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에밀 졸라의 발견, 전교조 시국선언 투쟁

노동사회

한국판 에밀 졸라의 발견, 전교조 시국선언 투쟁

편집국 0 3,314 2013.05.29 11:25

 학기 초 나눠주는 학교 조직표는 사무분장(행정적 업무)을 중심으로 교장-교감-행정실장-부장교사-평교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청으로부터 쏟아지는 공문서는 조직체계표를 따라 철저하게 처리된다. 위계질서상에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찾지 못할 경우 수업준비는 미뤄둔 채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한다. 공문서 내용은 당연히 교장·교감만이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평교사는 토씨 하나 다르게 해석할 수 없다. 

그렇게 처리된 공문의 내용은 일주일에 한 번 교무회의 석상에 오른다. 그러나 교무회의는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회의일 뿐, 그저 교장·교감 선생님의 훈화말씀이 곁들여진 공문 처리 사항과 지시사항만이 전달된다. 슬며시 손이라도 들라 치면 어김없이 따가운 동료 교사들의 눈빛이 느껴진다. ‘아유, 귀찮게 무슨 말을 하려고?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이 지루한 시간 빨리 끝날 텐데.’라는 메시지가 눈빛에서 전해져 온다. ‘벌떡 교사’라 할지라도 가만히 손을 내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1987년이 아닌 2009년도니까 말이다.

시국선언이 별 건가 했는데, 별 거였구나!

서서히 달궈지는 냄비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온도에 자신의 체온을 변화시키며 스스로를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개구리마냥, 하루하루 달라지는 교육계의 여러 소식들을 귀 밖으로 내돌리며 버티어 가는 것에 만족한다. 설마 펄펄 끓을 때까지 달궈지겠어! 그때까지 안 가도록 누군가 나서겠지. 교육청에서 어떤 공문이 오든지, 전교조에서 어떤 서명 작업이 오든지, 그때그때 위계질서 또는 인간관계에 따라 대응하면 그뿐이다. 내용이야 “내 아버지가 총각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자연을 살린다” 식의 황당무계한 것만 아니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서명용지가 돈다. 시국선언이란다. 사교육비 부추기는 입시경쟁 교육 철폐하고, 여론 독과점을 불러오는 미디어법을 철회하라는 등의 내용을 주장하는 시국선언이란다. 언론을 통해 예습, 복습, 보충학습까지 다 한 내용들이다. 특이한 내용도 없다. 교과서적인 멘트여서 싱겁기까지 하다. 거기다가 시국선언이란 형태는 이제까지 자주 해왔던 것이다. 분회장과 안면도 있는데 그냥 시원하게 서명한다. 별 일 있겠어! 

그런데 별 일 있다. 교과부에서 하루 종일 방송에다 대고 징계하겠다, 고발하겠다, 끝까지 발본색원하겠다고 외친다. 조·중·동을 필두로 한 보수 신문들과 보수 단체들은 전교조와 시국선언 동참자를 공무원의 성실복종 의무와 정치활동 참여 금지를 위반했다며 비난한다. 원색적인 욕설과 함께 말이다.

어이쿠! 난리법석이 난다. 조용했던 학교가 들썩거린다. 빼달라는 사람! 넣어 달라는 사람! 분회장 안하겠다는 사람! 걱정하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 폭풍 속 배 안 사람들마냥 가지각색으로 난리법석을 떤다. 그러나 폭풍 속 배 안 사람들 모든 얼굴에 살고자 하는 염원이 공통되게 나타나듯, 가지각색 난리법석을 떤 교사들 사이에는 ‘어이없음’이란 표정이 공통되게 나타난다. 한나라당의 주요지지 세력인 교총도 밥 먹듯이 한 시국선언! 이제까지 수도 없이 많이 해 온 시국선언인데 거기에다 대고 징계를 하겠다는 정부와 그에 맞장구치는 조·중·동이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 어이없음은 파면과 해임이라는 공포 속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았고 “MB 닮으셨네요~”라는 말을 최고의 욕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포정치는 ‘백신’이 되고 조중동은 ‘찌라시’가 되다

또한 서명에 참여한 교사든 참여하지 않은 교사든, 후회하지 않는 교사든 후회하는 교사든 상관없이 모두들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이 정권이 매우 허약한 정권이구나, 관용을 바탕으로 한 소통을 할 만큼의 지지기반도 없어 오직 검·경·징계라는 공권력에만 의지하는 마지막 패를 다 보인 정권이구나’라는 깨달음이다. 시국선언에 따른 교사 1만 7천 명 징계라는 교과부의 안드로메다급 공갈포는 일종의 ‘백신’이 되었다. MB정부의 정책을 더러운 꼴 보기 싫어서 따른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교사를 볼 수 있을지언정, 무서워서 따른다는 교사는 보기 힘들다. 물론 MB정권에 100% 공감하는 교사는 더더욱 보기 힘들어졌다. 이 정권의 마지막 패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다.

또한 정부를 부추기고 맞장구를 쳐대는 조·중·동에 대한 교사 사회의 신뢰도 많이 떨어진 듯하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시국선언에 대한 기사를 접하며 ‘찌라시’라는 이름을 스스럼없이 붙이는 교사가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조·중·동 구독을 유지하는 것도 진보와 보수 언론 모두를 구독해야 중립을 지킬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어떤 이유도 없는 상황이다. 『시사IN』 100호 특집기사에서 조·중·동이 전체 언론 중에서 불신도 1, 2, 3위를 차지하였다는 사실이 이런 교직 사회의 현실을 더욱 뒷받침해 준다.

점점 늘어가는 ‘한국판 에밀 졸라’들

전교조 시국선언 사태를 거치며 MB정권의 공포정치에 대한 면역력이 증가하고 조·중·동의 어이없는 기사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면서, 교무실 곳곳에는 한국판 에밀 졸라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조그만 스티커 한 장, 예전에는 반공 포스터나 간첩신고요령이 붙어 있었을 법한 자리에 붙여진 “시국선언 징계 NO”라는 스티커 한 장이 한국판 에밀 졸라들의 등장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각종 서명을 받으러 갈 때에 구수한 웃음으로 반기며 “이번에 징계 한 번 받아볼까?”라는 농을 던지면서 기꺼이 참여해주는 선생님들, “저는 좀…….”이라고 하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짓는 선생님들, “이런 것에 참여하기 싫습니다”고 하면서도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을 표하는 선생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에밀 졸라가 된 분, 에밀 졸라가 되어갈 분, 에밀 졸라의 씨앗이 뿌려질 분들이다.

수직적 지배질서가 자리 잡고 있는 교무회의를 지시사항 전달 시간이 아니라 회의하는 시간으로 만드는 노력들에 지지하는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비록 시간을 오래 잡아먹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말씀 참 잘하시던데요”라며 격려하는 에밀 졸라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밝혔던 에밀 졸라의 의지가 교무실 곳곳에서 선생님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소시민적 삶에서 진실의 목소리를 찾자

전교조 운동의 근본이 바로 이것이다. 거대한 억압적 권력에 저항하는 지사적 선도 투쟁 대신 다양한 억압적 권력에 저항하는 수많은 평교사들에게서 발현되는 ‘진실추구 의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자신의 소시민적 삶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며 나무라고 그들을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그들의 소시민적 삶 속에서 ‘진실추구의 의지’가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찾아보고 만들어 가는 것이 전교조의 역할인 것이다. 

지난 촛불 집회에서 촛불 대중의 앞에 나서고 가르치려 했던 단체들이 비난을 받는 가운데 촛불 대중을 그대로 인정하고 모르는 정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였던 민변이 적극적 지지를 받았던 것은 이를 매우 잘 보여준다. 전교조 현 집행부의 모토는 소통과 연대, 대안이다. 그 모토처럼 조합원과 소통하고 민중과 연대하며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대안이 될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될 때 MB정권의 이후를 ‘준비된 자’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국선언 투쟁의 승리에 대한 믿음을 에밀 졸라의 『로로르』지 기고문 「나는 고발한다」의 일부로 대신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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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극적 승리에 대해 조금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력한 신념으로 거듭 말합니다. 진실이 행군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음을! 진실이 지하에 묻히면 자라납니다. 그리고 무서운 폭발력을 축적합니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것입니다.

내가 취한 행동은 진실과 정의의 폭발을 서두르기 위한 혁명적 조치입니다. 그처럼 많은 것을 지탱해왔고 행복에의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인류의 이름에 대한 지극한 정열만이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입니다. 나의 불타는 항의는 내 영혼의 외침일 뿐입니다. 이 외침으로 인해 법정으로 끌려간다 해도 나는 그것을 감수할 것입니다. 다만 청천백일하에 나를 심문하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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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46호