영책임’이 자리잡았다. 보험료, 부담금, 차량유지비, 사고처리비용까지 고스란히 화물노동자에게 떠 안겼다. 그럼 운송료는? 화물노동자 개인의 힘으로 운송료를 올려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이다. IMF 이후 규제완화와 진입장벽해소로 갈 곳 없는 수많은 ‘사장님들’이 화물차를 몰고 나오는 바람에 덤핑이 횡행할 뿐이다. 그렇다고 집단적으로 운송료를 결정하는 것도 곤란하다.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사업자’들의 담합행위이기 때문이란다. 어디에도 출구는 없다. 

2003년 화물연대 파업당시 보조금은 중요한 쟁점이었다. 결국 정부는 2003년 이후 유류세 인상분 전액을 보조금으로 지급하기로 화물연대와 합의하였다. 리터 당 152원의 보조금은 이렇게 화물노동자의 투쟁으로 쟁취한 성과였다. 비록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긴 하지만. 그런데 지난 9월 세무서에서 그 성과물을 법의 이름을 빌어 강탈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각서까지 작성해 납부에 최선을 다한 화물노동자를 철저히 무시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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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동윤 동지를 애도하는 뜻으로 전조등을 켜고 운행중인 화물연대 노동자들 - 출처 : 화물연대 ]

화물차에서 새우잠 자봤수?

화물노동자들의 실태에 관한 통계자료를 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노동조합의 자료만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노동조합의 실태조사 자료(1차 2003년, 2차 2004년)에 의하면 화물노동자는 평균 3,648만원의 가계부채를 지고 있으며, 이중 신용카드 부채는 1,652만원이다. 2003년 가구당 평균채무 2,926만원(한국은행 발표)보다 722만원이 높은 수치이다. 부채가 많고 부채관련 지출(상환금 및 이자)이 많다는 것은 수입이 열악한 상황에서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결국 다수의 화물운송노동자들이 부채의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기름값·도로비 등 직접비용은 현금으로 지급하지만, 운송료는 통상 3개월 기한의 어음으로 지급받는 관행이 부채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화물노동자의 22.9%만이 저축을 하고 있으며, 이들의 월평균 저축액은 평균 53만원에 불과하다. 화물노동자는 차량이 유일한 생계수단인데, 저축 자체가 안 되는 상황에서 차량 수명이 한계에 이른다면 결국 생계대책은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화물노동자는 생계유지를 위해 살인적인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화물노동자는 주당 평균 80.7시간의 노동을 수행하는데, 이중 차량운행 시간은 64.2시간, 상하차 및 대기시간 등 운행외 업무시간은 16.5시간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하루평균 5.1시간만 수면을 취하고 있으며, 이 또한 한달의 절반 가량을 화물차 안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다. 참고로 통계청이 발표한 2003년도 전체 취업자의 주당 평균근로시간은 49.8시간이다.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고유가와 유류세

1996년 리터당 경유가격은 301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8년 557원, 2002년 853원, 2004년 963원으로 폭등한 경유가격은, 이제 1,200원에 육박하고 있다. 같은 기간 경유에 부과되는 교통세 역시 48원에서 323원으로 인상되었다. 게다가 경유에는 교통세 이외에도 주행세, 교육세까지 부과되고 있으며, 부가가치세까지 포함하면 경유가격의 절반이 세금이다. 결국 정부의 세금인상이 경유가격 폭등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이다. 여기에 정유재벌의 독과점이윤이 들러붙는다. 5개 정유사들은 지난 2001년 이후 3년 만에 3.2배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정유재벌들이 지난해 휘발유 내수판매에서만 8,800억원의 폭리를 취했다고 폭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운송료는 1998년보다 12% 이상 떨어진 상태이다. 

‘쉽게 들어오고, 경쟁을 통해 실력 있는 사업자가 되고, 망한 사업자는 쉽게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화물노동자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정부의 대안이다. ‘사업자’로서 가능한 보호(라고 할만한 게 있다면)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자유로운 ‘사업자’의 경영상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화주와 대형운송자본, 여기에 기생하는 중소자본은 이런 ‘자유로운 사업자’의 희생으로 번성한다. 불법다단계알선행위, 과적책임의 전가, 재산권 분쟁 등 화물노동자를 둘러싼 온갖 추악한 제도적 폐해들이 희생을 강요하는 기본 메뉴로 작동한 지는 이미 수십 년이 되었다. 그래서 화물노동자는 항상 벼랑끝이다.

이것이 고 김동윤 열사의 분신 배경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문제를 풀고 넘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열사의 유지가 되었다. 현재 가장 첨예한 사회적 문제 두 가지가 한사람의 화물노동자에 의하여 투쟁의 중심으로 다시 올라온 것이다. 

10월, 화물노동자의 총력투쟁이 시작된다

운송하역노조와 화물연대의 화물통합노조준비위원회(화물통준위)는 지난 9월7일 투쟁본부 체계로 전환하여 10월, 11월 투쟁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동지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교섭과 투쟁의 방침은 유지하되 일정만은 대폭 앞당기기로 다시 결의하였다. 그리고 민주노총, 민중연대, 민주노동당과 함께 “열사정신 계승 및 화물노동자 생존권 쟁취, 제도개선,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국투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연대투쟁의 폭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 민주노총 역시 이미 2005년 하반기 특수고용과 불법파견 문제를 핵심과제로 선언하였다.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했음인지, 정부는 추석연휴 직전 보조금압류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는 대책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연일 관계부처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투쟁의 핵심인 노동기본권과 면세유 지급에 대해서는 절대불가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작년 12개항에 걸친 합의서에 서명하였던 사업자단체(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도 사실상 합의서 전체를 파기한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고 김동윤 열사도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화물통준위는 요구안이 쟁취될 때까지 장례식을 유보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1일, 화물통준위 대표자회의에서는 10월15일까지 요구안에 대한 정부 및 자본과의 교섭을 최대한 진행하되, 만족할 만한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10월 16일 이후 총력투쟁에 돌입하기로 결의하였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