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대구참사를 막을 수만 있다면!

노동사회

제2의 대구참사를 막을 수만 있다면!

편집국 0 2,580 2013.05.19 03:16

 

“구로-용산 구간 전차선 단전으로 더 이상 운행 할 수 없습니다. 옆에 도착한 전철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월15일 잘 가던 전철이 멈춰 섰다. 더 이상 직통전철이 가지 못한단다. 짜증이 확 밀려왔다. 직원인 나도 짜증이 나는데 일반 시민들은 어떠하랴.

“또 고장이야….”

여기저기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급히 오른손을 들어 왼쪽 가슴을 가렸다. 나의 가슴엔 전국철도노동조합이란 표찰이 달려있다. 언젠가는 그 표찰을 보고 다그치는 손님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이럴 땐 표찰을 가리고 숨을 죽이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상책이다.

나는 10년 동안 전철을 이용해 출퇴근을 했다. 그런데 특히 요즘 들어 열차사고를 자주 접한다. 너무 빈번히 일어나서, 이러다가 정말 '사고철‘이 되는 건 아닌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영국 지하철은 사고가 많은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국 지하철을 ‘사고철'로 부른다.

이번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언제나 문제제기를 하면 그때만 반짝하고 노력하는 척하다 시간이 지나면 원 상태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열차사고가 터지는 걸 보면 이도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말로해서 해결되면 참 좋은데, 언제나 저들은 말보다는 힘의 대결을 원한다. 힘을 바탕으로 주장을 펼 때만이 귀를 기울이는 소모적 행위를 저들은 아직도 반복하고 있다. 결국 철도노조는 마지막 카드를 뽑아들었다. 



‘사고철' 막기 위한 철도 노동자 총파업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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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에 이어 서울지하철노조도 지난 21일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고 파업을 결의했다. 출처-오마이뉴스

지난 2월7일 철도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회는 회의를 열고 3월1일 ‘총파업'을 결정했다. 더 이상 대화만으론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이른 것이다. 일부 강성 조합원들의 비판에도 파업일정을 작년 12월에서 올 3월로 연기하면서까지 대안마련의 시간을 줬지만, 공사 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대는 ‘한 순간의 꿈'으로 되돌아 왔다. 결국 노동자의 마지막 수단인 파업 돌입일자를 확정해 공사 측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철도노조가 투쟁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투쟁에 나서면서 철도노조는 △철도 상업화 중단 및 공공성 강화, △온전한 주5일제 쟁취 및 노동조건 개선,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핵심 요구안으로 정했다. 

논리는 간단하다. 철도노조는 영국 민영철도의 파산이 주는 교훈과 국민적 요구를 바탕으로 출범한 철도공사가 1년 만에 10조원에 달하는 적자로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과 열심히 일해 온 철도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적자 확대의 결과 철도공사가 ‘막가파식 돈벌이 경영'에 나서게 됐고, 사업의 양은 늘어도 인력은 줄어들고 신규 사업은 외주용역으로 넘겨져 ‘열차안전'마저 위험에 처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10조원에 달하는 공사 적자의 본질을 밝히고 공공성에 맞는 경영을 확대하기 위하여, 열차안전에 필요한 인력충원을 쟁취하고 과도한 외주화를 막는 것을 이번 투쟁의 주요목표로 삼은 것이다.

정부는 경부 고속철도를 건설하면서 생긴 부채를 공사 측에 떠 넘겼다. 그 돈이 자그마치 10조원이나 된다. 고속철도를 운영하는 모든 나라들이 건설과정에 들어간 돈을 정부에서 책임진 반면 노무현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가 출범 1년 만에 파산지경으로 내몰린 철도공사였다. 

2004년 철도청의 경영적자는 1천7백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공사출범 1년 후인 2005년엔 6천2백억원으로 4배나 급증했다. 철도공사는 작년 한해 선로사용료(고속도로의 도로 통행료와 비슷한 것)로 5천5백여억원과 이자지급으로 2천6백42억원을 지급했고, 경영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철도정책 실패의 책임이 공사를 거쳐 시민들과 철도노동자에게 떠 넘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민, 노동자에게 떠넘겨진 철도공사 10조원 적자 

철도공사가 출범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장애인·청소년·유아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공할인의 축소와 폐지였다. 또 지역주민의 철도이용권을 박탈하는 ‘적자 선'과 ‘적자 역'의 폐지였고 열차안전을 위협하는 ‘역 무인화'와 ‘외주화 확대'였다. 즉 철도공공성은 공사출범 1년 만에 돈벌이 경영을 최우선으로 하는 철도상업화로 둔갑했다.

10조원의 부채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떠한 모습으로 전가되고 있을까? 저들도 인정하듯이 공사 측이 휘두른 구조조정의 칼날은 예리했고 지칠 줄을 모른다. 7천여명이 넘는 감원과 3조2교대-주5일 근무제 심지어 고속철도 운영에 필요한 인원까지 자체 흡수를 통해 해결했다. 그 인원만도 2만여명에 달한다. 그런데 공사 측은 사업의 양이 지금보다 두 배로 늘어나는 2015년에도 인력충원 없이 자체흡수를 통해 인력을 운영하겠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다. 현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사고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결국 무자비한 외주화의 확대와 강도 높은 구조조정만을 의미할 뿐이다.

철도노동자는 이점을 너무나도 잘 안다. 종국에는 철도산업을 송두리째 파탄낼 것이라는 점도. 시민과 노동자에게 책임전가된 그 끝은 철도산업의 파탄이요 제2, 제3의 대구지하철 참사임을 철도노동자는 총파업을 통해 경고하려 한다. 그리고 철도공사의 투명경영을 위해 철도산업위원회 및 철도운임·요금 심의위원회, 이사회에 철도이용자 및 철도노동자 대표의 참여가 이뤄져야한다는 점도 강조할 것이다.

또한 철도노조는 사회 양극화, 비인간화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양산과 차별을 철폐하고 정규직화할 것을 주장한다. 철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노동자에게 철도노조 단체협약을 확대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특히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한 3천여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하고 3만여명에 달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노동자의 고용안정과 노조활동의 보장, KTX 여승무원의 정규직화, 노사합의 사항인 새마을호 여승무원의 정규직화 약속 이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67명에 달하는 철도해고자들의 복직도 요구하고 있다. 철도해고자들은 정부의 철도구조개혁 과정에서 민영화 반대를 위해 투쟁하고 노정합의 준수를 요구하다 해고됐다. 특히 “철도공사 출범에 따른 전향적인 조치를 한다”는 노사합의와 “철도파업의 책임 중 60%는 정부에 있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전원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요구 외면이 불러온 ‘대구참사'를 기억하라

지난 2월16일 이철 공사 사장도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듯이 우리는 임금인상이나 자리보존을 위해 투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직 열차안전과 철도공공성 확대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만을 해왔다. 그리고 그 요구들은 시간이 흐른 후에 옳았음이 대부분 증명되었다. 이번 철도공사의 부실을 불러온 고속철도 건설부채 10조원의 문제 같은 경우도 철도노조가 공사출범 전부터 주장해온 내용이었다. 그때 노동자의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였더라면, 지금처럼 대통령이나 범정부적 차원에서 나서야만 하는 수고는 없었을 것이다.

또 있다. 올해로 3주기를 맞는 대구지하철 참사도 그렇다. 철도노동자들이 얼마나 말하고 외치고 저항했던가! 그러나 저들은 철저히 노동자의 주장을 외면했다. 1인 승무의 위험성을 알리며 선로를 점거했던 한 동지는 그 일로 해고되어 아직도 복직되지 못하고 있다. 그때 노동자의 외침을 조금만이라도 받아들였다면 200여명 대구 시민들이 가슴에 한을 담고 죽어가야만 했던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를 회고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철도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인의 심정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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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의 아픔을 전해주는 대구중앙역 사고현장의 추모의 벽. 출처-오마이뉴스


정규직, 비정규직이 함께하는 ‘철도공공성' 투쟁

 

이번 투쟁에서는 철도 정규직노동자 2만5천여명뿐만 아니라, 다수의 비정규직노동자들도 총파업에 참여한다. 이미 KTX 여승무원 4백여명이 자체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갖고 총파업 참여를 결정했고, 새마을 여승무원을 비롯하여 역과 차량, 시설 등지에서 일하는 철도 비정규노동자들이 파업참여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특히 철도노조가 지난 2월7일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희생자 구호방침”을 확실히 하면서 비정규직노동자의 총파업 참여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철도노조의 3월1일 총파업 투쟁은 역사상 최초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하는 위력적 총파업이 될 것이다. 그만큼 승리를 향한 철도노동자들의 발걸음은 가벼워질 것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철도노동자가 파업하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언론에서는 ‘난리'다. 어떤 신문은 사설을 통해 “철도노조가 다른 노조까지 끌어들여 이용한다”고도 하고 “명분도 없는 파업만을 하려한다”며 서슬 퍼런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에 우리의 요구는 열차안전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했던 것임을 그들 스스로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인정하기 전까지 철도노동자는 파면과 해고 등 중징계로 내몰릴 것이지만 열차안전과 철도공공성만 지켜질 수 있다면 그래서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사고를 막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맨 몸뚱이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철도노동자!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