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감독관도 살고 영세사업장 노동자도 살고

노동사회

근로감독관도 살고 영세사업장 노동자도 살고

편집국 0 4,219 2013.05.19 01:47

최근 노동조합에 노동상담을 받으러 오는 건수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또 상담을 하는 경우에도 이미 다른 곳에서 혹은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얻고 나서 재차 노동조합에 자신이 얻은 정보를 확인하는 수준의 상담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언뜻 보면 현장에서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임금체불 등 불법행위가 많이 줄어들어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10월19일자 한국경제신문 인터넷 판은 “노동부에 따르면 1997년 6만2천건에 불과했던 체불임금 등 신고 건수는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15만6천건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결론적으로 예전에는 노동조합을 찾아오던 노동자들이 이제는 노동부로 바로 찾아가는 게 일반적인 추세인 것이다. 노동건강연대, 인쇄노조, 민주노동당 단병호의원실 등 11개 노동사회단체로 구성된 ‘영세노동자 노동복지 공동실태조사단’의 영세노동자 실태조사에서 ‘사업장에서 불이익한 처우를 당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기관’을 묻는 질문에 응답 노동자의 36.2%가 노동부를 꼽았고 그 다음으로 노동조합(25.3%)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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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무유기, 복지부동' 노동자들의 노동청에 대한 불만을 해소 할 방법은 무엇일까? - 출처 : 매일노동뉴스 ]

근로감독관은 체불임금 해결사인가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예전에 비해 노동부(근로감독관)의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가 좋아진 점이나 인터넷 민원 접수 등 제도 개선의 효과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원인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상담을 오더라도 결국은 노동부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노동조합에 체불임금 상담이 접수되면 일단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해당 회사에 전화를 한다. 그리고 원만한 해결을 위해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면 수일 내에 해결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조합이 전화를 하고, 방문을 해도 사용자들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결국은 진정서 등 서류를 작성해서 노동부에 접수시킬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도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에 이른다.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근로감독관은 또 그들 나름대로 업무 과중이라고 아우성이다. 앞의 신문기사에 따르면 같은 기간 근로감독관 수는 1997년 435명에서 2005년 8월엔 818명으로 늘었지만 사건증가율에 뒤쳐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형편이 이런지라 근로감독관 본연의 역할은 사라지고 체불임금 신고 사건을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나마도 점점 더 악질화 되어 가는 사용자의 임금체불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행정서비스 제도이자 노동관계법의 경찰관이라 할 근로감독관 제도가 약화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미조직노동자들 바로 비정규직노동자들과 영세사업장노동자들이다.  

근로감독관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노동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일례로 한 지방노동청의 모 간부는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조합과의 면담과정에서 “그래도 여러분은 나은 편이다. 정말 불쌍한 근로자들이 많이 있다. 우리 감독관들이 맡고 있는 사건이 적게는 50건에서 심지어 120건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특히 상습적이고 악질적인 임금체불 사업주는 청소년 성매매자처럼 신상을 공개하는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당신네 사업장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이렇게 집단면담을 오면 가뜩이나 모자란 인력을 가지고 불쌍한 근로자의 고충을 처리하는데 지장이 크다”라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슬쩍 묻어 둔다. 

근로감독관 전체를 만나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나 본 대부분의 근로감독관들은 업무과중과 인력충원을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았다. 그러나 몇천명 수준으로 감독관을 증원한다고 해서 가장 많은 민원인 임금체불 문제가 개선될까? 지금의 구조 속에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아마도 지방노동관서가 동네 약국 수만큼 생겨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글쎄,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효과는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알아서 해 줄테니 경거망동하지 마라?

사용자들이 기업 경영을 위해서 노동조합은 ‘필요악’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현실이 존재하는 마당에 사업장 내에서 노동관계법령의 준수는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과 견제가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다. 바로 그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서는 피를 봐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영세사업장·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노동에 대한 관점은 ‘은혜’와 ‘시혜’인 것 같다. “내가 해 주겠다. 가만히 있어라”. 그러니 노동조합을 집단이기주의로, 패륜아로 몰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지난 10월16일자 국민일보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동운동의 내부적 위기 상황은 기업별노조의 경우 조직이기주의에 매몰되는데서, 상급노조는 과도한 정치화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물론 민주노총만 보더라고 대기업부문과 영세사업장과 비정규부문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 장관의 문제제기는 미조직 부문의 조직확대를 통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임에도 김 장관의 발언 어디에서도 이런 지적을 찾아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기성 조직을 시장 관리체제로 편입시켜 관리하겠다는 것이 중요한 정책 목표일뿐이다. 이런 인식 하에서의 정책은 영세사업장·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보장과는 거리가 멀다. 

흔히들 한국사회 노동운동이 매우 전투적이라고 하는데 이는 본질을 흐리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인권적인 노무관리와 불법·탈법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저항과 자주적인 조직 활동은 무자비한 탄압을 온몸으로 처절하게 감수하면서 갈 수밖에 없다. 그 어디에서도 공정한 게임의 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전투적’이라고 보일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만 살아남는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경험 속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앞서 말한 한 지방노동청 간부의 말처럼 “임금체불은 청소년 성매매와 같이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속에서 진정성과 현실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기본 인식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신자유주의 자본논리의 탯줄을 끊지 못하는 현 정부에 뭘 더 바라겠는가? 이는 마치 호랑이보고 풀 뜯어먹고 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인식의 전환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힘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부족한 인원문제 해결할 명예근로감독관제

다시 현실적인 근로감독관 제도에 관한 문제로 돌아와 몇 가지 문제를 짚어 보면, 우선 근로감독관 선발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일반 공무원 뽑듯이 선발해 근로감독관으로 발령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근로감독관을 선발하는 제도로 전환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영세사업장 밀집지역인 을지로 일대의 일명 ‘인쇄골’에서의 광범위한 근로기준법 미준수에 대한 대책을 따지는 자리에서 서울지방노동청장에게서조차 “전태일 열사가 다시 나오겠네요”라는 대답이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꼭 근로감독관이 되겠다는 생각 없이 공무원 시험을 봤다가 뜻하지 않게 일선 근로감독관이 된 이들을 탓해서 무엇하겠는가? 심지어 함량 미달의 근로감독관은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진정에 사용자를 불러 들여서는 “당신이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면 현행법 위반은 아니다”며 마치 회사측에서 고용한 노무사처럼 넌지시 사용자를 코치해 주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또한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따르면 노동관계법령 위반의 죄에 대한 수사 등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위반 사실에 대한 신고는 받아들이질 않고 있는 현실도 문제이다. 청구권이 있는 당사자만의 진정, 고소 같은 업무만을 다룬다면 어찌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갖는다고 할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노동조합에 상담을 오거나 노동부 지방관서를 찾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현직에 있을 때가 아니라 퇴사한 이후에 신고를 한다. 법 위반의 사실이 있더라도 그 직장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이러한 사실을 신고하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한달을 버티기 힘든 것이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제3자에 의한 신고도 접수·처리 하는 적극적인 사건 처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근로감독관의 업무량 등을 고려 해 볼 때,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그 보완책으로 ‘명예근로감독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와 유사한 제도로서 명예환경감시원과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법적 근거를 갖고 운영되고 있다. 명예근로감독관제도를 도입하면서 5백만원 이하의 벌금규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영세사업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전파하고 지도한다면 고용관계를 맺는데 최소한의 법적 준거가 있다는 사실을 환기 시킬 수 있을 것이고 상당부분 개선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앞서 지적한 것처럼 법위반 사실에 대한 감시 기능의 수행으로 사회적 비용의 절감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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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는 김대환 노동부장관 - 출처 : 매일노동뉴스 ]

번듯한 말보단 진심담긴 행동이 필요할 때

아울러 지난 해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논의된 바 있는 노동법원 설립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노동위원회가 그 기능을 일정하게 담보하고 있지만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상당한 불신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노동문제의 특수함을 이해하는 바탕에서 소송대리권 확대와 국민의 사법 참여를 확대하는 참심제(선거 또는 추첨에 의해 선출된 참심원이 전문 법관과 함께 소송을 심판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앞서 말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우선 노동계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으로 법과 원칙의 준수를 들 수 있다. 그에 따라 노사간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모색하고, 잘 안 될 경우 정부가 도와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노조는 정부가 확실하게 노조 편을 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나 비정규노동자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파내서 또 한번 매질을 하는 말이다. 우리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나 비정규노동자들에게도 근로기준법이 있었던가? 법과 원칙이 있기는 했는가? 잘 안될 경우 도와 줄 수 있다고? 제발 도와준다는 말,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말 따위는 그만하고 두 번 죽이는 잔인한 짓이나 하지 말았으면 한다. 미조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법과 원칙의 준수는 노동부와 근로감독관들의 태도가 그 척도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