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세력, 민중 결집할 정책대안 세울 때다

노동사회

진보세력, 민중 결집할 정책대안 세울 때다

편집국 0 2,577 2013.05.19 03:07

 

‘386’,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최소한 한번 이상은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뒤틀린 한국 근현대사에서 한 때 한 줄기 맑은 바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반짝 빛나던 그 이름은 너무 일찍 퇴색하고 말았다. 
독특한 그 이름, 386은 과거의 ‘영화’를 더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간적으로 이미 낡은 개념이 되었다. 30대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 생을 의미한 386의 ‘시효’가 끝나가고 있다. 기실 386은 대한민국 안에서만, 그것도 특정시기에 소통될 수 있는 ‘시사용어’였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들을 더는 30대로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또한 어느새 절반이 40대 아닌가. 
하지만 이 땅의 청신한 진보세력을 상징했던 386의 조락은 비단 세월의 풍화작용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짓누르던 군부독재를 물리친 주역, 386들은 언제부터인가 헐값으로 매도되거나 조롱당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386들이 지닌 ‘순수성’과 ‘능력’이 모두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의심받는 개혁·진보세력의 ‘순수성’과 ‘능력’

1987년 6월대항쟁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였다.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일부가 정치권력의 ‘중추’인 청와대와 국회에 들어가기 시작한 386들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곳곳에 광범위하게 포진했다. 
386들이 정치권력에 다가간 사실 자체를 비뚤게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제도정치권으로 들어간 일 또한 개개인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일단 존중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정치를 삶과 전혀 무관한 듯이 여기거나 금기시 하는 게, 정치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의 노림수라는 새삼스런 사실에 이르면, 제도정치로 들어간 386들을 칭찬할 섟에 비난은 옳지 못하다고 평가하는 게 더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냉철히 톺아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력으로 간 386들이 제 구실을 못하거나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 세력에게 헐값으로 당하던 매도와 조롱이 시나브로 진실이 되고 있다.
한국 사회를 반세기가 넘도록 지배하며 누려온 기득권 세력이 386을 살천스레 바라보는 시각은 언제나 그들을 대변해온 신문을 통해서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가령 1980년대 당시 대학생이던 386들이 군부독재의 철권에 온몸으로 맞서 투쟁하고 있을 때, 전두환의 피 묻은 손을 꼭 잡고 학생운동을 마녀사냥했던 『조선일보』가 “갈라진 386”을 주제로 보도한 특집 기사가 좋은 보기다.
 

108_son_01.jpg1980년대 학생운동권은 ‘혁명’을 꿈꿨던 학생들이 석권하고 있었다. 이들은 1970년대 후반에 입학한 세대부터 1987년(6·10 사태)까지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다. 각종 서클이나 학회, 총학생회, 지하조직 등을 통해 체계적인 이념그룹을 이끌었던 그들은 ‘혁명세대’라 불린다. 레닌식이건 김일성식이건 그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했었다. 그러나 이제 20년이 흘러 그들은 한국사회의 중추라 할 수 있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그 사이 이들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회주의권 붕괴와 북한 실상의 노출, 한국의 번영과 민주화 그리고 IMF와 세계화에 대한 반감, 북핵 사태 등이 이들에게 충격과 좌절의 자극을 주었다. 많은 일들이 지나간 후, 80년대 혁명세대는 이제 우파에서 좌파까지 부채꼴 형태로 분화돼 한국의 이념 지형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새로운 우파(뉴 라이트·New Right)를 지향하는 사람들부터 개혁파임을 자임하는 사람들, 그리고 영원한 좌파임을 다짐하는 사람들까지 각자 갈 길을 찾아가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아직 뚜렷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하고 새로운 모색을 하는 세력들도 상당수 잠재해 있다. 

『조선일보』 2004년 12월6일자
 

선진 386은 뉴 라이트? 조선일보식 아전인수

우리는 대표적인 부자신문의 이러한 기사에서 ‘혁명의 세대’를 바라보는 기득권세력의 뒤틀린 시선을 손쉽게 엿볼 수 있다. 그들의 비뚤어진 눈은 무엇보다 6월대항쟁을 “1987년(6·10 사태)”로 표기하는 것에서 단숨에 묻어난다. 기득권세력을 대변하는 신문이 보기에 ‘흘러간 지난 20년’은 “충격과 좌절의 자극”이었다. 그 결과란다. 이 신문은 “80년대 좌파 운동권 중 상당수는 현실을 받아들였다”며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이때의 ‘현실 수용’이란 북한 체제에 대한 일부의 환상이 완전히 깨지고 남한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옳은 일도 아니라는 자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향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쪽은 현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변화시켰고, 다른 쪽은 현실에 소극적으로 적응한 경우다. 전자는 현실을 인정하지만 후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전자는 우파의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열고 있지만, 후자는 우파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권에 진출하면서 여야로 갈라졌고 시민운동에서도 진영을 달리하게 됐다. 특히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람들은 최근 ‘뉴 라이트’라는 자유주의 운동단체를 결성해 본격 활동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이어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 386의 입을 빌려 “(386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면서 “이들의 공통점은 좌든 우든 전체주의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자유주의의 가치를 신봉한다는 점”이라고 썼다. 이러한 부분은 비단 한나라당으로 가거나 그에 동조하는 386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 신문과 인터뷰한 열린우리당의 386국회의원도 “자신들은 이미 ‘혁명’보다 ‘개혁’, ‘이상’보다 ‘현실’을 앞세우며 ‘실용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른바 ‘커밍아웃’은 필요 없다”고 밝혔다. 신문이 “현실에 소극적으로 적응”했다고 보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람들은 ‘뉴라이트’라는 자유주의 운동단체를 결성했다고 강조한다. ‘뉴라이트’가 어느새 386의 가장 ‘선진 세력’처럼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시대의 소금으로 살아온 무명의 ‘아름다운 386’들      

정치권만이 아니다. 신문은 386들이 문화적 동질성도 이미 잃어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집기획으로 사흘 째 이어진 『조선일보』 기사를 보자. 굳이 이 신문을 길게 인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386을, 혁명세대를 바라보는 기득권세력의 눈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40대에 접어든 386들에게 문화는 동질성을 잃고 정체성을 상실했다. 90년대까지 탄탄히 유지됐던 ‘386 문화’는 혁명 사상만큼이나 퇴조 속도가 빠르다. 더 이상 ‘김민기’와 ‘노찾사’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 386들은 집에서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보고 소설 ‘다빈치 코드’를 읽는다. 운전하면서 이효리와 비의 노래를 듣지만, 그때 그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더듬거리면서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꼭 부르려 한다. 촛불시위에 참석했던 한 386은 “같이 부를 노래가 정말 없었다”고 했다. 문화세대 386에게 이제 그들을 묶는 문화는 없다. 정치적으로 분화된 386만큼이나 386문화도 분화·해체됐다.

여기서 “같이 부를 노래가 없었다”는 한 386의 말은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386들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조선일보』가 특집기획기사로 보도한 386의 ‘분화’나 ‘해체’는 분명 사실의 한 단면을 드러내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실 보도를 다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 아니 왜곡이다. 386들의 모든 걸 설명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더 많은 사실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모든 386들이 갈라지거나 해체됨으로써 실망과 배신감을 준 것은 결코 아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이름 석 자를 알린 사람들만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아니, 그들이 386을 대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노동현장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386들이 적지 않다. 필자가 오래전에 신문칼럼에서 썼듯이 ‘아름다운 386’들은 한국 사회 곳곳에 똬리 틀고 있는 부조리와 맞서 줄기차게 싸워가고 있다. 노래 그대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국사회의 깊은 곳을 올곧게 지켜가는 사람들이 386의 대다수다.     

어느 386의 자기내용 없음 깨달음이 섬뜩한 이유

여기서 ‘아름다운 386’이라는 말에 전혀 손색이 없는 길을 걸어온 한 386이 방송에 대해 털어놓은 고백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1980년대 초반 학번인 그는 학생운동과 진보운동에 열정적으로 헌신한 생활인이다. 그는 ‘화염병 시위’에 나서고 그로인해 수배 당하던 시절에 텔레비전을 보며 느낀 소감을 잔잔하게 회고했다. 

“수배로 쫓기면서도 조직 활동을 했던 시절이었지요. 이따금 텔레비전에서 저녁 9시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 속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솔직히 털어놓으면 우린 그때 KBS를 점거하자는 논의를 실제로 깊숙이 나누기도 했었습니다. 구체적 계획까지 짜기도 했었지요. 방송국을 점거해서 일주일만 우리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알리면 전두환 정권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했었지요.”

기실 한 386의 회고만이 아니다. 상식이지만 모든 혁명이나 쿠데타의 선행 과제 중의 하나가 바로 방송사 장악이 아니던가. 저 광주의 오월을 피로 물들이고 권력을 잡은 ‘신 군부’가 언죽번죽 ‘정의사회 구현’이나 ‘복지국가 건설’ 따위를 구호로 내걸었던 1980년대를 톺아보아도 마찬가지다. 군부 쿠데타 세력은 오월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방송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 결과였다. 방송사는 권력의 위선을 고발하기는커녕 권력의 위선을 ‘권위’로 포장했다. 생뚱맞은 권위를 부여한 권력의 논리를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널리 퍼뜨려갔다. 여북하면 시청자들 사이에서 “땡전뉴스”나 “또한뉴스” 따위가 회자되었겠는가. 시청료 거부운동이 광범위한 호응을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세찬 불길로 타올랐던 시청료 거부운동이 가장 처음 불붙은 곳이 농촌이라는 사실도 두고두고 되새겨볼 대목이다.
같은 맥락에서, “KBS를 점거해 일주일만 방송할 수 있으면 변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한 386의 말도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터이다. 실제로 그 시기 방송을 통한 사회변혁의 꿈을 안고 방송사에 들어간 386 방송인도 있다.
단순히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추억에 젖기 위해 1980년대 이야기를 ‘후일담’으로 늘어놓은 게 아니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인용한 이유는 80년대 방송 장악의 꿈을 털어놓은 386의 다음 말이 더 종요롭기 때문이다. 그는 1980년대와 오늘의 차이를 한숨으로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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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모 대학 정치학과에서 주최한 '386 정치인에게 묻는다' 라는 토론회>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에게 설령 방송사를 주더라도, 한 달 동안 방송하라고 권한을 주더라도 말입니다. 무엇을 방송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없더라고요. 아니, 방송할 내용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말을 던지면서 눈을 슴벅이던 386의 모습은 애잔했다. 여기서 오해는 없어야 한다. 오늘의 텔레비전 방송사가 방영하는 프로그램들을 긍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 386의 토로도 결코 오늘의 화면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차분히 성찰해볼 일이다. 과연 386의 한탄은 방송의 영역에만 그치는 문제일까? 그 토로가 비단 그만의 개탄일까? 


‘수구좌파’라는 조롱, 당하고만 있을 건가  

아니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현실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깊어가는 절망에 더하여 중산층마저 붕괴되고 있다. 한국사회에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신자유주의로 민중의 대다수가 고통 받고 있는데도 1987년 6월대항쟁을 일궈낸 386들은, 그리고 진보세력은, 기득권세력으로부터 조롱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신자유주의를 한국사회에 전면적으로 확대한 기득권세력은 지금 이 순간도 자성은커녕 “신자유주의만이 살길”이라는 여론몰이를 강행하고 있다. 진보세력인 386세대에 대한 매도와 조롱도 기실 그 연장선에 있을 터이다.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 더 나아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행세하고 있다. 그 ‘대세를 거스르는 일’은 무지의 소산으로 꾸지람 받는다. 심지어 ‘수구좌파’라는 색깔 딱지까지 붙는다. 문제의 핵심은 그런 터무니없는 ‘규정’이 여론화하면서 진보세력이나 민주세력, 그리고 386세대에게도 일정하게 영향을 끼치는 데 있다. 한국사회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자본가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일상적으로 자신의 논리를 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논리는 단순한 홍보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보라. 저들은 ‘부익부빈익빈’이라는 민중 위기 상황을 ‘경제 위기’라는 담론으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다. 위기를 탈출하는 해법으로 내놓은 게 어처구니없게도 ‘경쟁’이다. 신자유주의 전면 확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서둘러 체결하는 길이 우리가 살 길이란다. 동시에 저들은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여론몰이를 위협할 수 있는 386이나 진보세력을 포섭하거나 희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얼마나 치밀한가. 아니 얼마나 교활한가. 


구호 넘어서 설득력 있는 진보대안이 마련돼야

조롱받고 매도당하는 386세대 가운데 깨끗한 뜻을 잃지 않은, 올곧은 심지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 다시 뜻과 힘을 모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아무런 정책적 대안도 없이, 아무런 조직적 결의도 없이, 정치권력에 다가갔을 때 남는 것은 실패와 조롱뿐임을 이미 뼈저리게 깨닫지 않았던가. 바로 그것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진 이른바 ‘개혁 정부 10년’의 산 교훈이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진보세력이, 특히 386이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진보적 정책 대안을 과학화하는 독자적 연구역량의 확보와 진보적 정치세력의 조직적 강화가 그것이다. 더구나 두 과제는 서로 갈라져 있지 않다. 진보정당이 이념적 구호 차원을 넘어 국민 대다수에게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때, 진보정당의 조직적 강화나 대중적 진출 또한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벌써 내년으로 다가왔다. 절대다수인 민중으로부터 진보세력을 대변하는 후보가 고작 100만 표 남짓을 받는 ‘수모’를 다시 되풀이 할 수는 없다. 그러려면 진보세력부터 벅벅이 거듭나야 한다. 갈라진 진보세력이 거듭나지 않으면 민중의 절망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강행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의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절망하고 고통 받는 민중 앞에 진보세력은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진보적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그 중요한 첫 걸음이 될 터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