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종태 열사의 투쟁을 제2의 촛불항쟁으로

노동사회

故 박종태 열사의 투쟁을 제2의 촛불항쟁으로

편집국 0 3,358 2013.05.2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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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0일 서울 여의도 문화공원에서 열린 공공운수 노동자 결의대회  ▷ 노동과세계 ]

지난 3월16일 우리나라 택배업계 1위를 자랑하는 대한통운 자본이 택배노동자 78명을 무더기 해고했다. 대한통운 자본은 2009년 1월에 택배기사들과 배달 수수료를 한 건당 30원 인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대한통운 자본은 이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에 항의하는 택배노동자 수십 명을 문자 한 통으로 집단 해고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택배노동자들은 회사로 달려갔지만 이미 회사문은 닫혀 있었고 경찰들에 의해 겹겹으로 둘러 싸여져 있는 회사에는 단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도 택배노동자들은 그 어디에도 하소연 할 데가 없다. 현행법상 ‘사업자’로 분류돼 노동자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집단해고 역시 회사의 입장에선 ‘해고’가 아닌 사업자와 사업자 간의 ‘합법적인 계약해지’가 되는 것이다. 그들도 한때는 대한통운의 어엿한 정규직 노동자였다. 하지만 IMF 사태 이후 사업자로 전환되면서 그들의 운명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하루 15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강요당해야 했으며, 임금이 대폭 삭감됐을 뿐만 아니라 기름값, 보험료, 기타 부대비용 전액을 부담해야 했다. 회사가 정한 각종 벌과금과 사고 금액 역시 택배노동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이 나라의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특수고용직’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할 모든 권리를 철저히 박탈당하면서 살아 왔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빨간 모자의 웃는 얼굴 아저씨’ 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의 암울한 현실이다.

‘문자해고’ 이후, 극에 달했던 자본과 정권의 탄압

박종태 열사는 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이 소속되어 있는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으로서 해고된 택배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했다. 자결 항거하기 바로 직전까지 박종태 열사는 대한통운 자본에 맞서 원직복직 쟁취, 화물연대 인정 등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을 진두지휘 했다. 박종태 열사와 해고된 택배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대한통운 자본에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한통운 자본은 이번 집단해고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사태 해결에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 왔다. 대한통운 자본은 “개별 면담을 통한 1년 임시계약직 선별 채용, 민·형사상 손해배상 추진, 화물연대 탈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그 누가 보더라도 택배노동자들과는 앞으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투쟁하는 과정에서 연일 경찰에 의한 폭력진압과 연행, 수배, 구속이 이어졌다. 1인 시위조차도 할 수 없었다. 해고된 택배노동자에게 소환장이 날아오고 경찰들이 가족들을 찾아와 협박하고 회유하는 일은 일상사가 되었다. 자본과 정권의 탄압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악조건에서 투쟁하면서 느꼈을 박종태 열사의 고뇌는 그의 유서 곳곳에 남아 있다. “경찰한테 힘없이 밀리는 동지들을 지켜보면서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보니……”,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내몰린 지 43일 되도록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꼭 이렇게 해야, 이런 식의 선택을 해야 되는지, 그래야 한 발짝이라도 전진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속상하고 분합니다.”

43일간의 투쟁에서 박종태 열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과 정권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했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너무나 소중한 목숨을 “날고 싶어도 날 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행복하고 서로 기대며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그렇게 바쳤다.   

지독한 반노조·반노동자·반민중 정책의 명백한 타살이다

박종태 열사의 죽음은 이명박 정권의 명백한 타살이다. 올 초 이명박 정권은 특수고용직은 노동자가 아니라며 화물연대 조합원을 운수노조에서 내보낼 것을 요구했다. 심지어 화물연대를 운수노조에서 탈퇴시키지 않으면 운수노조 설립 신고를 취소하겠다고 협박했다. 노동3권도, 근로기준법도, 4대 보험도 적용되지 않으며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철저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수백만의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이명박 정권의 무식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개입’ 결정을 내렸겠는가? 

이명박 정권은 또 ‘노동시장 유연화’를 2009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최근에 발표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해외 연구기관의 보도가 다수 있었고 1500만 임금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이 85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채택한 것이다. 지금도 문자 한 통으로 아무런 법적 제재 없이 수십 명의 노동자를 자를 수 있는 이 나라에서 말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어디 이뿐인가? 생존권을 위해 망루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철거민들을 불태워 죽이고 한국타이어 수십 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어나갔다. 게다가 쌍용자동차 노동자 수천 명을 정리해고한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정리해고의 스트레스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공권력 투입도 초읽기라는 언론의 보도가 나온다. 수없이 많은 노동자, 민중이 죽임당하고 잘리고 짓밟히고 있다. 수십 명의 택배노동자들 집단해고와 박종태 열사 죽음의 본질에는 이처럼 이명박 정권의 지독한 반노조 정서와 반노동자, 반민중 정책이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박종태 열사의 죽음의 뒤에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처참한 현실이 있다. 열사가 얘기한 것처럼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도 적용받지 못한다. 치료에 수백, 수천만 원이 들어도 모두 자기 부담이다. 게다가 다쳐서 몇 달 동안 일을 못해도 아무런 법적인 구제를 받을 수가 없다. 수많은 화물노동자들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 자본이 수십 명을 해고해도 사업자 간의 ‘계약해지’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이번 택배노동자들의 집단해고가 그와 같은 경우였다. 택배노동자들은 해고된 뒤 지금까지 대한통운 자본과 교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지금도 해고된 택배노동자들과 화물연대는 대한통운 자본에 성실한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통운 자본은 화물연대와는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노동조합이 아니기 때문에 교섭을 할 수 없으며 이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한 노동3권 부정은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아 왔다. ILO를 비롯한 국제 노동계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한 노동3권 인정을 수차례 권고했지만, 한국의 정권과 자본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마다 화물연대의 생존권 사수 투쟁은 격렬할 수밖에 없다. 맨몸뚱이 하나 들이밀어 사활을 거는 강력한 투쟁이 아니고서는 자본은 교섭에조차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교섭에 나와 합의서를 작성한다 해도 1년이 채 못 가서 뒤집히기 일쑤이다. 지금도 수많은 현장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화물노동자들은 어디에 하소연 할 데가 없다. 불행히도 박종태 열사가 돌아가신 이후에야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문제가 쟁점화되고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권 기본권 쟁취 투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의 절박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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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4일 서울 금호아시아나 빌딩 맞은 편인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금호그룹 규탄 집회  ▷ 화물연대 ]

화물노동자의 피땀이 밴 자본, 생존권을 보장하라

박종태 열사는 마지막까지 택배노동자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간절히 바랐다. 현재 택배노동자들이 해고된 지 벌써 석 달이 다 되었지만 금호·대한통운 자본은 무성의한 태도와 새빨간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1년 만에 91개 계열사를 121개 계열사로 늘린 문어발 재벌이다. 부채비율이 평균 500%가 넘으면서도 대우건설,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금융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르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여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4조원에 대한통운을 인수해서 1년 만에 3조 이상을 회수했고, 이 과정에서 살인적인 비용절감과 노동자에 대한 고통전가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대한통운 자본은 2009년 1분기에만 무려 5,410억 원을 벌여 들였다. 이 액수는 전년도 대비 58% 늘어난 것이며, 1년 전체 매출액은 2조 5,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에 이르게 될 것이다. 

화물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대한통운 자본은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이윤을 낼 수 있었다. 매일매일 밀려오는 졸음을 이겨내며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운전대를 잡고 일하고 있는 화물노동자의 피맺힌 노동이 대한통운 자본을 우리나라 최대의 물류자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한통운 자본은 배은망덕하게도 단돈 30원 때문에 78명의 택배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집단 해고했다. 노동자의 생존권이 재벌자본의 탐욕으로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내팽개쳐져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생존권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 

6월11일 화물연대는 <해고자 원직복직>, <노동기본권 쟁취>, <박종태 열사 명예회복>을 위한 총파업에 돌입한다. 지난 5월3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공공운수연맹 결의대회에서 김달식 화물연대 본부장은 정권과 자본에 6월10일까지 사태를 해결하도록 촉구하였으며 해결되지 않을 경우 6월11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김달식 본부장은 지난 5월21일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박종태 열사가 그렇게 목숨을 버린 것은 대화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하자고 해도 안 되니까 이 분이 자기 목숨을 던진 것이에요. 목숨을 버리면서 대화를 하자고 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김달식 본부장은 또 최근 화물연대가 내세운 기조인 “대화에는 대화로, 탄압에는 저항으로”를 강조했다. 

제2의 촛불항쟁 도화선, 연대투쟁으로 만들어 내자

이번 6월11일 화물연대 총파업은 단지 화물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추모행렬에서 보이듯 민중들의 반이명박 정서는 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이에 놀란 이명박 정권은 어떻게 해서든 제2의 촛불항쟁을 사전에 막기 위해 시청광장을 봉쇄하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방패와 곤봉으로 탄압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극심한 탄압은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격으로 민중의 분노는 폭발 직전에 이르고 있다. 

올 6월 민주노총의 역할은 분명하다. 작년 촛불항쟁 때 보여주었던 노동자, 민중의 역동성과 혁명성을 믿고 80만 전 조합원을 반이명박 투쟁으로 과감히 조직하고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제2의 촛불항쟁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투쟁은 노동자, 민중을 이명박 정권 퇴진 투쟁으로 결집시키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화물연대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강력한 총파업투쟁을 조직할 것이다. 박종태 열사의 핏값을 반드시 받아낼 것이다. 전국에서 노동자, 민중의 해방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 동지들의 강력한 연대투쟁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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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육신이 비록 여러분과 함께 있진 않지만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대접 받도록 최선을 다 합시다. 배부르고 등따신 놈들은 이번 참에 아예 지놈들 세상으로 바꿔 버리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고 합니다. 그 속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생존권, 민중의 피폐한 삶은 사상과 정견을 떠나서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바꿔야 합니다. 이 투쟁은 여러분들의 승리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동지와 조직을 믿고 함께 합시다. 승리의 기쁨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 박종태 열사 유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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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