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의 한과 꿈, 포항에서 폭발하다!

노동사회

건설노동자의 한과 꿈, 포항에서 폭발하다!

편집국 0 3,461 2013.05.23 11:58

포항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학교를 나오고, 십 수 년을 거대한 포스코 공장에서 쇳가루 날리는 도시락밥을 먹으며 일하다가, 자신이 날마다 출퇴근을 하던 형산강 다리에서 맨몸으로 저항하던 중 경찰의 집단폭력에 맞아 죽은 건설노동자. 하중근 열사의 삶에는 포항지역 건설노동자, 아니 비정규 건설일용노동자의 삶과 꿈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포항지역건설노조 파업이 50일을 넘어서고, 하중근 열사가 사망한 지 20일이 넘었지만 해결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그것을 조망하기란 쉽지 않다. 글이 미완성인 것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2000년 건설산업연맹이 총파업 투쟁을 선언하고 주민등록증 반환투쟁을 논의한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건설노동자는 국민 취급을 받지 못하니, 주민등록증을 반환하자는, 피눈물과 분노가 서린 투쟁계획이었다. 

흔히 ‘노가다’, ‘작업인부’ 등으로 불리는 건설노동자들은 이름도 없고, 기술도 없고, 능력도 없는 최하층 노동자 빈민집단으로 국민들에게 인상 박혀 있다. 건설노동자의 문제가 그나마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한 게 삼풍백화점 붕괴가 있었던 1995년이다. 당시 삼풍백화점 졸속 건설 앞에서 건설산업과 관련한 수많은 대안 논의가 거듭되었지만, 남은 것은 오히려 ‘시공참여제도’라는 불법 재하도급 양성화였다. 그리고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8년 건설노동자들은 ‘실업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언론에 다시 등장했다. 이를 둘러싼 논의 역시 건설산업의 구조적 실업에 대한 개선책은 없이 주변적인 해결책만 몇 가지 마련했을 뿐이다. 

20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 건설노동자의 문제가 건설산업이라는 표제만 달리면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들 듯 사회적 이슈에서 사라져버린 게 지금껏 경험이다. 그 와중에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는 건설노동자들의 ‘죽음의 행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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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16일 포항건설노조 투쟁 집회.   ▷ 민중의 소리 ]

건설산업 구조 모순 속에 통째 박탈되는 노동인권 

건설산업은 국민경제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고용 유발효과가 커서 산업 종사자가 200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거기에 종사하는 건설노동자들은 아주 기본적인 노동인권에서조차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화장실, 식당, 휴게실과 같은 편의시설도 제대로 누리지 못 하고, 장시간 노동, 체불임금, 산재보상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법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 한다. 기본권 중에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을 투표권과 참정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고용규모나 기업의 지불능력에 상관없이 산업 종사자 전체가 기본인권을 구조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 3권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 극단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비정규 건설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임금·단체협상을 하고, 단체행동을 하기 위한 과정의 하나부터 열까지 구조적으로 배제당하고 있다. 건설노동자의 조직률이 현재 2%도 채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설노동자들이 ‘다단계 하도급’과 ‘일용직고용’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 그 근본원인이다. 우리나라 건설산업은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공사이건 수천만 원이 들어가는 공사이건, 공공공사이건 민간공사이건 간에,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진행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노동조합 결성과 활동은 기본적으로 발주처나 원청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여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거대 건설자본은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을 사활을 걸고 막고 있다. 

하청단위에서 노조를 결성해서 임·단협을 체결하고자 하면, 하청회사 사측은 시공참여계약을 내세워 현장의 팀장과 반장을 사용자라고 주장하고 나선다. 또 발주처나 원청은 도급계약 해지, 출입증 발급을 이용한 해고를 이용해서 노조 결성 자체를 막아 나선다. 원청과 단협체결을 요구하면 공갈 갈취범으로 몰아서 노조 간부를 구속한다. 우여곡절 끝에 노조를 결성하면 집단교섭 거부, 대체인력 투입, 노조 탈퇴 종용, 해고 등으로 단체교섭과 단체행동권을 틀어 막아버린다.

원청에겐 너무 쉬운 노조죽이기 

mschoi_02.jpg건설노조 활동에 대한 발주처나 원청의 노동탄압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울산 건설플랜트노조와 전남동부 건설노조처럼 발주처가 직접 노동자들에게 ‘노조탈퇴서’를 요구하며 노조 가입을 막아서는 경우가 있다. 하청업체들에게 일을 하고 싶으면 노조탈퇴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또 제출처를 하청업체가 아닌 발주처인 SK나 포스코라고 명시하고 있다. 발주처가 직접 노조탈퇴를 요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이번 포항 목공철근분회의 경우처럼 ‘8시간 노동’을 요구했더니 아예 ‘집단해고’를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포항의 경우만 봐도 작년 보온분회에서 임·단협을 요구했더니 집단해고를 했고, 경남 하동의 어느 발전소에서는 조합원을 해고한 뒤에 외국인력으로 전체 인원을 대체해 버리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건설업의 구조를 통해 노조활동을 거세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울산에서는 원청 건설사들이 하청업체에게 공사를 설명하고 입찰을 받는 설명회 자료에 버젓이 “조합원을 채용하고 있는 업체에 대해서는 불이익이 간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여수산업단지의 34개 원청사들의 노조 대응 전략 속에는, “노조원들에 대한 성향 파악자료를 공유하고 하청업체들이 인사 노무관리 현황을 모니터링해서 협력업체 입찰에 반영시키고, 이 정보를 34개 원청사가 공유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포스코 건설은 몇 년 전부터 타워크레인노조 조합원을 채용하면 타워 임대업체에 불합리한 계약조건을 요구하거나, “원청과의 임·단협 체결 금지”를 본사 지침으로 하달하는 등 노골적인 노조 탄압을 지속해 왔다. 

노조활동에 대한 발주처와 원청의 노골적인 탄압도 지속되어 왔다. 여수산업단지에서는 하청업체들과 임·단협이 체결되어 있어도 사측이 노조조끼 착용금지, 노조간부 출입통제, 하청과 체결한 산업안전교육 거부 등을 자행해 왔고, 심지어는 핸드폰 반입을 금지시키거나 출근할 때마다 몸수색을 하는 등 인권유린이 버젓이 자행되어 왔다. ‘대체인력 투입’과 ‘공기연장을 통한 파업 무력화’는 건설현장 노조활동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노조무력화 방법이다. 이에 건설노조의 파업투쟁에는 항상 대체인력 투입 저지를 위한 공방과 현장 출입봉쇄가 따르게 된다. 

부당노동행위는 나 몰라라, 노조활동은 공갈갈취라고!

상황이 이러함에도 현재 정부정책에는 이러한 노골적인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근절방안이 전무하다. 검찰과 경찰은 자본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다.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사업주를 적발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인력 저지 투쟁을 막기 위해 자본의 사병처럼 현장에 경찰병력을 배치하기에 급급하다. 또한 타워크레인노조의 경우처럼 상식적으로 꼭 필요한 ‘타워의 건설기계 등록’이 5년째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것이 결국 타워의 불법 파견과 소사장 용역으로 귀결되고, 그 결과 고공농성이 빈발하는 일도 방치하고 있다. 건설산업 자본가들의 복마전을 위해 숭숭 뚫려 있는 관련 법·제도가 결국 노동자의 노동조건 악화로 연결되고 결국 밑바닥 건설노동자의 온몸을 던지는 제도개선 투쟁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설노조의 노동3권 보장 요구는 곳곳에서 경찰과의 마찰과 대립으로 이어져, 대량구속 사태를 발생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원의 말처럼 “관련 법제도의 문제가 노사관계를 ‘치안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주범”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급기야 검찰과 경찰은 아예 치안문제로 노조활동 자체의 싹을 자르는 선제공격까지 감행하기도 했다. 원청과의 단협을 체결하는 활동을 공갈 갈취로 몰아 전국의 건설노조에 대한 수사와 구속을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는 산업안전법을 위반하여 이를 진정하는 활동까지도 ‘무고죄’로 몰아 검찰이 주도적으로 죄목을 추가하는 작태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대전지방법원에서는 “원청과의 단협 체결과 전임비 지급을 인정”하라 판결내리고,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검찰과 경찰의 노조탄압에 “건설노조 탄압을 중단하라”라는 권고까지 낸 상태다. 그러나 후안무치한 건설노조 죽이기는 지속되고 있다. 올해에는 이러한 방식들이 대구경북건설노조 파업무력화로 이용되었고, 충남건설노조 간부 2명을 구속한 데 이어, 경기도 건설노조로 확대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건설노조 활동으로 인한 구속자가 118명이다. 포항건설노조 66명을 비롯해서, 대구경북건설노조 28명, 덤프연대 15명, 타워크레인노조 6명, 경기서부 1명, 충남건설노조 2명이 구속되었다. 지난해 울산건설플랜트 노조 47명 구속과 합치면 2년 사이 구속자가 165명에 이른다.

건설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운동에게도 관심 밖인 건가?

대한민국 건설현장에서 노조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구속은 물론이고, 하중근 조합원의 사망처럼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 자본과 정권의 총공세에도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은 죽지 않고 점점 더 끈질기고 완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2000년 이후 타워, 레미콘, 덤프 등의 건설기계 노동자를 비롯해서, 경기도, 대구경북, 여수, 울산, 광양 등 지역에서 1년에 수차례의 파업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수년간 건설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노동계나 진보진영에서조차 이를 ‘치안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건설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와 건설산업의 간접고용과 단기고용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노동법이 현재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음에도, 정권과 자본뿐 아니라 노동계나 진보진영도 이에 침묵으로 일관한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건설산업연맹에서 정책을 담당하며 우리 노동계와 진보진영조차도 일부 ‘잘나가는 업종’만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플래시를 터뜨리고, 건설산업과 건설노동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 없는 현실에 너무도 답답하고 분통이 터진 적이 많았다. 

이번 포스코 농성의 원인이 되었던 건설현장 주5일제 실시나, 외국인력 문제와 관련해서는 연맹에서 수년간 정부에 제도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정부뿐 아니라 전체 노동계에게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거나 함께 논의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정부나 자본은 지금 하중근 열사의 죽음을 통해 불거지고 있는 이 문제가 하루빨리 정리돼 언론의 조명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계는? 건설산업의 구조적 특성에 의한 노동3권 박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당연히 제2의, 제3의 포스코 농성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 노동계 또한 구조적인 접근 없이 시간만 보낼 것인가? 진지하게 묻고 싶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