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여, 학교갑시다!”

노동사회

“노동자여, 학교갑시다!”

편집국 0 3,503 2013.05.19 07:12

언론이 시끄럽다. 국민들은 “그놈이 그놈”이라며 관망하는 판인데 언론들은 마치 어느 한쪽에 줄을 서지 않으면, 누구 하나를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양 ‘보라색’, ‘녹색’을 전파하기에 바쁘다. 지방자치단체의 대표를 왜 직접 뽑아야 하는지, 왜곡되고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처럼 진지한 기사보다는 경주로에 일렬로 늘어선 경주마들을 소개하기 바쁘다.

‘지방자치’의 참된 의미는 단순히 지역의 살림을 이끌어갈 단체장을 직접 선출하고, 지역의 사안을 지역에서 선출된 사람들에 의해 결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영국의 정치가 브라이스는 지방자치를 “민주주의의 최상의 학교이며 성공의 보증서라는 명제를 입증해 주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그 최상의 학교에 학생이 없다. 노동자, 노동조합도 그 학교에 학생이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학생이 없는 학교가 제대로 기능할 수는 없다. 

그래서 『노동사회』는 노동자,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와 지역정치에 어느 정도 개입하고 있는지, 바람직한 개입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민주노동당 소속 지방의회 의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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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의회의 활동모습 ]

노동조합 있는 곳에 지역의원이 있다면?

민주노동당 소속의 지방의회 의원은 총 44명이다. 이 가운데 광역의원은 11명으로 지역구의원이 3명, 비례대표가 8명이다. 그리고 나머지 33명은 기초의원들이다. 따라서 총 44명의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이메일을 통한 설문조사가 이뤄졌고, 이 가운데 이번 설문에 응해준 지방의회 의원은 총 14명이었다.

먼저 지방의회 의원들이 속한 지역들에는 모두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지역 노동조합들의 지역사회에 대한 활동은 기대 이하의 수준이었다.

“귀하의 지역에 있는 노동조합의 지역사회에 대한 활동유무”를 묻는 질문에 35.7%의 의원들이 “보통”이라고 대답했고, 14.3%만이 “매우 활발”했다고 답했고, “전혀 없거나 없었다”는 대답도 21%로 나타났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노동자 스스로 공장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에 관심을 쏟지 않다보니 일반 국민들의 의식 속에는 임금이나 올려받기 위해 투쟁하는 ‘집단 이기주의’적 모습으로 각인되어 버리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대중과 함께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버린다면 사업장 내부 투쟁마저도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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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설문조사에서는 지방의원들은 평소 노동조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의정활동 속에서 이 관심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설문에 응답한 지방의원 모두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와 교류·협력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조합과의 교류가 지방의원들의 관심과 의지만큼 실제 의정활동에서 도움이 되진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어느 사업장 노동자들이 고용이나 처우등과 관련해 파업을 할 경우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은 가장 먼저 달려가고, 이의 해결을 위해 다방면으로 뛰어 다니기 마련이다. 이 과정을 통해 몰랐던 제도적 문제점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이의 시정을 위해 주민 청원이나 조례제정을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함께 투쟁했던 조합원들은 본인 사업장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더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신들의 문제를 확대시켜 사회변화에 일조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가 지낼만 하니까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현안 해결을 통해 정책으로 연결시키고, 정책을 통해 단순히 고리를 끊는 싸움이 아닌 뿌리를 캐내는 사례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노동조합이 의정활동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경우로는 울산 북구의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설립과 같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울산 북구의회의 조례제정을 통해 설립된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는 북구청에서 매년 6천만원(비록 충분치는 않지만)을 지원받아 지역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상담과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대단히 이례적으로, 단체장과 의회 다수당이 민주노동당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사례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으나 지역의 현안인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행정적 지원체계를 마련했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지역에 뿌리 내리지 못하는 노동조합

한편, 지역사회와 지역행정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단체들을 묻는 질문에서는 지방의원과 노동조합 활동가 모두 ‘보수정당 조직’과 ‘지방자치단체’를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지방의원들은 ‘진보정당 조직’과 ‘노동조합 조직’을 영향력이 가장 없는 단체로 생각하고 있으나,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같은 질문에 전체 9개의 보기 중에서 각각 7위와 5위로 응답하여 상당한 의식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지역사회와 노동운동의 개입전략』 보고서를 작성했던 김현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아마도 지역의원들의 의식이 지역에서는 정확한 걸 겁니다. 노동조합활동가들이 약간 과장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지적했다. 노조활동가들의 현실과 의식에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해병대 전우회’나 ‘향우회’보다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게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의 현실인 것이다.

지난 4년간 민주노동당 소속 지방의회 의원들은 그야말로 각개 약진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지역에서 중앙차원의 의제에 결합하기도 어렵고, 민원해결 창구로 활동하기도 다반사였다. 민주노동당 지방자치위원회에서도 이에 대한 반성으로 중앙당 차원의 지방의회 의원들의 활동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다. 보수정당이든 관변단체든 중앙과 지부가 유기적인 관계와 뿌리 깊은 관행을 통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봤을 때, 민주노동당 역시 중앙과 지역위원회가 공통된 의제설정과 긴밀한 연계를 통한 의회 활동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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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한 민주노동당 기초자치단체 의원은 공간이 남는 주민자치센터 공간을 체육센터로 활용하자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사업을 추진해 관철시켰다. 그러자 지역주민들로부터 “민주노동당 의원이면 좋을 줄 알았더니 오히려 한나라당 놈들보다 더하다”는 질책을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진보정당 의원으로 활동하다보면 지역의 ‘민원’과 보다 큰 ‘원칙’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원칙을 지켜나가는 꿋꿋함을 보여줄 때 지역민들이 느끼는 신뢰는 서서히 쌓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직으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의제를 갖고 지역 속으로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에 개입해야 할 이슈들에 대해서는 지방의원과 노동조합 활동가 모두 동일하게 대답하였다. “고용과 최저임금 등 노동자생존권”, “주택·보건 등 사회복지”, “지역 산업구조 및 경제발전” 순으로 지역 이슈에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지역사회 감시 기능도 중요하게 지적되었다. 일례로 천만 서울시민을 대표하고 있는 서울시 의회의 경우 본회의 장에서 상식을 넘어서는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감시기능이 없기 때문에 “의원들이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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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도 의회에서 기초의원 의원정수 조례안을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속에서 통과시키고 있다. 중앙정치판의 축소판이 지방자치의회의 본모습은 아닐 것이다.   -출처:오마이뉴스 ]

2003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가 서울시 의회를 들여다보자. 서울 시립 직업전문학교 졸업생들의 ‘저임금·중노동’ 상황을 두고 민주노동당 심재옥 서울시 의원이 직업학교에서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등의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하자, 다른 의원이 한 발언은 이랬다. “심재옥 위원님이 얘기하는 것은 직업학교에다가 노동의식화를 시키라는 얘기하고 똑같습니다.  직업학교. 이것도 학교잖아요? 그런데 노동조합이 왜 설립되는 것이죠?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노동조합 때문에 망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막말 수준의 발언에 대해 심재옥 서울시 의원은 “국회만 해도 언론에 노출되어있어 비상식적 행위가 드물지만 시의회는 달라요. 노동현안 정도는 마음대로 무시해버리죠. 노동조합이 파업이나 법 개정 투쟁 정도만 언론에 대응하는데, 지역의회의 행태도 감시하고 대응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한다. 노동운동 진영이 지역의회를 모니터링하면서 부적절한 발언과 행위에 대해 언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소송도 불사한다면 비상식을 상식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개입할 수 있는 문제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많은 지자체들이 효율적 경영을 이유로 민간위탁을 실시함으로써 이른바 공공상용직 노동자들의 비중이 높아가는 상황이다. 청소용역 부분의 예를 들자면 자치단체가 민간위탁을 하기 위해서는 조례개정을 통해 추진해야 하는데, 의회에서 이를 비판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제지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공공부문 기관장과 공무원들의 노동에 대한 무지를 깨우치는 역할도 병행할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 활동해본 지방의원들의 경우 공무원들이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에 얼마만큼 무지한 지 피부로 느낀다고 한다. 실제 알고서 저지르는 잘못도 있지만 모르고서 저지르는 잘못도 많다는 얘기다. 따라서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대화를 통해 깨닫게 해줄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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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방자치는 참여하는 것

그렇다면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와 지역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어 있을까? 지방의원들의 64%가 아니라고 대답했고 14%만이 그렇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되짚어 생각해봐야 할 사안은 제도가 마련된다고 해도 과연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울산 북구에서 시행에 들어간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자치 시대에 꼭 필요한 “참여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제도로 알려져 있다. 많은 지역의 노동운동계를 포함한 진보진영에서 이를 지자체에 도입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막상 울산 북구에서 시행에 들어간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들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예산참여시민위원회에 노동자들이 참여하지도 않고 노동조합 역시 관심이 없다.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어느 정도 민주주의 훈련이 됐다는 노동자들조차 지역 민주주의엔 관심이 별로 없다. 노동조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학교는 마련되었는데 학생이 없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노동조합이 지역차원의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행정기관들의 경우 파급력이 크다는 점이다. 일괄적으로 모든 지자체에 없는 제도라면 거부할 명분은 너무나 쉽게 주어진다. 하지만 어느 한 지역이 제도개선을 통해 모범적인 선례를 남긴다면 다른 지자체들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방의원들의 71%가 지역사회에서 노동조합이 시민·사회단체와 비교해, “위상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응답했다. 이는 곧 시민·사회단체에 비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민주노동당이 지방의회에 진출한지 이제 4년이다. 아직은 경험이 일천한 상황에서 어찌 보면 선전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진보진영에 속해 있으면서 시민·사회단체와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그들의 노하우를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한 점은 반성의 지점으로 남는다.

시민단체는 이슈파이팅만 제대로 하면 성과를 낳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정당은 실천력을 담보로 해야 한다. 아직은 민주노동당에 지역행정을 감시·견제할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과감히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전문성을 앞장세워 실천해나가는 방안도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동운동에 날개를 달자

요즘 많이 듣는 이야기가 바로 ‘미디어 선거’, ‘이미지 선거’라는 말이다. 누구는 보라색 꽃밭을 만들어 자신을 알리기도 하고, 8:2 가르마와 분장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에게 진정으로 호소력 짙게 다가가는 이미지란 당사자의 언행과 삶을 통해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을 통해, 이마에 짙게 패인 주름골을 통해 전해지는 이미지일 것이다. 바로 민주노동당과 노동자, 민중이 만들어가야 할 이미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끊임없는 개입전략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다수 지방의원들은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로,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며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는 단체로 평가받는다면 노동조합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자연스레 바뀔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국민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이 해소된다면 노동운동은 천군만마를 얻는 일이 아닌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