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력도 연대투쟁도 역부족, 꽁꽁 얼어붙은 현장

노동사회

조직력도 연대투쟁도 역부족, 꽁꽁 얼어붙은 현장

편집국 0 2,581 2013.05.19 07:20

 


dhlee_01.jpg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노동자의 고공농성이 한 달 만에 끝났다. 원직복직과 고소고발 및 손배가압류 철회,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며, 지난 3월22일 50m 높이의 공장안 철탑형 굴뚝에 올랐던 3명의 해고자들은 고공에서 단식농성까지 가는 결사적인 투쟁을 벌였지만, 결국 건강상태가 악화돼 4월22일 모두 지상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이 한 달 동안 GM대우 사측은 용역경비들과 직·공장들을 동원하고, 컨테이너 박스와 가시철조망을 출입문과 울타리를 설치해 철저하게 고공농성장을 고립시켰다. 고공농성단에게는 최소한의 물과 음식물만 공급했고, ‘사용자성이 없음’을 내세워 교섭은 끝까지 회피했다. 지쳐서 스스로 내려오기만을 바라는 ‘시간 끌기’였고, ‘고사 작전’이었다. 그리고 이는 그야말로 성공을 거뒀다. 처음부터 끝까지 원청 정규직노조인 대우차노조와의 대리교섭만 하겠다는 입장 외에는 어떤 것도 약속하거나 양보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탈진해 지상으로 내려온 고공농성단을 기다린 것은 체포영장이었다. 경찰은 GM대우 사측이 제기한 폭력 및 업무방해 등 고소사건과 관련, 4월21일 고공농성단 3명을 포함 창원비정규직지회 간부 5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굴뚝에서 병원으로 직행한 2명의 농성단은 자진출두 할 것으로 보이고, 대우차노조 창원지부로 향한 권순만 지회장은 단식을 계속하며 남은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의 불씨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회사 고사작전 승리 … 지상의 선물 ‘체포영장’

고공농성이 일단락됨에 따라 이제 관심은 교섭 진행 여부에 쏠리고 있다. 당초 회사가 교섭의 전제로 요구했던 ‘농성 중단’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뿐 아니라, 지역의 노동계 또한 고공농성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교섭에 매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상급단체와 비정규직지회는 요구안 조율을 끝냈고,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이미 결의된 총파업 강행의사를 밝히며 GM대우 사측에 교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계의 바람이며 의지일 뿐으로 보인다. 고공농성이 끝난 마당에 GM대우 사측이 교섭에 적극적일 리가 없다. 교섭권을 위임받은 대우차노조 또한 비정규직지회의 요구안을 그대로 들고 교섭에 임하는 것에 그동안 줄곧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따라서 GM대우 사측과 교섭을 시작하기도 전에 요구안 조율을 놓고 한동안 노동계 내부의 갈등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권순만 비정규직지회장은 고공농성을 정리한 후인 4월24일 성명서에서 “GM자본이 여태까지 한 행동들을 보았을 때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현재 우리가 철탑에 없기 때문에 더더욱 노골적으로 교섭을 회피하려고 할 것”이라며 “고공농성을 접었다고 해서 우리의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GM자본은 알아야 한다. 지회는 또 다른 투쟁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다시 원점이다. “목숨을 걸었다”고 표현된 한 달 동안의 극한투쟁에도 교섭은 진전이 없었고, ‘투쟁’이라는 말로 다시 사측에 엄포를 놓아야 하는 상황으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확인된 것이 있다면 “비정규직노조 인정 불가”라는 GM대우 사측의 흔들림 없는 원칙과 창원비정규직지회의 취약한 조직력, 그리고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의 입장 차이와 이 가운데서 누구의 손도 들어줄 수 없는 상급단체의 무기력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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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앇회로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오는 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노동자   - 출처:매일노동뉴스 ]

때깔만 좋은 ‘교섭’, 엄포만 놓는 ‘투쟁’

고공농성 돌입 전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 2월 말 GM대우 사측과 대우차노조는 특별노사협의회를 통해 창원공장 하청업체 (주)대정 해고자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사측 최종안이라고 표현된 이 안은 △비정규직지회 핵심간부 및 조합원 8명 단계적 복직(합의시점 3개월 후 3명, 7개월 후 3명, 11개월 후 2명) △해고자 중 20명 복직(이상에서 복직 대상자는 원청인 GM대우가 신규 하청업체에 통보) △단기계약직 14명 복직 불가 △합의시점에서 비정규직 천막농성 정리 △대우차노조 위원장과 구두 합의 등 5개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우차노조는 이 최종안이 다른 사업장 사례보다 나은 최선의 안이라며 창원비정규직지회에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창원비정규직지회는 단호히 거부했다. 최종안은 선별·단계적 복직안으로 “비정규직지회를 파괴하려는 사측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란 이유였다. 핵심 간부들을 1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복직시키고, 단기계약직은 복직대상에서 제외하고, 더구나 복직대상자 선정을 GM대우가 하겠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조합원들을 분열시키고 비정규직노조 활동의 싹을 자르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당시 창원비정규직지회는 2005년 9월30일 (주)대정 폐업으로 86명이 해고된 후 6개월째 공장 안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합원들은 속속 농성장에서 이탈했고, 10여명의 조합원만 겨우 투쟁에 결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극심한 조직력 이완과 교섭안에 대한 실망, 최종안을 거부한 이후 노골화된 GM대우 사측의 농성천막 철거 위협은 창원비정규직지회에게 고공농성 감행 외에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3월22일 중식집회를 이용해 권순만 지회장과 단기계약직 해고자인 오성범 조합원이 기습적으로 굴뚝에 올랐고, 며칠 뒤 회사 측이 농성장을 침탈하면서 진환 조합원이 고공농성에 합류했다.

“궁지에 몰렸다. 굴뚝 끝까지 간다”

이후 노동계는 3명의 비정규직 해고자를 굴뚝 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투쟁이냐, 교섭이냐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창원비정규직지회와 전국비정규연대회의 사내하청노조대표자회의, 외곽의 노동단체 등은 주말 독자적인 집회를 창원공장 앞에서 열며 격렬하게 GM대우 사측과 충돌했다. 고립된 고공농성단을 지키기 위해 현장을 되찾아야 한다는 소위 ‘공장 진격투쟁’이었다.

이들에게 예정된 집회까지 취소하는 등 투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금속연맹 경남본부, 금속노조 경남지부 등 상급단체와 대우차노조 창원지부는 비판의 대상일 뿐이었다. ‘공장 진격투쟁’ 과정에 격렬한 상급단체 성토가 이어졌고, 금속노조 조끼가 내팽개쳐지기도 했다. 성명서가 발표되고 간담회가 열렸다. 

이런 조정과정을 거쳐 상급단체들도 출근 선전전과 집중집회를 잡고 금속노조 총파업을 결의하는 등 투쟁을 통한 교섭 압박 수순으로 나갔고, 결국 상급단체와 창원비정규직지회는 교섭권을 대우차노조에 위임해 GM대우 사측과 교섭을 진행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즈음 고공농성단은 이미 지쳐 있었다. 결국 노동계 내부의 이견을 조율하는 동안 3명은 탈진했고, 제대로 된 GM대우 사측과의 교섭 일정이 잡히기도 전에 119구조대 고가사다리차에 실려 굴뚝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 과정에서 창원비정규직지회는 사측에 교섭의지가 없다고 판단했고, 특히 한번 실패한 대우차노조를 통한 대리교섭의 ‘실효성’을 극도로 경계했다. 반면 상급단체가 투쟁에 소극적이었던 근저에는 창원비정규직지회가 조직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무모한 투쟁’을 감행했고, 자체 동력이 없는 상태에서 연대투쟁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또 창원비정규직지회와 투쟁의 단절을 선언한 대우차노조의 입장도 상급단체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사측에 꽉 잡힌 현장, 돌파구는?

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300명, 정규직보다 숫자가 더 많다. 한때 이들 중 800명이 창원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었다. 그러나 이번 고공농성 과정에서 이들은 마음속으로 성원을 보내기는 했을지 몰라도, 공장안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투쟁의 단절’을 선언한 대우차노조 창원지부장의 결정을 총회에서 66%의 찬성률로 지지하기까지 했다. 고공농성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곤 하지만 현장은 이미 GM대우 사측의 수중에 떨어져 있었다. 한 정규직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용역깡패들 인건비와 구사대 특근비만 해도 비정규직들을 원직복직 시키고도 남지만 회사는 비정규직노조를 공장 안에 두기 싫어서 여기까지 왔다. 말 안 듣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하게 보여준 것이다. 다음은 정규직노조 차례가 아니겠느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