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비정규노조의 대응과 노동자 연대

노동사회

전환기 비정규노조의 대응과 노동자 연대

편집국 0 3,178 2013.05.19 02:58

 


 

   때: 2006년 1월24일 오전 10시~오후 1시30분

   곳: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회: 김영두(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참석: 박대규(전국건설운송노동조합 위원장)

        손정순(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국장)      

        이상우(전국금속노동조합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

        이혜순(전국여성노동조합 사무처장)

 

 

김영두: 반갑습니다. 오늘 좌담의 진행순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그동안 진행된 비정규직노조들의 조직과 투쟁의 성과, 한계를 각 영역별로 참석자들께서 짚어주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지난해 핵심이슈였던 비정규직조직화와 그 과정에서 불거진 내부갈등과 연대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세 번째로 올해 노사관계와 노동운동 전망과 관련하여, 특히 노사관계로드맵이나 민주노총의 조직혁신이 비정규노동조합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투쟁의제와 전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박대규 위원장님부터 지난해를 평가해주시죠.   

 

2005년 비정규노동조합의 투쟁 성과와 전망

 

박대규: 덤프연대의 세 차례 파업과 울산 플랜트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 등 2005년은 건설현장의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무척 뜨거운 해였습니다. 큰 싸움도 많았고, 그 와중에 조직도 많이 성장했죠. 2004년 5월부터 조직을 준비한 덤프연대는 2005년 5월에는 조합원이 1천5백명 가량이었는데, 2005년 5월, 10월, 12월 세 번의 파업을 거치면서 지금은 1만명이 넘게 늘어났습니다. 정말 잘 싸웠던 울산플랜트는 76일 동안 파업을 하고나서 사회적 합의를 했을 당시에는 조직이 거의 무너졌다고 볼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합원이 3천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외에도 외선전기공들이 조직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건설노동자들이 급격하게 조직되고 싸움의 주체로 섰던 것은 노동자의식이 높아서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정말 너무 먹고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착취와 억압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를 넘어선 것이죠. 덤프연대가 세 번의 파업을 했지만 요구는 유류비 보조해 달라, 과적단속 개선해 달라, 뭐, 전부 생존권 부분이었거든요. 남의 조직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지만 2003년부터 3년 동안 조직을 꾸려온 화물연대도 그 선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2006년에는 이런 상황이 조금 바뀌리라 봅니다. 뭐냐면, 선도적으로 투쟁했던 레미콘노동자들의 조직은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가지고 있어서 사용자들이 교섭을 거부했을 때 그나마 노동위원회를 활용할 수 있고, 노동법을 적용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화물이나 덤프는 사용자가 교섭을 거부했을 때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들이박는 방법 밖에 남질 않는데, 이제 강제업무복귀명령제도 같은 것들이 강화되면서 그나마 그 방법도 실질적으로 쓰기 힘들어졌죠. 투쟁한다고 차 좀 세워두면 업무방해니, 뭐니 하면서 손배․가압류가 극심하게 들어오고…. 작년은 투쟁 속에서 이런 경험을 하면서, 아 우리에게도 노동법 적용이 필요하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해였습니다. 올해는 생존권 투쟁도 물론 하겠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한 요구가 부각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혜순: 전국여성노조는 이제 활동을 시작한지 6년을 넘어섰는데요. 그동안 우리 노조가 접근했던 영역은 굵직하게 보면 경기보조원, 청소용역노동자, 학교비정규직노동자 등입니다. 경기보조원 노동자들과의 활동을 통해 박대규 위원장님도 말씀하셨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를 인식하게 됐고, 청소용역노동자들과 관련된 사업을 하면서는 최저임금제, 간접고용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조직과정은 우리 사회에서 공공부문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계기였습니다.  

조직화와 관련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첫째, 여성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대체로 어디 모여 있질 않고 흩어져 있으니까, 조직을 하려면 어디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찾아내야 하고, 또 찾아내면 그 사람들이 처해있는 아주 다양한 조건들에 일일이 맞춰서 대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 어떤 조직이 하던 간에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서는 적어도 2~3년간은 기초투자라는 생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1~2년 해갖고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보려고 하면 실망만 하게 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2005년 여성노조의 투쟁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우선 공공기관에서 주40시간제가 실시되면서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최저임금선 밑으로 내려갈지도 모르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대응이 있었습니다. 우리 노조 소속 공공부문의 청소용역 사업장들은 모두 싸워서, 어쨌든 최저임금 삭감을 막아내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리고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은 교육부의 ‘학교 회계직원 계약관리기준’을 개선시키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핵심적인 요구는 그 ‘기준’에 의해서 매년 재계약하는 노동자들을 무기계약근로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완전월급제를 실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학교비정규직들은 일당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방학이 되면 복잡해지거든요.  

 

김영두: 예전에 여성노조 소속 사업장들이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힘들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는데, 그 문제는 지금 진전이 있습니까?

 

이혜순: 정규직노조처럼 100개가 넘는 조항을 갖춘 단체협약을 맺는 사업장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단체협약을 맺더라도 조항이 20~30개 정도이고, 오히려 경기보조원들의 경우가 사업장 단위로 단체협약을 맺게 되어 협약의 조항이 그나마 많습니다. 원청회사의 사용자성 문제를 부분적으로라도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상황은 계속 어려울 겁니다. 입법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학교비정규직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고용주는 학교장이고 온갖 지침은 교육부에서 나오고 재정은 교육부나 지자체가 부담하고, 이렇게 뒤죽박죽이니까 교섭을 하자고 하면 교육부는 절대 나오질 않죠. 장기적으로 입법을 통해 정리해야 하지만, 아무튼 우리 노조는 학교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계약기준을 만들 때 어떤 식으로든 결합했습니다. 저쪽에서는 면담이라고 우기고, 우리는 교섭이라고 하면서 가는 형식으로. 한계가 분명하지만 내용에 개입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김영두: 예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고성진 보험모집인노동조합 위원장님도 자리를 해주셨는데, 노조 상황을 말씀해주시죠.  

 

고성진: 원래 오늘 10시에 특수고용과 관련하여 회의가 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대규 위원장이 갑자기 회의를 취소하고 토론하러 간다길래, 사무실도 가깝고 해서 잠깐 들렀습니다. 보험모집인노조는 2000년 초에 서울경인지역여성노조의 지부형태로 건설됐고, 2000년 10월에는 조직대상을 남성과 전국으로도 확대해서 독립하여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당시 사무실이 영등포에 있어서 영등포구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만, 이게 약 두 달간의 싸움 끝에 결국 반려되고 말았죠. 그렇게 ‘너희는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정부에게서 통보를 받고 언론에서도 한참을 떠들어댔더니, 오히려 보험모집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몰려왔어요. 해서 5명, 10명으로 시작했던 조직이 순식간에 3백명, 5백명으로 죽죽 늘어났습니다.

그렇지만 회사들이 이런 상황을 묵과하지 않았죠. 결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집인들을 노조에서 탈퇴시켰고, 노조가 절대 못할 거라고 조합원들에게 장담했던 해고를 회사들이 본보기로 한번에 20여명씩 해치워버렸으니까…, 결국 조직이 지금은 상당히 위축된 상태입니다. 활동가라고는 저 혼자 남아서 노동조합의 이름을 새끼줄처럼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렇지만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이상우: 제조업이 다 마찬가지입니다만, 금속의 비정규문제도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사내하청 문제입니다. 현재 금속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은 17개 사업장에 4천여명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16만 금속연맹 조합원 중에서 2.5%를 차지하고 있고, 산별조직인 금속노조의 비율로 따지면 10.5%입니다. 2005년을 평가하자면, 일단 조직화가 물결을 탔다, 흐름이 잡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4천여명 사내하청 노동자들 중에서 약 60%가 2005년에 조직됐죠. 현대차, 기아, 대우, 동희오토 등 대기업 완성차에서 사내하청조직이 모두 만들어졌고, 이러한 흐름이 KM&I 같은 중소기업이나 기륭전자의 사례처럼 공단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투쟁들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가 불법파견 정규직화 전선이고, 둘째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3권 쟁취투쟁 전선, 마지막으로 원청자본의 사용자성 인정과 관련된 전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조직을 만들고 열심히 싸우고는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나 제대로 해결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현대자본을 중심을 쟁점화되어 있는 불법파견 정규직화는 원하청 연대를 통해 돌파해야할 부분인데 돌파가 안 되고 있고, 그나마 성과라면 작년 현대차 임단협 이후 원청자본을 중심으로 원청노조와 하청노조가 참여하는 3자 교섭틀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둘째, 노동3권 쟁취투쟁과 관련해서도 자본의 일방적인 무시 속에 하청노조가 내쫓기고 깨지는 기조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성과라고 한다면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22개의 하청업체들을 대상으로 기본협약을 체결하고 업체별로 보충협약을 체결토록 합의한 것, 한라공조에서 원청노조의 강력한 지지 속에서 단협을 체결한 것 등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셋째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과 관련해서도 아직 제대로 돌파하지 못하고 있죠. 현대하이스코 노동자들이 목숨을 건 크레인 점거투쟁을 통해 받아낸 확약서에 원청 공장장의 서명이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현대차 3자 교섭틀, KM&I 교섭에 원청 임원이 나오는 것 정도를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김영두: 마지막으로 손정순 국장께는 비정규직문제와 관련한 전국적인 전선과 투쟁을 중심으로 2005년을 평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손정순: 금속에서 대공장을 중심으로 기획된 조직건설이 있기도 했습니다만, 앞에서 여러분들이 자세히 지적해주셨듯이, 아직까지는 너무도 열악한 상황에 대한 반발로 자생적으로 조직되는 게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의 주된 흐름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2004년부터 진행된 비정규입법투쟁을 통해 흐름을 모아낸 것은 성과로서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라는 조직을 세우고 비정규노동자들의 상황을 사회적으로 널리 이슈화한 것, 이를 통해 2005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입법안에 대한 의견을 끌어냈고, 또 일련의 대국민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신자유주의 동맹의 유연화 흐름을 어느 정도 막아내고 제어했다는 것은 중요한 성과입니다.   

그러나 한계는 여전합니다. 첫째 상급단위에서 기획된 조직화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2005년 하반기부터 민주노총이 전략조직화를 위해 비정규조직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활동은 아직 미비합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전략조직화의 향후 성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비정규운동의 흐름이 결절점을 맞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둘째는 노동운동이 담론 수준에서도 신자유주의 동맹에 대해 여전히 수세적이라는 점입니다. 그 폐해를 공세적으로 지적하고 조직노동자들이 이슈를 선점해서 국가와 자본의 유연화 전략에 균열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내기가 힘들 겁니다.    

 

비정규 조직화와 이른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김영두: 이제 그러한 내용을 기반으로 조직화와 그 과정에서 나타났던 정규․비정규 노동자들의 내부 갈등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이상우 국장님께서 시작해주시죠.

 

이상우: 기획된 조직화사업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동의를 합니다만, 사실 금속에서 진행된 조직건설은 완전히 자발적이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저희들이 모범사례라고 꼽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이나 GM대우 창원공장 같은 경우 정규직노조에서 비정규사업 관련 담당자를 두고 이들이 비정규직 실태조사나 노동교실 등을 통해 사내하청 주체들을 발굴하고 육성해서 비정규사업을 진행했죠. 원청노조가 존재할 경우 사내하청투쟁 승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결국 원하청 노동자들의 연대입니다. 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원청노조가 인력과 재정을 투입해서 나선 곳에서 가장 효과를 보기 때문에 상급조직에서도 원청조직에 담당자를 둘 것을 지침으로 하고 있습니다.

조직이 확대되고 안정되는 과정에서도 원청노조의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경험을 봐도, 원청노조 대의원이나 집행간부들이 현장을 순회하면서 사내하청노조 가입원서를 돌렸을 때 가장 성과가 컸죠. 또한 조직이 안정되려면 노조활동을 빌미로 한 계약해지나 업체폐업을 막아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연맹이나 민주노총의 ‘주먹’은 너무 멀리 있죠. 결국 옆에 있는 원청노조에서 고용문제를 막아줘야 사내하청 조직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금속노조에서도 비정규직의 조직률은 10.5%밖에 안 됩니다. 원청노조의 그늘에 있는 노동자들보다는 원청노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미조직노동자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공단이나 공장 밀집지역에 가보면 예전과 상황이 정말 많이 변했어요. 한 공장에 정규직은 매우 소수고 다양한 비정규고용 형태들이 복잡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조직 확대사업을 하려 해도 예전처럼 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양한 고용형태가 섞여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때문에 상당히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 조직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질 못하니 만들었다하면 계약해지나 업체폐업 등으로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나앉을 것이 뻔한 거죠.       

그러면 이러한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하느냐…, 참 대답하기 갑갑한 문제입니다만, 첫째 내부주체 강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하이스코 투쟁의 경우만 하더라도 1년여 동안 비공개로 활동가훈련과 조직확대를 진행해온 결과입니다. 둘째 상급연맹, 지역 사회단체들과의 연대틀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기륭전자가 투쟁에 앞서 지역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서 공장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투쟁이 시작됐을 때 어떻게 엄호할 것인지 등을 미리 논의한 점을 중요하게 착목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틀이 갖추어진다고 해도 돌파가 잘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만, 어쨌거나 이게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습니다. 연맹이나 상급단체가 문제를 풀려고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요. 지금 상경투쟁을 하고 있는 하이닉스-매그나칩 관련해서 투쟁계획을 논의하면서 나온 얘기가 결국, 위원장님 단식하시고 그걸 매개로 금속노조 차원에서 투쟁을 박고 가겠습니다, 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투쟁’이 축적되면 언젠가는 돌파구가 열리겠죠. 그렇게 길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첨언하고 싶은 게, 비정규직운동과 관련해서는 절대 정파적인 문제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비정규직 주체든, 지원 단위든 간에 투쟁을 어느 한 정파의 성과로 만들기 위해 덤벼들다가는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총역량을 동원해도 안 풀리는 문제인데 말이죠. 정파적인 이해를 떠난 집중과 투쟁이 필요합니다. 

 

김영두: 말씀하셨듯이 공단에 가서 보면 매우 다양한 고용형태들이 혼재합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조직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혹시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이상우: 조직형태는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습니다. 금속연맹의 17개 비정규 사업장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만 제외하고 모두 금속노조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업장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을 기존 노조에 직접 가입시켜 정규․비정규가 함께하는 하나의 조직단위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죠. ‘사내하청지회’라는 형식으로 사업장 내 정규직노조와 별도조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별노조들이 산별노조 지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규약을 지회 규칙으로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 가입대상이 정규직으로 제한될 수 있습니다. 현재 비정규직도 직접 가입할 수 있도록 지회 규칙을 변경하도록 추진하고 있지만 성과가 크진 않습니다. 어쨌건 명시적으로는 하나의 생산사업장 단위에 하나의 산별조직체계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혜순: 금속노조 상황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관계를 이상우 국장님 말씀대로 풀어가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제 경험 범위에서 조금 다른 입장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비정규 조직사업을 하고 있는 학교, 골프장, 호텔 등에도 정규직노조들이 다 있거든요. 사실 사업을 하다보면 그 사람들하고 부딪치거나 기분 나쁜 일들도 많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공식적으로 갈등관계를 만든 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참을성이 좋고 인격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니라, 냉정하게 봤을 때 정규직노조하고 관계가 틀어져서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연대라는 것이 각자가 처해있는 위치에서 출발하는 건데, 정규직노조가 처해있는 현실위치를 인정하지 않고 너무 큰 기대와 요구를 갖게 되면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조직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지지와 연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정규직노조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정규직노조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냉정히 따져보고 현실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그동안의 사업을 통해 정리한 입장입니다.

비정규직조직화가 더 쉽게 가능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객관적인 조건은 무엇보다도 ‘법제도적 뒷받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입법적인 틀을 마련하기 위해 노동조합도 사회적인 연대의 확장을 유연하게 고민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사안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노동조합도 그러한 연대를 자신들의 투쟁에 대한 지원 도구로 사고하는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조직화 과정에서 가장 아쉽고 어려운 점은 역시 돈과 사람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정규직노조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에게도 비정규조직사업은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조직양태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거의 준박사급이 되질 않으면 상담도 잘 못하고…. 때문에 비정규 조직가를 키우기 위해서 조직이 목적의식적으로 투자를 해야 하는데, 거기서부터 돈 문제가 걸리기 시작하는 거죠.

   

박대규: 지금 민주노총에서 전략조직화를 위해 50억원 기금을 모으고 활동가를 양성한다고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냉정하게 봤을 때 옛날에 위장취업해서 땅굴파고 조직하고 했던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절대 비정규직 조직 못한다고 봅니다. 특수고용직의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지금 사용자들이 대응하는 양식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정규직 조직하러 누가 사업장에 들어오면, 사용자들이 그 조직하는 사람만 잘랐거든요. 그런데 지금 비정규직 사업장에서는 조직하러 들어온 사람뿐만 아니라, 거기에 조금이라도 휩쓸린 사람들을 몇 명이 됐든 몽땅 다 내보냅니다.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선뜻 나설 수가 없는 거예요. 당장 자기 일이 없어지니까! 이런 상황에서 신규 활동가 몇 십 명 훈련시켜서 현장에 집어넣는다고 뭘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저는 노동자들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리라 봅니다.

둘째,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거점’이란 게 없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거죠. 레미콘만 되도 회사에 들어가면 20~30명 모여 있긴 한데, 화물이나 덤프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것도 없으니 도로 위에서 조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답답한 노릇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인맥’을 찾아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현장 경험이 적은 신규활동가들은 이런 걸 찾아낼 수가 없어요. 이러한 인맥은 철저하게 일관계로 얽혀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철저하게 ‘일맥’과 ‘인맥’을 잡아서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고용에 대한 확신을 줘야 조직이 설 수 있다는 거고, 그런 조직의 활동이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성과를 쥐어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조직화를 위해서 달려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상우 국장님이 사내하청 동지들과 정규직 동지들의 연대 문제를 말씀해주셨는데, 제가 봤을 때 정말 문제는 비정규 동지들에게 노조 가입원서를 돌리는 것까지는 개입했던 정규직 동지들이 막상 투쟁이 벌어지면 잘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돈은 일부 대주지만 몸은 개입하질 않는다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투쟁하던 사내하청 동지들이 낙담하고 무너지는 수가 많습니다. 사내하청조직이 튼튼하게 자생하려면 당분간만이라도 돈 뿐만 아니라 몸까지 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정파문제와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이미 사내하청 동지들의 마음이 정파 쪽으로 쏠려 있습니다. 정규직노조의 힘이 막강하니까 그 사람들 힘을 빌리자면 생각까지 좇아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굉장히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사내하청 동지들끼리 갈라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사내하청의 경우이고, 특수고용직이나 그 외 비정규직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정파싸움은 크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김영두: 박대규 위원장님이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50억기금과 전략조직화센터 등 민주노총의 비정규사업과 관련해서 더 주문하고 싶은 사항이 있으면 다른 분들도 말씀해주십시오.

 

이상우: 사실 돈 내는 문제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꽤 있죠. 뭐, 그 돈 갖고 우리 조직에서 하면 더 잘 할 텐데, 그런 생각들이죠. 그렇지만 일단 전략조직화사업은 추진 근거가 충분합니다. 조직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옳은 문제의식입니다. 사실 미조직비정규사업을 전담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연맹은 지금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 몇 명 더 얹어 놓는다고 사업이 잘 될 거냐 하면 또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거든요. 사람이 오면, 사업이 있어야 하고, 사업을 하려면 재정이 필요하고…, 통합적인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러한 부분들에 대한 고민은 아직 집중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맹들이 보완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박대규 위원장님이 지적하신 문제는 경험자를 추천받아서 활동가로 양성한다든지 하는 방식 등이 내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혜순: 잘 모르지만 일단 드는 생각을 말씀드리면, 어쨌든 돈을 걷어서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일정한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부분인데, 총연맹이 직접 신규활동가를 육성하는 데 쓰는 게 효율적인 거냐 하는 의문들이 제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사람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지만 어쨌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람 키우는 사업은 그것대로 진행하되, 비정규조직화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해 총연맹, 연맹, 지역본부가 모여서 정말 생산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우선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상우: 이제는 제도적 보완이라는 측면도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금속연맹이 호주 금속연맹하고 국제교류를 하는데, 가서 보니까 거기는 미조직사업장에 산별조직이 하루 전에만 통보를 하면 점심시간이든 언제든 선전캠페인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더라고요. 그것도 법이 개악돼서 하루 전에 통보를 해야 하는 거라고 합니다. 정말 부러웠는데, 우리도 이렇게 어떤 형태든 법제도의 핵심 고리를 쟁취하고 가야 조직화를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영두: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나온 이야기들을 토대로 손정순 국장님께 이 주제와 관련해서 좀 더 종합적인 시각에서 정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손정순: 전략조직화가 구체적으로 부딪치게 될 문제들을 여러분들이 지적해주셨는데 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정규직 조합원 중심인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조직한다고 하는 건 전반적인 정체성 변화를 수반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물론 전략조직화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나감으로써 내부적으로 쇼크와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현재 상황을 봤을 때는 그러한 정체성 변화를 끌어낼 만큼 에너지가 축적된 상태가 아닙니다. 사실 미국 서비스노조(SEIU)와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해외사례에서도 전략조직화사업이 성공한 걸 찾기 힘들죠. 그만큼 민주노총의 전력조직화사업도 어려운 일이 될 거라는 이야깁니다.

기존의 조직이 전혀 없었던 특수고용직노동자들은 박대규 위원장님이 말씀하셨듯이 체감적인 불만들을 조직하면서 현재 노동시장을 조금씩 장악해가고 있습니다. 더디고 어렵게 가고 있지만 성장세가 이어지리라 봅니다. 사내하청의 경우에는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노조 가입원서를 돌리는 데까지는 함께 하는데 왜 투쟁 앞에서 주저주저하게 되는지, 그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을 함께 찾아내지 못한다면 성장세가 주춤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체들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관련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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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