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활동에 관하여, 시민운동 경험 통해 노동운동에 드리는 제언

노동사회

지역활동에 관하여, 시민운동 경험 통해 노동운동에 드리는 제언

편집국 0 3,016 2013.05.19 07:11

올해는 지방자치 부활 16년을 맞는 해이고,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을 4번째로 선출하는 해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방자치 부활 이후’를 되돌아보려는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많다. 그러나 지금 실제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도 주민참여는 미흡하고, 소수 기득권집단의 영향력에 의해 지방자치단체 정책이 좌우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다수 주민들은 지방자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방관 또는 회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ssha_01.jpg“노동운동의 지역사회 활동? 쉽지 않을 걸”

이런 속에서 오는 5월31일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4년 만에 돌아오는 지방선거지만, 이번에도 정책선거가 되기는 요원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 지역감정과 연고주의에 의해 투표가 영향을 받고 있다. 

이렇게 정책선거가 되지 못하고 합리적인 투표가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는 일상적인 주민참여를 통해 걸러진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갑작스럽게 지역정책에 관심을 갖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주민들이 지역정책에 관심이 있으려면, 평소에 관심가질 만한 계기와 지역정치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운동이 꾸준히 노력해 왔지만 한계도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일상적인 주민참여가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는 결국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최근 노동운동에서도 지역사회와 지방자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민주노동당도 이번 지방선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런데 지역사회, 지방자치에 관심을 가질 때에 한번 짚어봐야 할 문제들이 많다. 다음에서는 시민운동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두서없이나마 제시해 보고자 한다. 물론 이 문제들의 상당수는 지역시민운동에 적용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조직 중심 연대, 노동 중심 사고 탈피하라 

노동운동을 오래도록 해온 분들과 지역문제나 지방자치 관련해서 만날 때 드는 솔직한 생각은, ‘노동운동에서 익혀온 사고나 경험을 상당부분 버리지 못하면 지역에서의 활동은 어렵겠다는 것이다. 우선 노동운동은 단체중심, 조직중심의 사고에 너무 익숙한 것 같다. 연대활동을 해도 단체중심, 조직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지역사회의 상황은 단체중심, 조직중심으로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하다. 뿐만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 해서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과 제대로 접촉할 수도 없다.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시민단체들도 지역에 있는 주민들과 제대로 접촉하고 주민들을 주체로 조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단체중심의 연대’는 결국 주민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기 쉽다. 그리고 지역 활동은 기본적으로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꾸준히 만나가고, ‘좋은 사람’을 찾으면 그 사람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함께 활동하는 경험을 쌓아나가는 과정이다. 즉 한 사람의 주민을 주체로 바라보지 않으면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다.

현재 지역사회에서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시민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주민들의 생활과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서, 무슨 단체들끼리 연대하는 방식으로는 지역 활동을 하는 데 한계가 너무 많다. 또한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이야기는 스스로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스스로 주민이 되지 않고서는 주민들을 만나기도, 주민들을 주체로 조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런 접근법을 취했는데도 실패한 경우도 많고, 주민들의 회의적인 태도를 바꾸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운동이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물(주민)과 기름(운동)’ 관계처럼 주민들과 최소한의 소통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노동운동 중심의 관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노동문제가 중심적인 관심사인 경우는 많지 않다. 도시 지역의 경우에 주된 관심사는 복지, 환경, 교육, 문화, 성 평등 등 주로 ‘생활문제’들이고, 실제로 지방자치에서 다룰 수 있는 영역들도 이러한 부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농촌 지역에서는 지속적인 인구감소와 지역침체를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다. 주민들의 관심은 이런 데 있는데, 뜬금없는 구호나 의제를 외부에서 갖고 들어가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무상의료, 무상교육” 같은 구호도 그 지역에 맞게 구체화되지 않으면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구호를 내세우기 이전에, 그 지역 주민들이 겪고 있는 의료문제, 교육문제의 실태는 어떠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지역적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고민들이 바탕이 될 때에만 “무상의료 무상교육” 역시 실제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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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조의 전국교사대회. 지역사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  - 출처:매일노동뉴스 ]

어려운 말 말고, 소박한 실천으로 설득해야 

셋째, 노동운동은 자신들이 기존에 취해온 ‘방식’이 지역사회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선 많은 지역에서 활동의 중심이 여성들이고, 여성들의 관심사에서 출발해야만 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여성들은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하며, 조직적 이해관계보다는 삶의 문제들에 관심이 많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운동방식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지역 여성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육을 하더라도 밤에 하면 지역 여성들은 참여하기 어렵다. 생활협동조합 등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는 단체들의 교육시간, 회의시간은 주로 오전이다. 그런데 노동운동이나 민주노동당의 교육에 초대를 받으면 대부분 시간대가 저녁인 경우가 많다. 이런 차이들이 일을 진행할 때는 사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사소하지 않은 결과 차이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넷째, 운동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해온 분들이 많이 느끼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인정받는 활동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진보적인 가치들을 무엇보다도 ‘몸’으로 실천해낼 수 있어야 한다. 말보다는 실천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길이다. 생태, 성 평등, 인권과 같은 다양한 진보적 가치들을 몸에 익히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에서는 어려운 이론보다는 소박한 실천이 중요하다. 지역의 여성들, 주민들에게 어려운 말을 써서는 소통이 되질 않는다. 노동운동에게 익숙한 말들이 지역의 여성, 주민들에게 생소한 것일 수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사실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재야운동, 민주화운동에서 출발한 지역운동단체들이 지역에서 더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생각한 점들이다. 아마 노동운동이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지방자치에 참여하려고 할 때에도 반드시 검토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울산이나 창원 등 ‘노동자 밀집지역’을 지역운동의 모델로 상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내 경험으로는 울산이나 창원은 매우 특수한 지역이다. 그 정도로 대규모 사업장들이 밀집해 있고, 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지역에 밀집해서 사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 전국의 대다수 지역은 울산이나 창원과는 다른 상황이다. 노동운동이 지역사회, 지방자치에 관심을 가지려 한다면 보다 일반적인 활동모델을 찾아야 한다. 

한편 울산이나 창원에서도 지금까지의 경과에 대해 평가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는 기본적으로 삶의 공간이다. 삶의 공간에서는 먹고, 숨 쉬고, 자고, 아이를 키우는 것, 즉 기본적인 환경, 복지, 인권의 문제들이 실현되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아닌 이들까지 포함하는 모든 주민들의 관심사다. 이런 문제에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할 수 있는 일들

한편 노동운동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지역과 밀접해 있는 조직이 있다. 예를 들어 전교조나 공무원노조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하고 있는 일이 지역주민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이런 점에서 지역사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라도 전교조나 공무원노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전교조나 공무원노조의 활동은 지역과 주민들과 밀착해 있지 못하다는 게 솔직한 느낌이다. ‘공무원노조의 노동3권 보장’이 지역주민들에게 공감되려면, 먼저 공무원노조가 지역사회, 지방자치를 바꾸는 데에 앞장서 실천해야 한다. ‘투명행정’, ‘책임행정’을 만들고, 주민들이 지방자치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해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공무원노조가 자율적인 연구모임을 만들든지 해서 연구도 해야 한다.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상의하고, 필요할 때에는 행정적 지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야만 지역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래야만 공무원노조의 노동3권 주장에도 주민들이 공감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교조도 합법화 이후 학교 현장이나 지역사회에서의 활동은 미약했다고 본다. 지역에서 인권이나 평화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 모임들이 많이 생겼지만, 전교조 소속 조합원들이 얼마나 이런 단체, 모임들에 참여하고 소통해 왔는지는 의문이다. 전교조 조합원들이 과연 학생들의 인권에, 지역 청소년들의 인권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학교나 지역현장에서 그와 관련된 실천을 하는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 아동인권조례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에 전교조가 참여하고 있고, 학생들의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거나 전교조 전체 차원에서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전교조가 지역에서 어린이, 청소년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학교에서도 ‘인권과 평화가 존중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간다면, 그 활동 자체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선거 때 시작되는 관심은 이미 늦다”

얼마 전에 어느 지역 활동가로부터 “(노동운동이) 왜 평소에는 지역운동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 선거 때가 되면 지역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 지역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수도 있다. 

어쨌든 선거 때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선거 때에는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다. 평소에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렸을 때에만 선거에서도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이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지역운동, 지역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그것을 통해 아래로부터 사회를 바꾸는 힘을 만들어나갔으면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