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초고용계약 반대투쟁 승리와 ‘노학연대’

노동사회

프랑스 최초고용계약 반대투쟁 승리와 ‘노학연대’

편집국 0 3,478 2013.05.19 07:23

 


ywson_01.jpg프랑스 우파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도입 시도가 3개월 동안 이어진 사회운동의 저항 끝에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를 두고 이번 사회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노동총동맹(CGT)의 베르나르 티보(Bernard Thibault) 전국비서는 “프랑스 사회운동 백년사에 길이 남을 승리”라고 자찬했다. 

“프랑스 사회운동 백년사에 길이 남을 승리”

또한 프랑스 사회운동 연구자 미쉘 바칼루리스(Michel Vakaloulis) 교수 역시 “고등학생부터 퇴직자까지, 실습생부터 정규노동자까지, 청소년부터 할아버지까지, 세대·직업을 망라한 사회운동이었다”고 이번 투쟁을 규정하였다. 그는 특히 청년들이 선두에 섰던 이번 사회운동이 “기존 사회활동가의 노령화 우려를 종식시키고 노조들의 균열 없는 연대선전을 이끌어 냈고, 이 프랑스적 예외는 근대화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사회적 권리와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투쟁에 대한 예시”라고 평가했다.  

바칼루리스 교수가 평가한 대로 이번 사회운동에서 청년들은 학생총회를 통한 동맹휴업과 전국적인 조직활동을 통해 사회적 권리 및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장을 열었다. “정치참여와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은 개인화된 젊은 세대”라는 기성세대의 선입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학생들은 방학과 시험을 뒤로하고 연일 거리로 나와 국민을 상대로 소규모 선전전을 펼쳤다. 특히 고등학생들과 연대를 위해, 대학생들이 자신의 학교나 주거지 주변 고등학교로 직접 찾아가서 하교하는 고등학생들을 설득하고 조직하여 주말에 있는 시위에 함께 참여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대학생들의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방식 때문에 낭트대학을 비롯한 몇몇 대학에선 학교 총장들이 “최초고용계약(CPE) 실행을 중단하고 정부가 학생들과 대화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교사와 교수 및 학부모들도 이들의 시위를 지지하고 동참함으로써 학생들의 동맹휴업에 힘을 실어줬다. 

한편 대학원생들도 참여하고 있는 전국대학생연합(UNEF)를 비롯한 대학생 단체들은 다른 단체와의 연대, 미디어에 대한 능숙한 통솔, 정부와의 협상에서 매우 유연하고 성숙한 활동 등을 보여줘 주목받았다. 특히 지난 2월부터는 블로그 등을 통해 인터넷으로 서로 소통하며 학내에서 동맹휴업 성사를 위한 체계적이면서도 차분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예전의 다소 혼란했던 학생운동과 대비되어 이곳 언론에서 ‘새로운 운동방식’으로 조명받고 있기도 하다. 

핵심주체 형성과 광범한 연대가 승리 요인 

이번 사회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운동의 주체’를 확실히 형성했다는 점이다. 이는 작년에 벌어진, 20인 이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도입된 ‘신 고용계약(CNE)’ 반대운동과 이번 투쟁이 가장 크게 구별되는 점이다. 작년 7월 정부가 CNE 도입을 발표했을 때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중도정당을 포함한 좌파정당, 그리고 노동조합 등 거의 대부분의 사회운동 진영이 반대하고 시위에 나섰다. 그렇지만 20인 이하의 사업장에는 노동조합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운동의 주체를 형성하기가 어려웠고, 또한 그 때문에 반대운동은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물론 정부가 바캉스 기간에 법을 통과시키고 시행하였다는 상황적인 어려움도 존재했지만, 이는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다. 실패의 핵심적인 원인은 공공기업과 대기업 노동자들의 거대노조 중심 저항이,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영세기업가들의 비판에 맞서서 여론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조직된 영세기업노동자 등이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학생들이 선두에 나서며 시작된 이번 사회운동에서 노조와 좌파정당들은 대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들을 선두에 세웠다. 그럼으로 해서 운동의 정당성이 훼손되지 않았고, 지속적이고 완강한 저항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편 이처럼 학생들을 중심에 세우고 상호보조를 맞추어 가며 전선을 일렬로 세우는 과정은 외부 관찰자에게 프랑스 사회운동의 오랜 경력을 말해주는 듯 했다. 한국에서도 지금 비정규운동의 전선을 세우기 위해서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이 노력하고 있을 텐데, 프랑스의 이번 경험은 그 과정에서 주체를 분명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투쟁의 주체가 명확할 때만이 운동의 성패를 떠나서 결실을 맺을 수 있고, 지속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주체가 형성될 것이다.  

‘노동자 친구’가 필요한 요즘 대학생들  

며칠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비운동권 총학생회 학생들이 노조파업 시 대체업무를 수행하고, 파업 노조원들과 다툼을 벌였다는 다소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그렇지만 노조원들의 ‘파업권’과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 위해 무한경쟁에 돌입한 대학생들의 ‘학습권’이 충돌한 상황에서, 대학생들만 무작정 나무라기가 어려운 것 같다.  

한국 학생운동의 전통인 ‘실천적 노학연대’는 “노동법 이해를 위해 대학생 친구가 필요했던” 전태일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생산관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학생신분과 젊음이라는 진보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 소외된 노동자들에게 ‘의식적으로’ 연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프랑스 사례에서 나타난 노학연대는 엄밀히 말해서 노동운동진영이 ‘의식적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차별적으로 도입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에 대학생들이 저항을 시작했고, 이를 노동시장 전체의 유연화를 염려한 노동운동진영이 받아 안은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현재 한국의 대학생은 프랑스에서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생산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생산관계에 편입되기 위해 저학년 때부터 취업공부에 몰두하고, 졸업 후에도 취업을 위해 적어도 1~2년 이상 준비를 해야 하는, 노동시장에서 매우 위태로운 계층이다. 이렇게 개인화된 사회진출 방안에 매달리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이제는 자신들의 사회적 권리와 민주주의 의식 함양을 위해 ‘노동자 친구’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학연대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예전처럼 의식화된 학생과 현장 노동자 간 노학동맹은 지금 대학에서 중심 흐름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취약한 취업전선에서 개별화되는 학생과 사회선배로서 의식화된 노동자 간 ‘수평적’ 혹은 ‘역전된’ 노학동맹이 필요해진 것은 아닐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