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틀을 깨고 새 틀을 짜자! (상)

노동사회

낡은 틀을 깨고 새 틀을 짜자! (상)

편집국 0 3,171 2013.05.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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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 규모였던 금속노조가 15만 규모로 덩치를 불린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급격하게 변한 조직의 조건에 맞게 내부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교육이 필수다. 교육사업의 질과 양에 대한 평가는 조직의 건강성과 에너지를 체크하는 바로미터다. 노동운동이 더 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다시 일어서기 위한 토대를 쌓는 것도 교육사업이다. 박장현 금속노조 교육원장의 금속노조 교육사업 평가를 2회에 걸쳐서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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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속노조 교육체제의 기형적 발달

2008년 4월1일 문을 연 금속노조 교육원은 첫 과제로 금속노조 교육사업 현황을 개괄적으로 조사했고, 그 결과를 11월에 『2008 금속노조 교육사업 실태조사 보고서』로 제출했다. 이 조사를 통하여 교육원은 금속노조 교육체제가 매우 기형적으로 발달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교육체제의 기형성은 교육대상, 교육주제, 교육형식에 있어서 모두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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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대상: 지금까지 금속노조는 거의 모든 교육사업 에너지를 조합원교육에 쏟아부어온 반면에, 간부교육은 거의 방치해왔다. 기존 간부 역량강화교육도 매우 부실했으며, 젊은 간부 양성교육도 거의 이루어진 적이 없다. 
2) 교육프로그램: 지금까지 조합원 및 간부 교육은 ‘○○년 정세와 임단투 방침’ 등 단기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주제로 집중되었다. 그 결과 조합원들 및 간부들의 역량강화를 도모하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교육프로그램, 조합원들의 인적 구성을 고려한 교육프로그램, 젊은 간부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별로 발붙일 틈이 없었다.
 3) 교육형식: 지금까지 금속노조 교육은 주로 획일적 - 단발적 - 단시간 교육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선택식 - 단계별 - 장시간 교육은 별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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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교육의 기형적 체제는 금속노조뿐만 아니라 다른 노조들에서도 거의 비슷한 형태로 확인할 수 있다. 노조교육체제가 이처럼 기형적으로 발달한 데에는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을 규정해온 객관적 - 역사적 요인들과 노동조합이 선택한 주체적 - 전략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객관적 요인들 중 아마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는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오랫동안 ‘기업별노조’라는 틀 속에서 발전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체적 요인들 중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는 노동조합이 교육사업을 ‘당면투쟁 승리를 위한 도구’로 삼아온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 객관적 - 역사적 요인

지금까지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의 교육사업은 주로 조합원교육, 당면투쟁교육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두고 본다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조합에 대하여 적대적인 세력들의 온갖 탄압에 맞서서 민주노조를 사수해야 했으며, 짧은 기간 안에 기업별노조 시대를 넘어서 산별노조 시대로 전진한다는 역사적 과업을 달성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진보적 정치세력이 거의 전무한 정치지형 속에서 노동조합이 부담해야 했던 정치투쟁의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까지 민주노조운동은 조합원 대중을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지는 당면투쟁들에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교육역량을 포함한 모든 역량을 당면투쟁들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당면투쟁에 임하여 노동조합이 단시간에 최대의 동원력을 확보하자면 소수의 간부들을 교육하는 것보다는 조합원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것처럼 보인다. 무릇 간부교육이란 수로 보더라도 소수를 교육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고, 시간으로 보더라도 장시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면현안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간부집단의 역량보다는 오히려 전체 조합원 대중의 집단행동이 더 절박하게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민주노조운동이 간부교육보다 조합원교육에 교육사업 에너지를 집중해온 한 가지 이유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이 ‘기업별노조’라는 틀 속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찾아낼 수 있다. 기업별노조라는 틀은 교육사업의 틀도 규정했다. 기업별노조 시대에는 교육주체도 교육대상도 모두 기업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는데, 이런 폐쇄성은 교육사업이 조합원교육에 매몰되는 동시에 간부교육을 방치하도록 만드는 쪽으로 작용했다. 기업노조들은 단위사업장 협약을 통하여 조합원 교육시간을 확보했고, 기업노조 내부 또는 인근에서 조합원들을 교육시킬 강사들을 물색했다. 전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1년에 평균 10시간 교육을 시키는 일은 기업노조 교육주체들이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인적 및 물적 자원을 소진시켰다. 

한편, 간부교육은 조합원교육보다 한층 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 한층 더 역량 있는 전문 강사들을 요구한다. 기업노조 내부 또는 인근에서 이런 인적 및 물적 자원을 동원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 결과 노동조합은 간부들을 교육시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실제로 기업별노조 시대 내내 노동조합은 간부교육 문제를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듯하다. 단체협약을 통하여 간부교육시간을 확보한 기업노조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2) 주체적 - 전략적 요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닥치는 당면투쟁에 임하여 노동조합은 ‘간부교육보다는 조합원교육’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장기적 효과를 기다려야 하는 간부교육보다는 단기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조합원교육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적 선택이 목적의식적 성찰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이고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무의식적 선택은, ‘무의식적’ 선택이기 때문에 그 선택에 내포된 문제점들을 성찰하고 각성하려는 노력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 결과 오랫동안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당면투쟁교육에 매몰되었고, 기존 간부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도 새로운 간부들을 양성하는 교육도 게을리 했다.  

노동조합이 이런 전략적 선택을 오랫동안 고수할 수 있었던 데에는 우연적 - 생물학적 요인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조운동 초창기에 기업노조를 이끌었던 이른바 ‘제1세대’ 활동가들은 1980년대 초반 중화학공업 팽창기에 노동생활 또는 대학생활을 시작한 세대에 속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다음 세대를 길러낼 걱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1987년 대투쟁 당시 20대의 나이에 민주노조운동의 핵심간부집단을 형성했던 그들은 장차 20~30년 동안 현역으로 뛸 수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2001년 ‘4만 금속노조’를 거쳐 2006년 ‘15만 금속노조’를 창립할 때에도 여전히 핵심적인 현역으로 활약한다. 

제1세대 활동가들은 주로 노동조합 바깥에서 노동교육을 받았다. 대학출신의 ‘학출 활동가들’도 공장출신의 ‘선진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이 제공하는 교육을 통하여 활동역량을 기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노동운동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그들에게 노동교육을 시킬 수 있는 민주노조가 없었다. 그들은 이른바 ‘골방학습’을 통하여, 또는 노동교육단체를 찾아다니며 활동역량을 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노조 바깥에서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민주노조를 결성했고, 그것을 사수하고 발전시켰으며, 마침내 기업별노조를 산별노조로 전환시키는 데 주도적으로 앞장선 장본인들이다. 

제1세대 활동가들은 투철한 신념과 뛰어난 역량으로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그들의 뛰어난 활동역량이 오히려 노조교육체제를 기형적으로 발전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사실이 그러했던 것으로 보인다. 활동가집단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제1세대 활동가들은 결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노동교육의 환경이 급격하고도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들 자신이 여전히 젊었기 때문에 새로운 젊은 활동가들을 길러낼 필요성을 느끼기 못했고, 그들 자신이 노동조합 바깥에서 활동역량을 쌓았기 때문에 ‘이제는 노동조합 안에서 활동가들을 길러내야 한다’는 발상을 하지 못했으며, 그들 자신의 역량을 믿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활동가교육에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을 믿지 못했다.

끝으로,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제도와 내부정치문화도 노조교육체제가 기형적으로 발달하는 쪽으로 작용한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직선제 선거, 치열한 정파경쟁, 짧은 집행부 임기 등등의 제도들은 집행부의 잦은 교체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간부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장기간 간부로 활동하면서 지속적으로 전문역량을 쌓을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하지 못했다. 간부들이 직책수행에 필요한 전문역량을 익힐 때쯤 되면 집행부가 교체되어버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간부교육은 점점 무의미한 것으로 되어갔다. 한편, 과도한 정파경쟁은 노조교육을 내부정치의 종속변수로 만들어버렸다. 정파경쟁은 활동역량이 아니라 정파충성도를 간부 선임 기준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간부교육은 점점 불필요한 것으로 되어갔다. 과도한 정파경쟁은 간부교육뿐만 아니라 조합원교육에도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육위원 직책조차 정파충성도와 선거 논공행상에 따라 나누어먹는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도처에서 역량 있는 교육활동가들은 교육사업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역량과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이비 교육위원들이 조합원들의 의식을 좀먹고 있다.   

2. 산별노조 시대 교육사업의 전략적 선택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현재 금속노조 교육사업은 새로운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2008 금속노조 교육사업 실태조사』를 마무리하면서 교육원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간부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간부집단의 재생산이 금속노조의 발전에서 차지하는 의미’라는 관점과, ‘산별노조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간부의 자질과 역량’이라는 관점이 그것들이다. 새로운 전략적 선택은 기존의 교육사업 전략이 소홀히 하고 있던 정치철학적 요소를 보강하는 동시에, 그동안 일어난 교육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선택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1) 새로운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정치철학적 이유

교육사업의 전략적 선택이 고려해야 할 첫 번째 요소로는 정치철학적 요소를 꼽을 수 있다. 그것은 ‘노동조합의 발전에 있어서 간부집단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올바른 성찰과 이해를 뜻한다. 

금속노조는 “교육사업이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노동해방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복무해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강화하고, 조합의 대정부 및 대자본 대응역량을 키우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위원회 운영규정 및 교육원 운영규정).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금속노조 교육사업은 과연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조합원 대중으로 하여금 노동해방 사상을 자신의 것으로 삼도록 만들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아마 모든 금속노조 교육주체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람시(A. Gramsci)를 평생 동안 사로잡았던 문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새로운 세계관들은 확산되는가? 왜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은 대중적으로 되는가? …… 새로운 세계관을 교육하는 합리적 방식이 그것의 확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가? 교육하는 사람의 권위, 그리고 그가 의지하고 있는 사상가 및 과학자의 권위가 그런 영향을 미치는가? 아니면 새로운 세계관을 대변하는 사람과 동일한 집단에 속한다는 사실이 그런 영향을 미치는가?” 

그람시가 볼 때 교육효과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교육하는 방식이나 교육자의 권위가 아니다. 그것은 교육을 하는 사람과 교육을 받는 사람이 동일집단에 속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대중의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적 입장을 상상해 보자. 그는 자신의 견해와 신념, 판단기준과 행위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때 그보다 우월한 지적 교양을 가진 어떤 사람이 그와 대립된 관점에서 토론을 통해 그를 제압함으로써 사실상 논리적인 측면 등등에서 그를 무참하게 짓밟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나 과연 그렇다고 이 사람이 자신의 견해를 쉽게 바꾸겠는가? 한 차례의 토론에서 졌다고 해서 과연 그럴까? …… 그의 세계관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심할 여지없이 비합리적인 성격을 가진 요소, 즉 믿음이다. 그렇지만 누구에 대한 그리고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다름 아닌 그가 속해 있는 사회집단에 대한 믿음이다. 특히 그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때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중의 한 사람은 대중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틀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자신이 스스로 근거를 대거나 설명을 할 수는 없을지라도, 자신의 집단 가운데 몇몇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상대편보다 훨씬 더 조리 있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람시가 대중운동에 있어서 ‘유기적 지식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중집단과 유기적 지식인 집단은 상호창조의 관계를 맺고 있다. 유기적 지식인 집단은 대중의 배를 빌어 태어난다. 그리고 대중의 머리를 빚어내는 핵심주체로 활동한다. 그러므로 “통념이나 구태의연한 세계관을 대체하고자 하는 문화운동은 반드시 다음의 특징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첫째, 자신의 논지를 반복하는 데서 지칠 줄 몰라야 한다. 반복은 대중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좋은 설득방식이다. 둘째, 더 많은 대중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라. 이는 대중으로부터 직접 배출된 새로운 형태의 엘리트 지식인을 키워냄을 의미한다. 이때 둘의 관계를 실과 바늘의 관계처럼 떼려야 뗄 수 없게 해놓아야 한다. 이 두 번째 조건은 만약 달성되기만 한다면, 당대의 ‘이데올로기 판도’를 실질적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금속노조 교육원이 간부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첫째, 교육효과의 관점에서 볼 때, 간부집단이야말로 조합원 대중에게 가장 큰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합원 대중이 그들을 “나와 동일한 사회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교육방법론의 관점에서 볼 때, 간부집단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방법으로 교육할 수 있는 교육자이다. 과연 누가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의 논리를 반복하는 방법”을 실현할 수 있는가? 간부집단뿐이다. 간부집단은 조합원 대중과 동일한 현장에서 끊임없이 그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매일 조합원 대중을 교육하고 있으며,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의 논지를 반복하는 방법”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그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조합원들의 의식을 빚어내는 생생한 교육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식은 연간 10시간의 조합원교육을 통하여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하루에도 10시간 이상을 함께 뒹굴고 있는 간부들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말과 행동에 의하여 빚어진다. 단체협약에 규정된 조합원 교육시간을 이용하여 1년에 10시간 실시하는 교육으로는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의 논지를 반복하는 방법”을 실현할 수 없다. 1년에 한두 번 올까말까 하는 외부강사는 더더욱 이 방법을 실현할 수 없다. 오로지 조합원 대중과 한솥밥을 먹으면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간부집단만이 이 방법을 실현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용간부들은 조합원들을 어용조합원으로 빚어내고, 민주간부들은 조합원들을 민주조합원으로 빚어내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 간부들은 조합원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지만, 간부들이 우물 밖으로 뛰쳐나오면 조합원들도 우물 밖으로 뒤따라 나온다. “기업별노조 시절이 더 좋았다”, “기업지부를 해소하면 현장이 무너진다”, “우리 기업지부에서 매년 본조에 올려 보내는 돈이 40억 원이나 되는데 본조에서 우리 기업지부에게 해주는 것이 도대체 뭐 있느냐?”, 간부들이 날마다 때마다 이런 말을 되풀이 한다면 과연 조합원들이 산별노조에 대하여 긍정적인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요약하자면, 조합원 대중의 의식은 간부집단의 의식과 활동을 통하여 빚어진다. 간부집단에 대한 교육을 조합원 대중에 대한 교육보다 전략적으로 선행시켜야 하는 이유를 맑스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유물론적 변혁론과 유물론적 교육론이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있다. 현실을 바꾸는 주체는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교육자도 교육을 하기 전에 먼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충분한 학습과 교육을 통하여 투철한 신념과 전문적인 역량을 갖추지 못한 간부들은 이른바 ‘짬밥’과 ‘통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간부들은 과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사업에 임하여 경험주의 해법을 내놓을 것이고, 투철한 신념이 요구되는 사업에 임하여 현실추수주의 해법을 내놓을 것이다. 이런 간부들이 조합원들의 교육자로 활약한다면? 필경 그들은 지칠 줄 모르고 조합원 대중을 설득하는 대신에 손쉬운 길을 선택할 것이며, 조합원 대중에게 노동조합이란 ‘눈앞의 이익을 실현시켜주는 자판기’라고 가르칠 것이다. 노동조합의 앞날을 이런 간부들에게 맡길 것인가?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간부집단은 노동조합의 ‘유기적 지식인’ 집단이다. 강력한 간부집단을 보유하지 못한 노동조합이 계급투쟁의 전장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마침내 세상을 뒤엎겠다고 나선다면 아마 소도 웃다 나자빠질 것이다. 그리고 노동조합 교육사업이 강력한 간부집단을 양성해내는 데 실패한다면 그 노동조합은 머지않아 소의 웃음거리로 되고 말 것이다. 

2) 새로운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는 객관적 환경의 변화

교육사업의 새로운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는 두 번째 요인으로는 계급정치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기업별노조들이 산별노조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 금방 눈에 띄어서 누구나 알아차리고 있다. 다른 한 가지 근본적인 변화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채 진행되고 있다. 활동가집단의 재생산이 멈추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운동 환경의 근본적 변화와 더불어 노동교육 환경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노동조합 바깥에서 젊은 활동가들을 양성하여 노동조합에 공급할 수 있는 샘이 거의 말라버렸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지금의 금속노조를 건설하고 발전시킨 주력 활동가들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전후하여 노동운동을 교육받은 이른바 제1세대 활동가들이다. 그들은 주로 노동조합 바깥에서 노동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대학이 노동운동 활동가들을 공급하던 시대는 멀리 물 건너 가버렸으며, 대부분의 노동교육단체들도 그동안 문을 닫고 사라져버렸다. 골방학습의 전통이 끊어진지도 오래 되었다.

물론 제1세대 활동가들이 우리나라 노동운동에서 발휘한 역할은 높이 평가하여 마땅하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1987년 대투쟁도 분출될 수 없었을 것이고, 그 후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넓어지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강물도 없었을 것이며, 마침내 새로운 계급투쟁의 바다 위에 산별노조를 출범시킬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활동가집단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기 어렵다. 그들이 건설해놓은 민주노조의 틀 속으로 새로 젊은 노동자들이 들어왔지만, ‘노동조합이 없던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후배세대 노동자들은 스스로 활동가로 나설 만큼 절박한 필요성을 몸으로 배운 적이 없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들을 노동조합 활동가로 나서도록 촉발할 수 있을까? 오로지 목적의식적인 활동가 양성 교육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배세대 활동가들은 연달아 닥치는 당면투쟁에 매몰되어 후배세대 활동가들을 길러내는 일을 게을리 했다. 그 결과 아직도 제1세대의 ‘노땅들’이 노동운동의 최전방에 서서 북도 치고 나팔도 불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들의 뒷주머니에는 이미 정년퇴직 고지서가 꽂혀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과연 누가 민주노조운동을 끌고나갈 것인가? 제2세대 활동가들은 충분한 역량과 신념을 갖추고 있는가? 제3세대 활동가들은 자라나고 있는가?

지금 노동조합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기존 간부들의 역량을 강화시키고 젊은 활동가들을 길러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다. 그것도 자력으로! 그런데 지금 과연 노동조합 교육사업은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는가? 커다란 의문부호를 붙이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다. 

금속노조도 예외가 아니다. 기존활동가들의 역량을 재충전하고 새로운 활동가들을 양성하는 일은 이미 금속노조의 사활이 걸린 일로 되어 있다. 투철한 신념과 전문적 역량으로 무장된 젊은 활동가들을 조속히 양성해내지 못한다면 금속노조는 머지않아 폐경기를 넘긴 불임노조로 전락하고 말 것으로 보인다. 바로 여기에 금속노조가 간부교육을 강조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실시한 『2008 금속노조 교육사업 실태조사』 결과를 두고 보자면, 지금 금속노조의 간부교육체제는 매우 부실하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간부교육을 강조해야 할 다른 한 가지 이유로는 산별노조 시대로 접어들면서 간부들의 활동공간과 활동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산별노조 시대를 맞이하여 이제 간부들은 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도 대응해야 한다. 때때로 기업의 울타리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울타리 안의 노동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촉발된 경제위기가 전 세계를 경제공황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요즈음 우리나라 노동조합 간부들도 결코 기업별 울타리 속에 안주할 수가 없다.   

활동공간의 변화는 신념과 역량의 변화를 요구한다. 기업별노조 시대와는 달리 산별노조 시대의 간부들은 더 넓은 안목을 가져야 한다. 산별노조 간부들은 기업별 수준의 미시적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뿐만 아니라 산별 수준, 국가 수준, 세계 수준에서 거시적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도 인식하고, 그에 대하여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때때로 편협한 경제적 타산과 기업주의를 극복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장 수준의 직접적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정치경제, 사회문화, 국제관계 등등에 대해서도 풍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인식의 넓이뿐만 아니라 인식의 깊이도 더해야 한다. 산별노조 시대는 간부들이 전문역량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기업별노조 시대가 ‘아마추어 활동가’의 시대라면, 산별노조 시대는 ‘프로 활동가’의 시대이다. 기업별노조 시대에는 통하던 ‘주먹구구’와 ‘무대뽀’가 산별노조 시대에는 통할 수 없다. 

산별노조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어 프로로서 활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투철한 신념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역량으로 무장해야 한다. 산별노조 시대는 간부들의 유기적 분업과 협업을 요구한다. 기업별노조 시대는 ‘팔방미인 활동가’ 또는 ‘전천후 활동가’를 요구했었다. 그리고 역량 있는 전천후 활동가 한두 사람이 기업노조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 시대에는 소수의 간부들이 조직사업과 총무사업, 단체협상과 대외사업, 교육사업과 선전사업 등 노동조합의 모든 일을 쳐내야 했다. 그에 따라 간부 개개인이 ‘모든 사업을 담당할 수 있는 팔방미인’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기업별노조 시대에는 그것이 가능했다. 노동조합의 모든 일들이 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즉 손을 뻗치면 닿을 수 있는 거리 안에서, 목청을 높이면 들릴 수 있는 거리 안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모든 관계가 직접적 대면관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전문적 역량이 부족할 경우에는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여지도 컸다. 

그러나 산별노조 시대에는 아무리 역량 있는 전천후 활동가라 할지라도 노동조합의 모든 사업을 담당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산별노조 시대는 간부들의 개인기보다 팀워크가 더 중요하게 된 시대이다. 즉, 전문역량을 갖춘 간부들이 전문영역의 경계를 뛰어넘는 유기적인 분업과 협업을 통하여 시너지(synergy)를 창출하지 않고는 조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시대이다. 전문화된 간부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은 전천후 간부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보다 작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천후 역량을 발휘하는 간부들은 아무리 많은 수가 모여도 시너지를 창출할 수 없지만, 전문화된 역량을 갖춘 간부들은 유기적 분업과 협업을 통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3. 교육프로그램의 근본적 재성찰

1) 교육대상, 교육목표, 교육형식의 상응관계


교육사업의 새로운 전략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 및 현재의 교육프로그램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평가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교육대상, 교육목표, 교육프로그램 사이의 상응관계를 고려하면서 현행 금속노조 교육사업의 문제점들을 확인하는 작업을 요구한다.

노조교육의 내용 및 형식은 교육대상과 교육목표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교육대상을 기준으로 구분하자면, 노조교육은 크게 조합원교육과 간부교육으로 구별할 수 있다. 간부교육은 다시 기존 간부 역량강화교육과 신임 간부 양성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편, 교육목표를 기준으로 구분하자면, 노조교육은 방침교육, 일반교양교육, 역량강화교육, 양성교육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방침교육은 당면한 현안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모든 조합원들 및 간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이다. 일반교양교육은 조합원들과 간부들의 생활정치 능력을 키워줌으로써 그들이 노동세계 속에서 자기실현의 길을 넓힐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교육이다. 간부 역량강화교육은 기존 간부들을 대상으로 신념과 전문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이며, 간부 양성교육은 젊은 간부들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교육이다. 

교육대상과 교육목표에 따라 노조교육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할 것이다. 방침교육은 조합원 대중 및 간부집단을 대상으로 당면현안을 주제로 통일적 - 일회적 - 단기적 - 의무적으로 실시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하여 일반교양교육은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선택적 - 주기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한편, 간부들의 역량강화교육은 중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선택적 - 단계별 - 주기적 - 의무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모든 간부들이 자신의 역량을 끊임없이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역량강화교육은 의무교육의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지만, 간부들이 각자 자신의 전문분야와 관심에 따라 필요한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선택적 성격을 띠고 있다. 가장 장기적인 전망과 인내를 요구하는 교육은 젊은 간부 양성교육이다. 그것은 조합원 대중 속에서 활동가들을 발굴 및 양성한 뒤 그들을 기존 간부 역량강화교육 프로그램으로 연결시켜주는 모든 절차와 과정을 포괄한다(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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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속노조 간부교육의 문제점

『2008 금속노조 교육사업 실태조사』를 통하여 교육원들에게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현재 금속노조 교육사업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간부교육에 있다. 지금까지 금속노조는 간부교육에 너무 적은 교육자원을 투입해왔을 뿐만 아니라, 투입한 자원조차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낭비해왔으며, 교육효과는 매우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투자부족

간부교육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증거는 간부들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양이 매우 적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2008년 현재 금속노조 지회 - 지부 - 조합 대의원들은 연간 2.5회, 약 10시간 정도의 간부교육을 받고 있을 뿐이다. 한편, 집행간부(임원 및 상집간부)들은 연간 3.5회, 약 13시간 정도의 간부교육으로 만족해야 한다. 금속노조 간부교육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간부의무교육이다. 금속노조는 매년 모든 간부(대의원, 임원 및 상집간부)들을 대상으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간부의무교육은 주로 대의원대회, 대의원수련회, 확대간부회의, 확대간부수련회 등의 행사 때 교육을 한두 꼭지 배치하는 식으로 실시되고 있는데, 그런 행사의 빈도가 1년에 2~4회 된다. 가장 많은 간부교육을 받고 있는 집단은 교육활동가(교육부서장, 교육위원)들로서, 연간 2.9회 약 26시간의 교육을 받고 있다.

주먹밥 식 교육

간부교육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는 다른 한 가지 요인으로서 그것이 획일적 - 단발적 - 단시간적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교육원은 이런 형식의 교육에 ‘주먹밥 식 교육’ 또는 ‘김밥 식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여 강조해서 지적한 바 있다. 간부교육은 주로 회의(확대간부회의, 대의원회) 또는 수련회(상집간부수련회, 확대간부수련회) 등등의 행사에 구색 맞추기 식으로 한두 꼭지 배치되어 실시되는데, 이런 식으로 교육이 실시되다보니 교육이 주먹밥 식 교육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에 참가하는 간부의 수는 관련행사의 성격에 따라 적게는 수십 명으로부터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데, 그들에게 똑같은 주먹밥이 배달되는 것이다. 주먹밥을 싸들고 오는 사람은 통상 외부강사이다. 간부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들의 인적 속성이나 전문영역, 활동경력이나 학습경력에 상관없이 교육주제가 단일할 수밖에 없으며(획일성), 단 한 차례로 완료되는 분량의 교육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으며 (단발성), 각 교육시간은 1 ~ 2시간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단시간성). 

이런 간부교육 프로그램이 발달한 것도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의 발전경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업별노조 시대에 사업장 울타리 안에서 독자적으로 간부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 만큼 규모와 역량을 갖춘 사업장은 흔하지 않았다. 예산 또는 시간을 고려해볼 때, 사업장을 넘어서는 범위에서 실시되는 교육을 위하여 별도로 간부들을 소집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 노동조합이 궁여지책으로 지역 또는 전국 수준에서 대의원대회, 확대간부회의, 또는 간부수련회 등등의 기회를 빌려 간부교육을 실시하는 관행을 발전시켜온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산별노조 시대가 시작된 뒤에도 기업별노조 시대의 관행이 무비판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지난날의 관행이 이제는 ‘알리바이 교육’을 부채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아직도 금속노조는 산별노조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교육체제를 힘들여 개발하는 길 대신에 손쉬운 길을 걷고 있다. 여전히 지난날의 관행에 따라 대의원대회, 확대간부회의, 간부수련회 등등의 행사에 교육을 한두 꼭지 배치함으로써 ‘간부교육을 시켰다’는 알리바이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기존 간부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교육도, 젊은 간부들을 양성하는 교육도 모두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획일적 - 단발적 - 단시간적 형식은 간부의무교육이 다양한 주제와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아낼 수 없도록 만든다. 비슷한 내용의 교육이 매년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도 이런 형식적 제한성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매년 고정 레퍼토리로 등장한 제목으로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년 정세와 노동조합’, ‘○○년 투쟁방침’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결과  간부의무교육도 조합원의무교육과 다름없이 ‘당면투쟁 승리를 위한 방침교육’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덧붙여 ‘성폭력 예방교육’, ‘한반도 통일과 노동자’, ‘노동자 건강권’, ‘대의원의 역할과 자세’ 등 간부들의 기초적인 정치의식과 활동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들이 때때로 배치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교육들도 2시간 정도 분량의 1회성 교육이라는 점을 두고 본다면, 그것을 역량강화 교육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고, 초보적인 소양교육이라고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금속노조가 ‘간부들의 인적 속성에 맞춘 교육’으로 실시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으로는 신임지회장 교육, 신임간부 교육 등을 꼽을 수 있다. 금속노조는 신임간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으며, 각 지부들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신임간부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위하여 노력해왔다. 신임간부 역량강화교육은 흔히 4 ~ 8개 강좌를 묶은 기획교육 형식으로 실시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금속노동자학교’와 ‘노동교실’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획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강좌가 다시 획일적 - 단발적 - 단시간적 강좌의 형식을 띠고 있다. 프로그램의 구성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철학 1시간, 경제학 1시간, 노동운동사 1시간, 당면정세 1시간, 기타 1 ~ 2시간……. 요컨대, 기획교육조차도 ‘주먹밥 식 교육’ 또는 ‘김밥 식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원낭비

한편, 금속노조가 ‘간부들의 전문영역에 맞춘 교육’으로 실시하고 있는 중요한 교육으로는 분과교육을 꼽을 수 있다. ‘교섭위원교육’, ‘강사단교육’, ‘선전담당자교육’, ‘노동안전담당자교육’ 등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지금까지 가장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전문역량 강화교육으로는 아마 노동안전교육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분과교육은 종종 초급과정과 중급과정, 또는 기초과정과 심화과정을 나누어 단계별 교육으로 기획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분과교육은 금속노조 간부교육 프로그램들 중에서 유일하게 선택식 - 단계별 - 주기적 교육프로그램의 싹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먹밥 식 교육은 자원의 낭비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실태조사』를 통해서 확인했듯이, 금속노조 간부들은 ‘들었던 것을 또 들어야 하는 교육’에 대한 불만을 매우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교육을 받는 사람의 인적 속성, 전문영역, 학습수준을 깡그리 무시하는 주먹밥 교육은 들었던 것을 또 들어야 하는 교육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간부직책을 10년 ~ 20년 수행한 사람은 아마 그동안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라는 교육을 10번 ~ 20번 이상 들었을 것이다. 이런 주먹밥 식 교육은 얼핏 보기에 교육예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육방식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부와 지회가 이런 교육방식을 선호하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로 ‘강사비의 지출이 매우 적다’는 점을 꼽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교육은 기존 간부들의 역량강화에도 젊은 간부들의 양성에도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교육효과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주먹밥 식 교육은 교육을 받는 쪽에게는 시간을 낭비시키고 교육을 집행하는 쪽에게는 자원을 낭비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금속노조 간부교육 예산의 대부분이 실은 낭비된 예산”이라고 말하더라도 아마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교육규율 해이

노조교육은 모든 조합원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노동조합이 제공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와 동시에 그것을 받아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특히 간부집단은 교육의 권리와 의무를 조합원들보다 더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간부들은 자주 조합원들의 생활조건과 인생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부들에게는 남다른 신념과 역량이 요구되는 것이며, 그런 만큼 노동조합은 간부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제공해야 하고, 간부들은 그 교육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