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하이스코 세 번의 고공 농성, 동지들께 승리 보고합니다!

노동사회

현대하이스코 세 번의 고공 농성, 동지들께 승리 보고합니다!

편집국 0 2,869 2013.05.19 07:37

2005년 11월3일 순천시의 중재로 현대하이스코 해고자 문제는 해결되는 듯 했다. 언론은 물론 노동계도 풀기 어려운 비정규직문제를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중재해서 풀었다면서 긍정적 평가를 했다. 하지만 당시 체결된 '고용보장 확약서'는 6개월 동안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확약서'의 핵심 내용은 하청업체 폐업으로 발생한 해고자를 복직시키는 문제였다. 즉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의 하청업체는 신규채용이나 4조3교대 도입을 통해 해고자를 우선채용 △노동조합 활동 보장 △농성 사태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 최소화 등 현대하이스코가 해고자 복직을 적극 지원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지켜지지 않는 확약서, 돌아온 건 손배와 해고

그러나 확약서 체결 이후 현대하이스코는 2005년 12월 남광산업, 유성티엔에스 위장폐업으로 50여명을 추가로 해고시키고 해고자 복직은 비조합원 7명을 신규채용 하는 데 그쳤다. 게다가 2005년 12월 공장 내 크레인 농성에 들어간 탓에 발생한 영업손실을 근거로, 농성조합원들과 민주노총 관계자 66명을 대상으로 72억4천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확약서 이행을 촉구하는 여섯 차례 교섭은 현대하이스코가 빠지고 하청업체 대표만 참석하는 형식적인 자리가 되었다. 현대하이스코의 사회적 합의서 확약서를 역행하는 행동은 지역시민과 지역노동자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한편 확약서 체결에 동참했던 현대하이스코 하청업체 대표들 역시 확약서 이행에 소극적이었다. 확약서 체결을 끌어냈던 순천시와 광주 노동청 또한 확약서를 이행하지 않는 현대하이스코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61명에 조합원의 목숨을 건 크레인 점거농성으로 얻어낸 확약서를 현대하이스코와 하청업체대표들은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금속노조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는 2006년 서울 강남대로에서 확약서 이행을 촉구하는 삼보일배를 시작하며 ‘2차 투쟁’에 돌입했다. 추운 겨울 강남대로에는 눈발까지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투쟁결의는 아스팔트에 쌓이는 눈까지 녹일 정도였다. 그렇게,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겠다. 부도덕한 현대자본에 이렇게 굴복 할 수는 없다’는 각오로 우리는 다시 투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006년 3월2일 확약서 이행촉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공장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박정훈 지회장이 구속되고 많은 조합원이 크레인 점거농성으로 형 집행정지를 받고 있는 상태였지만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과 탈법을 마구잡이로 자행하는 현대하이스코와 싸우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노동자들의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현대하이스코 자본은 용역경비를 앞세워 몇 차례 천막침탈을 시도했다. 또 공장 안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노동조합과 결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본때 보여준 2차 점거농성과 정몽구 회장의 구속

결국 우리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법도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기업을 다스리지 않았다. 정부기관은 해고노동자들의 한없는 눈물과 울분을 외면할 뿐이었다. “비정규직 차별 없는 세상”을 주장하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듯이, 우리는 “이 투쟁은 우리가 이어가야 한다”는 다짐과 구속을 각오한 굳은 결의를 갖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6년 4월19일 새벽,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조합원 33명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현대하이스코 자본을 규탄하며 2차 크레인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점거농성 시작 불과 7시간 만에 경찰특공대와 용역경비가 대테러용 장비와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몰려왔다. 우리는 결국 강제진압을 당했다. 

하지만 크레인 재점거농성이 가지는 의미는 너무나 컸다. 2차 크레인 점거농성을 통해 약속을 파기한 현대자본 만행을 전국에 다시 한 번 알릴 수 있었다. 그 결과 각종 언론과 전국의 수많은 동지들이 우리 투쟁을 적극 지지하고 엄호하고 나선 것이다. 시간이 지나 묻혀버리기만 학수고대했을 현대자본에게 ‘우리는 결코 이 투쟁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크레인 농성과정에서 발생하는 민형사상 문제도 사회적 약속을 무시하는 현대, 기아자동차 정몽구 회장에게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노동조합 결성 후 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위장폐업으로 대량해고 조치하고, 국민과 노동자가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뻔뻔하게 사회적 합의 확약서를 불이행하는 배후에는 정몽구 회장이 있었다. 정몽구를 비롯한 현대 사용자들은 비정규직노동자를 이윤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부당하고 불합리한 기업논리에 저항하는 조직은 노동부의 묵인 속에서 억압으로 짓눌러왔다. 그런데 마침 정몽구 회장이 불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하여 족벌경영 승계에 사용했음이 들어났고, 검찰이 구속수감했다.

승리 보고, 동지들 고맙습니다!

이렇게 정몽구 회장의 죄과가 밝혀지고 구속됐는데도 노동부는 무대책과 무시로 일관했다. 노동자가 노동법에 준하여 노동조합을 만드는 이유는 부당한 방법으로 노동력이 착취되는 것을 방지하고 사측과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노동부는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기업주를 감독하지 않고 탄압받는 노동자를 끝까지 외면했다. 결국 2006년 5월1일 새벽, 비정규직 조합원 2명이 서울 양재동 현대, 기아차 신축공사 현장으로 들어가 제3차 고공크레인 농성을 시작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005년 11월3일 11일간 1차 크레인 농성으로 얻은 확약서는 사실 부족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지역사회를 믿고 확약서에 서명하고 농성을 끝냈다. 하지만 정작 확약서 체결 이후 6개월이 넘도록 확약서가 이행되지 않았고,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투쟁 이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고공크레인 투쟁과 서울 양재동 본사 앞 천막농성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곧바로 투쟁승리를 예감했다.

고공크레인 농성이 길어져 조합원 2명이 하루 김밥2개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추위와 공포 속에서 떨어야 했지만, 전국의 노동자와 시민에 적극적인 지지와 사랑으로 14일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2006년 5월13일, 현대자본이 마침내 굴복했다. 해고자복직,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을 요구하며 11월간 벌였던 투쟁을 드디어 승리로 이끌게 된 것이다. 고공크레인 농성을 견뎌내고, 우리가 투쟁을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노동자들의 연대와 시민의 지지가 절대적인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