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의회전술을 구체화하라

노동사회

노동운동의 의회전술을 구체화하라

편집국 0 2,882 2013.05.19 01:47

지난 여름, 올해 국정감사는 어떻게 진행하나 하고 고심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새 국정감사가 끝나 버렸다. 중요한 시험을 치른 수험생마냥 홀가분하면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아쉬움은, 우리사회의 주변부 의제로 밀려나는 노동정책을 중심의제로 부각시키지 못한 것과 현장의 요구들을 좀더 폭넓게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기대 자체가 너무 과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장벽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떨쳐지지 않는다. 

획기적인 의제를 선정하여 어느 언론이라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도록 하고, 국정감사 준비 단계에서부터 현장과 연대하여 현장의 요구 사항들을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좀더 세밀한 기획을 통해 노동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실행정의 사례를 발굴해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국정감사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리를 맴돌고 있다. 시험이 끝난 다음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꼴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나간 시험에는 몰라도 다음 시험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마음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있다. 

노동행정 실패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무슨 문제를 제기할 것인가? 이에 대해 단병호 의원실의 고민은 처음부터 무척 컸다. 노동계의 노동부장관 퇴진 투쟁과 정부의 비정규법안 및 로드맵 강행 처리 방침으로 인해 노정관계가 최악에 이른 상황에서 국정감사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에서 구호성 주장만을 되풀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노동계를 대표하는 진보정당의 의원이 상황과 정세를 무시하고 세부적인 제도개선 사항만을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현 정부의 노동행정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동부장관 퇴진 요구를 강하게 제기하되, 노동행정의 실패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국정감사 자체의 요구와 노동운동적 요구를 모두 충족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문제는 노동행정의 실패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였다. 단병호 의원실은 그 해답을 불법파견을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부 민원 행정의 부실, 특히 산업재해 문제에 대한 편파적이고 불성실한 행정에서 찾았다. 노동부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전국에 걸쳐 여러 곳의 사업장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그렇지만 사업장 내에서 불법파견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고, 또한 직접고용 절차를 불이행한 사업주에 대해 어떤 조치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불법파견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었고, 비정규직이 남용되는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해고를 당했을 때 불가피하게 찾을 수밖에 없는 근로복지공단과 노동위원회는 노동자의 관점에서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행정편의 위주로 일을 처리해 노동자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고 있었다. 단병호 의원실은 노동부의 그런 행태가 반노동자 정책에 기인한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 실태를 생생히 드러내고자 기륭전자(주)의 불법파견 판정으로 논란이 되고 있던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의 채용실태를 조사했다. 그리고 불법파견 판정 이후 노동부 행정의 문제점을 드러내기 위해 전국 각지의 불법파견 판정 사업장에 대해 노동부가 취한 모든 조치를 조사했다. 그리고 대표적인 불법파견 사업체인 현대자동차(주)의 대표이사 및 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과 중앙노동위원회 행정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노노모)’ 소속 노무사들과 함께 각 기관에 대한 포괄적인 현황 자료를 취합하여 종합 자료집 발간을 준비했다. 그리고 노동부 지방 관서의 행정실태를 분석하고자 근로감독관의 대표적 업무인 체불임금과 체당금(替當金, 퇴직한 근로자가 기업의 도산으로 인하여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 받지 못한 경우 국가가 추후에 사업주로부터 변제받기로 하고 사업주를 대신하여 지급하는 금액) 지급업무에 대한 종합적인 자료 분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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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용자 측과 노동조합 관계자들 ]

현대차 사장에게 불법파견을 추궁하다

약 두 달간을 사뭇 긴장한 가운데 국정감사를 준비했건만 첫날부터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이하 통외통위)가 쌀 협상 비준을 처리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민주노동당 의원 전원이 통외통위 회의실에서 농성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민주노동당 의원 전원이 첫날 국정감사에 참가하지 못하였다. 국정감사 첫날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걸 고려하면, 개별 의원들로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날 의원실은 서면질의서를 제출하고 보도자료를 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다음 날 각 언론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비정규직 실태를 2005년 9월 한 달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낸 채용공고상의 모집인원 1,279명 중 43명 만이 정규직이고 나머지 1,236명(96.6%)은 모두 비정규직이며, 비정규직의 급여가 남자는 80여만원, 여자는 70여만원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첫날 이후에는 다행히 돌발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고, 단병호 의원실은 각 지방노동청 감사에서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려놓고도 불법파견 중단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업주들의 행태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과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서도 직접고용 절차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사업주들을 부당해고 혐의로 처벌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도 높게 추궁했다. 부산지방노동청 감사에서는 현대자동차 사장이 증인으로 소환되었는데 단병호 의원은 그날 현대자동차 사장에게 불법파견을 중단할 것과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할 것, 비정규노조의 존립과 활동을 보장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근로복지공단 및 중앙노동위원회 감사에서는 각 기관의 노동행정 문제점을 취합한 자료집을 토대로, 근로복지공단의 자문의사협의회 운영의 문제점, 요양신청서에 사업주 날인란이 마련되어 있는 것의 문제점, 근골격계 및 추간판탈출증에 대한 업무상 재해 불승인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의 문제점, 하이텍알씨디코리아(주) 조합원들의 정신질환에 대한 요양불승인 결정의 문제점 및 중앙노동위원회의 심리 기록 분절의 문제점, 공익위원 수의 불균형에 대한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국회를 통해 요구된 ‘김대환 장관 퇴진’

국정감사 마지막 날, 양대 노총 위원장이 우여곡절 끝에 증인으로 참석하면서 김대환 노동부장관과의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단병호 의원은 이날 김대환 장관의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기본권에 대한 정책적 실패와 품성 부적합을 이유로 장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정식으로 요구하였다. 단병호 의원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 김대환 장관이 비정규직의 양성을 전제로 하는 비정규법안을 제출하여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노동기본권의 무력화를 심화시켰고,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 대해서 어떤 대책도 제시하지 않았으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남용 및 차별 심화를 방치했고, 불법파견 사업장과 그 사업주에 대한 행정적·사법적 조치를 이행하는 것을 포기해 장관으로서 직무를 명백히 유기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노동기본권 보장과 관련해서는 김대환장관이 합법적 파업에 대해 긴급조정권을 발동했고, 노동조합의 활동과 쟁의행위권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의 이른바 로드맵을 강행하려 하고 있으며, 노조 활동을 극심하게 제약해 온 손해배상과 가압류 문제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음은 물론,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원청 사용자에 의해 심각하게 유린되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단병호 의원실은 이번 감사를 통해 석면피해 확산문제, 지하노동자 및 화학장치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 산업안전공단의 사업계획 수립 방식의 문제, 이주노동자의 산재율 증가 및 유해물질 노출문제 등도 제기하였다. 

한편 이번 국정감사에서 다른 당 의원들도 많은 문제를 제기했다.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던 것은 △공공부문, 특히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의 불법파견 실태, △불법파견 사업장의 노사 분규 및 사업주의 의무 불이행과 노동부의 직무유기, △건설현장의 산업재해 은폐, △노사정위원회의 위상과 존립 문제 등이었다. 

이번 국감에서 제기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노동부가 시정을 약속한 것도 있고 애매한 논리로 당시 상황만 모면하려고 한 것도 있다. 단병호 의원실은 향후 후속 조치를 통해 노동부의 약속 이행 실태를 점검하고, 태도 변화를 강하게 촉구할 것이다. 앞에서 이번 국정감사를 마치고 느낀 아쉬움을 언급했는데, 그것이 곧 이번 국감의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병호 의원실이 비정규직 문제, 특히 불법파견 문제와 노동부의 민원행정 문제를 핵심의제로 선정하여 이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면서 행정부의 태도 변화를 강하게 추궁한 것과 구체적 정책 내용을 통해 장관에게 사퇴할 것을 요구하면서 노동계의 요구를 의회에서 뒷받침한 것은 이번 국정감사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명해진 비정규법안처리 강행과 의회 현장의 협력

올해 국정감사를 준비할 때 ‘작년 감사를 끝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새로운 국감을 준비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년 국정감사를 준비할 때에도 분명 그런 생각이 또 들 것이다. 앞에서 국정감사를 시험에 비유했는데, 시험이라는 것이 수험생을 힘들고 부담스럽게 하지만 수험생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는 것처럼, 국정감사도 감사를 실시하는 쪽이나 받는 쪽을 모두 힘들게 하지만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행정을 제어하고 국민의 뜻을 반영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수험생이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 공부를 한다고 해서 실력이 갑작스레 향상되지는 않듯이 의회의 대 정부 견제도 국정감사라는 ‘일회적이고 이벤트적인 행사’로 그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그에 대한 모범답안은 국정감사를 전후로 항상 제기되는 ‘상시 국정감사’이다. 

국감이 끝날 때마다 의원들이 ‘상시 국정감사’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니까 일반인들은 평상시에는 의회의 대정부 감시 기능이 없는 것으로 오인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두 달마다 한 번씩 열리는 임시국회의 상임위를 통해서도 국정감사 수준의 질의와 견제를 충분히 할 수 있고 실제 그런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주목 정도 및 의원과 행정부의 긴장감이 국정감사만 하지 못할 뿐이다. 이 말은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관심에 개의치 않고 의원이 스스로 의지만 가진다면, 평상시 상임위원회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지금도 ‘상시 국정감사’는 가능하다. 국정감사철이 되면 현장과 각급 단위의 노조들이 국정감사에서 다뤘으면 하는 내용들을 의원실에 쏟아 놓는다. 국정감사는 자체의 전개방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물리적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그 내용들을 모두 다루지 못할 것은 명백하다. 대부분은 의원실의 사정을 이해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간혹 있다. 의원실 입장에서도 갑자지 빚진 죄인의 심정이 된다. 

이제 이런 식의 의회 활용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의원실은 매번 임시국회를 국정감사 수준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고, 현장은 연맹 및 총연맹을 통해 의회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연맹 및 총연맹은 현장의 요구를 의원실을 통해 의회에서 제기하는 한편 그 실현방안을 책임있게 고민해야 한다. 평소에는 의원실 단독으로 의회활동을 고민하도록 방치해 놓다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국정감사 때에나 자료를 들고 와 의회에서 제기해 줄 것을 요구하는 식으로는 제대로 된 행정부 ‘압박’을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의회 활동을 책임지는 의원실의 책임이 가장 큰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현장도 다소간의 책임이 있다. 이제 노동운동의 대 의회 전술의 수립 차원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었으면 하는 것이 의원실의 바램이다. 국정감사는 끝났지만 정기국회는 아직 진행 중이고, 이번 회기내에 정부와 여당이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 점점 자명해지고 있다. 현장과 의회의 협력과 역할 분담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할 수 있다. 내년 국정감사, 아니 상시 국정감사의 준비는 지금 당장 시작되어야만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