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사용자의 임금체계 개악 공세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1월3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노동개혁 4개 법안의 통과를 요청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1월20일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하겠다며, 이를 금융업을 중심으로 확산시키겠다고 밝혔고 이틀 뒤에는 2대 행정지침을 발표했다. 그리고 1월28일에는 기획재정부장관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확정했다.
일련의 임금체계 개악 공세는 착착 진행됐다. 금융위원회는 1월21일 금융공기업 성과주의 확산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발표하더니, 2월1일에는 구체적인 성과연봉제 추진안을 발표했다. 또 3월7일에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공기업 기관장들 간에 성과중심 문화 확산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보수와 평가, 교육, 인사, 영업방식 등 전 부문에 성과주의를 도입한다는 내용이었다.
금융노조의 교섭파트너이자 사용자협의회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이하 사용자협의회)는 3월4일 금융노조에 임금동결, 신입직원 초임삭감, 호봉제 폐지 및 성과연봉제 도입, 저성과자 해고를 내용으로 노사공동 TF팀 구성을 요구했다. 같은 달 30일에는 금융위원회의 산하 7개 금융공기업이 사용자협의회를 속속 탈퇴하면서 올해 산별교섭에 위협을 가했다. 특히 4월22일 대통령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을 직접 챙기겠다고 하자, 6월에는 7개 금융공기업 사측이 이사회를 열어서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이사회를 통한 금융공기업에 성과연봉제가 도입된 이후, 7월2일에는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민간금융사로 이를 확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화답하듯 초대형 민간은행인 KB금융 회장은 “직원 평가에 개인성과를 반영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은행연합회장도 시중은행의 성과연봉제가 공공기관 수준 이상으로 가야한다고 밝히고, 7월12일 시중은행장들을 소집하여 그동안 준비했던 성과연봉제 컨설팅 초안을 설명했다. 7월26일,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제정했는데, 법제정 취지와 맞지 않게 전체 임직원에게 성과보수체계를 도입토록 하는 내용을 슬쩍 끼워 넣어 반발을 사기도 했다.
금융노조의 9월23일 총파업 이후에도 정부와 사용자의 성과연봉제 추진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은행연합회는 10월27일 ‘글로벌은행의 성과주의 제도 운영현황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현 연공서열에 따른 호봉제는 고도성장의 경제 환경에서 만들어진 제도로 임금을 고정화하고, 성과‧능력과 무관한 임금 인상은 은행의 대응력 저하는 물론, 개인의 의욕을 저하시킨다며 성과주의 문화 확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날 금융감독원장도 축사를 통해 공정한 성과도입이 필수적이고, 공정한 성과제를 우선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이 정부와 사용자협의회, 은행연합회, 각 사업장의 사용자들은 연초부터 시종일관 금융권에 성과중심 문화 확산을 위한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사용자협의회의 성과연봉제 도입 공세
금융사용자협의회는 정부, 즉 금융위원회의 압력으로 지난 2월4일 1차 회원사 총회를 개최하고 성과문화 확산 추진을 결의했다. 이후 3월3일에는 2차 총회를 개최하여 안건을 결정했다. 사측이 결정한 안건에 대해 노조 측이 냉담하게 반응하자, 사용자협의회는 3월21일 성과중심 문화 확산에 대해 노조가 대응하지 않을 경우 공공부문 사용자들이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성과문화 도입과 관련해 노사 TF팀 구성 요구 공문을 3월4일과 22일 연속으로 보내왔다. 이틀 뒤인 24일 금융노조가 교섭안건을 요구하자마자, 사용자협의회 역시 금융노조에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보내왔다. △2016년 임금동결과 신입직원 초임은 호봉제 임금테이블 적용을 배제하고 시장 임금에 맞게 조정해 그 재원금 만큼 신규채용 확대, △연공중심의 호봉제를 폐지하고 2016년 내 성과연봉제 도입, △해고 조항에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이 객관적으로 현저한 경우로서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 추가, △직무능력 성과가 현저히 부족한 직원에 대해 근로계약 해지 근거조항을 취업규칙에 마련하고, 공정한 평가를 통한 저성과자 선정, 능력과 성과향상을 위한 재교육 및 업무재배치 등에 관한 절차와 방법을 정함 등이다. 사용자 측의 요구는 지난 3월3일에 결정한 내용과 같다. 이후 사측은 지속적으로 금융사업장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공세를 퍼붓고 있다.
금융노조의 요구내용과 대응 방안
현재 호봉제, 연공제를 유지하고 있는 금융노동자의 임금제도 변경과 고용안정을 위협하는 정부와 사용자의 공세를 방어하기 위해 금융노조는 합법적인 틀 안에서 노동3권을 최대한 활용했다. 특히 금융노조는 산별중앙교섭에서 정부와 사용자 측의 성과중심 문화 확산 저지 등 근로조건 개악 저지를 위해 탄력적인 교섭전략을 세우고, 쟁의권 확보와 쟁의행위를 통한 대응을 했다.
아울러 금융노조는 금융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정부 개입이 직권남용 및 부당노동행위임을 명백히 밝히고, 교섭을 거부하는 사용자에 대해서도 적극 대처했다. 낙하산인사 등 관치금융 철폐, 양성평등과 모성보호, 사회공헌, 노조의 경영참여, 사업장 내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저임금직군 근로조건 개선 등 공세적 안건을 전면 배치함으로써 사측의 성과문화 확산 담론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투쟁했다. 금융노조가 사용자에게 요구한 2016년도 산별교섭 요구내용은 아래 표와 같다([표1]).
또한 금융노조는 사측의 요구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대응하였다([표2]).
산별교섭 경과와 9.23 총파업
2000년 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노사교섭의 형식은 노조가 먼저 안건을 요구하면 사측이 나중에 반응하는 방식이었다. 산별교섭의 경우에는 대개 노조가 3월 중하순에 요구하여 2주 후 교섭을 제안하면, 사측은 요구안건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한 달쯤 후인 4월 중하순에 교섭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2016년 교섭은 예년과 다르게 사측이 먼저 요구서를 보내오면서 시작됐다.
금융노조는 올해 1월27일부터 2월11일까지 산별교섭안건을 수집하고, 두 차례의 임단협담당간부회의(2.12, 2.25)와 전체상임간부워크숍(3.3~4), 지부대표자워크숍(3.17~18), 중앙위원회(3.24) 절차를 거쳐 3월24일 사용자협의회에 요구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사용자협의회는 3월30일 기자회견을 통해 7개 금융공기업의 사용자협의회 탈퇴를 선언했다. 이유는 사측이 제안한 산별노사 TF팀을 노조 측이 거부하고, 3월24일 노조가 요구한 내용이 사측의 요구사항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노조 측의 교섭 일정이 6월 교섭결렬과 쟁의권 확보이기 때문에, 현재 교섭형태로는 성과연봉제의 기한 내 도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에 노조 측은 3월31일 사용자협의회 탈퇴를 사주한 금융위원회 위원장 앞으로 항의 공문을 보내고, 4월1일 1차 산별중앙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아울러 금융위원회를 항의 방문했다. 이후 사측은 계속 교섭거부 통보를 해왔으며, 노조 측은 네 차례에 걸쳐 교섭 참석을 요구하는 공문과 함께 순회 집회, 해당 금융공기업 사용자를 항의 방문했다. 그래도 사용자들의 움직임이 없자, 금융노조는 4월29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했다. 그러나 조정 결과는 성실교섭을 권고하는 행정지도 명령이었다.
금융노조는 5월1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성과연봉제 강제도입을 반대하는 대형집회를 열었으며, 집회 이후 금융공기업에 대해 교섭을 요청했으나 다시 거부당했다. 이에 따라 6월8일 교섭해태로 교섭결렬을 선언하고, 6월24일 2차 조정신청을 하여 쟁의권 확보를 마련했다. 7월19일 진행한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총 조합원 9만 5,168명 가운데 8만 2,633명이 투표에 참여해 95.7%의 찬성률(7만 9,068명)로 쟁의권을 확보했다. 쟁의 목적은 일방적 성과연봉제 강제도입 분쇄, 사용자 측의 임단협 개악 요구안건 철회, 2016년 임단투 승리(임금인상 및 근로조건 개선), 고용안정을 위협하는 관치금융 철폐였다.
금융노조는 8월23일 중앙위원회를 열고 임시대의원대회에 총파업을 상정하기로 의결하였으며, 9월1일 열린 임시대대에서 9.23 총파업 등을 포함한 하반기 총력투쟁 계획안을 의결했다. 주요 내용은 9월23일 총파업에 돌입하고, 총파업 당일 전체 조합원 90% 이상, 그리고 현재 근무 중인 조합원 전원을 총파업 장소에 집결시킨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10월부터 2, 3차 총파업 등을 포함한 쟁의행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며, 쟁의행위 절차와 시기 및 방법은 금융노조 위원장에게 위임한다고 했다. 사용자들은 맞불이라도 놓듯 노조가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8월26일 사용자협의회 탈퇴를 의결하여 산별교섭 여지를 아예 없애버렸다.
결국 금융노조는 9월23일 하루 총파업을 단행하였으며, 조합원들은 일손을 놓고 상암월드컵경기장에 집결하였다. 한편, 지난해부터 연대투쟁을 모색해 온 양대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도 8월18일 대표자회의를 갖고, 투쟁 준비사항 공유와 법률지원단 운영, 9월 공동투쟁계획 논의, 노정교섭 요구, 국회토론회 등을 실시하였으며, 공공부문 연속 총파업에 나서는 등 총력 투쟁에 진력했다.
금융노조는 11월18일 2차 총파업을 예고하고, 사측의 사용자협의회 탈퇴를 인정하지 않은 채 교섭에 참여할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으나, 사용자들은 사용자협의회 탈퇴로 산별교섭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별교섭이 아니라 지부별 노사 교섭을 통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는 계략인 것이다.
2016 산별교섭 결과와 과제
2000년 3월 산별노조로 전환한 이후 안정적으로 이어져 왔던 금융노조의 산별교섭은 2016년에 와서 파탄에 이르렀다.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 부처들이 자본에게 강력한 성과주의 도입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공기업과 민간금융사업장이 ‘금융노조와의 단체교섭으로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불가능하다’며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한 것이다. 즉, 금융권의 산별교섭이 파탄이 난 것은 노동부의 2대 행정지침 발표와 기재부의 노동 5대 입법 및 성과주의 임금체계로의 변경 추진, 금융위원회 및 금융사용자협의회의 성과주의 문화 확대 요구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2016년 금융노조의 산별교섭은 아직까지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몇 가지 문제점을 안게 되었다. 첫째, 2016년 금융노조는 각 은행의 사용자협의회 탈퇴로 인해 산별교섭의 위기를 맞았다. 산별교섭의 파탄으로 향후 금융노동자의 고용 및 임금도 큰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둘째, 그동안 근로조건의 주요 변수로 작용했던 것이 수익의 부침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성과문화 확산 정책에 걸려 산별교섭이 파탄 난 것이다. 정부의 정책강도에 따라 노조의 활동이 크게 제약을 받고 있다.
셋째, 산별교섭 파탄은 그간 조직률 10% 내외의 소수노조 중심으로 노사협조적 관계를 유지해 온 전체 노조활동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노조를 폭넓게 조직하여 노조활동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올해 성과연봉제 도입시한은 39개 공기업의 경우 상반기, 90개 준정부기관은 하반기까지이다. 금융위원회도 민간은행의 도입시한을 2016년 말로 박고 있어서 금융노사관계는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노조가 9.23 총파업에 이어 11월18일 2차 총파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정부와 사용자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박 대통령 측근의 비리로 나라가 혼란스러우니, 금융산업의 올해 노사관계는 그 끝을 알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