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노동정책, 노동유연화에 대응하는 스웨덴 금속노조의 선택

노동사회

연대노동정책, 노동유연화에 대응하는 스웨덴 금속노조의 선택

편집국 0 4,057 2013.05.19 07:39

스웨덴 금속노조(Metall)는 스웨덴 노동운동사에서 언제나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1898년 스웨덴노총(LO)이 건설될 당시에서부터 금속노조는 다수 조합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1905년 총파업의 선두에 서서, 사용자가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대신 노조가 사용자의 채용, 해고, 노무관리 등의 경영권을 인정하기로 한, 1906년 ‘12월 협약’을 끌어낸 것도 금속노조였다. 2006년 현재에도 금속노조는 스웨덴 생산직노조 중에서 가장 많은 조합원을 가진 조직으로, 2006년 1월 화학노조(IF)와 통합하여 약 44만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금속산업이 수출경제를 뒷받침하고 전체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부문이기 때문에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로 금속노조는 노동운동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해왔다.

조직체계, 교섭의 선구적 행위자로서 금속노조 

subumin_01.jpg1888년 건설된 이후 118년이 되는 지금까지, 금속노조는 조직체계, 임금교섭, 경영참가, 숙련형성 등에서 항상 선구적인 행위자였다. 우선 조직체계 면에서, 금속노조는 직종별노조들의 통합 결과물이었다. 이는 스웨덴 노동조합운동이 1909년 총파업 실패 이후 조직발전 전망으로 채택하였던 ‘산업별노조’ 원리를 받아 안은 것이었다. 우선 금형노조를 통합하고 다른 직종별노조에 부분적으로 속해 있는 금속계열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흡수하였으며, 기계 및 철강산업에 고용되어 있는 미숙련노동자들을 조직하였다. 이러한 20세기 전반의 산업별노조 조직화 과정을 통해 금속노조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산업별노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금속노조는 1990년대 이후에도 다른 산별노조와의 통합을 통해 노조조직을 합리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3년에는 광산노조와 통합하였고, 2006년에는 화학노조를 통합하여 세계적 추세를 보이고 있는 ‘대규모노조 만들기’에 동참했다. 이러한 조직 통합은 노동조합이 다양한 영역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며, 산업구조 변화에 의해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지면서 생길 수 있는 조직적 갈등을 없앤다. 이러한 조직통합을 준비하면서 금속노조는 산별노조 간 통합 이전에 이미 노조기관지를 공동으로 만든다거나 산별노조 간 공동 기본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을 밟기도 하였다.

둘째, 금속노조는 임금교섭 면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금속노조는 상대적으로 고임금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노조가 교섭하기 전에 선도적으로 요구를 제시하면서 스웨덴 노동운동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역할을 하였다. 노총과 사용자연맹 간 중앙교섭이 실시되는 연대임금정책이 1950년대 중반에 채택되기 전까지, 금속노조는 임금교섭 및 단체교섭의 ‘패턴형성자’로서 기능하였다. 그 이후 이른바 ‘스웨덴 모델’로 불리는 연대임금정책 -즉 노총(LO)과 사용자연맹(SAF) 간 중앙교섭- 을 통해 산업 간 임금격차를 축소하여 비교적 평등한 임금수준을 유지하는 과정에서도, 금속노조의 역할이 중요했다. 건설노조와 함께 다른 노조에 비해 고임금이었던 금속노조가 연대임금정책에 동참함으로써 1980년대까지 중앙교섭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세기 전반기 금속노조의 선도적 역할이야말로 연대임금정책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었다.

인간적인 작업장, 노동의 인간화, 연대노동정책

셋째, 경영참가 면에서 금속노조는 ‘연대노동정책‘(solidaristic work policy)’을 추진하였다. ‘노동의 인간화’라고 부를 수도 있는 연대노동정책은 1960년대 말부터 일어났던 노동자들의 비교적 자발적인 투쟁에 힘입은 노총(LO)의 산업민주주의 참여결정과 사회민주당 정부의 공동결정법 및 현장위원의 지위에 관한 법 제정 등에 힘입은 것이었다. 1960년대 이전까지는 사용자의 특권이라고 묵시적으로 인정됐던 기업경영 문제에 대해 사업장노조가 공동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면서, 금속산업 노사는 노동의 인간화 프로젝트를 여러 사업장에서 실험적으로 시도하여 ‘인간적인 작업장’ 형성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1985년 금속노조가 채택한 ‘가치 있는 노동’이 1989년 대의원대회 결정을 통해 ‘연대노동정책’으로 발전했다. 연대노동정책은 1980년대 이후 강화된 국제경쟁과 산업구조조정에 대응하기 위해 노조가 선택한 전략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스웨덴 경영자들도 1990년대에 들어서는 신자유주의와 유연성 강화를 요구하게 되는데,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대한 대안으로서 금속노조가 임금체계, 작업조직, 교육훈련을 통합적으로 체계화시키려는 연대노동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조합이 임금체계, 작업조직, 교육훈련을 확장함으로써 노동자의 숙련향상과 고용증대를 가져오는 ‘직무발전(work development)’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사실 연대노동정책은 금속노조뿐만 아니라 스웨덴 노총(LO)이나 사무직노조들도 기본정책으로 내걸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금속노조는 연대노동정책을 몇 가지 분야로 나누어서 평가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임금체계, 고용안정, 교육훈련, 작업조직, 노동환경, 남녀평등에 대해 각 사업장에서 얼마나 개선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2년마다) 평가하고 있다. 금속노조가 내세우고 있는 연대노동정책의 9개 원리는 △고용보호, △공정한 분배, △공동결정, △협력적 작업조직, △일자리 제공, △노동의 일부로서의 교육, △노동시간 단축, △작업장 평등, △위험 없는 노동환경이다. 대부분의 평가자들은 연대노동정책을 통해 상당한 점진적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업률 증가와 연대노동정책

그러나 연대노동정책이 성공만을 거둔 것은 아니다. 볼보자동차에서 주로 실험되었던 혁신적 작업조직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중단되는 과정을 겪기도 하였다. 볼보의 대표적인 ‘인간적 작업조직 공장’이었던 칼마르 공장과 우데발라 공장 실험이 1989년에 중단되었으며, 우메오 트럭 공장에서도 종전의 조립공정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이것은 1990년대 들어 스웨덴 자동차회사들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결국 대표적 자동차회사인 볼보와 사브는 미국 회사에 의해 인수되었다. 1999년엔 볼보(Volvo)가 포드(Ford)에게, 2000년엔 사브(Saab)가 제너럴모터스(GM)에 의해 인수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금속노조의 연대노동정책이 산업의 현실을 거슬러서 나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1990년대 초 자동차산업뿐만 아니라 스웨덴 경제 전반적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정부 재정적자는 늘어나고 실업률이 급속히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19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경제가 풀리고 재정적자도 많이 줄어들었다. 경제성장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실업률도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용안정 및 실업률 감소는 중요한 사회적 주제로 대두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2006년 스웨덴 노총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노동자의 요구사항 중 으뜸은 ‘실업률 감소’이다. 노동자 요구사항 10가지는 △실업률 감소, △노동환경 향상, △고용안정, △단체협약 모델, △치과보험 향상, △연금 향상, △정규직화, △노인복지 확대, △교육투자 확대, △능력개발 강화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웨덴 연대노동정책이 한국사회에 주는 시사점

스웨덴 금속노조의 연대정책은 100여년 동안 시대적 환경에 맞추어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노조결성 및 운영 자체가 어려웠던 20세기 초에는 총파업투쟁과 산별조직화를 내용으로 하는 ‘조직적 연대’를 추진하였고, 사회민주당 정부가 들어서고 임금향상과 사회복지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20세기 중반기에는 ‘연대임금정책’을 통해 노동자간 임금연대로 나아갔다. 또 기업 및 사업장 차원의 산업민주주의 요구가 증대한 1970년대 이후에는 ‘공동결정제도’ 및 ‘연대노동정책’으로 노동운동의 요구를 담았다. 물론 이러한 연대정책은 금속노조만의 힘이 아니라 스웨덴 노동운동 전체의 강한 권력자원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중앙교섭이 경영자들의 분권화 요구로 해체되기 시작했음에도, 금속노조는 산별교섭을 유지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광산노조 및 화학노조와 통합하는 과정에서 보이듯이 최근의 노조통합 추세를 따르면서, 기존의 산별교섭체계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업종별로 약 10여개의 산별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조직체계 면에서도 금속본조-지역지부-사업장분회의 3단계로 되어 있어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단체협약은 금속 본조에서 업종별 교섭위원회에서 체결된다. 

사업장 차원에서는 노조분회에 의한 공동결정과 보충협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및 사무실 지원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 사업장 차원의 경영참가가 독일의 사업장평의회나 한국의 노사협의회가 아닌 ‘노조분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이 단체협약과 경영참가를 동시에 수행하는 유일한 조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업장 보충협의 시에는 금속노조 외에 사무직노조(SIF)와 함께 공동교섭단을 구성하여 협의하기도 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추진된 연대노동정책은 경영자에 의해 추진된 성과주의 임금체계와 유연성 정책에 대한 노동 차원의 대응 전략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노동생활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 임금체계, 작업조직, 교육훈련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하여 노동자가 ‘좋은 직무’를 갖도록 하고, 고용안정과 능력향상을 얻을 수 있도록 새로운 모델을 형성한 것이다. 이러한 연대노동정책은 노동조합운동의 기본 가치인 임금평등, 고용안정, 민주적 작업조직 및 의사결정에 기반하고 있다. 몇 가지 부분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환경에 맞게 노동을 설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우리 노동운동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