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불평등에 대항하는 프랑스의 반소외법과 사회결속법

노동사회

사회불평등에 대항하는 프랑스의 반소외법과 사회결속법

편집국 0 5,531 2013.05.19 01:54

1996년부터 1997년 겨울까지 실업자들(sans emploi)과 불안정취업자들의 고용소개소 점거농성과 무주택자들(sans logement)의 주택점거, 그리고 무국적자(sans papier)들의 시위로 인해, 프랑스 사회는 1995년 철도노동자들의 격렬한 시위 이후 다시 떠들썩해졌고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었다. 농성에 참가하거나 시위에 나선 이들 모두는 ‘없는 사람들(les sans)’이었다. 그들에게 선진국가, 복지국가는 허울뿐이었으며 사회불평등은 극에 달해 마침내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에밀졸라가 『제르미날』을 쓸 당시처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있었기에 많은 시민들이 이들의 사회적 요구투쟁에 동의했다고 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반소외법

1998년 3월 프랑스의 공식실업률은 11.8%로, 이는 약 3백 5만명이 고용소개소에 등록된 상태를 뜻한다. 청년경제활동인구의 4명 중 한 명이 실업상태였으며, 장년층은 장기실업 상태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었다. 실업자들은 빈곤에 가장 노출된 인구집단으로서 빈곤층의 25%는 실업자였다. 프랑스 통계청(INSEE)과 유럽연합 통계청(EUROSTAT)은 당시 프랑스 모든 가구의 10%, 즉 약 6백만명이 빈곤선(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의 삶을 살고 있었으며, 빈곤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들은 1천2백만명에서 1천3백만명에 이른다고 발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당, 녹색당, 공산당의 연합정부였던 조스뺑 정부는 마침내 1998년 7월29일 반소외법(la loi de la lutte contre les exclusions)을 도입하였다. 이 법안은 사회정책 전문가이자 국제노동기구(ILO)의 대표자였던 조앵-랑베르 여사의 보고서에 근거해 마련되었으며 19개 부처의 협력 하에 3년 계획으로 추진되었다.  

반소외법의 핵심은 서문에서 드러나듯 “모든 국민에게 고용, 주거, 건강, 사법, 교육, 훈련, 문화, 가족과 아동의 보호 등 모든 분야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으로서 이를 위해 3년간 총 9조원이 투입되었다. 반소외법은 사회적 배제를 양산하는 메커니즘에 개입하는 근본적인 개혁안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추진되었다. 

첫째, 빈곤계층만을 위한 특별한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기본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 의료, 주거, 교육 등 사회보장정책이 기본적으로 보장하던 영역을 확대하여 사법, 문화, 누적채무 등에 총체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둘째, 가장 좋은 정책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정책이다. 주거대책은 주거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고, 빈곤층으로 떨어지기 전에 연체를 해결하게 해주며, 적정한 생계수단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상태가 되어 더는 회복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셋째, 노숙자나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자, 집세를 내지 못하여 퇴거의 위협을 받고 있는 자 등 긴급한 상황이나 위험에 놓인 이들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며, 이후 지속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넷째, 빈곤과 실업에 빠져 있는 이들과 곧 빠져들 위험에 처해 있는 이들을 일상적으로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을 지원하며, 국가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많으므로 모든 사회적 자원을 동원하여 이들과의 협력으로 지원의 효과를 높인다.

syk_01.gif

배제계층의 대표자가 참석하는 민관협력체계

이러한 원칙 하에 기본권 보장, 사회적 배제 예방, 긴급사회상황 대처, 사회적 배제에 대한 공동 대응으로 구성된 추진프로그램은 총 47개의 구체적 행동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47개의 프로그램 중 주목할 부분은 크게 실업대책과 의료대책, 그리고 민관협력체계이다. 

우선 실업대책의 내용은 고용대책 계획의 틀 안에서 취업취약계층에 대한 공공부문의 고용서비스 확대와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 확대로 되어있다. 이는 자활지원사업을 확대할 뿐 아니라 체계를 재정립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특히 취업취약계층을 밀착지원하기 위한 ‘동반지원’ 프로그램이 도입되어 일자리를 얻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주거, 의료, 건강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활자립의 기반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그 결과 실업부조(RMI) 수급자 및 특별연대수당(ASS) 수급자들의 38%가 혜택을 받았다.  

다음으로 가장 획기적인 개혁은 의료부분에서 발생했다. 당시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무소득자, 외국인 등을 포함해 약 10만명에서 20만명 가량의 인구가 어떠한 의료보험제도에도 포괄되어 있지 않았는데, 반소외법 추진프로그램은 이들을 위한 ‘보편의료보장제도(CMU)’를 도입하였다. 그리하여 빈곤층의 의료접근성이 현저히 향상되어 2003년 12월 말 기준, 약 1천6백만명이 기초보장의 혜택을 받았으며, 약 4천3백만명은 추가보장 혜택을 받았다. 이뿐 아니라 지하철, 버스, 교외선 등의 대중교통관리공사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을 통하여 보편의료보장제도 수혜자에게 ‘연대-교통카드’를 발급하게 함으로써 대중교통 이용 시 50%의 할인혜택을 주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민관협력체계에서는 정부의 지방소재 고용서비스기관과 민간실업자지원조직간의 대화창구를 조직하여 실업자의 욕구를 반영하게 하였다. 그리고 지역사회복지센터(CCAS) 이사회에 사회적 배제계층의 대표자가 참석하도록 하였다. 이 요구는 실업자운동조직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실업자들의 대표성 인정 문제를 수렴하여 이루어진 것이어서 실업자운동의 커다란 성과로 평가된다. 

극우파의 득세와 개혁프로그램의 좌초

2004년 1월, 사회노동연대부(노동부) 및 빈곤소외대책 국사원은 국책연구기관에 반소외법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의뢰했다. 이를 통해 제출된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출하였다. 우선 긴급 사회상황대처에서 주거대책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망명자의 증가로 인한 수요의 과다로 개선의 여지는 많지만 누적채무 해결은 크게 향상되었음이 드러났고,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것은 보편의료보장제도와 취업취약계층의 고용접근성 부분이었다. 보편의료보장제도의 시행으로 의료사각지대가 거의 포괄되었으며 장기실업자를 비롯한 취업취약계층의 고용접근성이 향상되었다. 다른 한편 금전적 빈곤율은 7.2%에서 6.1%로 감소되었다. 이렇듯 종합적으로 볼 때 각각의 대책은 불균등하게 시행되었으며 애초의 기대에 비하면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 첫째 원인은 불리한 경제적 여건이다. 2001년 이후 성장 둔화에 따른 예산 부족으로 정부는 고용지원대책을 조정하거나 동결하였으며 저임아파트 공급에도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둘째,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상황에서 기인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합정부를 깨고 독자적으로 출마한 사회당은 극우파의 선전으로 1차에서 탈락했다. 2차에서 우파가 당선되면서 정세는 급격히 우경화되어 사회정책의 방향이 선회되었다. 여기에 이라크전으로 인하여 사회의 이슈가 국외로 이동되었고, 우파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국방 및 안전문제에 우선을 두며 국민들이 사회문제에서 눈을 돌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우파는 사회보험 재정적자를 빌미로 의료보험의 총체적 개혁을 추진했다. 수혜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부정수혜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수혜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무국적자와 망명자를 추가보장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2002년 9월에는 고용 및 자활지원정책 안에 포함된 각종 대책, 특히 청년 및 실업부조수급자를 위한 대책이 급격히 축소되었다. 또한 실업부조 관리를 지방정부로 이양하였으며, 실업부조의 한 형태로 RMI를 RMA로 바꾸며 취업의 강제성을 강화하여 노동연계복지(Workfare)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2004 좌파의 지방선거 승리와 사회결속법의 채택

프랑스에서 시작된 반소외법은 유럽 각국에도 영향을 미쳐 유럽연합 차원에서 각 국가별 대책을 수립하게 된 계기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회운동이 다시 활력을 되찾았고 시민권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사회조직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펼쳤다. 이렇듯 야심 차게 시작했던 반소외법은 그 결실을 맺을 무렵 대외의 정치적 변화로 인하여 축소되다가 급기야는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그 후 프랑스 사회는 다시 한번 정치적 격변을 맞으며 재도약의 가능성을 탐색하게 되었다. 노동시간단축 및 경기활성화로 인해 10% 밑으로 떨어졌던 실업률이 우파정권 밑에서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고, 불안정고용이 신규근로계약의 반을 넘으며 근로빈곤층이 늘어만 갔다. 그러나 우파정부는 오직 야당의 분열을 이용하여 연금 및 교육 개혁법 개악을 연이어 강행했다. 그리고 고용연대수당을 축소하였다. 이에 머물지 않고 문화활동 노동자를 비롯한 특수고용직 근로계약을 개악하는 법을 노사협상을 통해 통과시키면서 사회적 불만이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 결과 2004년 초 실시된 지방정부 선거에서 20개 지방 및 100개 도 가운데 알자스 지방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우파가 전멸하고 좌파가 승리하는 선거 혁명이 일어났다. 물론 의회선거나 대통령 선거와는 달리 지방정부 선거로는 중앙정부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지역 민심이 반영되는 선거이므로 우파정부는 개각을 단행하여 사태를 수습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4년 9월15일에 채택된 ‘사회결속법(la loi pour la cohesion sociale)’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되어 상실되었던 반소외법의 정신을 다시 잇고자 한다. 또한 사회결속법은 반소외법이 가지는 단점을 보완하여 한층 강화되고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이를 준비한 시민사회조직들은 반소외법을 평가하며, 중요한 것은 사회적 협약이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지 특별한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즉, 일자리 창출과 사회보장의 재분배, 특히 실업 및 불안정취업에 따른 위험에 대한 보호가 핵심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시민사회단체 연합조직은 사회적 배제 과정에 너무 늦게 개입하여 그 계층을 관리하는 역할로 축소된 점을 반성하고 적극적으로 예방하는 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를 위하여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경제활동 과정의 중심부에 있는 주체들과도 연대하려 하고 있다.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국민연대’에 드리는 당부

프랑스에서는 한국보다 조금 빠른 지난 5월26일 약 40개 연합조직과 노동조합들이 사회적 배제에 대항하여 싸우기로 결의를 모았다. 이런 활동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노동조합이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특성 및 장점을 인정하여 연대하기로 했다. 이를 통하여 정책결정자들뿐 아니라 노사조직이 노사협상을 통하여 사회적 배제에 대항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내기로 합의한 것이다. 

지난 9월22일 한국에서는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국민연대(양극화국민연대)’가 출범했고 전체 방향 및 분야별 과제가 준비되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가을에 있을 국회에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안을 제안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양극화 국민연대의 의제는 철저한 준비 없이 급하게 작성되어 참여단체들의 실천과제로 채택되지 못하는 듯하다.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안을 위해 연대하는 과거의 방식과는 달리 대응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었지만 그 결집은 법 제정을 이끌어 내는 데만 머물렀고, 현재는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득, 고용, 교육, 의료, 사회적 서비스 등 전 분야에서 구체적인 안이 제출되어야 하며, 이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경험과 성과를 반영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연대체는 ‘회의’가 아닌 ‘시민사회 대토론’을 조직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지역별로 조직함으로써 개혁을 강제할 수 있는 사회적 힘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